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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2년 3월 14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2.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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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1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사순 제2주간 월요일 -

 

 

2022년 3월 14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 오늘 제1독서

 

다니엘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 오늘 복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2년 3월 14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명동성당 매일미사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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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다니 9장 4ㄴ-10절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선조들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마소서. 어서 빨리 당신 자비를 저희에게 내리소서. 저희는 너무나 불쌍하게 되었나이다.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저희 구원의 하느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를 구하소서. 당신 이름 위하여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포로들의 탄식이 당신 앞에 이르게 하소서. 죽을 운명에 놓인 이들을 당신의 힘센 팔로 보호하소서. 저희는 당신의 백성, 당신 목장의 양 떼. 끝없이 당신을 찬송하고, 대대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주님, 저희 죄대로 저희를 다루지 마소서.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6장 36-38절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성체를 모시고 비오니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고 천상 기쁨을 나누어 받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평화방송 매일미사
정해성 베드로 신부 집전

 

 

2022년 3월 14일 (월)
정해성 베드로 신부 집전

 

 

명동성당 매일미사

 

 

2022년 3월 14일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정진만 안젤로 신부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며 베풀어야 한다.

 

오늘 복음은 ‘평지 설교’(루카 6,20-49 참조)의 한 부분입니다. 행복 선언(6,20-23 참조)과 불행 선언(6,24-26 참조), 원수 사랑의 가르침(6,27-35 참조)은 심판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에 앞서 소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오시어 평지에서, 당신의 말씀과 행적을 증언할 증인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그들에게 가르침을 베푸십니다. 루카 복음 6장 36절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마무리’하면서, 심판과 용서에 대한 가르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 6장 37-38절은 사중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명령과 그 결과가 같은 형식으로 네 차례 반복되는데, 처음 두 번은 부정 명령이고 다음 두 번은 긍정 명령입니다. 

루카 복음서의 저자는 이러한 대조적 구조를 통하여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며 베풀어야 한다는 행위의 절대적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의 권고와 명령에 따른 실천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이는 하느님께 심판도 단죄도 받지 않으며 그분의 용서와 선물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예수님에게서 파견되어 그분을 증언해야 하는 이들을 위한 행동 기준이자 그들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심판과 용서에 관한 가르침으로 제자들이 자비로운 아버지의 속성을 배우고 닮도록 촉구하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비결

 

오늘 복음의 시작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입니다. 그리고 끝은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심판이니 단죄니 용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비결은 아버지로부터 자비를 받아서 되는 것인데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심판과 단죄는 하지 않고 용서할 때 그만큼 자비를 주신다고 오늘 말씀하십니다. 

이 복음 말씀을 저는 수없이 묵상을 했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렇게 묵상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저는 이번에 보게 됐습니다. 

전에는 단죄나 심판이나 용서를 사람끼리 주고받는 그런 차원에서 오늘 말씀을 주로 묵상했는데 이번에 더 명확히 성찰하게 된 것은 사람끼리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웃에게 줄 때 그런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는 것은 이웃에게이고 받는 것은 하느님에게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 저뿐 아니라 우리는 인간끼리 주고받으며 살고, 그러는 가운데서 조금 더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조금 현명한 사람은 떼 먹히는 일이 있을지라도 주는 사람이 받고 주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는 것을, 많이 줄수록 많이 받고 적게 주면 적게 받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받기 위해 주고 그래서 떼 먹힐 경우 상처를 받습니다. 더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이 싫어서 아예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삽니다. 

그런데 진정 현명하고 신앙적인 사람은 줘버리고 맙니다. 아예 받을 생각이 없고 그래서 떼 먹히지도 않고 하느님께로부터 받기에 하나의 사랑 라인이 형성됩니다. 

사랑 라인이란 이번에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영어로 하면 Love-Line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말의 내리사랑이라는 말과 비슷하고요. 

사랑에는 기울기가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끼리는 기울기가 없어서 준만큼 받으려고 하는데 줘버리고 받지 않으려는 사랑은 기울기가 있는 사랑이고 하느님 사랑을 닮은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내리사랑이 부모로부터 자녀에게로, 그리고 그 자녀가 부모가 되어 또 자녀에게 이어지듯 신적인 내리사랑도 아버지인 하느님으로부터 우리에게로 그리고 우리가 다시 사랑의 아버지가 됨으로써 이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다시 명심해야할 것은 받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인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주는 것은 내가 사랑과 용서의 아버지가 되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자녀에서 사랑하는 아비가 되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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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남을 고쳐 준다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열 번 더 낫다.

 

자신은 뒤끝이 없는 쿨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마주 보고 다퉜습니다. 
 
한참을 언쟁하다가, 상대방은 말이 안 통한다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 뒤 이 형제님의 마음은 너무 불편했습니다. 평소에 자신이 뒤끝 없다고 했는데, 자기를 비판하고 또 다퉜던 그 사람을 쿨하게 다시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화가 나고 얼굴도 보기 싫었습니다. 이 형제님은 자신이 얼마나 뒤끝 많은 사람인지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좋은 성격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성격이 진짜로 좋은 성격이 아닐까요? 이는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해야지만 가능합니다. 상대의 잘못을 보고서 나도 그런 잘못을 할 수 있는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할 때, 진정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나 혼자만 살지 않고 남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참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하나가 자기 눈에 너무 잘 보이는 남의 잘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남의 잘한 일을 인정할 때는 주의 깊은 관찰과 분석을 통해서 가능하면서도, 남의 잘못은 왜 이렇게 빨리 자기 눈에 비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이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 역시도 상대방에게는 남이 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나의 잘못이 너무 쉽게 보일 것입니다. 
 
정말로 고치기 힘든 우리의 악습입니다. 그래서 동서양에 걸쳐서 이 악습을 버리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중국 고전 전한서는 ‘남의 공은 기억하고 과실은 잊어라.’라고 했으며, 서양의 격언은 ‘남을 고쳐 준다고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열 번 더 낫다’라고 전해줍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면 하느님 나라에 온전하게 들어갈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도 치료 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남을 탓하고 교정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대신 남의 잘못을 보고, 그 잘못이 내 잘못도 되지 않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의 겉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법’이 할 일이고, 속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입니다. 따라서 남의 잘못을 판단하고 단죄하기보다, 먼저 자기 잘못을 고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용서하고, 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느님께 더 커다란 사랑과 은총을 받게 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 그런 사람이 되어라.

- 핀다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루카 6, 37)

 

행복해지는 첫 걸음은 용서하는 마음이다. 상대를 용서하는 것이 곧 나를 용서하는 것이다. 창조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용서의 삶이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삶으로 다시 피어나게 하는 것 또한 다름아닌 용서이다. 용서의 마음이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 나라의 마음이다. 

평화는 용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용서의 관계는 자기반성이라는 내적 의미를 만나는 시간이다. 지나친 욕망의 충족이 미움과 증오로 위선과 거짓으로 서로를 내몰았다. 진정한 의미의 관계에 대해 물음을 던지고 실천하는 용서의 사순이다. 삶이 있기에 십자가가 있고 고통이 있기에 용서가 있다. 

용서는 회개를 바탕으로 서로를 일으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진심어린 기도이다. 기도가 쌓여 용서가 되고 용서가 쌓여 새로운 삶이 된다. 새로운 삶이란 고통을 덜어주는 용서의 삶이다. 주고 받아야 함께 살 수 있는 용서이다. 수도 공동체도 용서를 주고 받아야 존재할 수 있는 용서의 공동체이다. 

마음을 살리는 것이 용서이다. 용서의 현주소지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서의 새 날이다. 용서는 상황을 탓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척박한 십자가에서 새롭게 움을 틔우는 용서의 힘이다. 사람이 발전하는 것은 용서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기도에 있기 때문이다. 

용서가 삶의 부활이며 참된 사랑이다. 그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청하는 용서의 새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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