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에제 37,21ㄴ-28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 복음
요한 11,45-56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에제 37,21ㄴ-28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21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나가 사는 민족들 사이에서 그들을 데려오고, 그들을 사방에서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겠다.
22 그들을 그 땅에서, 이스라엘의 산악 지방에서 한 민족으로 만들고, 한 임금이 그들 모두의 임금이 되게 하겠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
23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자기들의 우상들과 혐오스러운 것들과 온갖 죄악으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저지른 모든 배신에서 내가 그들을 구원하여 정결하게 해 주고 나면,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
24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을 다스리는 임금으로서, 그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목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내 법규들을 따르고 내 규정들을 준수하여 지키면서,
25 내가 나의 종 야곱에게 준 땅, 너희 조상들이 살던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자손손이 영원히 그곳에서 살며, 나의 종 다윗이 영원히 그들의 제후가 될 것이다.
26 나는 그들과 평화의 계약을 맺으리니, 그것이 그들과 맺는 영원한 계약이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을 불어나게 하며, 나의 성전을 영원히 그들 가운데에 두겠다.
27 이렇게 나의 거처가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28 나의 성전이 그들 한가운데에 영원히 있게 되면, 그제야 민족들은 내가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하는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1,45-56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그때에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바리사이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다.
47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저자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고,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49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가 말하였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모르는군요.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51 이 말은 카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셈이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52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이다.
53 이렇게 하여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54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유다인들 가운데로 드러나게 다니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 광야에 가까운 고장의 에프라임이라는 고을에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곳에 머무르셨다.
55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이 자신을 정결하게 하려고 파스카 축제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님을 찾다가 성전 안에 모여 서서 서로 말하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가 축제를 지내러 오지 않겠소?”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3월 28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40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흩어진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랑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가장 역설적인 순간을 보여 줍니다. 라자로를 살리신 놀라운 기적은 많은 이에게 믿음을 불러일으켰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두려워하며 모략을 꾸밀 계기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라자로가 되살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들 민족의 앞날을 두려워하며 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대사제 카야파는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 죽는 것이 …… 낫다.”(요한 11,50)라고 말합니다.
카야파는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겠다는 속셈이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말마저 구원 계획의 예언으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것이 유다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진 하느님의 모든 자녀를 하나로 모으는 길이 될 것임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날,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인간의 두려움과 정치적 계산으로 내린 결정이었지만, 그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은 공식적으로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결의 속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향하여 조용히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라 자신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응답하고 두려움보다 진리를 선택하며 흩어진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랑의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수난을 앞둔 이 시기에 우리도 예수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며, 그분께서 돌아가신 것은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임을 마음에 새깁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는 “사순시기”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는 결정적인 사건인 십자가 사건에서 그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이 결정적인 사건이 어떻게 해서 벌어지게 되는지 그 단초를 제공해줍니다. 곧 유다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사건’을 전해줍니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시던 중, 채 도달하기도 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곧 예루살렘 가까이에 있는 엠마오에서 라자로의 장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번째의 표징’,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신 표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표징이었습니다. 이를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어떤 이들이 이를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지도자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유다 지도자들이 민심이 동요된 것을 두려워하여 최고 의회(산헤드린)를 열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곧 그들은 메시아가 와서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하리라고 여겼는데, 이러한 사실은 로마제국에게는 위협이 되었고 당시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종교도자들에게도 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결정과정이 참으로 묘합니다. 바로 그 결정과정을 통해서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해의 대사제였던 가야파의 입을 통해 밝혀줍니다.
“온 백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해서 죽는 것이 더 낫다.”(요한 11,50)
이는 예수님의 죽음이 ‘온 백성을 위한 대속’임을 밝혀줍니다. 곧 “예수님께서 민족을 위하여 돌아가시리라는 것과 이 민족만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 돌아가시리라는 것”(요한 11,52)임을 드러내줍니다. 그것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한 것”(요한 11,51)이었습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오묘하게도 기회주의자인 가야파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를 밝혀주십니다. 참으로, 성령께서는 오묘하게 일하십니다.
(어쩌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서도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신비롭게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백성들을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기다리며 파스카를 준비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준비해야 할까요?
주님! 제 안에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소서. 오늘 타인을 위하여 죽고 타인을 대신해서 죽을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1,50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주님!
주님! 겉치레 속에 교묘히 가리고 있는, 제 불신의 껍질을 벗겨 내소서.
신앙의 겉꾸밈 뒤에 감추고 있는, 제 허영과 자애심을 끊어내소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기고 있는, 제 위선을 몰아내소서.
빛을 비추시어,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의 어둠을 몰아내소서.
제 안에 당신의 생명이 자라고 당신의 영이 흐르게 하소서.
오늘 타인을 위하여 죽고 타인을 대신해서 죽을 줄을 알게 하소.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자기 영광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법: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대사제 가야파는 아주 냉혹하고도 효율적인 논리를 폅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이롭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합니까?" (요한 11,50)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추악한 욕망을 '민족의 안녕'이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포장합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죽이는 행위를 '정당한 희생'이라고 선언합니다.
세상에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선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간의 생명에 관한 것이 그렇습니다. 낙태, 살인, 전쟁과 같은 악행은 그 어떤 숭고한 목적으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명분만 있으면 너무나 쉽게 칼을 휘두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보십시오. 그
들이 내세우는 나토 가입 저지나 안보 확보라는 명분이, 지금 이 순간에도 차가운 땅 위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청년과 민간인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는 핵무기 억제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이란을 침공한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이를 살리기 위해 몇몇은 죽어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여기에는 자기영광이라는 악이 숨어있습니다.
무엇이 ‘정의’냐고 묻는 철학적 논의 중에 '트롤리 딜레마(Trolley Problem)'라는 것이 있습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가 5명의 인부를 향해 달리고 있을 때, 선로를 바꿔 1명만 죽게 하는 것이 정의냐는 물음입니다. 많은 이가 '5명보다 1명이 죽는 게 낫다'며 공리주의적 선택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야파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상황을 조금 바꿔봅시다. 당신이 육교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습니다. 기차를 멈추게 할 유일한 방법은 옆에 있는 뚱뚱한 당신의 자녀를 밀어 떨어뜨려 기차를 세우는 것뿐입니다. 이때도 당신은 '5명을 위해 1명을 죽이는 게 이롭다'며 자녀를 밀 수 있겠습니까? 절대 못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중성입니다. 대상이 '나'나 '내 것'이 아닐 때만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당신을 믿지 않는 이유가 바로 '자기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영광에 빠진 자에게 타인은 그저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부속품일 뿐입니다. 모기가 피를 빨 때 사람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듯, 자기 영광이라는 생존 본능에 사로잡힌 인간은 타인의 눈물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도 우리 삶 안에서 한 생명의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 살펴야 합니다. 한 생명, 그것은 온 우주보다도 소중합니다. 그것이 나의 생명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렇지 못할 경우를 잘 살펴보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자기 영광의 감옥에서 못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1961년 예일 대학교의 스탠리 밀그램은 충격적인 실험을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학습 효과 증진'이라는 명분을 주고, 틀린 답을 말하는 학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하게 했습니다. 전압이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올라가 비명이 들려도, 권위자가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계속하라"고 하자 65%의 사람들이 치사량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들은 '과학 발전을 위해'라는 명분 뒤에 숨어 살인자가 됨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습니다. 목적(실험 완수)을 위해 수단(인간의 생명)을 도구화한 것입니다. 우리도 '직장 생활을 위해', '자녀 교육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수단을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출처: 스탠리 밀그램, 『권위에 대한 복종』)
자기 영광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가야파의 논리를 정반대로 뒤집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기꺼이 손해 보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구하려고 모든 이가 마음을 합칠 때, 그곳은 모기들의 전쟁터가 아니라 천사들이 사는 천국이 됩니다.
2001년 1월 26일,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는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습니다. 그는 결국 목숨을 잃었지만, 이 사건은 자기밖에 모르던 일본 사회에 거대한 영적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 사건을 '기적 같은 이타주의'로 대서특필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이후입니다. 이전까지는 선로에 사람이 떨어져도 자기 안위가 먼저라 외면하던 문화가, 이수현 씨의 희생 이후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시민이 함께 선로로 뛰어들거나 기차를 밀어내는 기이한 현상'들이 계속해서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의 진실한 희생이 수만 명의 자기 영광을 무너뜨리고, 타인의 생명을 자신의 목적보다 소중히 여기는 천상의 문화를 이식한 것입니다. (출처: 고(故) 이수현 추모 보고서; 「아사히 신문」 2001년 1월 27일자)
미국에서도 이러한 예가 있었습니다. 2013년 11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하루 동안 영화 속 '고담 시'로 변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다섯 살 소년 마일스 스콧의 소원이 "하루만이라도 배트맨이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보잘것없는 한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시장, 경찰청장, 그리고 수만 명의 시민이 생업을 잠시 내려놓고 연극에 참여했습니다. 수억 원의 비용과 도시 전체의 행정력이 오직 '한 명의 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해' 투입되었습니다. 효율성을 따지는 가야파의 눈으로 본다면 이는 엄청난 낭비이자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지만 그날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은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아니라, 아이가 우리에게서 이기심을 씻어내고 사랑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다." 한 사람을 목적으로 대할 때, 공동체는 비로소 지옥에서 탈출합니다. (출처: 메이크어위시 재단 기록; 다큐멘터리 '배트키드 비긴즈' 2015)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목적이 아무리 선할지라도 수단이 불의하다면, 그 행위는 결코 하느님의 일이 아니다. 악한 수단으로 지은 집은 결국 그 주인을 깔아뭉갤 것이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그대가 누구를 사랑한다면, 그를 결코 그대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삼지 마라. 사랑은 그 사람을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자유의지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습니다. 나 자신은 나를 영광스럽게 만들기 위해 나를 희생시킵니다. 이 감옥에서 나오는 유일한 길은 나의 생명을 타인을 위해 쓰는 길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릅시다. 내가 가장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나라는 두려움의 감옥으로부터 가장 빨리 빠져나오는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리라.
선사시대에 한 시기를 공존했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크로마뇽인이 현재 인류의 기원을 이루고,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귀 달린 바늘’의 차이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이 공존하고 있을 때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빙하기의 맹추위에서 크로마뇽인은 동물 뼈를 이용해 털가죽을 꿰맨 옷을 만들어 입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은 훨씬 덩치도 크고 힘도 강했지만, 그 추위를 이겨낼 어떤 방법도 없어서 멸종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능력이 크더라도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문명을 유지했던 마야 문명도 무분별한 개발로 산림이 훼손되었고, 이것이 오랜 시간의 가뭄을 가져와 그 화려한 문명을 파괴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고 함께 사는 길을 쫓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편하고 쉬운 길만을 찾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변화되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 그래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 뜻에 따라 변화되어야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으로 함께 사는 길을 용감하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은 라자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목격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지만, 반대로 예수님을 고발하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의회를 소집하고 말합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많은 표징을 일으키고 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요한 11,47)
신학적 진리 탐구가 아닌 철저한 정치적 계산에서 나온 말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 자신들이 누리던 기득권과 로마의 평화가 깨질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들은 썩어 없어질 권력과 체제 유지만을 신경 쓰고 있었습니다. 그해의 대사제인 카야파는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더 낫다.”(요한 11,50)
자기들 다수를 위해 소수인 예수님을 희생시키자는 폭력의 정당화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정당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자기 삶의 기득권이나 편안함을 위해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자기만 사는 길이 아닌, 함께 사는 길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어야 망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단,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얻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된다(지그 지글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에제키엘서 37장 26절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3.2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7 |
|---|---|
| 2026.03.2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6 |
| 2026.03.2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5 |
| 2026.03.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4 |
| 2026.03.2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3 |
| 2026.03.2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2 |
| 2026.03.2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