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민수 21,4-9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 복음
요한 8,21-30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민수 21,4-9

물린 자는 누구든지 구리 뱀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그 무렵 이스라엘은
4 에돔 땅을 돌아서 가려고, 호르 산을 떠나 갈대 바다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길을 가는 동안에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5 그래서 백성은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것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6 그러자 주님께서 백성에게 불 뱀들을 보내셨다. 그것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다.
7 백성이 모세에게 와서 간청하였다. “우리가 주님과 당신께 불평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이 뱀을 우리에게서 치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8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불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게 될 것이다.”
9 그리하여 모세는 구리 뱀을 만들어 그것을 기둥 위에 달아 놓았다. 뱀이 사람을 물었을 때, 그 사람이 구리 뱀을 쳐다보면 살아났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8,21-30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21 이르셨다. “나는 간다. 너희가 나를 찾겠지만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22 그러자 유다인들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니, 자살하겠다는 말인가?” 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24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25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27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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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오늘 다시 바라보는 십자가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할 때마다 우리는 깊은 절을 하며 이 기도를 바칩니다.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의 신비를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당신 자신도 십자가 위에 들어 올려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한 8,28 참조). 모세의 구리 뱀은 불 뱀에게 물려 죽음의 위기에 놓인 이스라엘 백성을 살렸습니다.
이제 그 역할을 예수님께서 완성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고자, 인류를 죽음에서 구하시고자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시어 십자가에 오르십니다. 사람의 아드님께서 십자가에 들어 높여지실 때, 온 세상에 구원의 은총이 흘러내리게 됩니다. 십자가는 바로 이 구원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성당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살아가는 내내 십자가를 마주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며 십자 성호를 긋고, 하루의 끝을 십자 성호를 그으며 마칩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 안에서 살아가며, 그 십자가는 우리를 보호하고 이끕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 위 우리의 자리’입니다. 가르멜 수도회 공동체에서는 예수님 상이 없는 십자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수도자가 저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놓는다는 깊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삶을 희생 제물로 바치겠다는 결심인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내드려 봅시다. 거룩한 도전을 지금 시작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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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진정 그분께 속해 있는가?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
오늘 <복음>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신원을 묻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이 질문을 받기 전에, 자신의 신원을 이미 밝히셨습니다.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요한 8,23)
여기서, 두 가지의 신원을 두 가지로 밝히셨습니다. 곧 “위에서 왔다”는 것과 “내가 나임”을 밝히십니다.
<첫째>는 ‘위에서 온 분’으로, 곧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분’으로 자신을 밝히십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는 길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곧 그가 누구에게서 왔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가 그의 신원을 알려줍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셨고 위에 계신 분께 속하시니, 분명 위에서 오신 하느님이시고, 위에 계신 분의 아들이신 성자이십니다.
마찬가지로, 나는 올리베따노 수도회에 속해 있으니, 분명 올리베따노회 수도승입니다. 또 하느님께로부터 뽑혀 왔으니, 분명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 위에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속한 이입니다.
그런데 나는 진정 그분께 속해 있는가?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소유로 살고 있는가? 그래서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 그분의 소유, 그분께 속하게 되면, 무슨 일이 발생하게 될까?
아마도, 예수님처럼 죽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의 것을 받아, 하느님과 같아지게 되는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둘째>는 ‘내가 나’라고 말씀하신 분이십니다.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면서 하신 표현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나는 나다.”(탈출 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릴 때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요한 8,28)
그렇습니다. 진정,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 주님께서 “내가 나”이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미 입은 이 ‘십자가의 빛’ 안에서 사순의 길을 따라 갑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개선행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그분께서는 그리스도의 개선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2코린 2,14).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8,23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주님!
제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게 하소서
제 머리 위에
항상 당신을 모시고,
당신께 속하게 하소서.
당신 품이
제가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되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손길로,
저를 바꾸소서.
당신 빛으로,
제 안에 새겨진
당신 형상을 드러내소서.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전부이오니,
오로지 당신께만
속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진실한 사람만 믿을 수 있는 이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매우 신비로운 선언을 하십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요한 8,28-29)
여기서 "내가 나다"라는 표현은 그리스어로 '에고 에이미(Ego Eimi)', 곧 하느님의 이름인 '야훼'를 뜻합니다. 그런데 이 선언을 들은 많은 이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 아버지 마음에 드는 일, 즉 '순종'을 하기에 아버지가 당신의 모든 것인 신성을 아들에게 주셨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최종 목적지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아는 것을 넘어, 그분께 순종하는 우리 역시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재창조되지 않는다면 믿음은 공허한 지식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신성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줄 만큼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를 다 주지 않으니, 하느님이 순종하는 이에게 당신 자신을 다 주신다는 사실도 거짓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는 '목숨을 건 순종'이 어떻게 상대방의 모든 것을 끌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삼국지'의 장수 조운은 주군의 혈육인 아두를 구하기 위해 홀로 조조의 100만 대군 속으로 뛰어듭니다. 이는 주군의 가문을 보존하라는 절대적 순종이었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 조운이 아기를 바치자, 유비는 아기를 바닥에 팽개치며 외칩니다.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내가 귀한 장수 하나를 잃을 뻔하였구나!"
유비는 자신의 혈육보다 조운의 목숨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조운이 목숨을 걸고 순종했을 때, 유비는 그에게 자신의 아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온 마음과 권력을 다 내어주었습니다. 인간도 자신을 따르는 이에게 모든 것을 주려 하는데,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의 순종을 보시고 당신의 신성을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출처: 나관중, 『삼국지연의』 제41회)
예수님의 순종을 보고 자신도 순종하여 하느님의 에너지를 받은 완벽한 사례는 성녀 베르나데트입니다. 1858년 루르드, 성모님께서는 어린 베르나데트에게 "가서 흙탕물을 마시고 풀을 뜯어 먹어라"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비웃었지만, 그녀는 자존심과 이성을 꺾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기적의 샘물이 솟아났고, 더 놀라운 표징은 그녀 자신에게 일어났습니다. 1879년 선종한 그녀의 시신은 1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패하지 않은 채 생생한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했기에, 주님은 당신의 썩지 않는 신성의 에너지, 그 영원한 생명력을 그녀의 육신에 가득 채워주신 것입니다. 순종하는 이에게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신다는 살아있는 표징입니다(출처: 르네 로랑탱,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명백한 표징들을 보고도 믿지 못할까요? 왜 내가 순종하면 하느님이 된다는 사실을 의심할까요? 요한 복음은 그 이유를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은 찾지 않으니,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요한 5,44)
우리가 믿지 못하는 이유는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함의 문제'입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 노력합니다. 그 기초는 언제나 '거짓말'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이 아닌데 하느님인 척, 거룩한 척, 잘난 척 포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거대한 거짓의 탑을 쌓고 있는 사람은 누군가에게 순종하여 무언가를 받는다는 원리를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믿게 되면 내 영광의 탑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 (1984)의 살리에리는 평생 "주님, 저를 위대한 작곡가로 만들어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위한 위장이었습니다. 그는 모차르트의 악보를 보며 그것이 하느님의 음성 그 자체임을 전율하며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을 거부하고 오히려 십자가를 불태웁니다. 하느님이 자신이 아닌 모차르트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자신의 영광'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신성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도, 내가 그 영광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이유로 믿음을 발로 차버렸습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는 이는 스스로 하느님이 되려 하기에, 순종하기만 하면 하느님이 된다는 사실을 절대 믿지 못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은 자신의 삶과 정반대되는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피터 섀퍼 원작, 영화 '아마데우스' 1984)
진실함은 자기 영광의 기초인 거짓을 무너뜨립니다. 솔직한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이 아니라 부족한 피조물임을 인정합니다. 나를 하느님으로 포장할 필요가 없으니, 나를 하느님으로 만들어주실 진짜 하느님께 순종할 준비가 됩니다. 그래서 솔직한 사람은 결코 자기 영광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보십시오. 그녀는 돌에 맞아 죽을 운명이었고, 자신의 영광을 챙길 수 없는 비참한 처지였기에 오히려 가장 진실해질 수 있었습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을 때, 그녀는 이미 죄와 벌의 굴레에서 벗어나 주님의 신성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내가 진실한 사람이 되어 내 영광을 버리고 주님께 순종하십시오. 그때 우리는 "내가 나다"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그 신성한 에너지가 내 안에서도 용솟음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교부 성 이레네오(St. Irenaeus)는 『이단 반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의 조건을 취하신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신성을 입게 하려는 것이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인연’이라는 수필로 유명한 피천득 선생님께서 살아계실 때, 매년 제자들이 찾아뵙고 세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90이 넘었을 때, 한 제자가 이렇게 여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어떻게 평생 사모님과 그리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습니까?”
매년 세배를 오면서 바라본 선생님 부부의 정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이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우리 집사람이 나에게 과분하니까 그렇지요.”라고 답하셨다고 합니다.
비슷한 수준이라도 상대방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좋은 관계가 됩니다. 그러나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면 불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은 모습을 보면, 서로 배우자에 대한 부족함과 단점을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와의 다툼도 그렇습니다. ‘내가 더 잘 났고, 내가 더 나은데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는가?’, ‘감히 내게 이런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지?’ 등의 말을 하면서 싸웁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말씀처럼, 내가 상대방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평화를 가져오고 행복한 삶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계속 싸우고 또 불행해지고 싶다면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 유다인들 역시 주님을 이런 시신으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자기를 낮추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이 겸손을 통해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진짜 행복의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간다.”(요한 8,21)라고 선언하시면서 당신을 믿지 않으면,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요한 8,24)라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뜻을 이야기하지만, 유다인들은 “자살하겠다는 말인가?”(요한 8,22)라면서 세속적인 차원으로만 알아듣습니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요한 8,23)라고 말씀하시면서, 단순한 장소의 차이가 아니라 가치관과 존재의 기원을 이야기하십니다. 세속적 욕망과 인간적 판단에 갇혀 있다면, 하느님으로부터 온 진리를 결코 깨달을 수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구원자이심을 끝내 거부하고 믿지 않음으로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죄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누구요?”(요한 8,25)라고 묻지만,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가 더 낫다는 생각이 커서 주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만 주님께 기도하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평불만으로 거부하고, 주님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종 정도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교만이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없게 합니다. 하느님 뜻에 맞춰서 바라보면서 하느님으로부터 온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브릿 말링).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것이다.
들어 올려진다는 것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깊이 내려가는 일입니다. 올라가려 할수록 관계는 멀어지고, 내려갈 때 비로소 가까워지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얼마나 위에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하느님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을 실천하십니다. 우리 삶 역시 고통과 실패를 통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만납니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만, 진정한 성숙은 고통을 통과할 때 이루어집니다. 십자가는 존재의 진실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약함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약함을 드러내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모두의 고통과 이어져 있고, 십자가의 깨달음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진짜 우리의 모습은 삶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순간에 드러납니다.
무너지지 않았다면 몰랐을 십자가, 잃어보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십자가입니다. 들려 올려진 십자가에서, 우리는 비로소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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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2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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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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