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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2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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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2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예레 11,18-20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 복음
    요한 7,40-53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예레 11,18-2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18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그들의 악행을 보여 주셨습니다.

19 그런데도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를 열매째 베어 버리자. 그를 산 이들의 땅에서 없애 버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자.”

20 그러나 정의롭게 판단하시고 마음과 속을 떠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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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7,40-5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

그때에 예수님의

40 말씀을 들은 군중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저분은 참으로 그 예언자시다.” 하고,

41 어떤 이들은 “저분은 메시아시다.”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42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43 이렇게 군중 가운데에서 예수님 때문에 논란이 일어났다.

44 그들 가운데 몇몇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45 성전 경비병들이 돌아오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왜 그 사람을 끌고 오지 않았느냐?” 하고 그들에게 물었다.

46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고 성전 경비병들이 대답하자,

47 바리사이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48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

49 율법을 모르는 저 군중은 저주받은 자들이다.”

50 그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전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니코데모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51 “우리 율법에는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 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52 그러자 그들이 니코데모에게 대답하였다.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

53 그들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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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1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오늘 우리도 예언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민족을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그들에게 다가올 불행을 선포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진 예언자였습니다.

오늘 독서에는 그가 마주한 가장 쓰라린 장면이 펼쳐집니다. 잠시 머물던 고향집에서 누구보다 자신을 지켜 줄 것이라 믿었던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그를 죽이려 음모를 꾸미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알려 주신 덕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예레미야는 충격과 배신감 속에서, 자신을 아무것도 모른 채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그는 폭력 앞에서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예언자의 길을 걷는 사람답게 그는 순순히 주님의 뜻에 자신을 맡기며 걸어갑니다. 예레미야는 하느님께 ‘복수’를 청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분노에서 비롯된 복수가 아니라, 정의로우신 만군의 주님께서 당신 기준으로 판단하시고 이루시는 ‘의로운 복수’였습니다. 억울함을 폭력으로 갚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하느님의 정의에 내맡기는 신앙인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신앙인은 이 시대의 예언자입니다. 자기 민족에게 닥치는 불행이라 할지라도 진실을 침묵 속에 묻어 버리지 않고 기꺼이 외쳤던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주님께 고백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로 우리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억울함과 상처가 우리를 흔들어도 그 감정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주님의 정의에 자신을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저마다 맡겨진 예언자적 삶에 성실히 응답할 수 있기를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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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행불행은 없고 사랑만 있는

“주님께서 저에게 알려 주시어 제가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 같았습니다. 저는 그들이 저를 없애려고 음모를 꾸미는 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서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순한 어린양에 대해 얘기하는데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앞당겨 얘기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은 어떤 존재입니까? 순하고 순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악을 모릅니다. 그래서 악한 짓을 꾸며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자기에 대해 음모를 꾸며도 눈치채지 못하는 숙맥입니다.

여러분은 숙맥이 뭔 뜻인지 아십니까? 원래는 불능변숙맥(不能辨菽麥) 곧 콩과 보리도 구별할 줄 모른다는 뜻의 말이지만 숙맥이라고 줄여 쓰면서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어린양은 세상사 측면에서는 너무도 순진하여 칼을 들고 오는 데도 자기를 죽이려고 오는 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완전히 무지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이 세상사에 대해 모르고 악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여 자기 목자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사에 대해서는 숙맥이지만 하느님 나라 신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악에 대해서는 악인들보다 잘 몰라도 선과 선하신 하느님에 대해선 더 잘 압니다. 어제 독서 지혜서는 악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지요.

“그들의 악이 눈을 멀게 하여 그들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께서는 당신이 너무도 잘 아시는 하느님을 지도자들은 율법을 안다는 것 때문에 모르고 그래서 그분이 보내신 당신을 오히려 죽이려고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아무튼 어린양은 세상과 세상의 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하느님과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은 잘 알고 그 뜻에 순히 따릅니다. 순진할 뿐 아니라 어린양은 순합니다. 어린양이 순하다는 것은 물론 하느님의 뜻에 순한 것이기에 희생양이 되라는 하느님 뜻에 거역하지 않고 순히 따릅니다.

그렇다면 희생양이 되라는 하느님 뜻에 순히 따른 어린양은 우리가 볼 때 불쌍한데 어린양 자신은 어떨까요?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불행해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희생양이 되신 우리의 어린양께서 행복하실까? 불행하실까?

이런 것을 왈가왈부하는 것은 큰 잘못이고 잘못을 넘어 불경일 것입니다. 주님께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 행복과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그저 사랑만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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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왜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을까요?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6개월쯤 전 초막절 마지막 날, 예루살렘에서 성령에 휩싸이어 급박하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물이 흘러나오리라.”(요한 7,37-38)

오늘 <복음>은 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의 여러 반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나섰다가 그냥 돌아온 성전 경비병들은 그들을 보낸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에게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라고 말합니다.

대체 그분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셨기에, 그들은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대체,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어떻게 달랐을까?

그분의 말씀은 어째서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일까? 대체, 그 신비로운 힘은 무엇일까?

<성경>에서는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해줍니다.

그런데 왜 그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 <복음>의 앞부분인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의 하신 말씀, 곧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요한 7,29)에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당신께서는 단지 하느님에 ‘의해서’ 보냄 받은 자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하느님에 ‘의해서’ 보냄 받은 자들은 많았습니다. 예언자들이 그렇고, 세례자 요한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은 단 한 분, 오직 예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분만이 온전히 하느님을 아시며, 그분의 가르침은 참되고 권위가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곧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곧 ‘하느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알고 있고 성경을 알고 있다고 스스로를 여기지만, 바로 그 ‘안다는 사실’에 걸려 오히려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이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가르쳐줍니다.

우리도 오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자칫,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우리의 편견과 선입감으로 말씀을 거부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앎으로 말씀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우리를 알아듣고, 말씀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말씀께 승복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 당신 말씀은 참으로 권위 있고 신비롭고 힘이 있고 살아있으니 제 안에 원하신 바를 이루소서. 당신 사랑의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거역하지 않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7,51
먼저 본인의 말을 들어보고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고 난 뒤에야,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주님!
저는 말을 들어보기도 전에
또 일을 알아보기도 전에
미리 판단하고 심판하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가득합니다.

귀 기울여 듣는 겸손한 마음과
애정으로 일을 알아보는
섬세함을 주소서.

주님! 제 마음에는
말을 듣고도 의심하고
일을 보고도 인정하지 않는,
왜곡과 불신이 가득합니다.

제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해지게 하소서.

들은 말을 신뢰하고
본 바를 인정하게 하소서.

저희의 말을 다 들어주시고
저희가 한 일을 다 아시는 주님!

저에게 억울하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소서.

저의 곡해와 몰이해,
고집과 완고함,
왜곡과 비뚤어짐,
무관심과 불신으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베푸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경 연구로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오늘은 사순 제4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정체성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논쟁을 목격합니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감동하여 "그분처럼 말씀하시는 분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믿음의 문턱에 들어섭니다.

하지만 성경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의 반응은 차갑습니다. 그들은 경비병들을 향해 조롱하듯 말합니다.

"너희도 속은 것이 아니냐? 성경을 연구해 보아라.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는다." (요한 7,52)

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주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왜 성경을 그토록 깊이 연구하고 잘 안다는 사람들이 정작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왜 성경 연구가 오히려 믿음의 방해물이 되었을까요? 저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할수록 오히려 믿음을 잃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성경은 참으로 묘한 책입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안경을 쓰고 해석하기 시작하면,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정당화해 주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이비와 이단이 나오는 이유도 다 '성경 연구'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개인적인 성경 해석을 경계합니다. 먼저 교리를 믿으라고 가르칩니다. 교리는 성경을 보는 '정확한 안경'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교리입니다. 그 올바른 지식의 눈으로 성경을 보아야 합니다. 누구나 자기 교리대로 성경을 두드려 맞추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중년에 『참회록』을 쓰며 신앙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가슴의 믿음'이 아니라 '머리의 연구'였습니다. 그는 기존의 복음서들이 교회의 교의에 오염되었다고 주장하며, 직접 그리스어 원전을 대조하여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것들만 추려낸 『요약 복음서』(1881)를 펴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나의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거짓으로 여기고 삭제했다."

그는 예수님의 동정녀 잉태, 수많은 기적, 삼위일체, 그리고 신앙의 핵심인 부활마저도 '이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가위질해버렸습니다. 그에게 성경은 하느님의 계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의 도덕적 철학을 증명해 줄 '참고 서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애초에 믿음이 자기 이성에 담길 정도였다면, 그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지 참 믿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게 아닙니다.

결국 그는 1901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교회가 화해의 손길을 내밀며 고해신부를 보냈지만, 그는 끝내 거부했습니다. 그는 일기에 "교회의 교의들은 나에게 독과 같다"라고 썼습니다. 성경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했던 이 대문호는, 결국 자신이 만든 '이성적인 성경'이라는 감옥에 갇혀 메시아를 거부한 채 아스타포보 기차역 차가운 바닥에서 홀로 쓸쓸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출처: 앙리 트루아야, 『톨스토이 전기』; 레프 톨스토이, 『요약 복음서』 서문).

머리로만 하는 연구는 하느님을 내 지식 아래 가두는 교만이 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머리에 있는 지식이 가슴의 믿음이 될까요? 믿음은 머리로 동의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의 시작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끊임없는 '기억'을 통해 머리의 지식이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믿음은 지식의 결과라기보다, 그 지식이 ‘기억’이 된 결과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참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저에게 툭 던지듯 말했습니다.

"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신 데 왜 외로워?"

처음엔 그 말이 머리로만 들렸습니다. '맞아, 교리에서 그렇게 배웠지. 임마누엘 하느님.' 하지만 제 가슴은 여전히 시렸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어두운 길을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너무 어둡고 무서워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될 때, 저는 친구의 그 말을 계속 되뇌었습니다. '주님이 함께 계시다는데 왜 무서워하면 안 되지... 주님이 함께 계신다, 주님이 함께 계신다.' 이 교리를 무작정 기억하고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시원한 바람이 제 가슴 속으로 훅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 진짜로 주님이 함께 계시는구나!'라는 확신이 가슴으로 느껴졌습니다. 머리에 있던 '함께 계신 주님'이 가슴으로 쏟아져 내려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단 한 번도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고 왜 말씀하셨겠습니까? 마치 올리브 열매를 강한 압착기로 눌러야 귀한 기름이 나오듯이, 우리가 배운 교리를 끈질기게 기억하고 되새기는 과정은 우리 영혼을 누르는 '압착'의 시간입니다. 계속 기억하려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리에 있던 교리가 가슴으로 흘러가 '믿음'이라는 기름으로 바뀝니다. 믿음은 기억의 결과지 연구의 결과가 아닙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성경을 '연구'했지만,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한 줄의 교리를 내 것으로 만드는 '기억의 사투'입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는 폐결핵으로 죽어가는 극심한 고통과 영적인 어둠 속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이 한 문장의 교리를 끈질기게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일기 『한 영혼의 스토리』에서 고백합니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오직 어둠뿐이었지만, 저는 계속해서 '나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되뇌었습니다."

이 기억의 압착이 가져온 구체적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요? 죽음을 앞둔 그녀의 폐가 완전히 망가져 숨을 쉴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천사 같은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그녀를 간호하던 수녀들이 "데레사 수녀님, 어떻게 이 고통 중에 미소를 지을 수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머리에 있던 '사랑의 하느님'이 기억의 사투를 통해 가슴으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물리적 고통마저도 장미 꽃잎으로 느끼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한 줄의 교리를 끝까지 기억한 결과가 죽음의 공포를 삼켜버리는 완벽한 안식을 낳았습니다.

(출처: 성녀 소화 데레사, 『한 영혼의 스토리』; 기 고슈, 『소화 데레사 전기』).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기억했을 때, 비로소 당신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또한 교부 성 테오판은 "기도란 머리에 있는 생각을 가슴으로 끌어내려 그곳에 머물게 하는 기술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도 주님 말씀 하나라도 끊임없이 기억할 수 있고, 기억하고 싶은 한 마디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하루를 살아봅시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 성당에서 복사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만나게 된 신부님, 수녀님은 모두 천사로 보였었습니다. 미사 끝나고 복사들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시고, 또 놀아주시는 신부님은 아주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더군다나 어른들도 신부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도 대단하게 보였습니다. 더운 여름날에도 두꺼운 수도복을 입고 있으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언제나 웃으셨습니다. 어렸던 저의 눈에는 신부님과 수녀님은 모두 천사였고, 나도 천사 같은 신부가 되고 싶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전히 모든 신부님과 수녀님이 천사로 보였을까요? 물론 천사처럼 보이는 분도 있었지만, 모두가 천사는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있으니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게만 보고 있었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이 위선자야~”라며 혼내셨던 것입니다. 그 위선이 오늘 복음에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군중은 둘로 나뉩니다. 일부는 예언자나 메시아로 고백하지만, 다른 일부는 예수님의 출신지를 근거로 이를 반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다윗의 후손이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제한된 지식과 선입견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판단하면서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말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습니다.”(요한 7,46)라고 말하면서 성전 경비병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바리사이들은 분노하며 자기들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그를 믿더냐?”(요한 7,47)

이렇게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방패 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에서 니코테모가 율법의 본질인 공정한 재판을 들어서 용기 있게 말합니다. 이에 바리사이들은 합리적인 반박 대신 “당신도 갈릴래아 출신이라는 말이오?”(요한 7,52)라면서 인신공격을 가합니다. 그리고 성경을 연구해 보라면서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라고 말합니다.

정말로 구약성경에 갈릴래아 출신 예언자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요나 예언자는 갈릴래아 갓 헤페르 출신(2열왕 14,25)이었고, 나훔이나 호세아 예언자도 북왕국 출신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율법 전문가라고 하면서 성경적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분노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성경마저도 왜곡하고 잘못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혹시 지식, 출신, 배경 등의 표면적인 잣대로 타인이나 하느님의 뜻을 함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위선을 던져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천사처럼 보이는 삶이 아닌, 천사처럼 사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가리라.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선한 일이나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행하게 하소서. 다시는 이 길을 지나지 않을 것이니 그것을 미루거나 게을리하지 않게 하소서(스티븐 그렐레)..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늘 자기 기준에 갇혀 있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선입견을 이 사순 시기에 다시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예상 밖에서 시작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이미 주어졌지만,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시선이 그 진리를 제한합니다.

예수님의 삶 안에 숨겨진 하느님의 베들레헴을 보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부분적 지식이 전체 판단을 지배할 때 생기는 오류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이래야 한다’고 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면한 그 변방에서, 이미 빛은 가장 먼저 떠오르고 있습니다.

갈릴래아라는 변방도 하느님의 구원이 시작될 수 있는 자리입니다. 겸손히 맡기는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방식은 드러납니다. 십자가는 겉모습과 조건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보려면 겉모습을 넘어서 본질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본질을 보는 눈이 열릴 때, 출신과 조건의 경계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참된 사람의 가치가 드러납니다. 가치는 발견되는 것이지 판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미 조용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기 기준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하느님의 뜻이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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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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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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