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에제 37,12ㄹ-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리겠다. - 제2독서
로마 8,8-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 복음
요한 11,1-4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에제 37,12ㄹ-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리겠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2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로마 8,8-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십니다.
형제 여러분,
8 육 안에 있는 자들은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10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몸은 비록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지만, 의로움 때문에 성령께서 여러분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11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1,1-4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그때에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3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5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6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
7 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17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20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21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23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24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26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27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33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34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35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36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37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38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39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40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41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 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42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43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 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44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 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45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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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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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마음의 무덤에서 일어나기
오늘 복음에서 라자로의 죽음으로 그의 집안은 비통에 빠졌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 주실 수는 없었는가?”(요한 11,37)라고 말하며 믿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여시며 돌을 치우게 하시고, 라자로를 무덤 밖으로 불러내십니다. 그분께서는 썩어 버린 육체에 다시 숨을 불어넣으시고, 생명을 잃은 자리에서 다시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그리고 오늘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나약함과 무기력함으로 마음의 무덤 속으로 숨어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을 믿고, 우리의 고통 앞에서 연민의 눈물을 흘리시는 그분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시련도, 고통도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 이름을 부르시며 무덤 밖으로 나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생명을 주시는 그분을 믿고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우리의 삶은 다시 생명의 열정으로 충만해지고, 기쁨과 희망 속에서 세상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죽은 육신만을 살리시는 분이 아니라, 죄로 죽어 버린 영혼까지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사순 마지막 시기의 전례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묵상은 고통의 무게를 헤아리려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살리시려는 주님의 뜻을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라고 하시며,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을 기억합시다. 부활의 참기쁨을 누리기 위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일으켜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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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리 나오너라.
사순 제5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성지주일을 앞두고, 마치 부활을 연주하는 ‘전주곡’과 같습니다.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무덤에서 끌어내시고, <복음>에서는 죽은 라자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시며, 당신이 주님이심을 밝힙니다.
<화답송>에서는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음을, <복음 환호송>에서는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찬미하며, <제2독서>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영을 통하여 우리를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부활의 전주곡’을 들으면서, 사순시기가 생명으로 가는 길, 곧 부활로 가는 길임을 봅니다. 그리고 그 막바지에 이르러,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쓰라림보다는 감미로움이 서광처럼 비쳐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는 이 길에 사랑이 걸어갑니다. 이 길을 걷는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생각의 이동’(아나톨 프랑스)이요, 참된 생명에로의 이동이요, 사랑에로의 이동입니다.
오늘 우리는 ‘라자로의 소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는 이와 함께 울어주는 봄바람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둠의 동굴에 갇혀있는 이를 불러내는 봄 햇살 같은 이야기입니다. 주저앉아 웅크리고 죽어 있는 이를, 빛으로 불러내는 봄비 같은 생명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라자로의 소생이라기보다,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입니다. 곧 죽은 라자로를 살리는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그렇습니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에서,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라고 장엄하게 예고된 그 “생명”입니다. 곧 빛이신 생명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하신 일은 바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의 어둠 속에 생명의 빛을 비추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생명이시오, 빛이신 까닭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생명의 길로 부르십니다. 참 생명에로 이동입니다. 그 길은 ‘앎’에서 ‘믿음’에로의 이동입니다. ‘당신이 생명이요 부활임에 대한 믿음’에로의 초대입니다.
<본문>에서 마르타는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2)
마르타는 “알고 있다.”고 고백할 뿐, “믿는다.”고 고백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라고 말씀하셔도 여전히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요한11,23)라고, “안다.”고만 고백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1코린 8,2)
마르타는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부활과 생명을 믿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믿음”을 촉구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6)
‘아는 것’을 넘어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을 때라야, 그 믿는 이에게 부활과 생명이 부여된다는 말씀입니다. 부활과 생명은 먼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사건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부활은 믿음 안에서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그렇게 ‘믿음’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과 현재를 변화시킵니다.
그러기에, 부활은 “지금 여기”에서 믿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죽음 이후에야 얻을 수 있는 생명이 아니라, 현세와 현세를 넘어서 얻을 수 있는 풍만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르타는 “너는 이것을 믿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여전히 엉뚱한 대답을 합니다.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요한 11,27)
마르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었지만, “부활이요 생명”임에 대해서는 믿음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동굴 무덤의 돌을 치우라고 했을 때도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요한 11,39)하고 여전히 믿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거듭 강조하시어 나무라듯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이는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앎’에서 ‘믿음’으로의 이동하라는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선사하시며, 불신과 어둠의 묻혀있는 저희의 무덤을 열어주십니다.
그리고 저희를 당신 생명의 빛에로 부르십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오너라.”(요한 11,43)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1,26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주님!
제 생명이 죽고
당신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안에 살아계신
당신 생명을 보게 하소서.
제가 사라지고
당신이 드러나게 하소서.
당신의 생명을 살게 하소서.
제가 믿음으로
당신의 영광을 보리이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만일’이라는 감옥에서 나와, 지금 당장 돌을 치워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인 '라자로의 부활' 사건을 마주합니다. 라자로가 죽고 나흘이 지났을 때, 마르타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자마자 똑같은 말을 내뱉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한 11,21.32)
이 문장은 '후회'라는 창살로 만든 감옥에 자신을 가두는 것입니다. 곧, "만일 ~했더라면(If only...)"이라는 가정법입니다. 사탄은 우리 영혼을 갉아먹을 때 사용하는 가장 날카로운 이빨로 상처를 내어 과거에 묶이게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눈앞에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이 서 계신데도, 시선은 이미 지나가 버린 '부재의 시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 여기서 일하고 싶어 하시는데, 인간은 자꾸 과거의 실패를 들먹이며 주님의 손을 붙잡습니다.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1861)에서, 소설 속 미스 하비샴은 결혼식 당일 아침, 신랑에게 파혼을 통보받습니다. 그 충격적인 '과거의 한 지점'에서 그녀의 시간은 멈춰버립니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누렇게 변색된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쪽 발에만 구두를 신은 채, 썩어가는 웨딩케이크가 놓인 식탁 주위를 맴봅니다. 집안의 모든 시계는 그녀가 파혼 통보를 받은 그 시각, 9시 20분에 멈춰 있습니다.
그녀는 어린 피프에게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읊조립니다.
"피프, 내 가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니? 깨진 마음이야. 썩어가는 마음이지!"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향한 증오라는 무덤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세상을 향해 독설을 퍼붓습니다.
"사랑은 내게 죽음이었어. 그러니 너도 사랑 같은 건 하지 마라!"
그녀에게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출처: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해럴드 블룸, 『소설의 수사학』).
우리도 이렇게 캄캄한 무덤에서 살 수 있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우울하고, 그것 때문에 미래가 두려워 불안하면 말입니다. 우리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바로 삼구(三求) 때문입니다. 사탄은 이 삼구로 우리를 현재에 머무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인간을 과거에 묶어 놓는 모든 상처는 바로 이 삼구의 욕망에서 비롯됩니다.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던 과거에 갇혀 손자를 버린 노인 - J. 폴 게티(J. Paul Getty)의 실화」
1973년,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J. 폴 게티에게 열여섯 살 손자가 유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유괴범들은 거액의 몸값을 요구했지만, 노인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손자의 잘린 귀가 배달되었을 때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그저 돈을 아끼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배후에는 지독하리만큼 시린 ‘과거의 상처’가 있었습니다.
폴 게티의 아버지는 아들을 평생 불신했습니다. 아버지는 임종 직전, 아들이 회사를 망칠 것이라며 1,000만 달러의 유산 중 폴에게는 고작 50만 달러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어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이 ‘인정받지 못한 상처’가 폴 게티를 소유욕의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평생 ‘만일 내가 단 한 푼이라도 손해를 보면 아버지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꼴이 된다’라는 강박에 갇혔습니다.
손자의 유괴 사건이 터졌을 때, 노인의 눈앞에 보인 것은 피 흘리는 손자가 아니라 ‘내 돈을 뜯어가려는 배신자들’과 ‘나를 비웃던 아버지의 유령’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나는 절대로 협상하지 않는 완벽한 승리자"라는 자아를 유지하려다, 지금 당장 숨이 넘어가는 가족의 생명을 보지 못하는 눈뜬장님이 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몸값을 지불할 때조차 아들에게 연 4%의 이자를 받아내는 기괴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과거의 상처에 갇혀 삼구의 욕망을 정답이라 믿는 이는 현재의 부활 소식을 들을 수 없는 영적 자폐아가 됩니다. 이를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주님께 묻는 것'뿐입니다.
"주님, 제가 지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출처: 존 피어슨, 『모든 돈: 게티 가문의 비극적 운명』; 영화 '올 더 머니' 2017 참조).
예수님은 기적을 베푸시기 전, 항상 인간에게 무언가를 시키십니다. "돌을 치워라." (요한 11,39) 이것은 참으로 기이한 명령입니다. 썩어서 냄새가 진동하는 무덤 문을 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미친 짓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돌을 우리 손으로 직접 치우기를 원하십니다. 과거의 원망을 멈추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을 묻고 실행할 때 기적의 서막이 오릅니다.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는 과거의 상처라는 무덤에 갇혔다가 '현재의 할 일'을 찾아 살아난 한 남자의 절박한 실화가 나옵니다. 마리온 더글러스는 1943년, 사랑하는 딸을 잃었습니다.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5개월 뒤에는 아들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만일 하느님이 계시다면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라는 질문과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에 갇혀 1년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우울증의 늪에 빠졌습니다.
그를 살린 것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살아남은 다섯 살배기 아들의 사소한 요청이었습니다. "아빠, 나랑 종이배 만들어서 물에 띄우고 놀아요." 처음에 그는 아들을 밀쳐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울며 매달리자, 그는 마지못해 종이를 접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종이배를 접는 그 3시간 동안, 1년 내내 그를 괴롭히던 '과거의 유령'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이 작은 일에 집중할 때, 과거 내가 묻혀있던 무덤에서 나오게 되는구나!' 그는 그날 이후 매일 아침 '오늘 당장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씩 해치우는 데만 집중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볼 틈을 주지 않는 '현재의 바쁨'이 그를 죽음의 냄새가 나는 우울증에서 건져냈습니다. 하느님은 그에게 종이배라는 작은 돌을 치우라고 하셨고, 그는 순종함으로써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출처: 데일 카네기, 『데일 카네기 자기관리론』).
라자로의 병과 죽음, 그리고 무덤 속에서의 나흘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고통스러운 과거는 오직 한 가지 목적, 즉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부활의 영광'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섭리였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는 이것을 믿고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 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면 영광을 보게 됩니다. 「과거의 비극을 뚫고 길을 낸 남자 - 다슈라트 만지(Dashrath Manjhi)의 집념」
인도 비하르주의 가난한 노동자 다슈라트 만지의 이야기는 '만일'이라는 후회를 어떻게 '현재'의 기적으로 바꾸는지 보여주는 전설적인 실화입니다. 1959년, 그의 아내 팔구니 데비가 산에서 사고를 당했습니다. 마을과 병원 사이에는 거대한 산이 가로막고 있었고, 70km를 우회하는 동안 아내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만지는 "만일 저 산만 없었더라면", "만일 정부가 진작에 길을 냈더라면"이라며 평생을 원망하며 술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날 새벽, 정과 망치 하나를 들고 그 거대한 산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산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미친놈이라 비웃었지만, 그는 오직 '지금 당장 내가 정질 한 번을 하는 것'에만 집중했습니다.
그는 무려 22년 동안 혼자서 산을 뚫었습니다. 110m의 산을 뚫어 길을 냈을 때, 병원까지의 거리는 70km에서 1km로 단축되었습니다. 그는 아내를 잃은 과거의 무덤에서 나와,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과거의 슬픔을 핥는 대신 지금 당장 곡괭이를 드는 것, 그것이 부활의 돌을 치우는 행위입니다(출처: 영화 '만지: 산을 옮긴 사람' 2015 참조).
오늘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명령하십니다. "돌을 치워라!" 과거의 원망이라는 돌, '만일'이라는 불신의 돌을 치우십시오. 그리고 지금 당장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실천에 몸을 던지십시오.
성 까밀로 드 렐리스는 젊은 시절 도박 중독자에 성격 파탄자였습니다. 그는 전쟁터에서 입은 다리의 궤양(종기)이 평생 낫지 않아 고통받았습니다. 그는 "만일 내 다리만 멀쩡했더라면", "만일 내가 도박만 안 했더라면"이라는 후회의 무덤 속에서 자신을 학대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가려 했지만, 썩어가는 다리의 상처 때문에 두 번이나 쫓겨났습니다. 그는 더 이상 "만일"을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냄새나는 다리 상처를 하느님이 주신 현재의 십자가로 받아들였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 상처를 가진 제가 지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주님의 답은 명확했습니다. "너와 같은 처지의 병자들을 돌보아라." 까밀로는 로마의 성 야고보 병원에서 가장 비참한 환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썩어가는 상처를 닦으며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과거의 치욕과 신체적 고통이라는 돌을 치웠을 때, 그의 영혼에는 샘솟는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그는 환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오, 나의 주님, 나의 형제여!"라고 외치며 울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천상의 광채가 감돌았고, 그가 손을 얹을 때마다 환자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평생 고통을 주던 다리 상처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상처가 자신을 현재의 사랑으로 인도한 영광의 흔적임을 깨달았습니다. 후회를 버리고 '지금' 순종했을 때, 그는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던 병원을 하느님 나라의 잔칫집으로 바꾸는 부활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출처: 산티 바티스타, 『성 까밀로 드 렐리스 전기』).
마리아 고레티를 살해한 알렉산드로는 나중에 젊은이들에게 절대 게으르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오늘 해야 할 일을 시간의 주인께 물으라는 뜻입니다. 저도 전날이나 아침에 반드시 오늘 할 일을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야 과거의 지옥에 빠지지 않고 미래의 연옥에도 빠지지 않습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며 우는 자는 지상의 나그네일 뿐이지만, 오늘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는 천국의 상속자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친한 신부들과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이 식당에서 어느 신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뭐 먹을지를 다른 신부가 묻습니다. 이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아무거나 시켜 줘.”라고 부탁했습니다. 얼마 뒤에 음식이 나왔는데 정말 ‘아무거나’가 나왔습니다. 메뉴판에 ‘아무거나’라는 메뉴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신부는 모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문했지만, 저만 이상한 ‘아무거나’를 먹게 되었습니다.
김치찌개가 먹고 싶은데 된장찌개를 시킨다면 원하는 김치찌개를 먹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해야 원하는 음식이 나옵니다. 이처럼 우리 삶도 똑같지 않을까요? 말로 부정적인 이야기만 한다면 과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까요? “절대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용서의 은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이 곧 하느님께 전달하는 주문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것을 주문해야 할까요?
당연히 자기에게 이로운 것, 진심으로 필요한 것을 주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문 전에 다른 주문을 먼저 하곤 합니다. ‘이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을 거야.’, ‘왜 내 기도만 들어주시지 않는 거야?’, ‘왜 저 사람들은 문제투성이야?’ 등의 다른 주문은 안 됩니다. 제대로 주문해야 합니다. ‘아무거나’를 말하면 정말 ‘아무거나’가 나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미리 보여주는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제대로 주님께 주문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제대로 알아야 하기에, 라자로의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우리에게 미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했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가시지 않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인간적인 무관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요한 11,4)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랑은 즉각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르타가 마중 나옵니다. 그녀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의 말씀에,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11,24)라고 대답하면서,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종말론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부활은 먼 훗날의 사건입니다. 이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라고 하시면서, 먼 미래에 일어날 현상이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이미 영원한 생명을 살고 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무덤으로 가십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난다고 마르타가 이야기하지요(요한 11,39). 당시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은 후 사흘 동안 시신 곁을 맴돌다가 냄새가 나는 나흘째가 되면 영영 떠난다고 믿었습니다. 마르타의 말은 곧 인간적 희망이 단 1%도 남지 않은 완전한 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돌을 치우게 하십니다. 그리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말씀에 죽음이 굴복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안에도 무덤이 있습니다. 이미 끝났다고 생각하는 관계, 그 관계 안에서 오래 굳어 버린 상처, 희망이 사라졌다는 기억, 신앙이 식어버린 자리…. 그래서 주님께 제대로 주문하지 못합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냥 포기하고 절망할 뿐입니다. 혹시 마르타의 말처럼 “주님, 너무 늦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요한 11,40)
부족하고 나약한 믿음으로 주저하면서 갇혀 있는 우리의 무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리 나와라.”라고 외치십니다. 내 안에 있는 무덤을 열고 나가야 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사순시기에 고해성사를 보고 회개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잘못 반성에서만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얼른 나오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 말씀에 충실히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을 통해, 주님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자기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주님께 주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죽음은 삶보다 더 보편적이다. 모든 사람은 죽지만, 모든 사람이 사는 것은 아니다(앤드루 작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특별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여기에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죽음 속에서도 생명을 일으키십니다. 여기서 ‘영광’은 단순한 기적의 장면이 아니라,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 그리고 생명의 드러남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일하심을 신뢰하며 우리 자신을 맡기는 실천입니다.
믿음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며 해결이 아니라 동반입니다. 어떤 믿음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같은 현실도 다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이렇듯 삶의 의미는 조바심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성숙합니다. 우리는 죽음을 마주하는 존재이지만, 관계와 믿음, 그리고 부름을 통해 끊임없이 다시 일어나는 존재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은 단순히 육체적 죽음만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무기력, 절망, 상처로 굳어진 부분을 상징합니다. 상처받고 무너질 수 있는 존재이지만, 공감과 관계, 그리고 새로운 의미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존재입니다. 살아 있으면서도 묶일 수 있고, 풀려날 때 비로소 온전히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무덤 같은 시간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희망이 사라진 듯하고, 이미 끝나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이미 늦어버린 순간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늦었다고 여겨지는 자리까지 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완성된 자를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도움과 은총이 필요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압니다. 끝이라 여긴 자리에서 당신은 시작을 쓰신다는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죽음처럼 보이는 모든 끝 속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멈추지 않으시며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영광은 다시 살아나게 하는 생명의 참된 빛입니다. 이미 늦어버렸고 너무 늦어버린 때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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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서 37장 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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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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