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다니 13,41ㄹ-62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복음
요한 8,1-11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다니 13,41ㄹ-62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회중은
41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42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43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44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45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46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47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48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49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50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51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2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53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54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5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56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57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58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59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60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1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62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8,1-11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3월 23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6:4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마음속 돌을 내려놓는 시간
우리는 삶에서 선택을 끊임없이 마주합니다. 일상에서 부딪치는 작은 선택부터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굵직굵직한 선택까지, 우리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중대한 선택 앞에 서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한 여인을 데려와 율법에서는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였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 대신 사랑을 선택하십니다. 여인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단죄하시지 않고 용서하십니다. 이는 율법을 버린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 율법인가, 사랑인가?’ ‘무심코 돌을 던져 이웃에게 상처를 준 적은 없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결국 손에 쥔 돌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
이 말씀은 죄의 무게에 눌린 우리 모두를 향한 용서의 선언입니다.
사순 시기를 지내며 우리는 판공성사로 주님과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마음속 단죄의 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용서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합시다.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이도록 마음 깊이 새깁시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8,11).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우리 죄 아무리 커도
저는 Feminist(여권 신장론자)나 성 평등론자가 아니지만 -여성들 편에 서서 어떤 운동을 하거나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오늘 독서 얘기를 들을 때나 오늘 복음을 읽을 때 은근히 화가 납니다.
늙은이들이 수산나를 단지 자기들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고 간음하려고 한 것에 화가 나고 실패하자 죽이려고 한 것에 더 화가 나기도 하지만 독서나 복음에서나 같이 간음하고도 남자는 놔두고 여자만 간음죄로 처벌하는 당시 그런 사회 제도와 모습이 정말 화나게 합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기운 것도 화가 나지만 어떻게 여성에게만 그렇게 가혹한지 어떻게 그것으로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지 그것이 화나는 것을 넘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사형에 처할만한 죄를 지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사형이 선고 되어도 죽여서는 안 되고, 지금 트럼프나 네타냐후처럼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전쟁을 멈추도록 그들이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오늘 주님께서도 그렇게 하십니다.
남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 나쁘지만 남의 생명을 죽였다고 그 생명을 죽이는 것도 마찬가지로 나쁩니다. 사랑은 전혀 없고 미움밖에 없다는 면에서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랑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요즘 와서 천인공노할 죄인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저런 놈은 때려죽여야 한다고 여기저기서 주장해도 우리 가톨릭이 사형제 폐지를 줄곧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어도, 죄가 아무리 커도 죄가 생명보다 크지 않고, 생명의 소중함보다 엄중한 단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성무일도 아침 기도 찬미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아무리 우리 죄가 크다 하여도 당신의 자비하심이 더욱 크오니”
그러므로 이 찬미가를 바칠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죄 곧 너의 죄와 나의 죄가 아무리 커도 주님 자비가 더 크니 너의 죄 아무리 커도 주님의 자비로 너를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나의 죄 아무리 커도 주님의 자비를 믿고 회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내일부터 부활 때까지 강론을 올리지 못할 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올리지 못하더라도 걱정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은 사순 시기 잘 보내시길 바라고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새롭게 살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을 고발하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11,7)
혹시 가슴에 ‘돌덩이’ 한 두 개 정도 품고 살아가지는 않나요? 차마 던지지는 못하고,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기만 하는 ‘돌덩이’ 말입니다. ‘화’라는 ‘돌덩이’, 상처와 미움의 ‘돌덩이’, 원망과 심판의 ‘돌덩이’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스스로 들게 된 ‘돌덩이’든, 타인들이 들려주어서 들게 된 ‘돌덩이’든, 그 ‘돌덩이’는 타인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자신을 짓누르고 있고 자신을 무겁게 할 뿐입니다.
그런데 고발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나이 많은 자들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습니다.’ ‘돌덩이’을 손에 든 채로 갔는지, 땅에 내려놓고 갔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차마 지금은 던지지 못하고 나중에 적절한 시기에 더 큰 ‘돌덩이’로 더 세게 내리치려고 그냥 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그들은 여인을 구실로 삼아, 이미 예수님에게도 여인에게도 ‘돌’을 던진 이들입니다. 단지 더 이상 ‘돌’을 던지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하였을 뿐입니다. 죄송하다고 말하지도 않고, 용서해달라고 말하지도 않고, 단지 떠나갔을 뿐입니다. 아마 그들을 또 다시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밀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는 예수님이 말씀에 그들은 ‘나이 많은 이’부터 돌아갔지만, 진정으로 회개한 이들은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단지 심판하지 않고 돌을 던지지 않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돌 맞은 이의 아픔과 상처를 위로하고, 쓰러진 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자신의 죄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혹은 용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를 위하여 그에게 선을 베푸는 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지은 여인에게 그렇게 하십니다. 돌 맞은 그의 상처를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며, 또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십니다.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의 표시’입니다. 곧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를 도와주고 기도해주고 이끌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우리 주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그가 새롭게 살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주십니다. 도와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8,7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주님!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있는 바람에
저 자신이 짓눌려 있지 않게 하소서.
돌덩이를 가슴에 품고
만지작거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품고 만지작거리게 하소서.
위하는 마음을 품고
가벼워지게 하소서.
위로하고 축복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가장 불완전한 고해성사
오늘은 사순 제5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용서의 장면 중 하나인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이야기를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문턱에 선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
고해성사는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걷기 위해 수천 번 넘어지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기 위해 수천 번 고해성사라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미움의 죄로 수천 번 고해성사를 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구원에 매우 가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치명적이고 불완전한 고해성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결심'이 빠진 고해성사입니다. 결심이 없는 고해는 단순히 의무를 소홀히 하는 실수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해성사를 죄를 지우는 '자동 판매기'처럼 취급하며,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는 하느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철저히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1994년 '박한상 존속 살해 사건'의 수사 기록을 보면, 결심 없는 용서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강남의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박한상은 미국 유학 시절 도박에 빠져 수천만 원의 빚을 졌습니다. 1993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당시 돈으로 2,300만 원이라는 거액의 도박 빚을 대신 갚아주었습니다.
당시 박한상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 새사람이 되겠다"라고 처절하게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 '고해'를 믿고 용서하며 다시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박한상의 속마음은 달랐습니다. 그는 훗날 수사 과정에서 고백하기를, 아버지가 빚을 갚아준 순간 '아, 이제 빚이 청산되었으니 다시 도박할 수 있는 깨끗한 판이 생겼구나'라고 생각했답니다.
결국 더 이상 용서라는 이름의 돈이 나오지 않자, 그는 자신을 그토록 아꼈던 부모를 처참하게 살해했습니다. "다시는 죄짓지 마라"는 결심이 없는 용서가 한 인간을 어떻게 악마로 만드는지 보여주는 가장 서늘하고도 객관적인 증거입니다(출처: 표창원, 『대한민국 죄와 벌』; 서울지방법원 94고합761 판결문).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 '다음에 또 넘어져야지'라고 생각하고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번엔 꼭 엄마, 아빠처럼 당당하게 걷고 말 거야!'라고 결심해야 비로소 발전이 있습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가 그 어려운 점프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빙판 위에서 수만 번 엉덩방아를 찧을 때, 그녀가 매 순간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또 넘어지겠지'가 아니라 '이번엔 꼭 성공하고 말 거야!'라는 처절한 결심이었을 것입니다. 고해성사를 보면서도 '어차피 또 짓게 될 텐데 뭐...'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비웃는 것이며,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가로막는 영적 자살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결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하느님님의 고통과 죄의 고통에 무감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죄가 하느님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그리고 죄 속에 사는 내 영혼이 얼마나 비참하게 썩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자매님은 남편과 자신 모두 가톨릭의대를 나온 엘리트 부부였습니다. 간호사 출신이었던 그녀는 남편의 병원이 번창하자 오직 허영의 죄로 살았습니다. 집에 이태리산 대리석을 깔고, 비싼 명품 옷만 입으며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재력을 자랑하는 것이 인생의 유일한 낙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앙은 그저 고급스러운 장식품일 뿐이었죠.
그러다 병원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심각한 의료 사고가 터졌고, 피해자가 상당한 재력가라 그 병원을 완전히 망하게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매님이 가장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병원이 망하는 것'보다 '내 허영이 들통나 친구들이 나를 비웃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점집을 전전하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절망의 끝에서 성당으로 돌아왔습니다. 냉담 끝에 성당 입구에 섰을 때, 그 차가운 공기가 자신의 죄를 꾸짖는 것 같아 차마 본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답니다.
그녀는 전국 성지를 돌며 매일 미사하고 십자가의 길을 바쳤습니다. 한 번 바치는 데 2시간이 걸릴 정도로 온 마음을 다했죠. 그러던 어느 날, 미리내 성지에서 십자가의 길 제4처,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 장면을 묵상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가슴 속에서 거대한 천둥소리 같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랑~한~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길에서, 어머니의 심장을 그토록 아프게 해 드리면서까지 피를 흘리신 이유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표징은 믿음을 낳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몇 시간을 오열했고, 감실 앞으로 달려가 또 오열했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이 자신의 살점의 고통처럼 느껴지기 시작하자, 이전에 자존심에 사로잡혀 살던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한 무덤이었는지가 보였습니다. 덫에서 빠져나와 발에 피를 철철 흘리는 강아지가, 자신을 살려주기 위해 손이 갈기갈기 찢겨나간 주인의 피를 보면서, 다시 그 덫으로 들어가고 싶겠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자매님은 본당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화장실 청소를 자원했습니다. 수천만 원짜리 이태리 대리석 바닥을 닦던 그 화려한 손으로 이제 성당의 냄새나는 변기를 닦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이 주는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평화가 감돌았습니다. 다시는 허영과 자만심으로 자신과 예수님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그녀를 완전히 재창조한 것입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온유한 성자로 추앙받는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줍니다. 놀랍게도 이 성인은 본래 성격이 아주 불같고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조금만 화가 나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입에서는 독한 말이 튀어나오려 하는, 이른바 '다혈질 중의 다혈질'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 약점이 하느님을 아프게 해드린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는 고해소에 들어갈 때마다 피눈물을 흘리며 결심했습니다.
"주님, 제가 이번에 또 화를 냈습니다. 당신의 온유하신 심장을 찔렀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주십시오.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그는 고해성사를 본 후 문을 나서며 '오늘 단 한 번이라도 화를 참아보자'라고 다짐하며 영적 걸음마를 떼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또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해소에서 받은 용서의 은총을 들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주님, 방금 또 넘어졌지만, 저는 결코 이 미움의 덫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시작합니다!"
성인은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자신의 입술에 온유의 기름을 발라달라고 기도했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해성사의 결심을 단 한 번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아십니까? 훗날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그가 평생 분노를 참기 위해 손톱으로 책상 밑바닥을 긁어댄 깊은 자국들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매번의 고해성사 때마다 "다시는 죄짓지 않겠다"라는 그 처절한 결심의 빗방울이 20년 동안 바위를 뚫어, 마침내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영혼으로 완성된 것입니다(출처: 모리스 드 라 타유,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전기』; 앙드레 라비에,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사랑의 박사』).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편 강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백하는 자의 눈물은 죄의 상처를 씻어내는 세례수요,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그 상처를 봉합하는 실이다."
또한 성 예로니모는 "죄를 짓는 것은 인간적인 일이나, 그 죄를 즐기며 회개하기를 이용하는 것은 마귀적인 일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매 고해성사 때마다 우리 가슴에 고통스러운 사랑의 문신으로 새겨질 때, 우리는 조금씩이나마 죄의 덫에서 풀려나 참된 자유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나 흔한 오늘날입니다. 사진 찍을 때도 손가락 하트, 볼 하트, 큰 하트 등으로 표시하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랑에 대한 결핍과 갈망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중심적인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내 사랑을 무시하는거야?”
“왜 나만 사랑해야 하는데?”
“나한테 잘못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 나는 절대로 사랑할 수 없어.”
사랑의 참모습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제대로 알 때 나오게 됩니다.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되고, 알면 알수록 더 사랑하게 되면서 사랑의 참모습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즉, 이기적이고 나 중심의 사랑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세부 조항까지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인 사랑은 보지도 않았고 실천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예수님 앞에 끌고 와 율법(레위 20,10; 신명 22,22)을 근거로 처벌을 묻습니다. 이것은 여인의 죄를 벌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덫이었습니다.
“돌로 쳐라”라고 하시면, 사형 집행권을 가지고 있던 로마 제국의 법을 어기는 것이며 그동안 가르쳐온 사랑과 용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살려 주어라”라고 하시면, 모세의 율법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이단자이자 거짓 예언자로 고발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덫일 뿐인 이유는 간음했다고 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아닌, 여자만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땅에 글을 쓰시면 침묵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대답을 강요하는 그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돌을 던지라고 하셨지만, 그 집행의 자격을 물으십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심판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아무런 죄가 없는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나이 많은 자들부터 떠나갑니다. 너무 많은 죄를 짓는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 것입니다. 모두 떠나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예수님께서는 유일하게 죄가 없으시므로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심판관이신 그분은 단죄를 포기하시고 용서와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려고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계속 만들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의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나의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한 가정은 이 세상에서 미리 누리는 천국이다(존 보링 경).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사람은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부정하지 않으시며 죄인을 먼저 품으십니다. 돌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볼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에 가까워집니다. 죄와 죽음 사이에서 생명을 선택하시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돌을 들 수 없는 이유는 너와 내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던 돌은 판단과 집착으로 가득 찬 마음입니다. 타인을 향한 판단을 멈추고 자신을 직면할 때, 진정한 치유가 일어납니다.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존재로 바라보는 관계, 이것이 참된 인간다움입니다.
여인은 단죄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받습니다. 타인을 향한 판단보다 자기 성찰로 나아가야 합니다. 타인을 해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죄 없는 자”라는 기준은 우리 모두를 겸손의 자리로 이끕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시작 겸손입니다. 단죄의 돌을 내려놓는 것이 겸손이며 존중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요한복음 8장 7절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3.2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2 |
|---|---|
| 2026.03.2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1 |
| 2026.03.2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20 |
| 2026.03.19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19 |
| 2026.03.1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18 |
| 2026.03.1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3.17 |
| 2026.03.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1) | 2026.03.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