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2사무 7,4-5ㄴ.12-14ㄱ.16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 제2독서
로마 4,13.16-18.22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 복음
마태 1,16.18-21.24ㄱ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7,4-5ㄴ.12-14ㄱ.16

주 하느님께서 예수님께 조상 다윗의 왕좌를 주시리라.
그 무렵
4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3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로마 4,13.16-18.22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였습니다.
형제 여러분,
13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은 의로움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16 그러한 까닭에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17 그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라고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믿는 분, 곧 죽은 이들을 다시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불러내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모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8 그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22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1,16.18-21.24ㄱ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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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9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요셉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4
✚ 강론시작 15:4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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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침묵 속에서 빛나는 믿음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성가정의 가장, 예수의 양부 ……. 요셉 성인을 설명하는 수식어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그분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놀라울 만큼 적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그 감추어진 자리에서 풍겨 나오는 요셉 성인의 겸손한 존재감이 우리의 마음을 깊이 울립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전하며 마리아보다 요셉에게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움의 기준은, 하느님의 법과 계명을 지키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마리아를 대하는 태도는 계명이 제시하는 의로움을 넘어섭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는 법을 지키는 일보다, 계명을 완수하는 일보다도 ‘마리아를 지키는 일’을 선택합니다. 마리아의 사정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자 조용히 물러나려 하고, 꿈속에서 들은 천사의 말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입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순간, 마음이 무너질 수도 있는 자리에서 요셉은 담대하고 고요합니다. 그저 주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들려주신 말씀을 따라 걸어갈 뿐입니다.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고백하였다면, 요셉은 그 고백을 침묵 속에 행동으로 보여 준 사람입니다.
우리도 요셉 성인의 겸손을, 사람을 먼저 살리는 참된 의로움을, 성인의 담대함과 고요함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가정의 가장이자 보편 교회의 수호자인 요셉 성인의 전구로 모든 가정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안에 요셉을 닮은 이들이 넘쳐 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의로움을 넘어 성령으로
오늘 축일 미사의 감사가는 이렇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의로운 요셉을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배필로 삼으시고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요셉을 성가정의 가장으로 세우시어 성령으로 잉태되신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살피게 하셨나이다.”
여기에 우리 교회가 요셉을 어떤 분으로 얘기하는지 잘 들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복음의 표현을 바탕으로 요셉을 우선 의로운 분으로 얘기합니다.
그리고 이때의 의로움은 율법을 어기지 않는 의로움 곧 법적인 의로움입니다. 이 의로움에는 하느님께서 그리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가운데에도 하느님을 믿지 않고도 법적으로 의로운 사람, 다시 말해서 가능하면 법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이 상당히 있고, 또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할 때처럼 착한 사람이 꽤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법적인 의로움을 넘어 마리에게 의리 있는 사람, 곧 마리를 지켜주려는 관계적인 의로움의 측면도 있는 사람, 그러니까 법적인 의로움과 관계적인 의로움을 둘 다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런 사람으로 그쳤다면 인간적인 의로움에 불과했을 겁니다. 하느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을 것이라는 말이고, 그 의로움 때문에 마리아의 배필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감사가는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 다음에 마리아의 배필임을 아주 또렷하게 얘기합니다. 마리아의 배필이 된 것이 하느님의 뜻 때문이며,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파혼하려고 했기에 인간적으로는 마리아의 배필일 리가 없었으며, 이후의 모든 관계도 다 하느님 뜻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충실하고 지혜로운 종 요셉’이라고 감사가가 노래할 때의 그 충실함은 율법에 충실함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충실했다는 것이고 하느님 뜻대로 맺어진 관계 곧 성령의 배필인 마리아와 아들에게 충실했다는 관계적 충실함입니다.
저는 여기서 ‘성령으로 잉태되신’ 주님이라는 오늘 감사가의 표현에 프란치스칸으로서 주목합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셨다는 것은 마리아가 성령의 정배라는 뜻이고, 마리아께서 동정 성모라는 것도 실은 성령의 정배라는 뜻인데 프란치스코는 성녀 클라라와 그 자매들을 성령의 정배라고 일컫습니다.
이는 당시에 봉쇄 관상 수녀들을 그리스도의 정배라고 하던 것과 달리 성령의 정배라고 한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의 정배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라는 것임과 동시에 성령에 이끌리는 자가 되라는 거지요.
요셉이 바로 이런 분이었습니다. 성령께 모든 것을 내어드렸으며 성령에 인도받아 모든 것을 하신 분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자리도 주님의 아버지 자리도 성령께 내어드린 분이고, 가장으로서 성가정을 수호한 것도 성령을 따라서 하신 분입니다. 요셉이 의로움을 넘어 성령에 이끌리신 분이라는 것을 무척 부러워하고 본받아야 할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다운 순명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모친이신 마리아께 대한 관심에 비하면, 성 요셉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구속사에 있어서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계획하신대로를 일찍이 다 이루셨다는 것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아마 그것은 구속사에 있어서 그에게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의 유년시절까지만 함께할 수 있도록 안배한 까닭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통해, 태어날 아기가 구세주 메시아임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그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사실이요, 둘째는 그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러한 하느님의 계획과 예언이 요셉의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통해서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요셉의 인품을 세 가지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복음사가는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고 전합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데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앞세우며 살았기에,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안락과 평안을 포기하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요셉은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마태 1,19)고 전합니다.
이는 그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심과 자비심을 겸비했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공적인 고소를 통해 마리아를 수치스럽게 만들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그에게는 모욕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그러한 모욕을 감수하면서라도 마리아의 안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참으로 그는 사려 깊은 처사를 할 줄 아는, 참으로 자비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셋째>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대로 하였다.”(마태 1,24)고 전합니다.
이는 그가 순명하는 사람이었을 말해줍니다. 그는 항상 침묵으로 하느님의 음성에 마음의 귀를 열고 있었으며, “하느님의 뜻”에 행동하는 믿음으로 순명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순명으로 인류를 향한 하느님 구원계획의 조력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요셉은 오늘 <복음>에서뿐만 아니라, 복음서 전체에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제2독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마 4,18)가 되었듯이, “행동하는 믿음과 순명”으로 구원받는 모든 이들의 양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미 얻은 외아들을 포기했지만, 그는 아들을 얻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포기해야만 했고, 아브라함은 아내가 있었지만, 그는 아내마저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침묵하되 참으로 믿는 사람이었으며, 믿되 참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행동하되 참으로 순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우리 신앙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깊은 침묵, 자신의 안락과 평안을 접고 오로지 하느님께만 내맡기고 행동하는 믿음, 타인의 처지를 배려하는 사려 깊은 자비심과 사랑,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참다운 순명이, 바로 우리의 모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 요셉께 전구하며, 하느님 구원의 온전한 조력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0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주님!
믿음으로 침묵할 줄을 알게 하소서.
행동으로 사랑할 줄을 알게 하소서.
타인의 처지를 자비로 헤아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희망하게 하소서.
선하신 당신의 뜻과
당신의 의로움을 따르며
영으로 인도되는 다 헤아려지지 않은
신비를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남 모르게’ 덮어주는 의인이 되는 가장 빠른 길
오늘은 복된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의로움의 본질을 법적인 잣대가 아닌 사랑의 배려로 보여주는 아주 짧지만 강렬한 대목을 마주합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마태오 1,19)
여러분, 사실 '의롭다'는 말은 보통 법을 잘 지키거나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리는 사람에게 쓰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요셉 성인이 법대로 처벌하지 않고 '남 모르게' 덮어주려 했기 때문에 그를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저는 왜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는 마음이 하늘의 존재들과 소통하는 지름길이 되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자꾸 남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지 그 심오한 영적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도록 삼위일체 관계 자체이신 분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와 '소통'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남 모르게' 악한 일을 저지르고 그것을 가리기 위해 자신을 위장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이 세상의 질서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 곧 '유령'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내가 숨기는 것이 많으면, 나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잘못을 드러내는 존재가 됩니다. 내 안에 도저히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추악한 어둠이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하지 못하도록 타인의 잘못을 더 크게 부풀려 드러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타인을 헐뜯어 자신의 죄를 덮으려는 사람은 결국 세상에서 고립되어 외로워집니다. 그러면 이 지상에는 친구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지하 세계의 어두운 기운과 주파수가 맞게 되고, 결국 악령의 소리를 듣게 되는 지옥을 살게 됩니다.
미국 FBI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스파이로 기록된 로버트 핸슨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증명합니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도덕주의자'로 통했습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강조하며 동료들의 사소한 도덕적 해이를 강하게 질타했고, 불륜이나 부정부패에 대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돌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깨끗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20년 동안 소련의 스파이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세상은 경악했습니다. 그는 국가 기밀을 팔아넘기는 거대한 죄를 숨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단점들을 이 잡듯 뒤져 드러내며 자신의 '의로움'을 연출했던 것입니다.
(출처: 데이비드 와이즈, 『스파이: 로버트 핸슨의 이중생활』, 2003)
그는 '남 모르게' 죄를 지었기에 타인을 파멸시키는 악마의 도구가 되었고,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고 차가운 지하 감옥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자신의 내면이 어둡고 복잡할수록 타인을 더 날카롭게 찌르게 되며, 그 영혼의 끝은 결국 고립된 지하의 어둠뿐입니다.
반대로 요셉 성인이 마리아의 일을 '남 모르게' 처리하려 했던 이유는 그가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투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께 얼마나 큰 자비를 입고 있는지 솔직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타인의 허물을 볼 때 '돌' 대신 '수건'을 집어 듭니다. 덮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남 모르게' 행하는 것이 사랑이면, 그는 이 세상의 보상이나 박수를 바라지 않는 세속의 질서를 초월하여 하느님 나라의 주파수에 자신을 맞춘 천상적 존재가 됩니다. 이 지상에 합당한 존재가 아니니, 당연히 천상의 존재들과 주파수가 맞게 됩니다.
내가 솔직해지면 죄가 사라지고, 죄가 사라지면 가릴 것이 없으니 타인의 단점을 들추지 않고 덮어주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면 요셉 성인처럼 잠결에도 천사의 지시를 들을 수 있는 영적 안테나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의 창설자 성 요한 보스코는 아이들에게 "신부님은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늘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민과 실수를 솔직하게 나누는 투명한 영혼을 가졌기에, 하늘은 그에게 수많은 '천상적 소통'의 특권을 주었습니다.
그는 꿈을 통해 천사의 지시를 직접 받았는데, 한번은 꿈속에서 한 천사가 그를 데리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천사는 아이들 머리 위에 떠 있는 각기 다른 색깔의 광채를 보여주며, 누가 지금 죄의 유혹에 빠져 있는지, 누가 은총 상태에 있는지를 정확히 일러주었습니다. 보스코 신부님은 그 '남 모르게' 받은 천상의 정보를 가지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대신, 조용히 한 명씩 불러 고해성사를 주며 그들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암살 위협을 받을 때마다 '그리지오'라는 이름의 커다란 회색 개를 만났는데, 이 개는 위험한 순간마다 나타나 그를 지켜주고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보스코 성인은 이 개가 하느님이 보내신 천사임을 확신했습니다. 성인이 자신에 대해 솔직했기에 하늘은 그에게 천사를 보내 소통하게 하셨고, 그 영적 권위로 수천 명의 아이를 변화시켰습니다. (출처: 테레시오 보스코, 『돈 보스코 전기』) 내가 투명해지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저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릅니다. 당시 저는 저를 포장하는 대신 제 내면의 가난함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먼 동네까지 학교를 다니며, 경쟁 시스템에 지쳐 “외롭다, 외롭다 … “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외로운 것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래도 솔직했습니다. 남이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있음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때 천사 같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너, 성당 다니잖아. 예수님이 함께 있는데 왜 외로워?”라고 말했습니다. 개신교 신자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러며 자전거 타고 시골 집에 오갈 때마다 ‘그래,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또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데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 가슴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 외로웠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내가 솔직해지니, 천상의 존재를 만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싸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행복이었습니다.
남 모르게 죄를 지어 자신을 가리는 이는 스스로 지하의 지옥을 건설하지만, 요셉 성인처럼 남 모르게 타인을 덮어주는 이는 이미 지상에서 천상을 살게 됩니다. 교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했습니다.
"다른 이의 죄를 덮어주는 자는 자신의 죄를 덮어주시는 하느님을 만날 준비가 된 자이다."
또한 성 암브로시오는 "요셉의 침묵은 율법보다 위대하며, 그의 덮어줌은 천사의 방문을 부르는 향기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남 모르게 덮어주는 요셉과 같은 의인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남이 다 알게 나 자신을 여는 일입니다. 모두가 다 알 수 있도록 자신을 벌거벗기는 길뿐입니다. 내 죄에는 엄격하고 타인의 허물에는 너그러운 '남 모르게'의 영성을 실천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늦게 배우는 것이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는 고대 로마 작가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제 나이 50을 훨씬 넘어서다 보니, 이 말이 분명한 진실임을 삶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 모두가 늦었다고 하는 서른 살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지금 의사로 잘 사는 친구도 있고, 은퇴 후에 그림을 그리며 제2의 인생을 사는 지인도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늦은 때’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은 스스로 한계를 만듭니다. 대신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렇게 포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와 비슷하게 미루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특히 신앙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할 일이 많아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십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은퇴 후 곧바로 열심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이제 늦었다면서 후회만 남길 것입니다.
배움이 지금 당장 해야 지혜로운 것처럼, 신앙생활도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은퇴 후 잠깐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을까요? 신앙에 대해 특별히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을 통해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성인은 복음 안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습니다. 무능하다는 표시일까요? 그보다 어쩌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침묵하셨던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자기 믿음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천사가 했던 말에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명령한 대로 행동할 뿐이었습니다.
복음에서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철저한 원칙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로움은 누군가를 정죄하고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고 품어주는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성모님의 임신에 배신감과 혼란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남모르게 파혼할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봐야 합니다. 우선 결혼을 결심한 사람의 꿈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평범하고 단란한 행복한 가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길을 걷습니다. 자기의 꿈보다 하느님의 계획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요셉 성인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반성합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또 살리고 품어주는 의로움을 갖추고 있나요? 하느님의 계획을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두는 삶을 살고 있나요? 이제 더는 미루는 신앙생활, 후회만 남기는 신앙생활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목표 달성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잘못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토머스 재퍼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
성 요셉의 삶은 하느님의 뜻을 가장 깊이 증언하는 한 편의 따뜻한 복음의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응답의 연속입니다. 성 요셉은 삶으로 모든 것을 전했습니다.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충실했습니다.
많은 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성 요셉은 자신의 계획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이라는 더 큰 흐름에 자신을 맞춥니다. 그는 결코 중심에 서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마리아를 드러내고, 자신은 뒤로 물러납니다.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라 드러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성 요셉은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견디며 선택합니다. 믿음 속에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주어진 상황 속에서 지금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분명하게 실천합니다. 성 요셉은 마리아와 예수를 지켜냈습니다. 빛나지 않는 자리에서 살았지만 그 삶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말보다는 삶으로 사랑을 지켜내라고 가르칩니다. 그 사랑은 다름 아닌 마리아와 예수를 향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성 요셉의 삶은 지켜내야 할 것을 끝까지 지켜내는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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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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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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