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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2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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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7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예레 20,10-13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 복음
    요한 10,31-42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예레 20,10-1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십니다.

10 군중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립니다. “저기 마고르 미싸빕이 지나간다! 그를 고발하여라. 우리도 그를 고발하겠다.” 가까운 친구들마저 모두 제가 쓰러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속아 넘어가고 우리가 그보다 우세하여 그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1 그러나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이다. 그들은 성공하지 못하여 크게 부끄러운 일을 당하고 그들의 수치는 영원히 잊히지 않으리이다.

12 의로운 이를 시험하시고 마음과 속을 꿰뚫어 보시는 만군의 주님 당신께 제 송사를 맡겨 드렸으니 당신께서 저들에게 복수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소서.

13 주님께 노래 불러라!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분께서 가난한 이들의 목숨을 악인들의 손에서 건지셨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으로 돌아가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0,31-4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그때에

31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하였다.

3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너희에게 좋은 일을 많이 보여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어떤 일로 나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느냐?”

33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좋은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에 당신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소.” 하고 대답하자,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자 유다인들이 다시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40 예수님께서는 다시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전에 세례를 주던 곳으로 물러가시어 그곳에 머무르셨다.

41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분께 몰려와 서로 말하였다. “요한은 표징을 하나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가 저분에 관하여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42 그곳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오늘의 말씀 한 줄 요약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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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7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0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말과 삶이 하나가 될 때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과 행동으로 당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시는 순간을 만납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돌을 들었습니다. 그분께서 악을 행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면서 스스로 하느님이라고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빛이 어둠 속에 들어오면 어둠이 흔들리듯, 예수님의 정체성은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 앞에서도 당신을 숨기시지 않습니다. 낮추시거나 피하시지 않고 오히려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요한 10,38).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자신을 밝히시고, 행동으로 당신 말씀을 증명하십니다. 그분의 말씀과 행위는 하나이며, 그분의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일이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분의 말과 행동이 유다인들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명의 출발점인 요르단강 건너,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주던 자리로 물러가십니다. 기적이 아니라, 바로 세례자 요한의 증언과 예수님의 삶으로 그분의 정체성을 알아본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일치된 말과 행동은 엄청난 힘을 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도 예수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이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답게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며,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한 말과 작은 친절, 용서와 인내, 정의와 자비를 실천하여 그리스도를 드러내려고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 목록으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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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누구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가?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성전봉헌축제 때, 솔로몬 주랑에서 벌어진 유대인들과의 논쟁의 뒷부분입니다. 앞부분에서는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증언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돌로 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십니다. 그리고 받아들이지 않는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

이는 ‘아버지의 일’과 ‘예수님의 일’이 같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 일은 ‘사랑을 완성해 가는 일’, 곧 ‘생명을 북돋우고 창조를 완성해 가는 일’이요, ‘구원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믿게 되면,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안에 계심을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믿음’이 앎과 깨달음의 능력이요 사랑의 힘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되는 능력입니다(요한 10,38 참조).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0,38)라는 말은 그냥 단순히 알게 되는 것을 넘어서, 아는 바를 받아들여 체험하여 알게 될 것(야다, יָדַע)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의 앎입니다. 그야말로, 사랑의 경험에서 선사되는 앎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멜의 산길”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을 얻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얻으려 하지 말라

모든 것이 되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되려고 하지 말라

모든 것을 알기에 다다르려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말라

너 있지 않는 곳에 다다르려면,
너 있지 않는 데를 거쳐서 가라.”

그것은 사랑이신 말씀을 받아 사랑을 완성해 가고, 생명이신 말씀을 받아 생명을 완성해 가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느님이 됩니다(신화, θεοσισ). 이는 예수님께서 증언하신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요한 10,36)라는 말씀을 비추어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요, 마귀의 말을 받아들이는 이는 마귀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의 말과 행동이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대체 누구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들은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그분 말씀을 따름 안에서 그분을 만나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진정 그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0,35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한다.

 

주님!
당신의 말씀을 받은 이가 되게 하소서.

받아들인 바를 따라 살며, 당신 안에 들게 하소서.

제 안에서 말씀이 자라나고, 당신 사랑이 실현되게 하소서.

말씀을 받았으니, 말씀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목숨을 걸 말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주 긴박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들어 예수님께 던지려 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로 태어난 인간 예수가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하게 만들어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태도가 놀랍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오해입니다!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라며 일단 위기를 모면하려 하거나, 무서워서 도망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성경 구절까지 인용하시며 당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너희의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요한 10,34)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돌을 든 자들은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는 것을요. 그런데도 왜 굳이 그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진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심지어 돌이 날아오는 순간이라도 진리는 허공에라도 외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우리가 진리를 말할 때,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으면 입을 닫아버리곤 합니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라며 포기합니다. 하지만 성인들은 달랐습니다. 진리는 인간의 귀에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온 우주의 질서 속에 선포되어야 하는 생명의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성 안토니오가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곳의 이단자들은 완고하게 귀를 막고 성인을 조롱했습니다. 성인은 그들에게 실망하여 입을 닫는 대신,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어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물고기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너희 완고한 인간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거부하니, 나는 이제 물고기들에게 설교하겠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질서 정연하게 성인의 설교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큰 물고기는 뒤에, 작은 물고기는 앞에 서서 성인의 축복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단자들은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진리는 허공에 던져진 것 같아도, 결국 만물을 통해 증명됩니다. (출처: 『성 안토니오의 꽃송이』 제40장)

목숨과 바꿀 수 없는 것, 그것만이 진짜 진리입니다. 진리는 생명으로 이끌기 위해 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내 주장이 죽음 앞에서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나의 교만'이었을 뿐 '진리'가 아닙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 (1995)의 마지막 장면은 전율을 불러일으킵니다. 윌리엄 월리스는 처참한 고문을 당하며 단 한 마디, "자비(Mercy)"를 구걸하면 고통을 끝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습니다. 군중도 그가 불쌍해서 "자비라고 말해!"라고 울부짖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온 힘을 다해 외칩니다.

"자유(Freedom)!"

그에게 자유는 죽음보다 귀한 진리였습니다. 만약 그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비를 구걸했다면, 그가 평생 외쳤던 자유는 한낱 정치적 구호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죽음으로써 자신이 외친 것이 진짜 진리임을 증명했습니다. (출처: 영화 '브레이브 하트' 1995)

오늘 예수님은 돌을 던지는 자들 앞에서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라고 외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외치십니다. 이 외침은 결국 십자가라는 거대한 돌에 부딪혀 죽음을 맞이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이 바로 그분의 말씀이 진짜 진리였음을 온 우주에 증명하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오늘 누군가 여러분의 자존심에 돌을 던질 때, 혹은 사회적 불이익이라는 돌이 날아올 때, 결코 철회할 수 없는 어떤 진리를 품고 계십니까? "나도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이 정체성만큼은 돌을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느님의 본성을 가졌다는 이 진리가 내 안에 살아있다면, 우리는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는 사자와 같다.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저 풀어놓기만 하라. 그러면 진리가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요한 복음 강론』).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납은 인체에 유해할까요? 무해할까요? 당연히 유해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납은 인체에 무해한 아주 고마운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음식물을 넣은 통조림 캔도 납으로 땜질했고, 물을 담아두는 물탱크도 납으로 도금했습니다. 살충제로 납을 과일에 뿌리기도 했고, 치약 튜브에도 납을 사용했습니다. 즉, 일상용품 중에서 납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납은 쉽게 추출해서 가공할 수 있기에 산업적으로 생산하여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산 현장에서 사람들이 사망하고, 장애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납에 대한 의심이 생겼는데, 기업에서는 하나의 실험 결과를 발표합니다.  

5년 동안 지원자에게 상당한 양의 납을 흡입하거나 섭취하도록 한 후에 그들의 소변이나 대변을 검사한 것입니다. 납 성분이 조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해하다는 결론입니다. 그런데 납 성분은 노폐물과 함께 배출되지 않고, 뼈와 혈액에 축적되고 있었습니다.  

무지는 이렇게 많은 희생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참된 앎은 많은 사람을 살립니다. 예수님을 몰랐던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참된 앎 그 자체이기에 오히려 그 십자가로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끄셨습니다.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이름을 모독한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 온 공동체가 그에게 돌을 던져야 한다. 이방인이든 본토인이든 주님의 이름을 모독하면 사형을 받아야 한다.”(레위 24,16)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행하신 치유와 놀라운 기적들은 하느님에게서 오셨음을 증명하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를 보지 못하는 닫힌 마음이 그 증거들을 ‘신성모독’이라는 틀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라는 기록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임받아 백성을 재판하는 불의한 재판관들을 향해서 부르는 대목입니다. 즉,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받은 죽을 운명의 인간들도 감히 ‘신’이라고 불렀는데, 하물며 아버지께서 직접 거룩하게 구별하시어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게 신성모독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으로 당신을 믿지 못하겠다면, 당신이 하시는 ‘일(기적과 사랑의 행위들)’을 보라고 호소하십니다.  

예루살렘(종교의 중심지)에서 거부당하신 예수님은 요르단강 건너편, 즉 세례자 요한이 처음 세례를 주던 곳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그곳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습니다.   유다인들의 무지가 하느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도 삶 안에서 자기의 좁은 경험과 편견으로 하느님의 크신 일과 이웃을 재단하며 돌을 드는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믿음 없는 곳에 예수님께서는 머물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면서 굳은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하여 지금 가진 것을 망치지 마라. 당신이 지금 가진 것 또한 한때는 간절히 바라던 것 중 하나였음을 기억하라(에피쿠로스).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들은 결국 붙잡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삶은 사람들의 계획이 아니라 하느님의 때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서 피하신 것이 아니라, 아직 십자가의 때가 아니기에 그들의 손을 벗어나신 것입니다.

그분은 붙잡히신 분이 아니라, 때가 되어 스스로 자신을 내어주신 구원의 주체이십니다. 붙잡으려는 자들은 자신들의 기준과 이해 속에 예수님을 가두려 하지만, 이분법적 판단을 넘어 그들의 손을 벗어나십니다.

예수님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우리의 두려움과 기대를 투사합니다. 우리도 혹시 무언가를 붙잡으려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를 성찰합니다. 우리는 외부의 힘으로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외부가 아니라 내면의 자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붙잡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 안에서만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인간의 어떤 손에도 붙잡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때와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자유가 참된 삶입니다.

모든 것을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하느님의 뜻과 때를 신뢰하며 내려놓는 사순되시길 바랍니다. 붙잡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맡기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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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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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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