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이사 49,1-6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복음
요한 13,21ㄴ-33.36-38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49,1-6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3,21ㄴ-33.36-38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때에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21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게 하였다.
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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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넘어짐 뒤에 시작되는 은총
베드로가 배반할 것이라는 예고는 우리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별을 예고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요한 13,33).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혼란스럽습니다. 그는 주님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13,37).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열정 뒤에 숨은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이미 알고 계셨기에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13,38).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두려움 앞에서, 인간적 본능 앞에서 그는 무너지고 마는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잡히신 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며 자신을 지키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닭이 울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넘어질 것을 아셨지만, 다시 일어설 것도 분명히 아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신 세 번의 질문으로 그의 상처를 낫게 해 주십니다(21,15-18 참조).
베드로의 이야기는 우리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주변 상황에 따라 주님의 뜻을 잊어버리거나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주님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이미 알고 계시며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우리가 약한 존재임을 고백하며 그분의 자비 안에 머무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느님 안에서의 반전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오늘 이 말씀에서 ‘그러나’라는 말이 눈에 쏙 들어오며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그러나’는 앞의 얘기와는 반전을 예고하는 표현이지요. 앞에서는 헛수고, 헛고생을 얘기하다가 그건 그렇지만은 않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무엇이 어떻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나를 버리지만 하느님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나의 일과 노력은 인간적으로 그리고 일시적으로 헛수고가 되겠지만 영적으로는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영광이 될 것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의 헛수고는 두 가지입니다. 일의 실패와 관계의 실패입니다. 보통은 공들인 일이 아무 성과가 없을 때 헛수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지 않았을 때 그렇게 얘기하지요.
그런데 신앙인인 우리는 이 헛수고의 기준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시는 결과가 나지 않은 것으로, 그러니까 하느님이 원하시는 대로 되지 않을 때 헛수고인 것으로 바꿔야.
그러니 우리 신앙인은 내가 원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를 때 그렇게 애쓴 것이 헛수고가 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고, 어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땐 하느님 뜻과 달라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종 곧 주님의 헛수고는 일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실패, 그러니까 제자 교육의 실패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자식 농사의 실패입니다.
3년 동안 당신의 제자요 하느님 포도밭의 일꾼으로 그렇게 애써 키웠는데 유다 이스카리옷은 당신을 팔아넘기고 다른 제자들은 다 배반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아주 심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이 토로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처럼 마음에 담아 둘 수 없어서 터뜨리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 심란하심이 우리와 같은 의미의 심란하심일까요?
물론 좌절감 곧 제자 교육이 내 뜻대로 안 된 것의 심란하심이 아니라 사랑의 심란하심 곧 제자의 불행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이해해야겠지요. 우리만 해도 자식 농사가 잘되지 않았을 때 내 뜻대로 안 된 것 때문에 심란하지 않고, 자식이 불행할까 봐 심란하지 않습니까?
어쨌거나 이제 주님은 제자들의 배반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당신이 죽어갈 때 제자들은 요한 외에 아무도 당신 곁에 없을 겁니다. 그럴지라도 당신 곁에 아버지 하느님이 계신다며, 당신의 죽음이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그리고 제자들도 지금은 배반하지만 나중에는 참 제자로 바뀔 것이라며 심란하심을 추스르십니다.
‘그러나’의 뜻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반전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의 반전을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됩시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우리는 <성삼일>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절망과 어둠이 더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빛으로부터 떠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간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두 개의 밤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개의 배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다의 밤’이요, 또 하나는 ‘베드로의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캄캄한 어둠이 짙어져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닭이 울음과 함께 새벽이 밝아져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이 제자들을 덮치자,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놓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사실, 예수님께서는 배반하는 제자를 마지막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빵을 적셔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빵을 적셔서 주는 것은 애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당신을 배반할 제자에게 끝까지 베푸는 충실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랑을 등지고서 밤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면밀히 계획한 바를 어둠 속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장담하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요한 13,38)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할 의향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순간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닭이 울면, 어둠은 밝아질 것입니다. 베드로는 지나친 자기 과신으로 넘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넘어질 때는 가장 약할 때가 아니라, 가장 강할 때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바오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해질 것입니다(2고린12,10).
그렇습니다. ‘유다의 밤’은 어둠과 악으로부터 오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약함과 과신으로부터 오는 밤입니다. ‘유다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도 더 짙은 어둠으로 빠져들어 멸망으로 가는 밤이요, ‘베드로의 밤’은 죄를 깨닫고서는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밤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베드로와 유다같이 곧잘 넘어집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넘어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일어서는 존재인 것은 아닙니다. 혹 넘어진 사실을 까달아 알고 뉘우친다고 해서, 일어선 사람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단지, ‘넘어진 채로 넘어진 자신을 본 것’일 뿐, 일어서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일어서서 넘어졌던 자신을 보아야 할 일’입니다. ‘빛 속으로 건너와서 어둠을 바라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일어선 자만이 빛나는 새벽을 만날 것이요, 일어선 자만이 빛 속에 들 것입니다. ‘먼저 베풀어진 그분의 사랑을 만난 자’만이 그분의 빛 속을 걸을 것입니다.
하오니, 빛이신 주님! 저를 비추소서! 제가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오늘 제가 비록 넘어지더라도 일어나 빛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3,38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
어둠에 휩싸여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빛을 비추어 주소서.
넘어지기도 전부터 베풀어진 당신의 사랑을 보게 하소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 빛 안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그리하여, 일어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구원의 십자가를 지고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빛을 받았으니, 빛을 비추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영광 교환을 통한 존재 상승의 메카니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린 순간, 오히려 인류 역사상 가장 찬란한 ‘영광의 신비’를 선포하십니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요한 13,31-32)
이 구절은 마치 거울 두 개가 서로를 마주 보고 빛을 무한히 증폭시키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빛내고, 아버지는 그 아들을 다시 빛내십니다. 오늘 저는 이 ‘영광의 순환’이 어떻게 우리를 하느님이라는 높은 존재로 상승시키는지, 그리고 왜 이 순환을 끊는 자가 사탄의 먹잇감이 되는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무서운 병은 ‘영적 변비’입니다. 하느님께 은총을 받기만 하고 그것을 영광으로 내놓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런 존재를 과학적으로는 ‘블랙홀’이라 부르고, 지리학적으로는 ‘사해(Dead Sea)’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의 사해는 요르단강의 맑은 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나가는 길이 없습니다. 태양 빛을 받아 물은 증발하고 염분만 남으니, 그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독탕이 되었습니다.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존재는 결국 썩어 문드러집니다.
가리옷 유다가 바로 영적인 사해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3년 동안 하느님 나라의 모든 비밀을 주셨고, 오늘 복음에서도 직접 빵을 적셔 입에 넣어주시는 ‘최고의 영광’을 베푸셨습니다. 주인이 손님에게 빵을 직접 주는 것은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다"라는 선언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 영광을 삼키기만 했습니다. 감사의 고백도, 사랑의 보답도 없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영광이 유다의 이기심이라는 항아리에 갇혀 썩기 시작했을 때, 성경은 전율할 만한 기록을 남깁니다.
"그가 빵 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요한 13,27)
영광을 돌려주지 않는 마음은 사탄이 거주하기 가장 좋은 악취 나는 방이 됩니다.
우리의 존재 상승은 끊임없는 영광의 교환을 통해서입니다. 이것을 멈추는 순간, 존재의 상승도 멈추게 됩니다. 개구리가 되고 싶어 개구리 마을로 내려온 전갈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도 착해서 개구리들이 받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강을 건너려고 하자 자신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를 등에 태워 건네주면 내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다."라고 애원합니다. 개구리는 겁이 났지만 전갈의 간곡한 부탁에 영광스러운 호의를 베풉니다. 그런데 강 중간쯤 갔을 때, 전갈이 개구리의 등을 찌릅니다. 둘 다 물에 빠져 죽어가며 개구리가 묻습니다.
"도대체 왜 그랬니? 그러면 너도 죽잖아!"
전갈이 대답합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이게 내 본성인 걸 어쩌겠니."
이것이 유다의 상태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광을 받아도 내 안에 ‘영광의 반사판’이 없으면, 우리는 상대를 죽이고 나도 죽는 전갈이 됩니다. 영광을 돌려주지 않는 것은 존재를 사해처럼 만드는 것이며, 사탄의 지배를 부르는 행위입니다.
반면, 자신이 만나는 모든 관계에서 영광을 돌려줌으로써 자신의 비천한 신분을 고귀하게 상승시킨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아르헨티나의 성녀라 불리는 에바 페론, 영화 '에비타' (1996)의 주인공입니다.
영화 '에비타' 속 에바는 가난한 시골의 사생아로 태어나 밑바닥 인생을 전전했습니다. 그녀가 퍼스트레이디라는 존재의 정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히 미모나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만나는 남자마다 그들에게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정성을 다해 영광을 돌렸습니다.
무명 시절 에바는 인기 가수 아구스틴 마갈디를 만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상경합니다. 그녀는 마갈디가 자신에게 준 기회에 대해 그를 누구보다 빛나는 스타로 대접하며 보답했습니다. 그녀는 남자를 도구로 쓴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을 도와주었을 때 그 상대를 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줌으로써 사랑받는 법을 알았습니다. 사진작가나 제작자를 만날 때도 그녀는 그들의 능력을 찬양하고 그들이 자신을 통해 영광을 얻게 했습니다.
이 ‘영광의 되돌려줌’은 결국 후안 페론 대령을 만나게 했고, 에바는 페론에게 "당신이야말로 아르헨티나를 구할 유일한 메시아입니다"라며 전 국민의 지지를 조직하여 그에게 바쳤습니다. 페론이 그녀에게 지위를 주자, 에바는 그 대가로 페론을 ‘민중의 아버지’로 격상시키는 영광을 돌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자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했다는 오늘 복음의 논리가 세속적으로 실현된 셈입니다.
결국 에바는 자신이 페론 대통령에게 받은 그 엄청난 사랑과 영광을 다시 가난한 노동자들, 즉 ‘데스카미사도스(옷 없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려주었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아르헨티나여(Don't Cry for Me Argentina)"라고 노래하며 대중에게 받은 영혼을 다시 대중에게 봉헌했습니다.
그 결과 사생아 출신 배우는 한 나라의 ‘성녀’라는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이름으로 영원히 기억되게 되었습니다. 관계의 비밀은 이처럼 내가 받은 영광을 내 주머니에 넣지 않고, 나를 높여준 상대에게 더 크게 돌려드리는 데 있습니다. (출처: 앨런 파커 감독, 영화 '에비타' 1996)
강론의 결론으로, 악의 밑바닥에 있다가 더 높은 존재와의 친교, 그리고 그 영광을 온전히 돌려드림으로써 성인이 된 「성 모세(St. Moses the Black)」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성 모세는 본래 이집트 강도 떼의 두목이었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빼앗는 것만이 영광이라 믿던 짐승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회개하여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그의 변화는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밤새워 형제들의 물통을 채우고, 가장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거구의 흑인 수도자를 성인이라 칭송하며 온갖 영광을 돌렸습니다.
한번은 주교님이 그를 사제로 서품하며 흰 장식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보십시오, 이제 모세 형제는 눈처럼 하얗게 되었습니다!"라며 모든 수도자가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때 모세는 자칫 ‘나는 이제 거룩한 사람이다’라는 자기 영광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수도원이 주는 영광을 즉시 자신을 낮추는 거울로 삼았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모세야! 겉은 하얗지만 속은 여전히 검은 네가 어떻게 이 영광을 가로챌 수 있겠느냐!"
서품식이 끝난 후, 수도원의 사제들은 그의 겸손을 시험해보기로 했습니다. 그가 제단으로 나아갈 때 사제들이 소리쳤습니다.
"저 검둥이 강도 놈이 어디라고 거룩한 곳에 발을 들이느냐! 당장 나가라!"
모세는 아무 말 없이 쫓겨났습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왜 화를 내지 않았느냐고 묻자 모세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수도원이 저에게 준 영광은 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렸으니, 저에게 남은 것은 비천한 강도였던 저의 진실한 모습뿐입니다. 저는 그 진실 안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 모세는 수도 공동체와 하느님이 주신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고 즉시 하늘로 돌려보냈습니다. 영광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그가 영광을 되돌려줄 때마다 그의 존재는 더 깊은 신성 안으로 상승했고, 결국 사막의 교부들 중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습니다. (출처: 소조메노스, 『교회사』 제6권 29항)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동기화(Syncing)’를 제안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그 비참한 순간을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을 통해 아버지의 사랑을 증명함으로써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을 부활시키심으로써 다시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받은 영광을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노래했습니다.
"주님, 당신께 돌려드리지 않은 영광은 우리 영혼을 무겁게 짓눌러 지옥으로 끌어내리지만, 당신께 봉헌한 영광은 우리에게 날개를 달아 당신께로 날아오르게 하나이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10권 36항 참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삶에서 아주 작은 기쁨이라도 느끼고 싶다면 당신은 이 세계에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쇼펜하우어의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사실 신부가 되기 전에는 잘 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만 가지고 있었지,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의 모습이 불완전했고, 할 수 없는 일투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심했습니다.
‘내가 과연 신부로 잘 살 수 있을까? 이 길이 과연 나의 길일까?’
이런 문제로 갈등하고 있을 때, 피정 중에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습니다. 즉, 이렇게 의심하고 걱정하면서도 특별히 무엇인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통한 하느님의 가치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오랫동안 묵상해 보니 게을렀고, 쓸데없는 곳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노력해야 할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책을 읽었고 글을 써갔습니다. 기도 역시 지루하다고만 하지 않고 주님을 느끼려고 좀 더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저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고, 변화되는 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사제로 기쁘게 살면서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오늘의 나보다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으며,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쁨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자녀로 합당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나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을 미리 알려주지요. 변화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유다는 주님께서 적신 빵을 쥐고서도, 자기 욕망과 고집을 꺾지 못해서 스스로 밤(어둠)을 향해 걸어갑니다. 또 베드로는 자기 힘과 자기 의지만으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를 팔아넘길 제자에게 끝까지 빵을 적셔 주시는 사랑을 봅니다. 자기를 부인할 제자 베드로에게는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요한 13,36)라면서 실패 이후의 자리까지 마련해 주십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깊이 뉘우치고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역시 끊임없이 주님의 뜻과 정반대의 길로 향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 실패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끝없는 사랑을 주시고, 십자가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꿋꿋하게 주님의 사랑에 의지하면서 한 발 한 발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나쁜 것은 틀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고 믿는 것이다(폴 투르니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겸손이 사랑의 진정한 시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이미 아시면서도 베드로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지 않는 삶이 아니라 깨어나는 삶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참모습인 연약하고 흔들리는 우리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위험 앞에서 하느님에 대한 신뢰보다 자기 보호를 선택합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하느님께 돌아오는 용기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이야기하지만 그 자유는 언제나 불안을 동반합니다. 베드로는 스승을 사랑했지만 위기의 순간 그 마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뒤 자신을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유다의 모습과 베드로의 모습이 함께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는 관계를 떠나고 어떤 순간에는 사랑을 부인하며 어떤 순간에는 자신을 과신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순간에도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향해 빵을 내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넘어지고 부인하는 순간에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삶을 만나는 성주간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유다도 베드로도 우리이며, 차이는 넘어짐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선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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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49장 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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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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