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2열왕 5,1-15ㄷ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 복음
루카 4,24ㄴ-30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열왕 5,1-15ㄷ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그 무렵
1 아람 임금의 군대 장수인 나아만은 그의 주군이 아끼는 큰 인물이었다. 주님께서 나아만을 시켜 아람에 승리를 주셨던 것이다. 나아만은 힘센 용사였으나 나병 환자였다.
2 한번은 아람군이 약탈하러 나갔다가,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아 왔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 곁에 있게 되었다.
3 소녀가 자기 여주인에게 말하였다. “주인 어르신께서 사마리아에 계시는 예언자를 만나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라면 주인님의 나병을 고쳐 주실 텐데요.”
4 그래서 나아만은 자기 주군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였다고 아뢰었다.
5 그러자 아람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써 보낼 터이니, 가 보시오.” 이리하여 나아만은 은 열 탈렌트와 금 육천 세켈과 예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임금에게 편지를 전하였다. 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 편지가 임금님에게 닿는 대로, 내가 나의 신하 나아만을 임금님에게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나병을 고쳐 주십시오.”
7 이스라엘 임금은 이 편지를 읽고 옷을 찢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시는 하느님이란 말인가? 그가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나병을 고쳐 달라고 하다니! 나와 싸울 기회를 그가 찾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8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는 이스라엘 임금이 옷을 찢었다는 소리를 듣고, 임금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을 전하였다.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옷을 찢으셨습니까? 그를 저에게 보내십시오. 그러면 그가 이스라엘에 예언자가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9 그리하여 나아만은 군마와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대문 앞에 와서 멈추었다.
10 엘리사는 심부름꾼을 시켜 말을 전하였다.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 그러면 새살이 돋아 깨끗해질 것입니다.”
11 나아만은 화가 나서 발길을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당연히 그가 나에게 나와 서서, 주 그의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병든 곳 위에 손을 흔들어 이 나병을 고쳐 주려니 생각하였다.
12 다마스쿠스의 강 아바나와 파르파르는 이스라엘의 어떤 물보다 더 좋지 않으냐? 그렇다면 거기에서 씻어도 깨끗해질 수 있지 않겠느냐?” 나아만은 성을 내며 발길을 옮겼다.
13 그러나 그의 부하들이 그에게 다가가 말하였다. “아버님, 만일 이 예언자가 어려운 일을 시켰다면 하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버님께 몸을 씻기만 하면 깨끗이 낫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14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15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온 세상에서 이스라엘 밖에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4,24ㄴ-30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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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눈앞의 예수님을 놓친 이유
신자분들에게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물어보면, 많은 분이 바오로 사도의 코린토 1서 13장 ‘사랑의 노래’를 꼽습니다. 그 가운데 4절은 이렇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기서 가끔 ‘사랑’이라는 낱말을 ‘사람’으로 바꾸어 묵상하고는 합니다. “사람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람은 친절합니다. 사람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기에 바꾸어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그분의 은총 가득한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비범한 이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였기에, 눈이 있어도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귀가 있어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벼랑에서 떨어뜨리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께 불친절하였고 시기하며 질투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라고 말하며 교만한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환영받아야 할 고향에서 환영받으시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에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떠나가셨지만, 그들의 차가움과 질투가 예수님을 아프게 하였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지만, 사랑은 친절한 것이지만,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는 것이지만, 고향 사람들에게서는 그 사랑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에는 예수님과 함께할 사랑도, 함께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함께해야 할 사랑입니다. 함께해야 할 사람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 외에 아무것도 없는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오늘 주님 말씀대로 주님께서 환자가 많아도 다 고쳐 주지 않으십니다. 여기서 주님께 원망도 하게 되고 질문도 하게 됩니다. 왜 누구는 고쳐 주시고 저는 고쳐 주지 않으십니까?
이것이 한편으로는 원망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질문이지요. 그렇다면 원망으로 이렇게 묻는다면 회개해야 하고, 다만 그 뜻을 알고 싶은 것뿐이라면 겸손하게 질문해야겠지요.
하느님은 왜 모두를 고쳐 주지 않으시는 걸까요? 고쳐 주고 안 고쳐 주는 것은 당신 맘대로라는 걸까요? 그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고쳐 주시는 걸까요? 솔직히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님 말씀을 믿을 뿐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말씀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이 예로 드신 나아만은 믿음의 인물입니까? 처음에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믿기보다 자기를 믿었습니다. 자기 권력이나 재물을 믿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나아올 때 군대와 많은 재물과 함께 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또 하느님을 믿기보다 사람을 믿었습니다. 군대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온 것도 실은 엘리사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에게 선물일지 뇌물일지 뭘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런 잘못된 믿음을 깨고 정화시킨 것이 바로 엘리사의 처신입니다.
나아만이 그렇게 거창하게 왔지만 엘리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그를 엘리사는 대단하게 여기거나 쫄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예언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르단강물에 몸을 씻으라고 한 뜻은 몸만 정화케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믿음을 정화케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 나올 때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오직 믿음만 가지고 나오면 되는 것이라고.
하느님은 의사와 다르십니다. 의사는 돈을 받고 고쳐 주지만 하느님은 순전히 자비로 고쳐 주십니다. 의사는 권력자와 부자를 먼저 고쳐 주고 정성껏 고쳐 주지만 하느님은 그런 자일수록 고쳐 주지 않고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가난하고 겸손하게 믿는 사람을 고쳐 주시는 분이시기에 하느님 자비에 겸손하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고쳐 주셔야 한다며 강짜를 부리거나 욕심을 부리는 자는 고쳐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은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구원해주실 겁니다. 믿음 외에 다른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녀 프란체스카 로마나 대축일
오늘은 [또르 데 스뻬키 수도회](Tor d'Specchi)의 창설자요, 로마의 주보성녀요, 봉헌자들의 주보성녀인 프란체스카 로마나(Francisca Romana, 1384~1440) 대축일입니다.
프란체스카 로마나 성녀는 베르나르도 똘로메이(1272-1348) 성인께서 돌아가신지 36년 후인 1384년에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께 바치는 삶을 갈망했습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자신의 갈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두 살 때 부모님의 뜻에 따라 혼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45세 때(1425년), 현재의 프란체스카 로마나 수도원인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봉헌자가 되었고, 그 후 1433년에는 [또르 데 스뻬키](Tor d'Specchi) 수녀원을 창설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은 가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수녀원에 입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공동체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생활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입회한 자매들은 여전히 [산타 노바 수도원]의 봉헌자 신분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곧 봉헌자 수도공동체였던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타계하자, 1436년에 52세의 나이로 비로소 공동체에 입회하였고, 약 4년의 수도생활을 한 후인 1440년 3월 9일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성녀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는 오늘 <복음> 말씀을 온 몸으로 사셨습니다. 그녀가 행한 많은 치유와 기적들도 이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잘 보여줍니다. 그녀는 여성들을 위한 봉사에도 헌신하였는데, 특별히 불임 여성들, 임산부들, 갓 태어난 아기들 등을 돌보았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많은 이웃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성녀께서는 말합니다.
“연민으로 가득 찬 존재가 되십시오. 형제자매들의 좌절과 가난을 깊이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십시오.”
성녀의 가장 큰 소망은 우리가 참된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되고, 참된 형제가 되고, 나아가 참된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1439년 12월 26일의 환시에서, 탈혼 중에 아기 예수님을 팔에 안고 [산타 마리아 노바 수도원]의 히뽈리또 수사를 방문하여, ‘아기 예수님을 그에게 넘겨드리며’ 말합니다.
“나는 수사님을 아버지요 아들이자 형제로 받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가족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로 하여 우리는 한 형제자매가 되고 어버이가 되고, 아들딸이 되고 한 가족이 됩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형제자매들에게 넘겨드리는 일이야말로, 정녕 우리의 가장 심오한 소명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기를 좋아하십시오. 여러분의 우정과 인간관계에 충실하십시오. 어머니가 되고 딸이 되고 누이가 되십시오.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형제가 되십시오.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십시오. 성찬의 사람이 되십시오.”
이처럼, 성녀께서는 관계가 상호적인 것이 되기를 원하셨고, 우리를 삼위일체 하느님의 풍요로운 관계로 초대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녀께서는 하느님과 이웃과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과 한 몸을 이루고 사셨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웃’은 하느님이셨습니다.
성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친교의 사람이 되십시오. 늘 타자에게 열려있고,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십시오.모든 타자 중 으뜸 타자, 곧 ‘절대 타자’이신 하느님께 그러하십시오.이 세상에서 그 어느 누구도 고립된 섬이 아닙니다.
“한 몸”(Unum Corpus)을 몸으로 실현하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몬테 올리베토 연합회”의 영성의 특성인 “한몸 영성”(Unum Corpus), “친교 영성”을 만납니다.
오늘, 성녀께서는 우리에게 같은 여정을 걷도록 우리 발걸음을 축복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님”을 넘겨주십니다. 우리는 성녀께서 우리에게 넘겨주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고, 또한 우리도 형제들에게 예수님을 건네주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2,39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주님!
이웃을 남이 아니라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로 보게 하소서.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그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이웃을 내 몸으로 사랑하게 하시고
내 몸을 사랑으로 내어주게 하소서.
오로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 제3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아주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고향 나자렛에서 따뜻하게 환영받으셔야 할 예수님께서 오히려 살해 위협을 당하십니다. 사람들은 분노에 차 예수님을 고을 밖 벼랑까지 끌고 가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런데 복음의 마지막 구절이 참으로 압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30)
왜 사람들은 그토록 분노했을까요? 진리는 본래 천상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는 이들에게 천상의 진리는 자신들을 무시하거나 공격하는 소리로 들립니다. 내 밑천이 드러나고 자존심이 깎이는 것 같으니, 진리를 말하는 사람을 박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그분은 그 살벌한 박해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이것이 진리를 가진 자가 누리는 진짜 힘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옳은 소리를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상대가 화를 내거나 비아냥거리면 우리 마음은 어떻게 됩니까? 같이 화가 나거나 억울해서 잠을 못 이룬다면, 그것은 아직 내 말이 진리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타인의 반응에 자유롭습니다. 자유롭다는 뜻은 곧 그들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집착하지 않기에 흔들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기에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사랑하기에 진리를 선포하고,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길 뿐입니다.
옛날 어느 수도원에 규칙을 철저히 지키기로 유명한 수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형제들이 조금만 게으름을 피워도 즉각 충고했습니다. "형제님, 지금은 침묵 시간입니다!", "그렇게 기도해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이 공동체를 바로잡는 파수꾼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었습니다. 형제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밤잠을 설칠 정도로 화가 났고, 형제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시시각각 흔들렸습니다.
결국 그는 스승을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오직 진실만을 말하는데 왜 제 마음에는 평화가 없고 형제들은 저를 멀리할까요?' 스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네가 진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 네 불편함을 배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도자는 형제들의 흐트러진 모습이 자신의 평화를 방해하는 것이 싫어서 '진실'이라는 몽둥이를 휘두른 것입니다. 진리가 지상의 시선에 갇히면 폭력이 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 복음 강론』에서 "사랑 없는 진리는 고통만을 주는 가시가 된다"라고 경고했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상대의 반응에 내 평화가 깨져서는 안 됩니다.
루르드에서 성모님을 뵙던 베르나데트 성녀가 네베르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수녀원장 마리 테레즈 보주 수녀는 그녀를 몹시 시기했습니다. 보주 수녀는 베르나데트의 겸손을 시험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모욕을 주었습니다. "너는 쓸모없는 물건이다", "성모님을 뵈었다는 애가 그렇게 무식하냐"라며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보주 수녀는 이것이 '진실한 훈육'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천상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한 지상적 시기의 배설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베르나데트의 반응입니다. 그녀는 그 가혹한 비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임무는 당신들을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전하는 것뿐입니다"라고 담대하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동료 수녀들이 어떻게 그런 모욕을 참느냐고 물었을 때, 성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제 영혼에 꼭 필요한 약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보주 수녀가 보인 악한 반응에 조금도 묶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진리를 가졌기에 자유로웠고, 자유로웠기에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평화로 그 비난 한가운데를 유유히 가로질러 떠나간 것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강인함은 증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 대한 굳건한 신뢰에서 나옵니다. 세상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여도,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당당함입니다.
4세기 교회에 아리우스 이단이 판을 칠 때, 거의 모든 주교가 황제의 눈치를 보며 진리를 타협했습니다. 오직 아타나시오 성인만이 홀로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시다"라는 진리를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아타나시오 콘트라 문둠(Athanasius contra mundum)', 즉 '세상과 맞선 아타나시오'라고 불렀습니다. 성인은 다섯 번이나 유배를 당했고 암살단에 쫓겼습니다.
한번은 배를 타고 도망가는데 추격자들이 나타나 물었습니다. '아타나시오가 어디 있는지 아느냐?' 그때 아타나시오 성인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는 당신들 근처에 있습니다. 서둘러 가보십시오.' 추격자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아타나시오 성인은 그 죽음의 위협 한가운데서도 유머와 평화를 잃지 않았습니다. 진리가 지상 것들로부터 그를 자유롭게 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성인은 적들의 분노 섞인 반응 사이를 유유히 가로질러 가셨습니다.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님은 『도덕론』에서 "진리를 말할 때 생기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안락함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뿌리에서 온다"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말한 것이 진리라면, 나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세상을 향한 가장 강력한 사랑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돌팔매질도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없는 그 자유가 우리를 참된 부활로 이끌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엘리야나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잘 풀립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자기에게만 불행이 쏟아진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한 사람에게만 행운이 집중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만 불행이 쏟아지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일어난 일의 밝은 면을 본다는 차이를 보입니다. 밝은 면만을 보니 좋은 인연도 많이 생기고, 이를 통해 좋은 기회가 눈에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행복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 것에 대한 욕심을 드러냅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누려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갖는다 해도 분명 행복하지 못합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정말로 그런지 저도 돈 좀 많았으면 좋겠어요.”
제 주변에는 행복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도 행복합니다. 그들과 함께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행복입니다. 꼭 비싼 곳에서 잠을 자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 행복할까요?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임을 기억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야 할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루카 4,22)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인간적인 틀에 가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능력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기에, 계속 표징만 요구하고 자기 기대에 맞는 메시아 상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바로 행복을 위해 표징을 요구하고, 행복을 위해 정치적인 메시아를 요구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런 행복 추구는 진정으로 하느님 뜻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렙타의 과부 이야기, 시리아 사람 나아만 이야기를 통해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선민사상을 타파하십니다. 무엇보다 믿음 없음을 꾸짖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자, 가난한 자 그리고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손길을 펼치심을 이야기하십니다. 이런 예수님께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은 화가 났습니다. 자기들에게 구원의 손길이 펼치지 않음에 서운했고, 특히 고향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과연 회개했을까요? 그들은 분노하고 폭력을 행사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벼랑까지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행복의 근원이 바로 자기들 앞에 있음에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자기 뜻만을 내세우면서, 잘못된 행복만을 좇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계속 불평불만을 외치면서 분노하고 폭력 행사하는 어리석은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존재하는 것은 변화하는 것, 변화하는 것은 성숙하는 것, 성쑥하는 것은 무한히 창조하는 것이다(앙리 베르그송).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세상의 칭찬과 비난, 환영과 거절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그것에 묶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길은 사람의 판단에 결코 묶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지로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것을 해결하려 애쓰기보다 때로는 그 한가운데를 지나 하느님께로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때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러나는 건강한 경계 설정도 필요합니다.
모든 곳에서 인정받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곳으로 계속 걸어가는 자유가 진짜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의 감정에 끌려가지 않으십니다. 모든 소란의 한가운데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길을 지나가는 삶이 참으로 아름다운 삶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갈등의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책임 있게 걸어가는 데서 생깁니다.
진정한 기쁨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절과 비난의 그 한가운데에서도 자신의 길을 잃지 않고 묵묵히 걸어가는 데 있습니다. 항상 환영받는 길이 아니라, 거절과 저항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거절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하느님 나라의 여정입니다. 소란한 세상 속에서도 하느님의 길은 하느님의 때 안에서 계속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순의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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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4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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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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