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예레 7,23-28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 복음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예레 7,23-28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민족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내 백성에게
23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24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25 너희 조상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 모든 종들, 곧 예언자들을 날마다 끊임없이 그들에게 보냈다.
26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거나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27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28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그들의 입술에서 진실이 사라지고 끊겼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11,14-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마귀가 나가자 말을 못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군중이 놀라워하였다.
15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고 말하였다.
16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그분께 요구하기도 하였다.
17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하고 집들도 무너진다.
18 사탄도 서로 갈라서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버티어 내겠느냐? 그런데도 너희는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말한다.
19 내가 만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는 말이냐? 그러니 바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20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21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22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
23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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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신앙은 귀를 여는 순간 시작된다.
농사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 농사라고 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사랑을 쏟고 정성을 기울여도 자녀가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도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어려움을 드러내십니다. 순종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으며 제 고집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수많은 예언자를 보내시어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아버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 안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있습니다. 바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를 통하여 때로는 엄하게 꾸짖으시고 무서운 표징으로 단련시키셨지만, 언제나 먼저 다가오시고, 마음을 돌려 돌아오는 이를 너그럽고 자비롭게 품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과연 어떤 태도로 그 말씀을 듣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을 통하여, 성사를 통하여, 가족과 이웃을 통하여 끊임없이 들려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그분께 응답하기를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다시 귀를 열어야 합니다. 경청이야말로 신앙의 첫걸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의 귀를 열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가족과 이웃도 말하는 입보다 먼저 듣는 귀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순간,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제대로 듣는 그 순간, 우리의 구원은 조용히 시작됩니다. 오늘은 귀를 열어 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기도의 정석
오늘 예레미야는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줍니다.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다. 그들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였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어제 독서의 기도 첫째 독서 곧 탈출기가 떠올랐습니다.
“주께서 그의 앞을 지나가시며 외치셨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이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모세는 얼른 땅에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주여,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드셨으면, 부디 주께서 우리와 동행해 주십시오.’”
예레미야서를 듣다가 왜 어제 탈출기가 떠올랐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모세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앞을 지나가시는 하느님, 나는 주님이라고 외치시는 하느님 앞에 얼른 땅에 엎드리고 예배하며 아룁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래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앞을 지나가시는데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여 있고, 하느님께서 나는 ‘주님이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라며 외치시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고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간다면 되겠습니까?
우선 모세처럼 땅에 엎드리는 자세가 보기 좋고 닮고 싶습니다. 이것은 포악한 인간 앞에 굴욕스럽게 꿇린 것과 전혀 다릅니다. 자발적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거룩한 겸손과 경외심의 표시이며 그래서 땅만큼 낮추어졌어도 행복합니다. 다음으로 그는 예배드립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예배가 아니라 마치 절에서 백팔 배 절을 올리듯 온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제가 아는 신부님 한 분은 당신의 성당 제대 앞에 큰 방석을 깔아놓고는 당신도 그렇게 하고 신자들도 그렇게 하게 하는데 성당에 들어와 바로 자기 자리에 가 철퍼덕 앉지 않고 그 방석에서 큰절을 올리게 합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석입니다. 성당에 들어오자마자 마구 떠들거나 떠들지는 않더라도 먼저 자기 하소연이나 냅다 하지 않고 먼저 하느님께 정성껏 경배드리는 것이 참 기도 자세지요. 그런 다음에야 모세는 하느님께 자기 청을, 곧 동행해주십사 하고 청을 드립니다.
그런데 이는 오늘 예레미야서가 한탄하는 것, 곧 주님께 등을 돌리고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가려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동행해주십사고 모세가 하느님께 청하지만 실은 자기가 하느님과 함께 가려는 겁니다.
그러니 이것은 요청과 동시에 자기 의지를 봉헌하는 기도입니다. 돌렸던 등을 다시 돌려 하느님께 향하는 것, 그런 다음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청하는 것, 이것이 사순절의 회개이자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의 ‘완고한 마음’에 경종을 울립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적 권능에, 오히려 적대하며 악담을 퍼붓는 유대인들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두 개의 중심이 되는 동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 라고 할 때 “들어라”라는 동사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라고 할 때 “걸어라” 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동사의 표본은 곧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따라 걷는 일의 표본은 오늘 <화답송>에 나오는 “양 떼”입니다. 곧 ‘양’은 목자의 말을 알아듣고 그의 말을 따라 걷는 이의 표상입니다.
한편, 그 반대의 표상에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벙어리 마귀”가 있습니다. 벙어리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게 방해하여,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따라 걷지 못하게 하고, 말씀의 실현을 훼방하는 방해꾼입니다.
이 방해꾼은 <제1독서>에서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 그리고 <화답송>에서의 “무딘 마음”의 표상입니다. 곧 이들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말, 곧 자신의 생각이라는 우상을 따라 걷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쫒아내심으로써, 당신의 권능,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응은 놀라워하면서도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예수님께,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루카 11,15)고 악담으로 대적하면서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모순을 반박하시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이는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낸 사실이 단지 하나의 기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 곧 ‘하느님 권능의 임재’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의 임재를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그 뜻이 이루어지는 하늘나라의 실현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는 말씀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우리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아직 “하느님 나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말씀을 듣고도 따라 걷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무딘 마음’이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우리 안에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고집스런 마음’, ‘목을 뻣뻣이 세우는 고약한 마음’이 있어 주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의 말이나 생각을 듣고 따라 걷고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미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그 말씀을 따라 걸어가는 “양 떼”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화답송>의 시편구절을 되새겨봅니다.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 95,7-8).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1,20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주님!
제 안에는 당신 형상의
빈자리가 있습니다.
오로지 임자이신
당신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당신께서 제 안에 계시오니
당신의 나라를 드러내소서.
제 영혼이 당신의 성전이오니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움직이지 않는 자에겐 똥파리가 꼬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 (루카 11,23)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가만히 계신 적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시고 모아들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아무런 사명 없이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는 '움직이지 않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고, 움직이지 않는 고기는 부패합니다. 그러면 그 썩은 냄새를 맡고 똥파리와 모기, 온갖 벌레들이 꼬여듭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명이 없이 그냥 사는 사람, 영혼을 구원하려는 뜨거운 열정 없이 게으름에 빠진 사람 곁에는 반드시 '똥파리' 같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은 나를 진정으로 사랑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돈, 내가 가진 시간, 내가 가진 여유를 이용해 자기들의 이익을 채우러 옵니다. 저 역시 사목자로서 열정이 식고 게을러질 때는 제 주위에 "신부님,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신부님, 같이 놀러 가요"라며 저를 유혹하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당시에는 그게 인맥인 줄 알았고 제가 인기가 많은 줄 압니다. 하지만 제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목에 집중하며 그들의 유흥 제안을 거절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그들은 제 영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유흥을 위해 저를 '장식품'이나 '물주'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사명 없이 멈춰 서 있으면, 나를 이용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내 인생은 흩어지고 맙니다.
반면, 예수님의 사명인 '인류 구원'과 '사랑의 실천'에 합류하면 관계의 질이 바뀝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을 때, 세상 친구들의 대다수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와 술 마시고 놀던 친구들, 저를 통해 세상적 이익을 보려던 사람들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에 훨씬 더 고귀한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하느님의 사업, 곧 영혼 구원 사업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지들이 생긴 것입니다. 요즘 저는 사순 시기를 맞아 냉담 교우 방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마다 구역장님, 반장님들과 함께 길을 나섭니다. 지치고 힘들 법도 한데, 방문을 마치고 그분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이용하러 오신 분들이 아닙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주님 품으로 모아들이기 위해 자기 시간과 정성을 쪼개어 기꺼이 헌신하시는 분들입니다.
영화 '암살' (2015)이나 '밀정' (2016)을 보십시오. 나라를 되찾겠다는 거대한 사명 앞에 선 독립운동가들의 우정은 세상의 인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변절자 염석진이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울부짖으며 자신의 안위를 챙길 때, 진짜 독립군들은 서로를 향해 묻습니다.
"동지, 나를 믿나?"
그들은 화려한 파티장보다 차가운 감옥과 배고픈 산속에서 더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왜일까요? "함께 모아들이는 사명"을 공유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우리 잊으면 안 돼"라고 말하며 웃을 수 있는 관계, 그것은 세상의 이익으로 맺어진 똥파리들의 모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일치'입니다.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라는 주님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깁시다. 사명 없이 멈춰 서서 내 주위에 똥파리들이 꼬이게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허망한 인기를 누리기보다, 주님의 일을 하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이들과 함께 걷는 것이 진짜 행복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을 향해 달리지 않는 영혼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아들이는 일'에 뛰어들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칭찬과 함께 최고의 동지들을 선물로 주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는 뜨거운 친교, 그것이 바로 이 지상에서 누리는 부활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사명에 참여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다.
살면서 단 1분 1초라도 불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남녀노소 상관없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데도 행복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보다 불안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인 행복 조건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경제력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관계와 지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전체 52위이고, 특별한 부분은 자살률 1위라는 것입니다. OECD 국가 평균의 두 배나 되는 엄청난 수치를 보입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괜찮다’라는 느낌이 들 수 있을까요? 경제력이나 관계만 제외할 수 있다면 충분히 지금의 삶이 괜찮지 않을까요?
사실 남들보다 덜 불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진짜 불행하게 만듭니다. 지금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불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안은 인간적 삶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안을 느끼는 부족한 인간임을 인정하면서,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불안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행복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말 못 하는 이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몇 사람이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루카 11,15)라고 말하면서 완고한 마음을 보입니다. 하느님의 선한 일을 마귀의 행동으로 여기는 영적인 소경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는 것뿐 아니라, 다른 기적들도 계속해서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올가미에 씌우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계속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높아짐에 따라 자기들의 자리가 낮아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간은 비교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비교로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님의 편에 설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반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루카 11,23)
‘영적 결단’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사탄, 하느님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 사이에서 중립지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을 보고서도 함께하지 못하고 방관만 한다면, 결국 그분을 반대하고 생명을 흩어버리는 결과와 같습니다.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일꾼으로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짜 행복의 삶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여행한다는 것은 내내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사는 일이다. 덕분에 타인에 대한 내 선입견을 수정할 수 있다(김남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하느님을 향해 모으는 삶이 아니면 결국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흩어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을 향할 때 하나로 모아지고, 욕심과 두려움으로 흐를 때 여러 갈래로 흩어집니다.
미움은 사람을 흩어지게 하고, 교만은 관계를 깨뜨리며, 무관심은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사람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고, 희망을 모으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중심이 분명할 때 생각과 행동은 하나로 모이지만, 중심을 잃을 때 삶은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깨어 있는 마음은 사람을 갈라놓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존재들을 다시 연결합니다. 그래서 복음적인 삶은 타인을 밀어내는 삶이 아니라 참된 인간다움을 이루며 흩어진 공동체를 다시 모으는 삶입니다.
삶의 중심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공동체를 흩어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그분의 뜻을 따라 사람을 모으고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언제나 다시 모이는 순간에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이 돌아올 때, 잃어버린 은전을 찾을 때, 돌아온 아들을 맞이할 때 하늘에서는 큰 기쁨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으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를 흩어지게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순 시기, 사랑 안에서 다시 모으는 삶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모아들이는 기쁨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참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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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서 7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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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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