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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1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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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1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호세 14,2-10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 복음
    마르 12,28ㄱㄷ-34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호세 14,2-1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죄악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3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 ‘죄악은 모두 없애 주시고 좋은 것은 받아 주십시오. 이제 저희는 황소가 아니라 저희 입술을 바치렵니다.

4 아시리아는 저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저희가 다시는 군마를 타지 않으렵니다. 저희 손으로 만든 것을 보고 다시는 ′우리 하느님!′이라 말하지 않으렵니다. 고아를 가엾이 여기시는 분은 당신뿐이십니다.’

5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

6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7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

8 그들은 다시 내 그늘에서 살고 다시 곡식 농사를 지으리라. 그들은 포도나무처럼 무성하고 레바논의 포도주처럼 명성을 떨치리라.

9 내가 응답해 주고 돌보아 주는데 에프라임이 우상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는 싱싱한 방백나무 같으니 너희는 나에게서 열매를 얻으리라.

10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 주님의 길은 올곧아서 의인들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가고 죄인들은 그 길에서 비틀거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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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12,28ㄱㄷ-34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그때에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28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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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3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00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안동교구 제2대 교구장이셨던 박석희 이냐시오(2000년 선종) 주교님께서는 데카르트의 말,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 새롭게 풀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가치는 얼마나 깊이, 얼마나 넓게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해석이었습니다.

주교님 말씀에 따르면,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음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음을 가장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길이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12,31)라는 말씀은, 우리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물론 특별하고 고귀한 방식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중요한 방법은 하느님과 함께하는 일상, 이웃과 함께하는 일상입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일상은 기도로 깨어 있는 것이며, 세상의 방식보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일상은 그들의 아픔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는 것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곁에 머물러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도 흔들릴 것입니다. 혹시 지금까지 사랑하지 못하였나요?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밤하늘에 늦게 뜨는 별도 어둠을 밝히는 데 부족함이 없듯, 사랑에도 늦은 때는 없습니다. 지금부터, 바로 지금부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우리 존재도 함께 빛날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 목록으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하는 모든 것이 다 사랑이 되게

오늘 주님과 율법 교사는 이렇게 말을 주고받습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주님과 율법 교사 사이에는 늘 날 선 공방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무조건 율법 교사를 나쁘게 보지도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 인간 가운데는 그가 얘기하는 것은 따져보지도 않고 반대하고, 좋은 일을 그가 하고 나에 대해 아무리 좋게 말해도 밉게 보는데 주님은 그러지 않으신 것이고 누구나 사랑하시기에 그러신 겁니다.

그러니 칭찬하시든 나무라시든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가 없고, 당신이 오늘 가르치시듯 하느님 사랑이든 이웃 사랑이든 사랑을 첫 자리에 두시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말인지 모르지만 이런 면에서 요즘의 저를 보면 주님께서는 저도 칭찬해주실 것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이전의 저와 비교하면 요즘의 저는 확실히 사랑 제일주의자 맞고, 전에 한번 말씀드린 바 있듯이 사랑만 할 수 있는 제가 행복하고, 사랑만 해도 되는 저의 삶은 참으로 복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만 하기에도 너무 짧은 인생이고 남은 인생 정말 얼마 남지 않았기에 진정 미워할 이유도 시간도 없습니다. 큰 사랑을 욕심부리지 않고 작은 사랑이라도 많이 하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큰 사랑이 중요하지 않고 많은 사랑이 중요하고, 하는 모든 것이 다 사랑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 가르치심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지는 못해도 하는 모든 것이 다 사랑이 되게는 해야겠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사랑의 소명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 신앙의 원천을 밝혀줍니다. 곧 우리 신앙의 근거가 되는 그 바탕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이를 깨닫고, 분별 있는 사람은 이를 알아라.”(호세 14,10)고 말하며, <화답송>에서는 “내가 주님, 너희 하느님이니”(시 81,11)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마르 12,29)

여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의 원리로서의 계명을 말씀하기 전에, 먼저 ‘존재의 원리’를 말씀하십니다. 곧 행동규범으로 사랑을 말씀하시기에 앞서, 왜 사랑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십니다. 곧 하느님께서 ‘한 분이신 우리 주님’이라는 그분의 존재차원을 밝히십니다. 동시에, 이는 우리의 존재의 차원과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밝혀주십니다. 곧 우리가 ‘그분의 것, 그의 소유’라는 것을 밝혀줍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마르 12,34)고 할뿐 ‘하느님 나라에 들어와 있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아마도 율법학자에게 있어서 아직 사랑의 실천이 남아있는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아직 더 확장되어야 할 사랑의 계명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곧 <구약>의 ‘사랑의 계명’은 <신약>의 ‘사랑의 새 계명’으로 완성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을 동포 사랑(레위 19,18)과 함께 사는 이방인들(레위 19,34)에 한정시키고 있다면, <신약>에서는 무제약적, 무차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으며(루가 10,30-37), 나아가서 원수까지도(마태 5,44) 포함하는 ‘완전한 사랑’을 말합니다(마태 5,48).

또 <구약>에서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하여 ‘이웃 사랑’의 시금석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는 반면에, <신약>에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15,12)하여 ‘우리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사랑의 시금석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관점을 요구하십니다. 곧 새로운 변혁, 새로운 틀의 패러다임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는 관점입니다. 아니, 애시 당초 ‘남’이란 없다는 관점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있을 뿐! 한 아버지 안에 있는 한 형제자매가 있을 뿐이라는 관점입니다.

물론, 이 때 ‘한 몸’이란 ‘너의 몸이 나의 몸이고 나의 몸이 너의 몸’이라는 암수동체와 같은 혼합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 [새 천년기](24항)에서 표현한 대로, “나의 일부”인 형제들이란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한 몸의 지체’로서, 나와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나의 일부이기에, ‘나의 일부’인 형제의 아픔이 바로 나 자신의 아픔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소명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12,31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주님!
주님! 이웃을
남으로 보지 않게 하소서.

아버지 안에
한 형제로 보게 하소서.

이웃을 타인이 아니라
내 자신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이 남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한 몸인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이웃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삼게 하소서.

주님! 당신 사랑으로
새로 나게 하소서.

내 자신을 통째로 바꾸어
새로워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주임 신부를 미워는 신자가 성당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마르 12,28)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고, 이를 잘 알아들은 율법 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 12,34)라고 칭찬하십니다.

여러분, 하느님 나라는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곧 행복입니다. 그런데 왜 계명의 핵심, 즉 사랑의 순서를 알면 행복해질까요? 행복은 관계에서 오는데, 모든 관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좌 신부를 할 때 주임 신부님보다 인기가 더 좋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둘이 같이 떠날 때 전별금을 보니 주임 신부님의 반밖에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신자들은 아무리 보좌가 잘나도 주임 신부님이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보좌는 행복하려면 주임 신부님을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밖에서 주임 신부님을 흉보면, 신자들은 수긍할 수 있어도 결국 ‘하느님이 주임 신부님으로 삼아주신 분도 공경하지 못하는 보좌 신부’로밖에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도저도 안 되고 행복을 잃습니다.

본당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목을 하면서 참 안타까운 분들을 봅니다. 신부님이나 수녀님을 습관적으로 험담하는 신자들입니다.

"우리 주임 신부님은 이게 문제야, 수녀님은 저게 탈이야."

이렇게 동료 신자들끼리 모여 성직자를 안줏거리 삼아 씹어댑니다. 그러면 그 순간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친 것 같아 행복해 보이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다른 신자들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하느님이 보내신 목자도 저렇게 깎아내리는데, 나중에 내 욕은 얼마나 할까?' 결국 그런 분은 공동체 안에서 누구에게도 진심 어린 사랑을 받지 못하는 외톨이가 됩니다.

주변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어느 본당이나 '트러블 메이커'가 있습니다. 대개 성직자와의 관계가 뒤틀린 분들입니다. 반대로, 신부님께는 지극정성인데 형제 신자들에게는 안하무인인 분들도 있습니다. 이 또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이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시는데, 아버지는 사랑한다면서 그 자식들은 구박한다면 그것을 어떻게 진짜 사랑이라 하겠습니까?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는 질서가 없고, 질서가 없는 곳에는 평화가 깃들 수 없스니다. 성당에서 신부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습을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신부님이 훌륭해서가 아닙니다. 그분이 하느님의 대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외심'의 훈련입니다. 이 훈련이 된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상사를 존경할 줄 알고, 부하 직원을 아낄 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위와 옆에서부터 사랑받기에 행복해집니다. 성녀 가타리나 시에나는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계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교회가 부패하고 성직자들이 타락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설령 지옥의 악마라 할지라도, 너희는 그들을 존경해야 한다. 그것은 그들 개인의 인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내 아들의 피를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기 때문이며, 나에 대한 공경 때문이다." (『대화』 중에서)

성녀는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지상에 계신 그리스도'라 부르며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성녀는 교회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꾼이 되었고, 영혼의 지복을 누렸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도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수상 윈스턴 처칠은 정적들과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국왕 앞에서는 언제나 가장 겸손한 신하의 예를 다했습니다. 그는 국가의 정점(Vertical)에 대한 예우가 무너지면 나라의 근간(Horizontal)이 흔들린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십자가의 두 기둥을 기억하십시오. 수직의 기둥이 먼저 세워져야 수평의 기둥을 얹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십시오. 성당에서 신부님과 수녀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습을 하십시오. 그것이 곧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연습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제에 대한 공경이 사라진 곳에서는 신앙의 기쁨도 사라진다."

'뿌리 깊은 나무'는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뿌리는 하느님과 윗사람을 향한 수직적 사랑입니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만 가지와 잎이라는 형제적 사랑이 무성하게 자라나 맛있는 열매인 행복을 맺을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니,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

  스마트폰이 고장 나면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알아서 고쳐질까요? 아니면 누가 알아서 고쳐줄까요? 그럴 일이 절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은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만약 도움 청하는 것이 힘든 분은 인터넷에서 찾아보거나,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마트폰 서비스 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그렇다면 자기 삶의 문제, 특히 자기 마음의 문제는 어떻게 풀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해결될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내 마음을 보고서 알아서 풀어줄까요? 지극히 비이성적인 해결 방법입니다. 하느님께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어떻습니까? 객관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지 않습니까?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노력의 과정에서 기도하며 하느님의 지혜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성실히 노력할 때, 하느님의 응답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비이성적인 사람은 어떤 응답이 이루어졌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에는 모세 오경을 바탕으로 한 613개의 율법이 있었습니다. 율법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수많은 계명 중 어떤 것이 더 무겁고 가벼운지, 또 모든 율법을 관통하는 하나의 대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주 치열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스스로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세부 사항을 열심히 지키는 것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생각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부 사항에 갇혀서 정작 하느님의 뜻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핵심을 두 가지로 나눠 이야기해 주십니다.  

첫째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0)입니다. 마음, 목숨, 정신, 힘은 인간 존재의 모든 영역을 뜻하는 것으로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한 수직적 사랑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이웃을 향한 수평적 사랑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삶은 사랑의 삶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삶이고, 이로써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있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먼저 먼지를 일으키고도 볼 수 없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다(조지 버클리).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생각으로는 믿지만, 우리의 삶 전체로 사랑하지는 못합니다. 우리 존재 전체가 어디를 향해 살아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는 잘 보여주십니다. 우리 마음, 목숨, 정신, 힘이라는 표현은 우리 존재의 모든 차원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중심을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 두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신앙의 가장 큰 본질입니다. 신앙의 성장은 더 많은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을 향해 사랑으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사랑하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의 본래 모습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느님 사랑이 단지 감정이나 기도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생활과 선택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야 함을 일깨워 주십니다.

하느님 사랑 안에서 모든 것은 통합됩니다. 하느님 사랑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의 중심으로 모아지는 가장 좋은 중심입니다. 사순(四旬)은 삶의 중심을 다시 하느님께 돌려 드리는 사랑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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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12장 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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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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