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창세 37,3-4.12-13ㄷ.17ㄹ-28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 복음
마태 21,33-43.45-46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창세 37,3-4.12-13ㄷ.17ㄹ-28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저 녀석을 죽여 버리자.
3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4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12 그의 형들이 아버지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러 스켐 근처로 갔을 때,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말하였다. “네 형들이 스켐 근처에서 양 떼에게 풀을 뜯기고 있지 않느냐? 자, 내가 너를 형들에게 보내야겠다.”
17 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뒤따라가 도탄에서 그들을 찾아냈다.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21,33-43.45-46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33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34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36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37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39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40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4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45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은 이 비유들을 듣고서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아차리고,
46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군중이 예수님을 예언자로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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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작은 날갯짓이 만드는 기적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즈는 자신의 연구에서 처음으로 ‘나비 효과’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거대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하며, 조그마한 변화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뒤 이 표현은 작은 선택이나 사소한 사건이 생각하지 못한 큰 결과를 불러오는 상황에 대한 비유로 널리 쓰입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미리 생각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는 사건을 만납니다. 요셉을 질투하던 형제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르우벤은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창세 37,21)라고 말하며 요셉을 구합니다. 그 선택이 요셉을 살렸고, 훗날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에서 모든 가족의 생명을 구합니다.
르우벤의 한마디가 온 가족을 살리는 변화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지만 상황은 반대입니다. 상속자를 죽이고 재산을 차지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소작인들의 선택은 그들 자신을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의 선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선택은 생명을 살리고, 어떤 선택은 상처와 멸망을 가져옵니다. 작은 결심 하나, 사사로운 말 한마디, 짧은 기도 한 줄이 누군가의 삶을 살리는 첫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따뜻한 날갯짓이 누군가에게 생명의 바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거대한 악보다 거대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
제가 누구를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래 악심과 앙심을 품고 있다가 죽이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습니다. 물고기도 죽이기 힘든데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까? 얼마나 악하면 죽일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악하게 되었을까요?
제가 남을 죽일 수 없고 그런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은 마치 남을 죽이려고 칼을 지니고 있을 때 그 칼에 자기가 먼저 찔리듯 제가 먼저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미워하면 그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더 괴롭잖습니까? 너무 괴로워하며 미워했는데 그는 정작 내가 미워하는 줄도 모르고 천하태평일 때도 있잖습니까?
악과 관련한 우리말이 있습니다. 악에 받치다거나 악이 극에 달하다거나 극악하다는 말이 있지요. 우리 안에 선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 안에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우리는 누구를 미워하거나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괴롭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를 죽일 정도로 미운 것은 극악해야지만, 곧 선이나 사랑이 하나도 없고 악이 극에 달했을 때만 가능합니다. 아무튼 오늘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정말 죽이고 싶었고 죽이려고 했을까요? 제 생각에 형제들이 그 정도로 악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버지가 편애하였다 해도 그것이 죽이고 싶을 정도의 이유가 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비록 모의를 그들이 했어도 막상 죽이려고 하니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피만은 흘리지 말자! 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팔아먹을 정도의 악은 그들에게 있었고, 그래서 요셉은 팔려 가게 되는데 아시다시피 여기에 하느님 구원의 역사 있고 결과적으로 형제들의 모의와 악행은 구원 역사의 시작이고 일부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오늘 길게 한 것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악들의 충돌과 관련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미국의 트럼프나 이스라엘 네타냐후가 이란에 대해 하는 짓은 눈을 씻고 봐도 선의 구석이 하나도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물론 이란의 하메네이에게 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악보다 훨씬 더 큰 것이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중심이 되는 악들입니다.
이들이 하는 악한 짓을 볼 때 우리는 하느님이 뭘 하고 계시는지, 그냥 보고 계시기만 하는 건지 우리 믿음에 의혹이 생길 수 있습니다. 짧게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는 길게 봐야 합니다.
하느님은 악을 통해서도 구원하시고, 악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는 것이, 주님의 예표인 요셉의 얘기를 통해서 우리가 오늘 믿게 되는 믿음입니다. 인간의 거대한 악보다 더 거대한 하느님의 구원 의지와 구원의 계획을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할 우리 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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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역설의 신비
오늘 <복음>은 ‘포도밭의 사랑의 노래’를 들려줍니다.
포도밭 주인(하느님)은 당신의 포도밭(이스라엘 백성)을 소작인(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주인은 당신의 종(예언자)들을 여러 차례 보내지만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학대합니다.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돌로 쳐 죽이고, 결국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지만, 소작인(백성의 지도자)들은 주인의 아들마저도 포도밭 밖으로 끌어내어 죽입니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실감나게 해주는 노래입니다. 그 신뢰와 사랑이 너무도 커서 아들의 목숨까지도 건네주는 무방비의 신뢰와 사랑의 노래입니다. 끝까지 포도원을 포기하시지 않으시는 무한한 신뢰와 사랑입니다.
이는 아무리 인간의 죄가 크다 하여도 인간의 죄를 뛰어넘는 하느님 계획의 초월성과 구원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참으로,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게만 하네.”(마태 21,42).
그렇지만, 동시에 애절한 그 신뢰와 사랑이 거절당하고, 배반당하고, 끝내는 목숨까지 살육당하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가슴 아픈 노래입니다. 사실, 그 큰 사랑과 신뢰를 거부해버리고 마는, 나약한 우리 인간의 배신 이야기입니다. 또한 고귀한 사랑과 신뢰마저도 한갓 우리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짓부숴버리고 마는, 배은망덕의 패륜 이야기입니다.
이는 일상의 삶 속에서 잘못과 죄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아상 입니다. 소작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끊임없이 주시는 포도밭 주인에게 여전히 우리의 권리만 주장하고 있는 완고한 우리들의 자아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제들과 원로들을 고발하며 꾸짖으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꾀와 작태를 비웃으시며, 하느님의 깊은 섭리와 계획을 밝히십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네.”(마태21,42)라는 성경말씀의 인용을 통해,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겠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펼쳐진다는 역설의 신비를 가르쳐줍니다.
하오니, 주님!
우리의 삶에서 주님이신 당신을 밀쳐내고, 당신의 권리를 강탈하지 말게 하소서. 탐욕으로 인해 당신의 아들마저도 죽이고 마는, 악한 마음과 배은망덕을 저지르지 않게 하소서. 이제는 당신의 뜻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고, 그 풍성한 소출을 도조로 바치게 하소서. 바로 오늘, 당신의 신뢰와 사랑에 응답하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1,42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주님!
당신께서 제게 하신 일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도망칠수록 더 강한 사랑의 철창으로
꼭 가두시고
제 안에 꿈틀거리는
반역을 멈추게 하십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오히려 그를 통해
구원의 섭리로 이끄시며
감춰 둔 사랑의 신비를
보여주십니다.
하오니, 주님!
언제나 제 머리 위에
당신 사랑을 두고
당신께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의 상속자 되는 가장 확실한 길
교우 여러분, 사순 제2주간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포도밭을 일구어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납니다. 그리고 수확 철이 되자 자기 몫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지요. 그런데 소작인들은 종들을 때리고 죽이더니, 마지막으로 보낸 주인의 아들마저 죽여버립니다. 그들이 아들을 보며 한 말이 참으로 섬뜩합니다.
"저 자가 상속자다. 자, 저 자를 죽여 버리고 그의 상속 재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마태 21,38)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내 것"이라는 착각이 어떻게 한 인간을 파멸시키는지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실화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2002년 미국 경제계를 뒤흔든 '타이코 인터내셔널'의 데니스 코즐로프스키 회장 사건입니다. 그는 평사원으로 입사해 회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권력의 정점에 서자 그는 무서운 착각에 빠집니다. 회사의 막대한 자금을 마치 자기 개인 지갑처럼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회삿돈 200만 달러를 들여 지중해 사르데냐섬에서 아내의 생일 파티를 열었습니다. 파티장은 고대 로마의 연회장처럼 꾸며졌고, 얼음 조각상에서는 보드카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아파트에 놓을 6,000달러짜리 샤워 커튼까지 회삿돈으로 결제했습니다. 그는 주주들이 주인인 회사를 "내 것"이라 믿었습니다. 진짜 상속자인 주주와 이사회의 권리를 무시하고 스스로 소유주가 되려 했던 것이죠.
결국 이 탐욕은 횡령죄로 드러났고, 그는 8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모든 명예를 잃었습니다. "내 것"이라 말하는 순간, 그는 정당하게 누릴 수 있었던 경영자로서의 모든 유산을 잃고 범죄자로 전락했습니다. 에덴의 하와가 선악과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다 낙원을 잃었듯, 그 역시 집착의 감옥에서 자신을 깨워줄 상속자가 없어 파멸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이 저지른 죄도 바로 이것입니다. 먼저 우리 사회의 법을 한번 보십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재산은 누구에게 갈까요? 우리 민법을 보면 1순위 상속인은 자녀와 배우자입니다. 그런데 배우자인 어머니에게는 자녀보다 5할을 더 가산해 줍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의 가장 큰 통로는 어머니입니다.
만약 아이가 아버지에게 선물을 받고는 어머니 앞에서 "이건 아빠가 나한테만 준 거니까 내 거야! 엄마는 손대지 마!"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아이는 상속자의 자격을 스스로 발로 차버리는 것입니다. 모든 공급의 통로인 어머니를 무시하고 "내 것"이라 주장하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다음에 또 무엇을 줄 수 있겠습니까? "내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아이 안의 상속자는 죽고 탐욕스러운 소작인만 남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소작인들이 아들을 죽인 이유는 그를 알아보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보았기에 죽였습니다. 진짜 상속자는 반드시 '주인의 몫'을 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인의 권위를 업고 와서 당당하게 십일조를 요구합니다. 삯꾼은 자기 목숨이 아까우면 적당히 타협하고 도망갔겠지만, 아들은 끝까지 아버지의 몫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내 것'이라는 딱지를 떼는 것이 그토록 힘들까요? 바로 '에덴의 선악과'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선악과는 바로 '십일조'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십일조라는 말을 참 부담스러워합니다. 사제들도 신자들이 상처받을까 봐 돈 이야기를 잘 안 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심각한 직무 유기입니다. 신자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라고 강하게 가르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상속자가 될 기회를 뺏기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는 하느님이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의 이 모든 것은 전부 하느님의 것입니다"라는 고백을 삶으로 실천하게 하려는 최고의 영적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하느님이 진정한 주님이심을 고백하게 하려다 국왕의 칼날 아래 목숨을 바친 위대한 상속자가 있습니다. 폴란드의 수호성인, 스타니슬라오 대주교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폴란드의 볼레스와프 2세 국왕은 잔인하고 방탕했습니다. 그는 교회의 재산인 '피오트라빈 마을'을 강제로 빼앗으려 했습니다. 국왕은 그 땅이 원래 자신의 것이라며 억지를 부렸고, 이미 세상을 떠난 전 소유주가 자신에게 땅을 팔았다고 거짓 증언을 꾸몄습니다. 스타니슬라오 대주교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땅은 하느님께 봉헌된 교회의 몫이며, 하느님의 것입니다! 국왕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것을 '내 것'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분노한 국왕은 대주교를 반역자로 몰아 성당 제대 앞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던 그를 직접 칼로 쳐죽였습니다. 하지만 대주교는 죽음으로써 증명했습니다. 세상의 권력보다 하느님의 권리가 우선하며, 자신은 그 하느님의 몫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진짜 상속자임을 말입니다.
결국 국왕은 국민들의 거센 분노 속에 추방당했고, 스타니슬라오 대주교는 폴란드 신앙의 영원한 상속자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몫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봉헌한 진짜 아들이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어떻게 상속자의 자격을 유지하셨는지 보십시오.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버지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기꺼이 내놓으셨기에,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온 우주의 상속자가 되셨습니다. 내가 상속자가 되려면 다른 이들이 ‘내 것’이라고 하지 못하게, 십일조를 바치도록 목숨을 걸 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자식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슬퍼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옆의 나무들이 먹음직스럽고 큼직한 ‘사과’를 맺고 있는데, 자기만 볼품없는 조그마한 열매만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관하고 절망에 빠져서 “나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말하면서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옆의 나무에 대한 시기심을 가지면서, 어떻게 하면 저 사과를 모두 다 떨어뜨릴까 하는 마음도 가집니다. 이 나무의 비관과 시기심은 일리가 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이 나무는 사과나무가 아니라 도토리를 맺는 참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잘 알아야 실망하지 않고, 부정적인 마음 안에 빠지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잘못된 마음을 갖게 되면 잘못된 행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만약 참나무가 자기 열매인 도토리를 잘 알고 있었다면, 옆의 사과나무를 부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 도토리로 충분히 행복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알고 적극적으로 세상에 실천할 수 있도록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때, 진정으로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 이사야서 5장의 ‘포도밭의 노래’를 배경으로 비유를 시작하십니다. 주인이 울타리를 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얼마나 지극한 정성과 보호를 쏟으셨는지를 보여 줍니다. 여기서 주인인 밭 임자는 하느님을 뜻하고, 포도밭은 이스라엘 백성 또는 하느님의 나라를 뜻합니다. 그리고 소작인들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며, 종들은 하느님께서 끊임없이 보내셨으나 박해받고 죽임당한 구약의 예언자들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들은 예수님이시지요.
이 비유에서는 소작인들의 탐욕과 주인 행세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작인은 주인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약속한 소출을 바치는 관리자일 뿐인데, 아들을 죽이면 상속 재산을 차지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집니다. 이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하느님께서 맡기신 권위와 율법을 통해 자기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모습을 꼬집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기의 사명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21,43).
하느님의 나라는 혈통이나 종교적 기득권에 의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 나라는 합당한 소출을 맺는 새로운 백성,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에게 넘어갈 것을 선언하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맡기신 그 모든 것을 겸손한 관리자로 살면서 자기에게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출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명언
실패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장 파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우리는 포도밭의 열매보다 소유를 먼저 생각합니다. 맡겨진 것을 우리의 것으로 착각하며 하느님의 뜻마저 거부하는 우리들 삶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아들마저 배척합니다. 맡겨진 것을 우리의 소유로 착각할 때 신앙은 왜곡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돌보는 존재입니다. 이 관계를 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욕망으로 스스로 무너집니다. 포도밭은 하느님의 사랑이 심겨진 사랑의 땅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포도밭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삶, 우리의 공동체, 우리에게 맡겨진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구원의 역사 속에서 반복되어 온 하느님의 부르심과 우리의 거부를 만납니다. 그럼에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 능력, 관계, 신앙은 우리를 위한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생명입니다. 내 것도 네 것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길은 삶을 소유하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을 다시 돌려드리는 감사의 삶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께 돌려드릴 참된 감사입니다. 삶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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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7장 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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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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