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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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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다니 9,4ㄴ-10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 복음
    루카 6,36-38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다니 9,4ㄴ-1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습니다.

4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5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당신의 계명과 법규에서 벗어났습니다.

6 저희는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과 나라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7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유다 사람, 예루살렘 주민들, 그리고 가까이 살든 멀리 살든, 당신께 저지른 배신 때문에 당신께서 내쫓으신 그 모든 나라에 사는 이스라엘인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8 주님, 저희의 임금들과 고관들과 조상들을 비롯하여 저희는 모두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9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10 주 저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당신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저희 앞에 내놓으신 법에 따라 걷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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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6,36-38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37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38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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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3월 2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3월 기도지향 00:20

✚ 미사시작 00:39

✚ 강론시작 07:1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사도신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우리는 창조주 하느님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그분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그분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자비와 용서’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합니다.

“사제가 죄를 용서할 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용하신 권능보다 더 큰 권능을 사용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 베푸신 그 사랑을 지금도 자비와 용서로써 계속 흘려보내고 계십니다.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전해 온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 자비로운 사람”(루카 6,36)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운 마음을 품을 때, 우리는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서로 용서하고 자선을 베풀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와 용서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우리가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행위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우리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내미는 용서의 손길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명의 숨결처럼 이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전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함께하시고 싶지 않나요?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생명을 이웃에게 건네시고 싶지 않나요? 오늘부터 자비로운 마음으로 먼저 용서하고, 먼저 베푸는 삶을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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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의 됫박은?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의 사단(四端)을 얘기하는데 이것은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이지요.

이 중에서 오늘은 수오지심을 얘기하고자 하는데 오늘 독서 다니엘이 부끄러움에 관하여 두 번이나 얘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고, 부끄러운 짓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계속하겠지요.

그런데 왜 부끄러운 줄 모를까요? 그것이 부끄러운 것인 줄 정말로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부끄러운 것인 줄 알면서도 부끄러워하는 것이 너무 큰 괴로움이기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또 그 짓을 계속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일컬어 뻔뻔하다고도 하는데 그런데 이렇게 뻔뻔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뻔뻔해지면 겸손을 상실하여 자기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남을 심판하고 무자비하게 단죄까지 할 것입니다.

그러면 또 어떻게 될까요? 남을 단죄한 그 됫박으로 단죄받을 것이고 그래서 하느님 자비를 입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을 얘기한 다음 자비하심을 얘기하고, 복음의 주님도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그 됫박 비유를 적절히 하십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우리가 남에게 되질하면 그 됫박으로 주님께 되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됫박이 용서의 됫박이면 그 됫박으로 주님께 용서받을 것이고, 우리 용서의 됫박이 크면 그 크기만큼 주님께 용서받을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의 됫박이 단죄의 됫박이면 그 됫박으로 주님께 단죄받을 것이고, 또 그 크기만큼 주님께 단죄를 크게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됫박이 크냐 작으냐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됫박이 어떤 됫박이냐입니다.

됫박 비유는 너무도 적절한 비유이기에 저는 이에 대해 정말로 감탄하는데 우리는 다 나름대로 자기 됫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심 사납게 큰 됫박을 가지기보다 현명하게 좋은 됫박 곧 용서와 자비의 됫박을 가질 것이고, 혹 우리의 됫박이 나쁜 됫박이면 오늘 그것을 좋은 됫박으로 바꿔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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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어떻게 자비를 베풀 것인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이는 단지 우리에게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는 말씀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를 깨우쳐줍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자비로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먼저’ 자비를 베푸셨다는 사실, 곧 우리는 아버지의 ‘먼저 베푸신 자비’를 입었다는 사실을 깨우쳐줍니다. 나아가서, 우리 안에 당신의 거룩한 형상인 ‘자비의 얼굴’을 심어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바로 그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비를 베풀 것인가?

이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동사로 표현하십니다.

“심판하지 말라”, “단죄하지 말라” “용서하라”, “주어라”

그러니 ‘자비의 실천’은 우선 심판과 단죄를 하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요, 악을 피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허물을 심판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들여다보며, 타인들 앞에 자신을 앞세우기보다 자신을 다소곳이 내려놓고, 겸손하게 엎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먼저’ 용서와 자비를 베푸셨듯이, ‘먼저’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묘한 것은 ‘먼저’ 용서하면, 저절로 단죄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곧 ‘단죄,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라’는 것이 아니라, 먼저 용서하면 단죄, 심판하지 않게 됩니다. 이는 악을 피하되 선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비록 자신이 죄에 떨어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사랑으로 나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결국, 악이 스스로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선을 베풀면 악이 물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선을 행하는 것이 악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됩니다. 그러니 어둠을 저주하기보다 한 개의 촛불을 켜야 하고, 평화를 보존하려하기보다 평화를 창조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21)

그러니 우리는 ‘용서할 수가 없다’고, 혹은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나아가서 이미 용서받은 죄인임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아야 용서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서, 아직도 용서하지 않고 있는 자신마저도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죄를 주님께 용서 청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용서하시니 우리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6,36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
제 안에 심으신
당신의 자비가
저를 다스리게 하소서.

제 안에서
자비가 흘러나게 하소서.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당신께서 자비하신 것같이
자비로운 자 되게 하소서.

자비 안에 심어 둔
당신의 거룩한 형상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미워하면 늑대처럼, 용서하면 강아지처럼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사순 제 2주간 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참 뼈아픈 숙제를 하나 내주십니다.

"너희 아버지가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루카 6,36)

그리고 이어서 남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말씀을 들을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납니다.

"아니, 주님! 그 인간이 저한테 한 짓을 아시면서 어떻게 용서하라고 하십니까?"

사실 우리가 용서를 못 하는 이유는 도덕성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저 인간을 용서했다가는 내가 손해 볼 것 같고, 또 무시당할 것 같은 생존의 두려움이 우리를 옹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 한번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여러분, 집에서 키우는 개와 들판을 뛰어다니는 늑대 중 누가 더 자유로울까요? 척 보기엔 늑대가 자유로워 보이죠. 울타리도 없고, 목줄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생물학적인 수치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연구가 짐 대처의 기록 『늑대의 지혜』를 보면, 무리의 대장인 알파 늑대는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가장 높습니다.

왜일까요? 잠시도 쉴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 죽어야 하고, 다른 영역의 늑대에게 물려 죽을까 봐 잠잘 때도 한쪽 눈을 뜨고 잡니다. 늑대는 자유로운 게 아니라 생존의 공포에 사로잡힌 노예일 뿐입니다.

반면, 주인 있는 개는 어떻습니까?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이 녀석들은 세상 편합니다. 먹이 걱정 없고, 천적이 나타나면 주인이 몽둥이 들고 나와서 지켜줍니다. 개가 누리는 그 평화와 자유는 주인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영성 생활도 똑같습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보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번호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미워한다는 건, 하느님께 이렇게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 제 일에 참견 마세요. 제 원수는 제가 갚겠습니다. 저는 제 방식대로 제 자존심 지키며 살겠습니다!"

그렇게 선언하는 순간, 하느님은 존중의 의미로 뒤로 물러나십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그때부터 여러분은 광야의 늑대처럼 홀로 서야 합니다. 내 자존심 내가 지켜야 하고, 내 이익 내가 챙겨야 하니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미움이라는 건 결국 하느님의 보호를 걷어차고 스스로 독박을 쓰는 미련한 짓입니다. 자신의 형제를 죽인 자녀를 받아들여 보호해주는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공포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은 그 해답이 용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만이 우리 생존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로 얻는 이 '하느님의 보호'가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실화가 있습니다. 바로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살해했던 알렉산드로 세레넬리의 이야기입니다.

알렉산드로는 감옥에 갇힌 초기 3년 동안 그야말로 '미친 늑대'와 같았습니다. 자신을 단죄하는 세상을 저주했고, 면회 온 주교님께 침을 뱉으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었고, 그는 차가운 독방에서 분노와 공포에 질려 홀로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늑대의 비참한 모습 그대로였죠.

그런데 기적이 일어납니다. 꿈속에서 마리아 고레티가 나타나 백합꽃을 건네며 그를 용서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 순간 알렉산드로를 옭아매던 증오의 사슬이 풀렸습니다. 그가 먼저 용서를 받아들이고 자신도 세상을 용서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27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이 살인범을 세상은 외면했지만, 교회가 그를 품었습니다. 마리아 고레티의 어머니는 그를 아들로 받아들였고, 카푸친 수도회는 그를 수도원의 정원사로 받아들여 평생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두렵지 않습니다. 마리아가 나를 용서했고, 교회가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로는 증오 속에 홀로 서 있을 때는 가장 비참한 죄수였지만,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 하느님의 보호 아래 들어갔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늑대처럼 홀로 서서 평생 공포 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용서라는 관문을 통과해서 하느님의 따뜻한 안방으로 들어갈 것인가. 용서하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의 보호라는 보험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지키고 있는 집 안에서 아기는 더 이상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진짜 자유이고 평화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교부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주님 안에서 쉬기까지는 결코 평온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의 새장을 열고 미움이라는 밧줄을 끊어버립시다. 하느님의 보호라는 거대한 바다에 나를 내던질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 없는 참된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베푼 자비의 되만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누군가의 행동에 화가 날 때는 한시라도 빠르게 생각을 정화해서 상대를 용서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말입니다. 단순히 마음이나 기분 때문이 아닙니다.   미국의 어느 연구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상대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몸에 스트레스 물질이 늘어나서 면역력이 떨어지고, 인지 기능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분노와 적대감을 느끼면 심장병에 걸릴 위험이 크게 올라간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미움과 원한을 품으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온다는 옛말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그에 반해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은 행복감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때로는 용서하기 힘든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 자신이 힘들어집니다. ‘그 사람은 절대 용서 못 해’라는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자기가 미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오히려 더 부정적 기억만 남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불충에도 불구하고, 해를 비춰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에 담고 그 마음에 머물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라고 말씀하십니다. 착하게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세상의 정의만 따르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남을 심판하지 마라.”, “남을 단죄하지 마라.”라고 하십니다. 이는 나의 이웃을 규정하고 날인 찍어서 관계를 닫아버리는 태도로,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에서 나오는 행동이기에 강하게 금지하시는 것입니다.   대신 “용서하여라.”, “주어라.”라고 하십니다. 용서하고 주는 행동은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열고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남만을 위한 것이 될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우리가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자기 삶의 그릇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본받아서 자비를 베풀면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가 쏟아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주는 그 어떤 선물보다 큰 선물을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받게 됩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문제를 직면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직면하지 않고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제임스 볼드윈).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심판은 하느님의 고유한 영역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느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심판을 멈출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이해와 겸손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남을 대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사람만이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는 존재입니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변화 가능한 존재입니다. 타인을 심판할 때 우리는 종종 자기 그림자를 외부에 투사합니다.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심판을 멈춘다는 것은 옳고 그름의 칼을 내려놓고 복음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되 심판의 자리에 서지 않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기 마음을 알고 다스리는 심리적 성숙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심판하시기보다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심판은 타자를 규정하고 고정하려는 시도이며, 이해는 타자의 자유와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입니다.

모든 인간은 실수와 약함을 지니지만 동시에 존엄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받고 싶지 않다면 우리 또한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의 길은 심판을 멈추는 성찰의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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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6장 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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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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