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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0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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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1,10.16-2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선행을 배우고 공정을 추구하여라.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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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23,1-1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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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3월 3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3월 기도지향 00:20

✚ 미사시작 00:39

✚ 강론시작 07:03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오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나요?

가장 좋은 교육은 삶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언변이 뛰어나고,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실제 삶으로 보여 주는 교육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한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 교리 교육하는 모습, 혼자 있을 때의 모습이 다르다면, 과연 그를 통하여 참된 신앙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당에서의 모습, 가정에서의 모습,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르다면, 그 삶이 온전한 신앙의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삶의 자리가 어디든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당신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한결같은 신앙인의 삶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하느님을 알고 싶게 만들고, 믿음의 길을 걷게 하는 힘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며, ‘한결같은 삶’을 살아야 함을 일러 주십니다. 화려한 말솜씨나 글로만 가르치는 제자가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제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참된 제자는 “섬기는 사람”(마태 23,11)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윗자리를 좋아하지 말고, 오히려 끝자리를 기꺼이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신앙인의 삶에서 겸손을 실천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하루, 하느님과 가족 그리고 이웃을 겸손한 마음으로 마주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야말로,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신앙 교육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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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열기는 없고 온기만 있어도

오늘 주님께서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 대해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전보다 덜 괴로워하는 저를 보게 되어서 적지 아니 기쁩니다. 이전 강론을 보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이 했던 짓을 제가 그대로 했기에 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많이 곤란해했기 때문입니다.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니 실천하지 못할 강론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하나? 아니면 그래도 해야 하나? 하는 짓마다 위선이니 위선을 하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나 그래도 선행을 실천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처럼 그렇게 곤란하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으니 일거에 많은 것이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에 있으니 가르칠 일이나 지시하는 일이 적어졌고, 남을 판단하는 일이 적어졌고, 시키지 않고 제가 손수 하는 일이 많아졌고, 벌어져 있던 관계가 많이 좁혀지고 소원했던 관계가 많이 친밀해져 너희는 모두 형제라는 오늘 주님 말씀이 좀 더 실현된 것 같습니다.

물론 한결 나아졌다는 것이지 만족할 정도는 아닙니다. 더 낮아져 바닥까지 내려가야 하고 나이를 더 먹으면 틀림없이 바닥까지 내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저의 지향은 좀 달라질 것입니다.

더 낮아지는 것은 저절로 그리될 것이고, 그러니 내가 낮아지는 것에 안주하지 않고 형제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제 옆에 있으면 작아지고, 제가 옆에 있으면 불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듯이 있어서 편하고 다만 사랑의 온기를 나누는 관계가 되면 좋겠습니다.

열기는 이제 없을 것입니다. 온기만 있어도 될 것입니다. 큰 사랑은 없어도 하느님 사랑만 있으면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지금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오늘 <복음>은 “자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아갑니다. ‘누울 자리’, ‘일자리’, ‘아버지 자리’, ‘앞자리’, ‘윗자리’ 높이와 위치와 순서와 역할 등등~.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음을 지적하시면서, 그들의 죄상을 세 가지를 고발하십니다. 곧 자리에 합당하지 않는 일들을 고발합니다.

언행의 불일치와 남에게 짐 지움을 질타하십니다.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23,3-4)

표리부동과 위선을 질타하십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23,5)

자만과 허영을 질타하십니다.

“잔치집에서는 윗자리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23,6-7)

흔히, 오늘날 참된 스승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진정으로 스승을 찾고 있는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기의 무지를 깨우쳐주는 위대한 스승을 찾지만, 스승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방천지에서 만나는 우리 인생의 동반자들을 스승으로 모시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스승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들에게 머리 굽히지를 못하기 때문에, 오늘도 제자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기를 바란다기보다 나의 유식을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신의 무지가 들추어지면 감사하기보다 오히려 상처를 받으니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참된 스승이 있는가?” 하고 묻기에 앞서, 진정, 나는 참된 제자인지?를 물어야 할 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시작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하지 마라.”(마태 23,3)

이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를 비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군중과 제자들에게 ‘배움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곧 그들의 말과 행실이 모순되고 언행이 불일치한다하더라도, 혹은 행실이 비록 모범이 되지 못한다할지라도, ‘그들의 말은 실행하고 지키는’ 겸손함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않는’ 분별과 지혜를 가르쳐주십니다.

이제, 다시 ‘자리’의 문제로 돌아와 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요?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 하고 있는지요? 진정, ‘배우는 자의 자리’에 있는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1)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3,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
머리를 숙이고
겸손할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을 지척에 두고도
머리 굽혀 공경하기보다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먼 데서 당신을 찾지 않게 하소서.

나의 유식을 인정해주기보다
나의 무지를
깨우쳐주기를 바라게 하소서.

무지가 드러나면
상처받기보다 감사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늘 제 머리 위에 두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교우 여러분, 사순 제2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아주 매섭게 꼬집으십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마태 23,5) 이 짧은 한 문장이 바리사이들의 비극을 관통합니다. 그들은 왜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을까요? 왜 그토록 남들의 시선에 목숨을 걸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생존권을 하느님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사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는 대부분 남의 눈치라는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남이 볼 때와 혼자 있을 때가 다르다면, 우리는 이미 바리사이입니다. 왜 우리는 미움받는 것을 죽음처럼 느낄까요? 심리학적으로 인간에게 평판은 곧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뇌에는 남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면 죽는다는 공포가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나오는 '기게스의 반지'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리디아의 한 목동이었던 기게스는 우연히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주는 마법 반지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워지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왕궁으로 잠입해 왕비를 유혹하고 왕을 암살한 뒤 스스로 왕좌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 안에서만 도덕적인 척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냉혹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와 남과 있을 때가 다르다면, 우리 역시 기게스의 반지를 꿈꾸는 바리사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이 세상의 평가에 달려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결코 가면을 벗을 수 없습니다.

나다니엘 호손의 고전 소설 『주홍 글자』에 등장하는 딤스데일 목사를 보면 이 비극이 더 선명해집니다. 그는 온 마을 신자들에게 성인으로 추앙받는 목사였지만, 가슴속에는 간음이라는 비밀 죄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잃을까 봐 두려워 매일 위선의 연기를 이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입 밖으로 내뱉는 모든 거룩한 말들이 사실은 내 영혼을 태우는 뜨거운 숯불이다.』

사람들의 찬사가 커질수록 그의 속은 썩어갔습니다. 그는 밤마다 아무도 없는 처형대 위에 올라가 혼자 비명을 지르며 가짜 고해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 고백은 그를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사랑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칠수록, 정작 자기 자신을 혐오하게 되는 지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 비극을 끝낼 유일한 가능성은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박수가 아닌, 하느님의 빛 아래로 자신의 비참함을 있는 그대로 들고 나가는 정직함이었습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것이 『미움받을 용기』와 같은 철학입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으라는 것이죠. 미움받을 용기는 분명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솔직해집시다. 용기를 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대를 지독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누군가에게 미움받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은 사실 무거운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방패를 든 팔은 언젠가 지치기 마련입니다.

최근 심리학계와 자기계발 시장에서 화제가 되었던 '철저한 정직'(Radical Honesty) 운동의 실패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래드 블랜튼이 제안한 이 방식은,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속마음을 필터링 없이 100% 말하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 작가 A. J. 제이콥스는 자신의 책 『나의 실험 인생』에서 이 '철저한 정직'을 한 달간 직접 실험해 본 결과를 생생하게 기록했습니다.

그는 작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필터 없는 진실을 쏟아냈습니다. 장모님에게는 "주말마다 저희 집에 오시는 게 정말 지겹습니다"라고 말했고, 아내에게는 "방금 지나간 저 여자가 당신보다 훨씬 매력적이네"라고 고백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해방감을 느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은 모두 상처받아 떠나갔고, 그의 삶은 난장판이 되었습니다. 제이콥스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이 없는 진실은 그저 폭력일 뿐이며, 남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그 독한 노력 자체가 사실은 '정직한 나'를 과시하고 싶은 또 다른 자아의 감옥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미움을 견디는 기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아야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자 디오게네스를 보겠습니다. 그는 통 안에서 살며 세상의 모든 관습을 비웃고 왕인 알렉산드로스에게 비키라고 할 정도로 미움받을 용기가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어땠습니까? 그는 타인에 대한 냉소와 독설로 가득 찼습니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려 했지만, 결국 '세상을 무시하는 나'라는 자아의 감옥에 다시 갇혔습니다. 타인의 평가를 극복하려는 독한 의지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더 고립시키고 차갑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미움받을 용기가 아니라 사랑받는 황홀함에 있습니다. 성 필립보 네리 성인을 보십시오. 그는 1544년 성령 강림 대축일 전날, 성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에서 기도하던 중 불덩어리가 입을 통해 들어와 심장이 물리적으로 커지는 체험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가 죽은 뒤 부검했을 때 가슴뼈 두 개가 휘어져 있을 만큼 그의 심장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터질 듯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에 취한 성인에게 로마 사람들의 시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성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성인이라고 칭송하는 것을 하느님의 사랑을 방해하는 독약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수염의 절반만 깎고 거리에 나가거나, 화려한 모피 코트를 뒤집어 입고 활보했습니다. 사람들이 "저 신부 미쳤나 봐!"라고 비웃을 때, 성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서 해방되어 오직 당신의 품 안에서만 춤추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기도해야 할까요? 3세기의 순교자 성녀 페르페투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사형 집행을 앞둔 감옥 안에서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시를 봅니다. 그녀는 황금 사다리를 타고 아름다운 정원에 올라갔고, 그곳에서 양 떼를 치는 목자가 그녀에게 치즈 한 조각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녀가 그것을 받아먹자 입안 가득 말할 수 없는 달콤함이 퍼졌고, 그녀는 그 황홀한 사랑의 맛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 순간, 그녀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나중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이제 사형장에 나가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내 입안에는 여전히 그 천국의 달콤함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받는다는 그 황홀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고, 세상의 칼날이 더 이상 아프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기도를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의 목적은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 즉 그 황홀함을 얻는 데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이 사라질 때까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더 이상 죽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그리하여 나를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심장 소리가 내 심장 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어느 형제님께서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친구에게 20년 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 심하게 다투었던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는 그 사람을 더는 만날 생각도 없고, ‘친구’라고 부르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사실 이분도 가톨릭 신자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또 자기 삶에서 내치겠다는 것이 옳지 않아 보여서 성당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자 친구가 엉뚱한 질문을 합니다.  

“혹시 금반지 있어? 있으면 혹시 100% 금이야?”  

“금반지 있지만, 100%는 없지. 18K, 21K, 28K 이런 식이잖아.”  

“그러면 순금이 아니니 버려야겠네? 이물질이 들어간 거잖아?”  

“무슨 말이야? 이물질이 들어가도 금이지.”  

“친구도 그래. 나에게 100% 딱 맞추는 사람, 100% 완벽한 사람만 친구일까? 지금 네 모습은 100% 순금이 아니라고 그냥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과 똑같아.”  

하느님께서도 100% 당신의 뜻을 따라는 사람만을 받아주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는 거의 0%에 가까워도 당신 사랑으로 받아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자비는 너무나도 큰데, 우리는 자기에게 100% 함께해야만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과연 그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제대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마태 23,2.3)라고 말씀하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 자체는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백성에게만 엄격한 율법 준수를 강요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어놓으면서 ‘나는 이렇게 경건하다’라는 식의 보여주기식의 쇼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또 윗자리, 호칭에 집착하여 명예욕에 빠져 있기도 했습니다.  

남들에게는 100% 완벽한 율법 준수를 따르는 사람으로 보여주기식의 쇼를 하고, 병자나 죄인을 향해 100% 완벽하지 않다면서 단죄하는 것은 거짓이며, 위선입니다. 그래서 스승, 아버지, 선생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 호칭은 하느님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그분들의 대리자일 뿐,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는 100%를 요구하고, 정작 자기는 0%의 실천일 뿐이라면 하느님 안에 온전히 머물 수 없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자기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늘 자기 모습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3,12)    

 

오늘의 명언

내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나는 그 안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헬렌켈러).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적시고 풀어주는 봄비가 아래로 아래로 내려앉습니다. 꽃보다 봄비가 먼저 흙을 섬깁니다. 높음이란 위치가 아니라 관계를 살리는 건강한 힘입니다. 하느님의 권위는 지배가 아니라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니라 섬김이 완성된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이는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또한 가장 많이 낮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낮아질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섬김은 패배가 아니라 가장 깊은 자리에서 모든 것을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섬김은 곧 깨달음의 열매입니다. 섬기는 마음은 끝까지 하느님을 기억하는 마음입니다. 성숙의 중요한 기준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섬김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 조건의 진실을 겸손되이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섬김은 자신을 내어주어 타인을 살리는 사랑의 방향입니다. 높아지려 애쓸 때는 불안하지만, 섬길 때는 평화가 있습니다.

섬김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맺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우리의 사순은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를 성찰하고 실천하는 성장의 시간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 목차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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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1장 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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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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