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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0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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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창세 12,1-4ㄱ
    아브라함을 하느님 백성의 아버지로 부르시다.
  • 제2독서
    2티모 1,8ㄴ-10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 복음
    마태 17,1-9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창세 12,1-4ㄱ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아브라함을 하느님 백성의 아버지로 부르시다.

그 무렵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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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2티모 1,8ㄴ-10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시어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8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말씀 요약 보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17,1-9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4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5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6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8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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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1:21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십자가 없이는 변화도 없다.

세상은 참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편리함, 효율, 풍요로움 등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여러 가지이지만,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원동력은 오직 하나, ‘십자가를 짊어짐’입니다.

우리가 변화를 바라며 기도하고 실천하기 시작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자신의 십자가가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인내의 십자가, 포기의 십자가, 비움의 십자가, 이해의 십자가, 기다림의 십자가 등 저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짊어짐’ 없이 참된 변화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십자가를 짊어질 때 비로소 참된 변화의 원동력이 생깁니다. 십자가의 여정 끝에서야 우리는 기쁨의 순간, 곧 부활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바뀌신 것은,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 영광의 순간을 맛본 제자들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어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참된 변화의 길, 곧 십자가의 길을 먼저 걸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 보여 주신 예수님의 변모가 ‘거룩한 변모’라 불리는 까닭은, 그 영광이 산 아래에서 짊어져야 할 사랑의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낮은 자리로 내려와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질 때, 거룩한 변화를 이루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십자가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 십자가 안에서 시작되는 거룩한 변화를 삶 속에서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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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희망과 절망, 절망과 희망의 예고편

지난주 주님은 광야에서 혹독한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타볼산에서 모습이 영광스럽게 바뀝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타볼산에서 내려가시어 해골산에 오르실 것이고, 거기서 십자가에 올라가 매달리셨다가 다시 저승에 내려가시지만 마침내는 하늘로 영광스럽게 오르실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영광스러움과 비참함, 죽음과 생명을 오르내리시는 분이시고, 산으로 치면 골짜기를 건너 꼭대기로 오르시는 것이며, 인간의 산에서 내려와 골짜기를 지나 하느님의 산으로 오르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간의 산에서 내려와야 하고, 죽음의 심연이랄까 골짜기를 반드시 건너야 하는데 이 건너감을 파스카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건너가신 그 길을 우리도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데, 우린 오늘 베드로처럼 산 위에 계속 있겠다며 그 길을 가지 않거나 거쳐서 가지 않고 건너뛰어서 건너가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드로를 포함한 세 제자만 타볼산에 데리고 가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세 제자만 산에 머물라고 데리고 가신 것이 아니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다른 사람들이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 때, 절망감 때문에 더 이상 길을 가려고 하지 않을 때 자기들이 먼저 본 산 위의 영광을 얘기하며 희망을 북돋우라고 하심입니다.

그러니까 타볼산의 변모를 세 제자만 본 것을 영화와 비교하면 본 편에 앞선 예고편을 세 제자만 본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예고편을 본 사람은 두 가지 태도를 지닐 것입니다.

하나는 각오이고 다른 하나는 희망입니다. 각오는 최악을 각오하는 것이요 죽을 각오를 하는 것인데 죽음을 반드시 거쳐 가야지 건너뛰어 갈 수 없음을 알고 각오하는 것입니다. 사실 최악을 각오할 때 악들이 선이 되고, 바닥을 치고 위로 오르듯 최악이 왔을 때 거기서 희망을 가지고 오를 수 있습니다.

희망은 이렇게 생겨나고 시작되는 것입니다. 공이 바닥을 쳐야 위로 튀어 오르는 것처럼 희망도 절망이라는 바닥을 쳐야 튀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희망과 절망, 절망과 희망의 예고편을 미리 보여주신 것은 용감하게 바닥으로 내려가라고, 거기서부터 힘차게 치고 올라가라고 주님께서 세 제자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주신 친절한 서비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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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의연히 변모의 길을 가라!

오늘은 ‘사순 제2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가 사순시기에 가고 있는 ‘길’이 어떤 ‘길’이며, 어디로 가는 ‘길’인지를 밝혀줍니다.

<제1독서>에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습니다.”(창세 12,4). 그 길은 비록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길이지만, 당신께서 미리 준비해 놓은 ‘주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길’에 우리의 동참을 촉구합니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2티모 1,8)

그런데, 사실 이 ‘길’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신 ‘길’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주셨습니다.”(2티모 9-10)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에게서 환히 드러난 영광된 변모를 보여주십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당신 본래의 신적 초월성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이는 지금 우리가 가는 이 ‘사순의 길’이 어디로 향하여 가는 ‘길’인지를 보여줍니다.

사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마태 16,21-28)를 하신 다음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가올 수난으로 닥쳐올 절망과 위기를 견디어 낼 수 있도록 예수님의 영광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시면서 준비시키십니다. 그러니 이 ‘수난의 길’은 동시에 생명과 부활의 빛나는 ‘길’임을 밝혀줍니다. 그러기에 내적 기쁨으로 차오르는 ‘은총의 길’이 됩니다.

“그리움이 길이 된다.”는 박노해 님의 시가 떠오릅니다.


나는 기다리는 사람/ 그리움을 좋아한다.//

나는 그리움에 지치지 않는 사람/ 너에게 사무치는 걸 좋아한다.//

기다림이 지켜간다./ 그리움이 걸어간다.//

이 소란하고 쓸쓸한 지구에/

그대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눈물 나는 내 사랑은/

그리움이 가득하여/ 나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기다림이 걸어간다./ 그리움이 길이 된다.//


그렇습니다. 기다림으로 ‘변모의 길’을 걸어갑니다. ‘길’이 되는 그리움으로 ‘부활의 길’, ‘영광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이 ‘길을 가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름 속에서 들려주신 가르침입니다. 곧 신약의 ‘쉐마’입니다. ‘들어라’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하느님께서는 직접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확인시켜주시면서, 그를 ‘따르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곧 그를 따라 ‘변모의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곧 “그의 말을 들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분과 함께 변모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말씀 아래 머물러 있는가?

그리고 들은 말씀으로 인하여 변모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말씀 아래에 머무는 일입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되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변화의 힘이신 말씀께서 나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말씀께 자신을 건네 드리는 일입니다. 곧 나 자신을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초막집으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이 건물(초막)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게 됩니다.’(에페 21-22 참조). 그러면, 우리는 변모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한 대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2코린 3,18 참조)

오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진정 변모되기를 바라는가? 그렇다면 내 아들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께서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마태 17,7)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7,7)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의연히 변모의 길을 가라!’ 하십니다. 그러니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구원을 위한 수난에 동참하고 새로운 변화의 길을 걸어야 할 일입니다. 세상의 고통에 대해 무디어지고 무관심해진 마음을 뉘우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신뢰와 사랑, 배려와 존중을 심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7,5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주님!
말씀의 권능으로
저를 덮으소서.

구름 속에서 울려오는
당신 음성으로
저를 덮으소서.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당신이 거주하시는
초막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의 실패는 폭력으로 드러나고, 기도의 성공은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교우 여러분, 사순 제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의 얼굴을 해처럼 빛나게 바꾸시는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산에 올라가셨을까요? 그리고 그곳에서 왜 하필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산은 기도의 장소이고, 기도는 존재의 권위를 수혈받는 시간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게 뭡니까? 내 말이 안 먹힌다는 겁니다. 자녀에게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듣지 않고, 공동체에서 아무리 진리를 외쳐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내고, 심하면 폭언과 강압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거 정말 무서운 일입니다. 내 말을 듣게 하려고 폭력을 쓰는 순간, 그것은 당신의 기도가 산 위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가장 확실한 성적표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권위는 목소리의 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산에서 만난 진리와 은총의 합작품입니다. 오늘 예수님 곁에 선 모세는 하느님의 진리인 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뜨거운 하느님의 은총인 불을 상징합니다. 기도가 잘 되었다는 것은 내 안에 진리의 설계도가 그려지고, 그것을 밀어붙일 은총의 엔진이 가동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사람의 말에는 칼날 같은 권위가 서립니다.

첫 번째로 진리의 권위를 보십시오. 진리를 발견한 사람은 소리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진리 자체가 가진 무게로 상대를 압도합니다. 이탈리아의 위대한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Santa Caterina da Siena)를 보십시오. 그녀는 정식 교육도 받지 못한 일자무식에 가까운 여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매일 기도의 산에서 진리의 모세를 만났습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프랑스 아비뇽에 머물며 로마로 돌아오지 않자, 가타리나는 교황에게 편지를 쓰고 직접 찾아갑니다.

보잘것없는 여인이 당대 최고 권력자인 교황 앞에서 뭐라고 했을까요?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하느님께 받은 진리를 아주 명료하게 선포했습니다.

"교황님,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니라 로마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마십시오."

이 서슬 퍼런 진리 앞에 유럽의 모든 군주를 호령하던 교황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종하며 로마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로 얻은 진리의 권위입니다. 내 말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내 말이 틀려서가 아니라, 기도 안에서 진리의 확신을 수혈받지 못해 내 말에 무게가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은총의 권위입니다. 은총은 따뜻한 빛입니다. 이탈리아어로는 그라치아(Grazia)라고 하죠. 이 은총을 가득 입은 사람은 존재 자체에서 풍겨 나오는 빛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킵니다. 인도로 떠났던 위대한 선교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San Francisco Javier)의 일화를 보십시오. 그는 처음 보는 이민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그를 따랐습니다. 왜일까요?

그가 기도를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는 은총의 빛이 뿜어져 나왔습니다.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기록한 바에 따르면, 하비에르 신부가 지나가기만 해도 거친 선원들이 욕설을 멈추고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그가 소리를 질렀을까요? 아닙니다.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은총의 불을 가득 머금은 그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의 영혼을 녹여버린 것입니다. 기도의 실패는 차가운 폭력으로 드러나지만, 기도의 성공은 따뜻한 은총의 빛으로 드러납니다.

반면, 세속적인 통제는 어떻습니까?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 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는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찬양할 만큼 철저한 공포 정치를 펼쳤습니다. 그는 반대파를 돈으로 매수하거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 부하의 몸을 두 토막 내어 광장에 전시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공포 때문에 그에게 굴복했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어땠습니까? 그가 병석에 눕자마자, 돈으로 샀던 충성은 흩어졌고 약점 잡혔던 이들은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폭력과 돈으로 세운 권위는 그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즉시 반역으로 바뀝니다.

그러나 기도를 통한 권위는 다릅니다. 이탈리아 구비오(Gubbio) 마을에 사람을 잡아먹는 흉폭한 늑대가 나타났을 때를 기억하십시오. 마을 사람들은 칼과 창을 들고 늑대를 죽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때 성 프란치스코가 나섰습니다. 그는 무기 대신 기도의 산에서 얻은 '하느님 자녀의 권위'를 들고 늑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는 늑대를 "늑대 형제여"라고 불렀습니다. 늑대는 아무런 위협이나 보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발치에 엎드려 온순한 양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성공입니다. 아무런 보상이나 위협 없이도 영혼이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하늘의 통치력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루에 딱 15분만이라도 모든 세상의 소음을 끄고 '침묵의 산'에 오르십시오. 거기서 내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모세와 엘리야처럼 하느님의 진리(말씀)와 은총(성체)을 가만히 바라보십시오.

기도가 잘 되었다면 여러분은 산을 내려올 때(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올 때),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조건을 걸어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대신 여러분의 눈빛에는 두려움 없는 평화가, 입술에는 진리의 무게가 실릴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교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대들의 말이 사람들의 영혼에 닿지 않는 이유는, 그대들이 먼저 하느님의 발치에 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다.

  “저는 못생겼고 키도 작아요. 또 능력도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말에 의문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그 기준은 어디에서 온 것이냐는 것입니다. 생김새를 결정할 수 있는 세계 공인 기준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자기가 만든 것이기에 구분 자체가 아주 애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자동차를 사려는 사람이 있는데, 자전거와 가격 비교를 합니다. 자전거는 이 정도의 가격인데, 왜 자동차는 그렇게 비싸다고서 불평합니다. 이 비교는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도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 역시도 비교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주님을 만나는 삶입니다. 이 길에서 어떤 비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지난 사순 제1주일에는 예수님과 함께 광야에서 유혹을 이기는 장면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순 제2주일에는 예수님을 따라 타볼산에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산 위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시간인 사순시기에 왜 이런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실까요? 사순시기의 긴 터널을 통과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병의 수술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수술 전,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수술할 것인지를 친절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건강해질 것인지도 설명하십니다. 이때 마음에 커다란 위로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도 미리 영광을 보여 줌으로써 지금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 타볼산에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그의 동생 요한이 함께 오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변모, 즉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옷은 빛처럼 하얘지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영광의 자리가 너무 좋았나 봅니다. 베드로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다며 예수님께 말합니다.

하긴 예수님과 전교 여행을 하며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니 이 영광의 자리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자리에 머물자고 했던 것입니다. 제1독서의 아브람은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창세 12,1)라는 말씀을 듣고 길을 떠납니다. 익숙한 고향과 가족을 떠난다는 것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에 안주하는 삶이 아닌 하느님을 만나는 삶을 위해 떠났습니다.  

우리도 다른 이의 삶과 비교하면서 지금의 편하고 쉬운 길만을 청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당장 떠나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어떤 목표를 정하거나 꿈을 꾸는 데 나이란 없다(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예수님께서 변하신 것이 아니라 가려진 모습이 우리에게 드러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모는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기 계시입니다. 변모는 억지로 다른 사람이 되는 사건이 아니라, 본래의 자기로 회복되는 순간입니다.

진짜 우리 자신으로 살 때 얼굴은 자연스럽게 빛납니다. 빛은 어둠을 제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을 품고 완성됩니다. 변모의 사건은 제자들에게 일종의 ‘깨어남’입니다. 참된 깨달음은 설명이 아니라 체험입니다.

사랑은 감출 수 없습니다. 변모의 사랑은 머무르기 위한 체험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은총입니다. 참된 신앙은 체험에 머무르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할 은총입니다.

욕망과 교만이 제거될 때 마음은 거울처럼 맑아져 하느님의 빛을 반사할 것입니다. 진정한 빛은 고립 속에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참된 관계는 서로를 밝힙니다. 관계는 우리를 변모시킵니다. 하느님과 깊어질수록 사람에게 더 따뜻해집니다.

변모는 기도 중에 일어났습니다. 빛은 분주함이 아니라 깊은 일치에서 나옵니다. 변모는 산 위의 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빛을 품고 십자가의 길을 사랑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삶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하는 사랑의 빛이 변모입니다. 십자가는 변모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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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모테오2서 1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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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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