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에스 4,17(12).17(14)-17(16).17(23)-17(25)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 복음
마태 7,7-12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에스 4,17(12).17(14)-17(16).17(23)-17(25)

주님,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
그 무렵
17(12) 에스테르 왕비는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14)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15)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16)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23)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24)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25)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7,7-12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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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6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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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사순 시기의 참된 보속은 신뢰이다.
가게에서 무언가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와 그 부모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아이들은 가지고 싶은 것을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엄마 …….” 또는 “아빠 …….”라는 한마디로 대신하고는 하지요. 그런데 부모는 그 말만 들어도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지 바로 알아차립니다. 이심전심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우리와 당신의 관계가 바로 그러하다고.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이미 알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좋은 몫을 마련해 주십니다. 아이가 칭얼거리는 이유를 곧바로 알아차리는 부모처럼요. 우리도 아버지께 청하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독서의 에스테르처럼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에스 4,17㉕)라고 주님께 온전히 맡기며 기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러 가지 수단을 먼저 써 보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괜한 분노를 터뜨리다가 나중에서야 기도를 떠올리고는 합니다.
그래서 다짐해 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라고(마태 7,8 참조) 말씀하신 주님을 진심으로 믿고, 주님께 먼저 청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화가 날 때, 억울할 때, 짜증이 날 때, 곧바로 인간적 반응을 보이기보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또는 ‘예수, 마리아, 요셉.’이라는 짧은 기도를 바쳐 보기로 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 청하며 마음을 다스려 불필요한 분노를 가라앉히고, 그 안에서 선행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면 그것이야말로 사순 시기의 참된 보속이 아닐까요. 억지로가 아니라, 주님을 찾는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선행 말입니다.
오늘 독서가 우리의 일상 속 기도로 살아 숨쉬기를 청합니다.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에스 4,17).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은
“주님, 당신은 유일하십니다.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요약하면, ‘에스테르처럼 청하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다.’일 것입니다. 오늘 에스테르는 자기 동족과 함께 절체절명의 상태에 있고, 이런 상태에서 그녀는 지독한 외로움 가운데 있습니다.
외로움이란 아무도 또 아무것도 없는 지독한 가난입니다. 그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스스로 빠져나갈 힘이 없고, 빠져나갈 방법도 없고, 사람이 많아도 구해줄 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외로움을 생각할 때 지금의 저로서는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다른 외로움이 아니라 죽을 때의 외로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죽기 전 마지막 몇 년 또는 몇 달을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에스테르는 죽게 된 처지에서 살길을 찾으며 그러나 아무도 없다고 하는데 저는 살길이 아니라 외로움 가운데서 어떻게 잘 죽을 수 있는지를 찾는 것입니다. 주변을 보고 티브이를 보면서 잘 죽어가는 것이 그렇게 외로운 것이고 그렇게 힘든 것임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노년을 사는 것이 한 생을 잘 사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노년의 외로움을 잘 살 수 있을까요? 지금 저의 생각으로는 우선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사실 외로움은 거의 모든 사람이 즉각 거부 또는 외면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혼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직면하지 않고 거부하고 외면합니다.
예를 들어 노인 혼자 사는 집에 가면 보지 않으면서 티브이를 켜 놓고, 잠잘 때조차도 외로운 것이 싫어 켜놓고 잠을 자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나이 먹은 분들이 유튜브에 더 빠지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외로움에 하느님께서 안 계신다면 직면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으며 직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은 하느님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직면하는 것은 하느님을 직면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그래서 요즘 훈련 비슷한 것을 합니다. 컴컴하고 아무것도 없고 아무도 없는 저 우주 어디에 저 혼자 있는 걸 상상하며 거기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절실하고 그래서 꼭 계셔야만 합니다. 여기서는 하느님이 안 계시면 결단코 안 되고 계셔야지만 되지요. 오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외로움은 하느님을 간절히 찾게 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청하라, 찾아라, 두드려라.
이틀 전에,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하늘에 계신 아빠, 아버지께”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깨우쳐주십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지 않겠느냐?”(마태 7,11)
이는 “우리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많이 주시는 분’이심을 밝혀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아버지께” 해야 할 바를 이렇게 알려주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먼저, 기도로 ‘청하라’고 하십니다. ‘청하라’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해결사가 되지 말고, 구원자이신 주님께 희망을 두라는 말씀이요, 나아가 희망하고 열망한 바를 신뢰하고 의탁하라는 말씀입니다. 겸손하게 자비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귀먹은 이가 들을 수 있기를 청하듯, 눈먼 이가 볼 수 있기를 청하듯, 자신의 처지를 알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청하기를 바라십니다. 당신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청하기도 전에 다 아시지만, 우리가 그 필요를 깨달아 알고 절실하기를 바라시며, 또한 그것을 당신께 바라고 당신께 의탁하기를 바라십니다.
다음에는, ‘찾아라.’고 하십니다. ‘찾는다.’는 것은 수고로움을 바치는 것이요, 믿음으로 찾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바를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온 몸을 바쳐 수고로움을 다하여 믿고, 믿는 분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내가 나를 찾아 부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나 여기 있노라’ 하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다음에는, “두드려라”고 하십니다. “두드린다.”는 것은 가슴에 타오르는 한결같은 사랑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두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당신께서 마음을 열고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이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이토록, 주님께서는 우리가 입(말)과 몸(행동)과 가슴(마음)으로 희망과 믿음과 사랑으로 “아버지를 향하여” 있고 “아버지께 매달려” 있기를 바라십니다. 곧 말로 희망하는 바를 청하고, 행동으로 믿는 바를 찾으며, 마음으로 사랑하는 바를 두드리라 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좋은 것을 많이 주시듯이 우리도 아버지께서 하신 것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7,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주님!
희망할 줄을 알게 하소서.
그 희망을 당신께 두게 하소서.
제 희망이 아니라
당신이 희망하는 바를
청하게 하시고
당신의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제가 응답하게 하소서.
말로만 청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이신 당신을
몸으로 찾게 하시고
진리 안에서
행동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진리의 문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두드리게 하소서.
우리를 가로막은 장막을 찢으시고
우리 서로가 열리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을 것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과 선물을 주는 사람, 과연 누가 더 좋아할까요? 당연히 받는 사람이 더 기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는 사람이 얻는 효과가 더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선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집니다. 동시에 옥시토신도 분비되는데, 이로써 상대방과 친밀감을 증폭시켜 받는 사람과의 간격을 좁혀준다고 합니다.
단순히 주는 기쁨만이 아니었습니다. 선물 받은 사람보다 더 뇌가 훨씬 활발하게 반응하고 주의력과 기억력이 크게 향상되는 것입니다. 주는 기쁨을 너머 인지 기능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또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적절하게 분비되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손해일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상당한 이득을 줍니다. 특히 이 세상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바오로 사도를 통해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는 어떤 사람이 더 이득일지를 알게 됩니다. 당연히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이득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도 주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쓰이는 동사는 모두 ‘현재 명령형’입니다. 즉, 한 번 하고 마는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을 의미합니다. 계속해서 청하고, 계속해서 찾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더 많이 주신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하느님께 제대로 청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돌, 뱀 같은 해로운 것을 청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실까요? 좋을 것을 주시려는 하느님께서는 절대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침묵하시고 거절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자기의 청원이 정말로 하느님의 뜻에 맞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명령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좋은 것을 주시는 너그러운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우리도 이웃에게 좋은 것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소극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먼저 해 주는 적극적인 실천을 명하십니다.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입니다.
오늘의 명언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악이 자란다(어슐러 K. 르 귄).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좋은 것은 우리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믿고 서 있는 오늘입니다. 우리는 이미 받은 은총 안에 존재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편안함이지만, 진정 좋은 것은 우리의 성숙입니다. 궁극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가장 좋은 것은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 그분 자신입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을 의심하지 않는 신뢰가 믿음의 핵심입니다. 청하는 일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이며, 영적 성장은 충만함이 아니라 결핍에서 시작됩니다. 찾는 일은 방향을 잃지 않겠다는 선한 의지이고, 두드리는 일은 관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녀의 청을 들으시는 인격적인 아버지이십니다. 좋음은 관계 안에서 주어집니다. 청함은 하느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이미 은총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좋은 것은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를 더 사랑하게 하고 더 신뢰하게 하며 더 자유롭게 만드는 그분의 은총입니다. 좋은 것을 더 많이 주시는 은총의 시간, 지금 이 사순이 그 초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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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7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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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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