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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2.2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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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2월 2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창세 2,7-9; 3,1-7
    사람의 창조와 원조들의 죄
  • 제2독서
    로마 5,12-19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 복음
    마태 4,1-11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창세 2,7-9; 3,1-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사람의 창조와 원조들의 죄

7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3,1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에서 가장 간교하였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3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하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4 그러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6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7 그러자 그 둘은 눈이 열려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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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로마 5,12-19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죄가 많아진 그곳에 은총이 충만히 내렸습니다.

형제 여러분,

12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듯이, 또한 이렇게 모두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사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죄가 있었지만, 율법이 없어서 죄가 죄로 헤아려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부터 모세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죽음이 지배하였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예형입니다.

15 그렇지만 은사의 경우는 범죄의 경우와 다릅니다.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운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충만히 내렸습니다.

16 그리고 이 선물의 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는 다릅니다. 한 번의 범죄 뒤에 이루어진 심판은 유죄 판결을 가져왔지만, 많은 범죄 뒤에 이루어진 은사는 무죄 선언을 가져왔습니다.

17 사실 그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은총과 의로움의 선물을 충만히 받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통하여 생명을 누리며 지배할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았듯이,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로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되어 생명을 받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이가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말씀 요약 보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4,1-1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2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3 그런데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4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5 그러자 악마는 예수님을 데리고 거룩한 도성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6 그분께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7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8 악마는 다시 그분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주며,

9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하고 말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11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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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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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5:5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세상의 계산이 아닌 하느님의 시선으로

한 사람이 붕어빵 가게에 들렀다가, ‘3개 1,000원, 1개 300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 의아해하였습니다. 보통은 많이 살수록 저렴한데 이 집은 오히려 낱개가 더 쌌던 셈이지요. 주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붕어빵을 하나씩 사 먹는 사람이 더 가난하거든요.”

천 원이 없어 한 개만 사는 사람을 위한 배려였던 것입니다. 물질 중심인 세상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가난한 이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고, 오히려 감사할 만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관점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무엇을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는 유혹을 물리치기도, 그 유혹에 무너지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여 주는데 이는 우리 인간들이 겪는 유혹과 같습니다. 비유와 상징으로서 드러난,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아무런 노력 없이 불편함을 쉽게 해결하려는 유혹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의 기적을 기대하며 시험하고자 하는 유혹입니다. 마지막은 세상의 권세와 영광, 곧 세상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권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들을 물리칠 때, 우리는 악마가 아닌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느님의 관점,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혹 앞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합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마태 4,4).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4,7).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4,10).

이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우리가 사순 시기 유혹을 물리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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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유혹의 효능

사순 제1주일은 유혹과 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데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유혹은 꼭 나쁜 것인가? 유혹받으면 죄는 피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유혹받으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혹이 그 자체로 죄이거나 짓게 하기에 나쁜 것이라면, 또 유혹받으면 죄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유혹받으실 리도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께서 유혹을 받으셨고, 그것도 보통 유혹이 아니라 악령에게 받은 유혹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받은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유혹이란 유한한 인간의 조건이기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기에 히브리서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독서에서 아오스딩 성인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순례 생활에는 유혹이 없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진보는 유혹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유혹당하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합니다.

유혹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받지 못하고 투쟁하지 않으면 이겨내지 못하며 유혹당하지 않으면 투쟁할 수 없습니다.” 하고 유혹의 인간적인 효능에 관해서 얘기한 다음 영적인 효능에 관해서도 얘기합니다.

“그리스도는 악마에게 유혹당하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도 유혹당합니다. 왜냐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고,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구원을 얻었고, 그분은 여러분에게서 죽음을,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생명을, 그분은 여러분에게서 유혹을,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승리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 가지 영적 차원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도 유혹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유혹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유혹받으시되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악령의 유혹을 받으신 것이고, 유혹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싸워 이기신 것입니다.

이때의 승리로 주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악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원천적으로 얻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처럼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악령의 유혹도 받아야 하고, 유혹만 받지 않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임을 가르침 받는 오늘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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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악마는 무엇을 노리고 다가왔던 것일까요?

사순 첫째 주일을 맞았습니다.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유혹입니다.

<제1독서>는 에덴동산에서의 유혹이요, <복음>은 광야에서의 유혹입니다.

그리고 <제2독서>는 아담이 유혹에 걸려 넘어진 결과와 예수님이 유혹을 이기신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인류의 대전환을 가져온 거대한 두 사건을 말해줍니다. 곧 아담이 모든 것이 풍요로운 낙원에서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예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유혹을 이기신 사건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지배하게 되었지만, 예수님의 의로운 행위로 생명을 받게 되었던 사건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많은 이가 죄인이 되었듯이, 예수님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된 사건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합니다. 세례 때,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던 하느님의 영은 이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최초로 하신 일은 바로 광야에서 기도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겠다고 약속한 곳이요, 오롯이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요, 사랑을 속삭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호세 2,16-18).

또 불모의 황폐한 사막이요 유혹받은 장소이기도 하지만, 야곱을 아껴주신 곳이요(신명 32,10), 이스라엘 백성을 보살펴주고 인도하신 곳이요(신명 2,7; 8,15; 느헤 9,18-19), 시험의 장소이기도 하지만(신명 8,2), 예언자들이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요(1열왕 19,4), 사랑을 알게 하시는 장소이기도 합니다(예레 2,2-3).

또한, 오늘 <복음>에서처럼, 마귀와 승냥이들이 우글거리는 하느님의 부재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천사가 시중드는 곳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는 우리 삶을 뒤흔드는 위협에 맞서, 하느님을 더욱 깊이 만나는 자리요,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상이요,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하시며 기도하셨습니다. 마침내 허기지셨던 예수님은 쇠약해지셨고,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상태에 처했습니다. 가장 허약한 순간을 노려 악마의 끈질긴 유혹은 시작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피하시지 않으시고 정면으로 돌파하십니다. 아니, 역설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유혹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합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사막에서 받은 유혹을 상기시킵니다. 곧 이스라엘 백성은 유혹에 빠져 하느님을 배반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십니다. 유혹받으시나 승리하시는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과 새로운 모세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물질적 유혹입니다. 빵에 대한 유혹이요, 필요와 효용성, 소유와 능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4)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육신을 살리는 물질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말씀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성벽에서 뛰어 내려라. 그리고 천사들이 손으로 받들어 다치지 않게 하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정신적 유혹입니다. 영예에 대한 유혹이요, 과시와 인기, 교만과 허영, 영웅주의에 대한 유혹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임을 증명해보라는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주 너희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마태 4,7)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허영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이 세상 왕국을 모두 당신에게 주겠소.”라는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영적, 신앙적 유혹입니다. 권력에 대한 유혹입니다. 지배와 권위, 존경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상을 믿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속한 이로서 그분만을 섬기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믿음과 사랑과 희망을 하느님께 두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유혹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대체, 악마는 무엇을 노리고 다가왔던 것일까요?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이루어야 할 사명을 방해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를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셨습니다.

이토록, ‘광야에서의 유혹’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삶을 제시’해줍니다. 곧 이 사건은 우리를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신비로 이끌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술이나 기적으로 이 세상을 구원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유혹을 이기시고, 사랑으로 사명의 길을 가셨으며, 아버지의 뜻에 희망을 두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 헌신에 힘입어, 결코 그 누구도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란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5-38).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4,4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주님!
나의 필요보다
타인의 필요를 먼저 헤아리고,
소유하기보다
소유당할 줄을 알게 하소서.

무엇이 유익한가보다
그것이 사랑인가를 보게 하시고,
능력을 가지기보다 가진 능력을
사랑으로 쓸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으로부터 떼어 놓는
모든 것으로부터
떨어져 있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에 힘입어
말씀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모든 자궁은 광야다: 이 세상도 하느님의 자궁이다.

교우 여러분,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의 첫 장면은 사실 좀 당혹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그 뜨거운 고백을 듣자마자, 성령께서는 그분을 위로의 장소가 아니라 광야로 내몰아 버리십니다. 왜일까요? 이제 막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은 예수님께, 광야는 그 신성을 단련하고 완성해야 하는 거룩한 자궁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자궁은 광야입니다. 태아에게 어머니의 태중은 마냥 편안한 침대가 아닙니다. 좁고, 어둡고, 때로는 숨이 막히는 압박을 견뎌야 하는 고립된 공간이죠. 하지만 그곳에서 수정란은 이전의 모습을 완전히 벗고 부모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재창조됩니다.

성령은 마치 거룩한 정자와 같습니다. 우리 영혼에 침투하여 우리의 낡은 인간 본성을 뒤흔들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킵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제 그 자궁, 즉 광야 안으로 들어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왜 이 세상이 자궁일 수밖에 없을까요? 우리가 저절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어떤 자매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지인의 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영문도 모르고 무당집에 끌려갔답니다. 그런데 그 무당이 겁을 주더라는 거예요.

"너 신내림 안 받으면 재수 없는 일만 생길 거다. 절에 가든지 무당이 돼라. 성당이나 교회 가면 너 반드시 병신 된다!"

참 기가 막히죠? 이 자매님은 무시하려고 해도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공포 마케팅에 속는 이유는 내가 어디서 에너지를 받아 사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자궁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탯줄을 통해 오는 에너지를 직접 체험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자기 힘으로 크는 게 아니라 탯줄로 엄마의 피를 받아 살듯, 우리 역시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제 형님은 성당에 안 다녔지만, 매일 밤 가위에 눌려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기 전에 성호를 긋고 자라고 했죠. 형님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성호를 긋고 잔 날은 절대 가위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에너지가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작은 체험으로 알게 된 거죠.

이 세상이 자궁이라면, 자궁 안에서는 반드시 치러야 할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본성의 교체를 위한 이전 본성과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뱀이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을 때 썼던 수법은 오늘 광야에서 사탄이 던진 세 가지 유혹과 똑같습니다.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우며, 슬기롭게 해 줄 것 같은 유혹, 즉 소유욕, 성욕, 지배욕입니다. 뱀은 인간을 하느님의 본성에서 동물의 본성으로 타락시켰습니다. 자궁 안에서 태아가 꼬리를 없애고 인간의 형태를 갖추듯, 우리는 광야에서 이 짐승의 흔적을 도려내야 합니다.

만약 이전 본성과의 싸움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성령께서 오시지 않은 것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보모를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세례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을 사는 이유가 없어집니다. 이는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배터리처럼 욕망의 노예로 살다 죽는 삶과 같습니다. 사는 게 아닙니다.

1991년 우크라이나에서 발견된 옥사나 말라야의 사례는 정말 끔찍합니다. 인간의 자궁(가정) 안에서 본성을 바꾸는 과정을 겪지 못해 개가 되어버린 그녀처럼, 우리도 본성을 초월하여 깨어나지 못한다면 이 자궁 같은 세상에서 본성을 초월하는 일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투쟁입니다.

이 세상을 하나의 자궁이요, 광야로 여기게 되었다면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기는 훈련의 시기로 봅니다. 우리 나라의 위대한 동정 순교자 부부,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의 삶은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두 분은 하느님 나라를 향한 열망으로 동정 부부로 살기로 서약했습니다. 이순이 루갈다 성녀가 1801년 신유박해 때 보낸 『옥중 서한』의 기록은 정말 절절합니다.

"어머니, 저희는 4년 동안 한 방에서 오누이처럼 지냈습니다. 육신의 욕망이 일어날 때마다 십자가를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리며 울었습니다. 어떤 때는 하룻밤에 열 번도 넘게 유혹을 이겨내야 했으니, 이것은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녀는 이 지독한 싸움을 광야의 진통으로 여겼고, 그 결과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고통스럽고 유혹이 많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징조입니다. 아기가 걸음마를 연습하다 수천 번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넘어진다는 것은 걷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는 뜻입니다. 싸우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이제 막 인간이라는 낮은 본성에서 하느님이라는 고귀한 정체성으로 탈출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 나의 배꼽에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이 세상이 아닌 천상에서 오는 힘을 체험해보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광야로 나아가 자신과 싸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비의 고치를 가위로 미리 잘라주면 그 나비는 영영 날지 못하고 죽습니다. 고치를 빠져나오려는 그 처절한 몸부림이 나비의 날개를 근육질로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순 시기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녀로 만드시려고 광야의 진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존재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하는 자궁 속에 있음을 깨닫는 것, 그것이 세례와 성령의 참된 의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39항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아담이 낙원에서 실패했던 그 유혹을 광야에서 이기심으로써, 인류에게 새로운 본성의 길을 열어주셨다."

광야는 죽음의 땅이 아니라 생명이 빚어지는 하느님의 자궁입니다. 기도와 자선과 단식이라는 수술 칼을 들고 여러분 안의 짐승을 도려내십시오. 하느님 아버지께서 탯줄을 통해 여러분의 산고를 함께 겪으며 응원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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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갓난아기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엄마’입니다. 그렇다면 이 단어를 저절로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가장 가까이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오래 같이 있는 엄마가 계속해서 ‘엄마’라는 말을 들려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엄마의 입 모양, 소리를 따라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면 몇 번이나 ‘엄마’라는 단어를 들었을까? 실제로 2,000번 이상 들어야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다고 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알게 됩니다. 단번에 알 수 있을까요? 쉬어 보이는 ‘엄마’라는 단어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말을 어떻게 단번에 알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도저히 모르겠다며 이런 신앙생활이 과연 의미 있겠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무조건 알려고 노력하고 또 말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의 온갖 유혹을 거뜬하게 이겨내면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에 악마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악마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 4,3)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을 단순히 배고픔 해결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유혹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세상의 경제적 문제만 해결해 주는 존재가 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에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6)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사는 동물이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면서, 기적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악마는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에 세운 다음,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마태 4,6)라고 유혹합니다. 하느님이 정말로 사랑하시는지 증거를 보여달라는 불신이며, 대중들 앞에서 화려한 기적 쇼를 벌여 손쉽게 메시아로 인정받으라는 영광 주의의 유혹입니다. 그러나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7)라고 말씀하시면서, 참된 믿음은 하느님께 증거를 요구하고 화려한 영광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분께 신뢰를 갖는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마지막 유혹은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마태 4,9)라고 말하면서, 악마와의 타협을 요구합니다. 하느님의 방법인 십자가와 희생이 아닌, 힘과 지배 등의 세상의 방법으로 세상을 구원하라는 유혹입니다. 곧 하느님 자리에 다른 것을 두는 우상 숭배입니다. 이 유혹 역시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라면서 단호하게 쫓아내십니다. 구원은 세상 권력을 잡는 데 있지 않고, 오지 하느님을 섬기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유혹이었습니다. 나의 능력과 재능을 오직 나 자신의 안락함과 욕망을 채우는 데만 쓰라는 유혹, ‘이것만 해 주신다면’ 식의 말로 하느님을 시험하며, 거래 대상으로만 삼고자 하는 유혹,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얻기 위해 불의와 타협하거나 양심을 팔고자 하는 곧 악마에게 경배하는 유혹. 이 모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이기십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 손에 쥐어야 할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무기는 하느님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집중하고, 또 그 말씀을 살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에게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이 내게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분이 되고, 악마의 유혹을 거뜬하게 이겨내면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기억의 흔적들은 새로운 관계가 형성됨에 따라 다시 배열되고 기억된다(지그문트 프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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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분께서는 사십 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라 시장하셨다.

사순은 우리 생각을 앞세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시간입니다. 무언가를 더 얻는 시간이 아니라,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돌은 돌로 있을 때 이미 충분합니다. 굳이 빵이 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이미 그분 자신으로 충분하십니다.

권력은 끊임없는 비교와 경쟁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참된 자유는 이기려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빵과 기적, 권력은 궁극적인 실재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쳐 지나갈 현상에 불과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현상에 머물지 않으시고, 더 깊은 실재, 곧 아버지의 뜻 안에 기쁘게 머무십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만 남는 자리입니다. 유혹은 넘어뜨리기 위한 시험이 아니라 우리를 더 깊게 하려는 초대입니다. 사순은 성령께서 우리를 광야로 이끄시는 시간입니다. 하느님 없이 버티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만으로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우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나 궁전이 아니라 광야에서 사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순은 욕망을 없애는 시간이 아니라 삶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시간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유혹을 이기신 분이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를 흔들리는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이번 사순이 멈출 줄 아는 겸손과 내면을 회복하는 지혜를 배우는 은총의 시간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사순은 삶의 본질로 돌아가 은총을 다시 배우는 맡김의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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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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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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