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재의 수요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요엘 2,12-18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 제2독서
2코린 5,20─6,2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요엘 2,12-18

너희는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12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13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14 그가 다시 후회하여 그 뒤에 복을 남겨 줄지 주 너희 하느님에게 바칠 곡식 제물과 제주를 남겨 줄지 누가 아느냐?
15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16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모아라. 신랑은 신방에서 나오고 신부도 그 방에서 나오게 하여라.
17 주님을 섬기는 사제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아뢰어라. “주님, 당신 백성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의 소유를 우셋거리로, 민족들에게 이야깃거리로 넘기지 마십시오. 민족들이 서로 ‘저들의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말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18 주님께서는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2코린 5,20─6,2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형제 여러분,
20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21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6,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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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8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재의 수요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37
✚ 강론시작 13:1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나는 먼지입니다. 그러나 사랑받는 먼지입니다.
“Ecce homo.”(에체 호모)
매를 맞으시고 초라해지신 예수님을 빌라도가 군중 앞에 내보이며 던진 이 말은, ‘이 사람을 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것이 사람이다.’로 옮깁니다. 라틴 말 ‘ecce’가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존재의 실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문법이 아니라, 이 말이 가리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입니다.
과연 무엇이 사람이라는 것일까요? 상처투성이가 되신 예수님, 아무 힘도 없이 조롱당하시는 그분을 두고 “이것이 사람이다.”라고 말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에 이를 수 없지만, 완전을 꿈꾼다는 점에서 더욱 좌절할 수도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고 싶어서 짓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없이 넘어집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안 돼.”라며 자책하는 것이 과연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모습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넘어질지라도 우리가 당신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cce homo.”(이것이 사람이다)
자신이 얼마나 자주 넘어지는 존재인지 절실히 깨닫는 그 순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는 하느님의 물음에 비로소 진심으로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고백이 바로 신앙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넘어지는 사람으로서, 처절히 자신을 마주한 사람으로서 맞이해야 합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 머리에 재를 얹으며 듣는 주님의 말씀에 깊이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더 그리고 또
오늘 요엘 예언서의 주님과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그런데 이 말씀을 듣는 저는 내가 하느님께 멀어진 적이 있고 지금 멀리 있나? 내가 하느님과 원수진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이 솔직히 듭니다. 사실 저는 일생 하느님과 원수진 적이 없고 그래서 하느님께 마음이 멀어진 적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가까이 갔거나 가까이 있기는 하나?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돌아오라고 하시는데 마음을 다하기는 했나? 이런 측면에서는 올해 그리고 오늘 나를 성찰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냐면 묵시록에서 너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고 나무라셨듯이 저는 멀어지지도 않았지만 가까이 가지도 않은 것이 혹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이 멀어지거나 차가워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감히 제가 이렇게 얘기해도 되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갈수록 주님께 가까이 가고 있고 마음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얼핏 보면 젊을 때보다 마음의 열정이 식은 것같이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세속 열정은 식어가지만 하느님께 대한 열정은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만’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멀었습니다. 그렇지만 더 뜨거워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더 가까이 또다시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더’ 이고 ‘또다시’ 입니다.
하느님께 등 돌리고 멀어져가던 나라면 방향 전환이 회개이겠지만 하느님께 이미 마음을 정하고 향하고 있다면 더 가까이 가면 되고, 다가가다가 잠시 쉬고 있다면 또다시 다가가는 것이 올해 저의 회개입니다. 마음 새로 먹는 것도 회개이지만 또다시 먹는 것도 회개라는 뜻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돌아옴
오늘부터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양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는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회개’를 <제2독서>에서는 ‘화해’를, <복음>에서는 ‘의로움’에 대한 말씀을 들려줍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요엘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단식하고, 울면서,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께로 돌아오너라.”(요엘 2,13)라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은혜로운 구원의 날을 맞이하라.’고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하지 말고, 숨어계신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몸과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뉘우침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의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로 ‘돌아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신앙의 빛>에서, ‘회개’를 “주님을 향해 거듭 되돌아가는”(13항) 것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거듭해서 기꺼이 변모되려”(13항)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회개’가 첫째는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결국, ‘지속적인 회개’는 부르심에 대한 끊임없는 응답으로 지속됩니다. 이를 수도승들은 ‘제2서원’으로 삼아 살아갑니다.
이처럼,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적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옴’이라는 외적 실행을 요청합니다. 곧 마음만 찢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행동의 요청이요,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삶’을 불러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하느님 앞에 놓인 처지,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드러난 행동이나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생각을 보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보상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우리는 겉모양이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라, 뼈 속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의 현전을 마주하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희는 어둠이 아니지만 어둠과 놀면 어둠이 되고 말 것입니다. 또한 저희는 빛이 아니지만 빛 앞에 머무르면 빛의 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저희는 천사는 아니지만 하느님 앞에서 노래하고 하느님을 섬긴다면 천사가 와 같이 될 수 있고, 마귀는 아니지만 마귀의 영을 따라 산다면 마귀 같은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6,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주님!
선을 과시하지 않고
악을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게 하소서.
사람들 앞에서
의로움을 내세우지 않고
숨어 계신 당신 앞에
다소곳이 머무르게 하소서.
마음의 단식으로
제 마음이 씻기어 지고
기도로 마음이
순결하게 하소서.
일상의 모든 삶이
당신의 영으로
벅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순의 목적 : 눈에서 비늘이 떨어짐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영적인 개안 수술을 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어느 성격 급한 남자가 새로 산 슈퍼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대시보드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오고 보닛 사이로 검은 연기가 풀풀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한 남자는 차를 세우고 엔진을 점검하는 대신, 차 안의 온도를 낮추려고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고 창문을 다 열었습니다.
"아니, 차가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에어컨을 18도로 맞추면 좀 식겠지!"
그는 시속 100km로 계속 달렸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5분 뒤, 차는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화려한 불꽃놀이를 하며 폭발해버렸습니다. 엔진 오일이 샌다는 근본 원인은 무시한 채, 겉으로 느껴지는 열기만 식히려고 애쓰다 결국 전 재산을 날려버린 것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 이 남자와 똑같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고통의 연기가 나고 경고등이 들어오면, 그 원인인 삼구(三仇), 즉 내 안의 탐욕과 정욕과 교만을 다스릴 생각은 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 듭니다. 하느님께 "돈 더 주시고, 남들보다 잘나게 해주시고, 내 몸 편하게 해주시면 행복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폭발 직전의 엔진에 에어컨을 트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순 시기마다 작심삼일로 끝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 안에 있는 그 삼구가 나의 눈을 가려 내 곁에 계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독약'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구는 우리를 눈뜬 소경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어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그 절절한 눈빛과 사랑을 전혀 보지 못합니다.
오직 돈에 눈이 멀어 남편이 가져오는 월급 봉투의 두께만 확인하고, 계속해서 "나를 사랑한다면 명품 가방이나 아파트로 증명해봐!"라고 표징만을 요구합니다. 이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그 어마어마한 행복을 앞에 두고도 지옥을 삽니다. 탐욕이라는 비계가 그녀의 눈을 가려 남편의 영혼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바리사이적 종교 행태가 낳은 폐해는 실로 무섭습니다.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세르게이 신부』를 보십시오. 주인공 스테판은 전도유망한 장교였으나 약혼녀의 배신으로 수도원에 들어가 세르게이 신부가 됩니다. 그는 누구보다 엄격하게 단식하고 기도하며 성인이라는 칭송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린 '인정받고 싶은 교만'이라는 마귀와 '들끓는 성욕'이라는 육신의 원인을 직시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방탕한 여인이 유혹하러 오자 그는 도끼로 손가락을 잘라 고통으로 유혹을 견디며 외쳤습니다.
"보시오! 나는 이 육체의 고통으로 당신의 유혹을 이겼소!"
사람들은 이 소식에 열광했고 세르게이는 속으로 흐뭇해했습니다. '역시 나는 다르다. 나는 이 정도로 거룩하다.' 그는 하느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행을 잘하는 자신을 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결국 수년 뒤, 자기를 찾아온 불쌍한 소녀를 치유해주려다 들끓는 욕정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범해버린 그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습니다. "나는 성자가 아니라 짐승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고행은 영적 백내장을 더 악화시킬 뿐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끊임없이 표징을 요구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삼구로 가득 차서, 눈앞에 계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 눈을 가린 삼구를 제거하고 하느님의 현존이라는 진짜 행복을 얻기 위한 영적 피트니스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인을 절실히 깨달아 성인이 된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16세기의 성 프랑수아 보르지아입니다. 그는 스페인의 고귀한 공작이었고 권력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평생 흠모했던 아름다운 이사벨라 왕비가 서거했을 때 관을 열고 그 시신을 마주했습니다. 며칠 만에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왕비의 얼굴을 본 순간, 그는 깨달았습니다.
"아! 내가 평생을 바쳐 추구했던 육체의 아름다움과 세속의 영광이 이토록 허무한 것이었구나! 나는 이제 결코 썩지 않을 주님의 아름다움만을 보겠다."
그는 삼구라는 독배를 쏟아버림으로써 영원한 임금님의 얼굴을 볼 눈을 얻었습니다.
또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결정적인 회개 순간을 보십시오. 토마소 다 첼라노가 쓴 『생애』(Vita Prima)에 따르면, 젊은 시절 프란치스코는 귀족적인 자만심(교만)이 강했고 아름다운 옷과 향연(육신)을 즐기던 이였습니다. 특히 그는 나병 환자를 극도로 혐오하여 그들을 보면 코를 막고 멀리 돌아갔습니다. 삼구라는 두꺼운 백내장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한 나병 환자를 마주쳤습니다. 예전 같으면 도망갔겠지만, 그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돈을 건네주는 '자선'을 베풀었고, 혐오감을 이겨내는 '단식'의 정신으로 그의 썩어가는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완전히 낮추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흉측한 고름과 악취로 가득했던 환자의 얼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광채가 나는 만왕의 임금님, 예수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전에 나에게 그토록 쓰게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영혼과 육신의 감미로움으로 변했다." 삼구라는 장막을 걷어내자, 이미 그곳에 계셨던 하느님의 눈부신 행복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점수를 따는 기간이 아닙니다.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삼구라는 암세포를 도려내어 주님을 다시 보게 되는 치유의 기간입니다. 우리가 성체성사를 모시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이 독을 이길 수 없기에, 주님의 생명을 내 안에 받아들여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함입니다.
이번 사순 시기, 그냥 남들이 하니까 하는 숙제는 끝냅시다. 대신 내 안의 삼구를 똑똑히 대면하십시오. "내가 이 돈 때문에 주님을 못 보고 있구나! 내가 이 자존심 때문에 내 곁의 천사들을 못 보고 지옥을 살고 있구나!" 이 원인을 절실히 깨달아야만 우리는 비로소 기쁘게 굶고, 기쁘게 나누고, 기쁘게 무릎 꿇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머리에 얹는 재는 "너는 죽을 존재이니 썩어질 것에 눈멀지 마라"는 하느님의 간절한 충고입니다. 내가 사라진 그 제로의 자리에 주님의 눈부신 얼굴이 비치는 은총의 사순 시기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어릴 때의 일이 하나 생각납니다. 학기 초에 선생님께서 출석부를 보시며 이름을 부르면서, 제게 “‘연’자는 무슨 ‘연’이니?”라고 물으셨습니다. 사실 당시 출석부의 이름은 한글이 아닌, 한자로 적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의 이름 ‘조명연’에서, 연(衍)의 뜻을 잘 모르셨던 것입니다. “‘뻗을 연’입니다”라고 하니, 반 친구들이 모두 크게 웃습니다. 아마도 권투에서 KO패 당하는 선수에게 쓰는 ‘링 위에서 뻗었다’를 생각한 듯합니다. 당시 내성적이었던 저는 제 이름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선생님께서도 또 제 이름의 ‘연’자의 뜻을 물으셨습니다. 붉어진 얼굴로 ‘뻗을 연’이라고 말하자, 이번에도 반 친구들이 크게 웃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름 참 좋다. 밝게 뻗어나간다는 거잖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이름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름에 맞게 살기 위해 더 노력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의미를 알고, 그 의미대로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예쁜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름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교의 훌륭한 신앙 실천(자선, 기도, 단식)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완성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방향의 전환이었습니다.
그 방향의 전환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또한 ‘자기 과시와 인간적 보상’에서 ‘하느님과의 친교’와 ‘하느님 뜻 실현’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신앙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셔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의미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앞서 예쁜 이름보다 그 이름대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신앙 실천도 보이는 모습보다 진정한 의미를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도 나오듯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당시 성전이나 회당에서 고액 기부자들이 헌금하면 나팔을 불어 알렸다고 하지요.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시면서,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꾸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모두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도 위선자들은 공개된 장소인 ‘한길 모퉁이’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골방에 들어가 하느님께 기도해야 했습니다. 단식할 때는 어떻습니까? 경건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얼굴을 흉하게 일그러뜨리거나 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시기의 시작인 오늘 재의 수요일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뜻을 찾는, 그래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서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할 때 비로소 자신과 관계하는 법을 배운다(스벤 브링크만).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우리가 붙들고 있던 이 모든 것은 결국 재처럼 흩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먼지이며, 같은 은총을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먼지임을 고백할 때, 우리는 은총으로 다시 빚어집니다. 먼지임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다투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억지로 높아지려 하지 않습니다.
재는 우리의 유한함을 일깨워 주며, 하느님 앞에 서는 가장 진실한 자리가 됩니다. 오늘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깊이 성찰하는 날, 유한성을 드러내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는 날입니다. 사순(四旬)의 여정은 변화의 여정입니다.
유한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삶은 더 진지해지고, 순간은 더 소중해집니다. 오늘을 바꾸지 않으면 내일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고통은 목적이 아니라 정화로 나아가는 통로입니다. 재는 자아의 허상을 깨우고, 이마에 얹는 재는 곧 마음에 얹는 재가 됩니다. 그것은 방향을 바꾸는 결단의 표지입니다.
우리는 먼지이지만 바로 그 조건 속에서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는 은총의 존재입니다. 흙에서 왔기에 우리는 흙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재의 수요일은 집착을 태우고 본질로 돌아가는 은총의 출발점입니다.
+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말씀으로 은총을 선택하는 사순의 여정이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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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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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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