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열왕 12,26-32; 13,33-34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 복음
마르 8,1-10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12,26-32; 13,33-34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 무렵
26 예로보암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쩌면 나라가 다윗 집안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나를 죽이고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28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29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30 그런데 이 일이 죄가 되었다. 백성은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31 임금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의 자손들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32 예로보암은 여덟째 달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제단 위에서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그는 베텔에서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13,33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34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8,1-10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1 그 무렵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2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3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4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6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7 또 제자들이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8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9 사람들은 사천 명가량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10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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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4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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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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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작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예수님께서 빵 일곱 개와 작은 물고기 몇 마리로 사천 명가량을 먹이신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합니다. 주님의 거침없는 능력에 놀라고, 다시 한번 그 능력에 기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이 복음 이야기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와 능력 자체를 크게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 또한 그분께서는 신이셔서 가능하였을 것이라고 수긍합니다. 그러나 그 능력이 지금의 ‘나’에게도 미친다는 사실, 곧 나도 그 사천 명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에 따르면, 주님께서는 먼저 군중의 배고픔을 알아채시지만 제자들은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마르 8,4)라고 대답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의 반응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태도에서 믿음의 문턱이 생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현실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은총은 곱셈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어놓을 때만, 주님의 은총이 곱해져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 눈에 하찮아 보이는 작은 노력일지라도, 주님께서는 결코 무시하시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하여 0에는 무엇을 곱해도 결과가 0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 오늘 하루, 우리도 결심해 봅니다. 단 한 가지라도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을 실천해 보는 것입니다. 기도 한 번, 용서 한 번, 감사 한 번, 작지만 끈기 있는 그 시도들이 결국 일곱 바구니의 결실로 돌아오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누가 하느냐고요?
어제에 이어 오늘 복음도 마르코 복음에만 있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6장에서 5천 명을 먹인 기적에 이어 4천 명을 먹이시는 8장의 얘기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다른 복음에 없는 얘기를 마르코 복음은 왜 또 하는가? 다른 복음에 없다면 이것은 실제 사건이 아닌 것이 아닌가? 실제 사건이 아니라면 이걸 전하는 어떤 의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두 사건은 비슷하면서도 같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5천 명 먹일 때는 제자들이 굶주린 이들의 아픔을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냐고 주님께 문제 제기하는데 오늘은 백성들의 굶주림에 무관심합니다. 그리고 먹이고자 하는 주님께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냐고도 합니다.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저 사람들을 배불릴 수 있겠습니까?”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보며 우리도 그렇지 않은지 반성하게 됩니다.
첫째는 어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에 대한 무관심 반성입니다. 둘째는 그래서 그들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지 않는 점입니다. 5천 명 기적 때는 굶주리는 이웃에 대해 걱정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 뭘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주님께 여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 것이며 청원 기도를 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래서 움직임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 무슨 일이 있어도 뭔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들어 알고는 있어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지 내가 할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먼 곳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가까운 곳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에게 라자로가 그렇게 가까이 곧 자기 집 문간에 있어도 무관심과 무관계였던 것처럼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그들의 문제이고 하느님의 문제입니다.
세 번째는 불신의 문제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먹일 일에 대해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누가 그것을 할 수 있겠냐며 발뺌하려고 합니다. 발뺌이란 아예 그 문제에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자기들을 통해 그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을 불신한 셈입니다.
5천 명을 먹이실 때 제자들이 가진 작은 것을 가지고 다 먹이셨는데 누가 그것을 할 수 있겠냐며 자기들은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주님이라고 할 수 있겠냐는 식으로 불신의 태도를 보입니다. 내가 싫으면 하느님도 하기 싫어하실까요? 내가 하지 못하면 하느님도 못하실까요?
그러고 보면 사랑 없음이 맨 밑바탕에 있습니다. 사랑 없음이 아무것도 할 의욕 없음이 되고, 의욕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느님께라도 믿음을 두고 청하는 것조차 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누가 하느냐고요? 우리는 그 답을 압니다. 하느님께서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때 도구 될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성경을 풀이해 주는 것은 빵을 떼어 주는 것과 같다.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마르 8,2-3)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이 청하지도 않는데도 이미 먹이셨고, 미처 바라지도 않는 데도 이미 용서하셨고, 가엷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너희에게는 빵이 몇 개 있느냐?’ 그러자 그들이 ‘일곱 개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르 7,5)
그렇습니다. 빵은 이미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것을 일깨워주시고 확인시켜 주십니다. 사실, 그들에게는 빵이 이미 “일곱 개”나 있었습니다. ‘일곱’은 완전함의 숫자입니다. 곧 이미 차고 넘치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빵”이 없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니,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오늘 날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약 120억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현재 인구가 약 85억이라면 그 양은 차고 넘치지만, 버리는 음씩 쓰레기가 쌓여가도 굶주린 이들에게는 주지를 않는 세상입니다.
<유엔세계식량기구>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2017년), 현재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앗아가는 것이 ‘기아’이고, 매일 1만 6천명의 어린아이가 기아로 죽고 있으며, 이는 모든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다 합친 숫자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또한 세계 인구의 일곱 명 중이 한 명은 오늘 저녁식사를 굶은 채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정당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기는 것은 무지요, ‘있는 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나누기를 원하지 않은 것은 무관심과 무감각, 무책임과 이기심, 자기 안주와 사랑이 부족한 까닭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보지 못하고 찾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무지요 어리석음이요, 사랑의 소명에 대한 무감각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그 “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말씀의 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미 ‘은총’입니다. 우리가 이 빵의 가치를 진정으로 안다면, 벅찬 감격에 까무러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 있는 바로 그 빵’으로 감사드리셨고, 제자들은 ‘그 빵’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 “빵”을 먹었고, 또한 곧 먹을 것입니다. 성찬의 전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말씀의 전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고도 먹은 줄을 모른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먹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말씀을 나누는 일, 곧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
“성경을 풀이해 주는 것은 빵을 떼어 주는 것과 같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8,2
저 군중이 가엾구나.
주님!
속 깊은 곳을 환히 보시고
깊이 숨겨진 말도 다 들으시니
제 마음 속 당신의 빛을 비추소서.
사랑을 가로막는 무관심과
이기심을 벗겨내고 제 안에 심어준
당신의 사랑과 연민을 보게 하소서.
이미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을 알고
감사할 줄을 알게 하소서.
가진 것을 축복할 줄을 알게 하시고
나눌 줄을 알게 하소서.
가엾이 보는 눈과 마음을 주시고
약한 이들을 위할 줄을 아는
사랑의 소명을 깨우쳐주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책에서 이런 내용을 읽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이백 가지 소원을 빌어요. 근데 있죠. 이루어지는 건 삼백 가지래요. 누군가 나를 위해 빌어주는 소원도 있어서요.”(윤두열, ‘우리 밝은 쪽으로 걷자’ 중에서)
제가 이제까지 빌었던 소원은 이백 가지가 훨씬 넘는 것 같습니다. 쉬지 않고 청원 기도를 바쳤고, 지금도 청원 기도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아주 조금 성숙해지면서 나보다 남을 위한 기도가 많아짐은 분명합니다. 또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음도 깨닫습니다.
착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기도해 보니 남을 위해 기도할 때 훨씬 제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대감을 갖고 살게 됩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 솔직히 든든한 제 편이 없어졌다는 생각에 허전함을 많이 느꼈었습니다. 형제들이 있지만, 그들 역시 가족이 있기에 저의 자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외로움을 많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 외로움이 또 상실감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지금을 힘차게 사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들에게 더 많은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주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마르 8,2)라고 많은 군중을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흘 밤낮으로 예수님 곁에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을 통해 얻는 영적 체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주시는 자리였고, 군중은 받는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하느님 기준으로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마르 8,5)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들도 주어야 함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성체성사를 예고하는 장면으로, 하느님의 나눔은 풍성한 은총임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사천 명가량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게 됩니다. 여기에 어떤 차별도 어떤 부족함도 없습니다.
우리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커다란 은총과 사랑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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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언
어디서 무엇을 하건 간에 적당히 대충하지 말라. 열 가지를 해야 한다면 스무 가지를 하라(데니스 웨이틀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먹을 것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나누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워주신 것은 빵만이 아니라 우리 존재 깊은 곳의 허기였습니다. 우리의 적음은 위기가 아니라 관계가 시작되는 은총의 자리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결핍은 상처가 아니라 채워짐의 통로가 됩니다.
같은 현실도 경쟁의 눈으로 보면 결핍이지만 감사의 눈으로 보면 이미 충만입니다. 참된 배부름은 많이 얻어서가 아니라 하느님과 하나 되었음을 깨달을 때 옵니다. 먹고도 감사하지 않으면 그 배부름은 신앙이 될 수 없고, 그 충만은 교만이 됩니다. 배부름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우리는 소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로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부름은 비교가 멈춘 자리, 불안이 잠잠해진 자리입니다. 나눔과 감사의 관계 안에서 삶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의미 있는 만남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침만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성체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가장 깊은 선물이며, 사랑의 살아 있는 중심입니다. 그 은총의 중심이 우리를 세상 안에서 사랑이 되게 하시고, 우리 모두를 참으로 배부르게 하심을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오늘 무엇을 내어주고 무엇을 나누고 있는지요. 모두를 배부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참된 사랑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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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8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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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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