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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2.1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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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2월 1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열왕 8,22-23.27-30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 복음
    마르 7,1-13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8,22-23.27-30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으니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그 무렵

2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주님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펼치고

23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27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저 하늘, 하늘 위의 하늘도 당신을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집이야 오죽하겠습니까?

28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종의 기도와 간청을 돌아보시어, 오늘 당신 종이 당신 앞에서 드리는 이 부르짖음과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29 그리하여 당신의 눈을 뜨시고 밤낮으로 이 집을, 곧 당신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머무를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이곳을 살피시어, 당신 종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30 또한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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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7,1-1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그때에

1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왔다가,

2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더러운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본디 바리사이뿐만 아니라 모든 유다인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의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4 장터에서 돌아온 뒤에 몸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이 밖에도 지켜야 할 관습이 많은데,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상을 씻는 일들이다.

5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9 또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

10 모세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리고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11 그런데 너희는 누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드릴 공양은 코르반, 곧 하느님께 바치는 예물입니다.’ 하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12 그러면서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하게 한다.

13 너희는 이렇게 너희가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폐기하는 것이다. 너희는 이런 짓들을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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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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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0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녀 스콜라스티카 소개 00:06

✚ 미사시작 00:55

✚ 강론시작 07:4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진심은 말이 아니라 삶이다.

한국인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표현 가운데 ‘막말로’, ‘까놓고 말해서’, ‘인간적으로’, ‘솔직히’, ‘진짜’와 같은 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 표현들에는 아마도 꾸밈없이, 거짓 없이 마음을 털어놓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에서도 이런 ‘진심’이 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 ‘진심’이라는 말에 잠시 머물러 봅니다. 진심! 진심이란 ‘참 진(眞)’, 곧 참된 마음, 거짓 없는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혼내신 까닭도, 바로 이 진심이 없이 규정에만 매달리는 행동과 태도를 비판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심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으로 오늘 독서를 읽어 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1열왕 8,23).

곧 참된 마음이란, 결국 마음을 다하는 ‘다할 진(盡)’의 진심이기도 한 것이 아닐까요? 하기야 참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어쩌다 한두 번의 마음가짐으로는 불가능함을, 우리는 이미 알면서도 너무 쉽게 잊는 듯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 진정 온 마음을 다하는 실천부터 시작해 보기로 결심하면 어떨까요? 반성할 때에는 바로 지금이 세상 최후의 심판 날인 듯이,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낄 때는 마치 내 몸이 아픈 것처럼 진심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 환호송에 대한 우리의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

“주 하느님, 당신 법에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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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마음은 자꾸 고쳐먹어야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다 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자주 입버릇처럼 사랑만 해도 되는 삶을 사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고 수도 생활은 참 행복한 삶이라고 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저는 부모와 처자식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없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의무도 없이 얼마든지 사랑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행복한 삶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삶으로 저를 부르신 것이 저의 행복만을 위해 살라고 부르셨겠습니까? 온 마음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느님께서 부르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 온전히 사랑함으로써 나도 행복하고, 이웃 사랑을 헌신적으로 함으로써 이웃도 행복하게 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저는 적당히 사랑하는 것으로 할 바 다했다며 더 사랑하려고 하지 않고 내 행복에 안주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에 매이지 않으려는 것일 뿐이고, 사랑도 참자유도 아닌 오직 내 맘대로 하면서 맘 편하게 살려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주님께서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있다고 하시는 저의 ‘그 마음’은 내 맘대로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자주 독백처럼 말합니다.

내 마음이 참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마음은 사실 자꾸 고쳐먹어야 합니다. 고장난 기계만 아니라 마음도 고쳐야 합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아침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내 맘대로 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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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습니까?

예로부터 어디서나 ‘먹는 문제’가 항상 제일 예민합니다. 싸움 중에서도 ‘밥그릇’ 싸움이 가장 치열합니다. 공동체에서도 가장 말 많고 힘든 소임가운데 하나가 바로 주방입니다. <복음서>에서도 안식일에 제자들이 벼이삭을 따먹었다고 문제 삼기도 하고,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문제 삼고, 또 단식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예루살렘에서 두 번째(첫 번째는 3,22절에 나옴)로 온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곧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시비를 겁니다.

이는 단지 위생이나 청결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위 ‘정결법’에 대한 논쟁입니다. 그런데 ‘손 씻는 정결법’은 율법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시비의 준거로 내세운 것은 “조상들의 전통”(구전율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느님 신앙의 핵심과는 상관없는 일로 당시의 사회를 이끌어가던 전통관습방식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이를 마치 하느님의 뜻인 양 호도하여 종교적 권위를 덧붙였습니다. 그리하여 오히려 하느님의 계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관습을 앞세우는 어긋난 행동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레위기> 11장의 ‘정결법’에 의거하여 음식물만 깨끗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잘못 적용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음식을 먹는 사람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은 몸의 깨끗함이 아니라, ‘마음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잘못 적용하여 손을 씻는 예법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린다.”(마르 7,7-9)

오늘날 우리도 ‘사람의 규정’을 지키려다 ‘하느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사회적 관습이나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의 규정’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막상 ‘복음의 정신’을 놓칠 때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잘못된 관습이나 전통들, 그리고 잘못 배운 교리나 가르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기 규범’이나 ‘자기 방식’이 옳다고 주장하기에 앞서, 먼저 ‘복음정신’과 ‘하느님의 뜻’을 묻고 그분께 의탁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7,8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주님!
몸에 밴 잘못된 관습과 전통에 매여
당신의 계명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틀에 맞춘 잘못된 지식과 신념을 지키려다
당신의 사랑을 거스르지 않게 하소서.

나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나 자신을 지키기보다,
당신을 사랑하는지를 묻게 하소서.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제가 원하는 하늘나라가 아니라
당신이 원하시는
하늘나라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관객에 자유로워지려면, 감독의 시선을 의식하라.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손을 씻고, 잔을 닦고, 겉모습을 꾸미는 것. 그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였습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우리 인생도 마치 연극 무대와 같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때로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어 연기를 합니다. 여기서 연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 연기론의 아버지 스타니슬라프스키가 주창한 ‘제4의 벽(The Fourth Wall)’입니다.

무대는 3면이 막혀 있고 관객석 쪽은 뚫려 있지만, 배우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고 상상해야 합니다. 관객이 없다고 믿고 배역에만 몰입해야 진짜 연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벽이 무너지는 순간, 연기는 코미디가 됩니다.

어느 아마추어 연극배우가 무대에 올랐습니다. 비장한 독백을 하며 눈물을 흘려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관객석 맨 앞줄에 앉은 어머니가 자꾸 이상한 손짓을 보냅니다. 손을 바지춤에 대고 위로 올리는 시늉을 반복하는 겁니다. 배우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아, 내 남대문이 열렸구나!’

그때부터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바지 지퍼를 사수하려는 코미디언이 되었습니다. 대사는 꼬이고, 시선은 불안하고, 관객들은 킥킥거립니다. 관객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그는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무대 위에서 길을 잃은 것입니다.

우리 삶도 이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이라는 연출자가 주신 대본대로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세상이라는 관객석의 눈치를 봅니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면 어쩌지?”, “이 옷을 입으면 촌스럽다고 할까?” 관객의 반응에 갇히면, 우리는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삼류 연기를 하게 됩니다.

관객의 시선에 중독되어 인생을 망친 대표적인 인물이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사교계의 제왕 ‘보 브러멜(Beau Brummell)’입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패셔니스타였습니다. 매일 아침 목에 넥타이를 매는 데만 5시간을 썼고, 구두를 샴페인으로 닦아 광을 냈습니다. 오직 사람들에게 “멋지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그는 막대한 빚을 졌고, 왕세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영혼을 팔았습니다.

그의 인생 목표는 ‘남들에게 보이는 나’였습니다. 하지만 유행이 지나고 빚더미에 앉게 되자, 관객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렸습니다. 그는 결국 프랑스의 허름한 정신병원에서 넥타이도 매지 못한 채, 자신의 똥오줌을 뒤집어쓰고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타인의 시선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습니다. 거기에 내 인생의 닻을 내리면, 우리는 난파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이라는 감독의 ‘컷(Cut)!’ 소리는 무시하고, 사람들 박수 소리에만 취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위선자’라는 꼬리표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지독한 관객의 시선에서 탈출하여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의 확립입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명확해야 합니다.

‘로마의 사도’라 불리는 성 필립보 네리입니다. 그는 늘 기쁨에 차 있었고 유머가 넘쳤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며 “성인이다!”라고 칭송하자, 그는 교만해지지 않기 위해 기상천외한 행동을 합니다. 수염을 딱 절반만 깎고 거리를 활보하고, 커다란 쿠션을 머리에 이고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은 “저 신부님이 미쳤나 봐” 하며 수군거리고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필립보 네리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그는 세상이라는 관객을 조롱하고, 오직 자신의 연출자이신 하느님과 눈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람들이 저를 바보라 하니 참 좋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당신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관객이 야유를 보내든 환호를 보내든, 감독의 “OK” 사인 하나면 족하다는 배짱. 이 배짱이 우리를 진실되고 거룩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초대 교회의 교부 성 그레고리오는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는 그 대상이 된다”고 했습니다.우리가 세상의 시선, 돈, 명예라는 더러운 유리창 얼룩만 바라보면, 우리 마음도 얼룩덜룩해집니다. 하지만 유리창 너머에 계신 하느님, 그분이 만드신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그 아름다움을 닮은 존재가 됩니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보아야 하고, 그렇게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성당 안에서도 이런 것을 잘 느낍니다. 전화벨 소리가 울리고, 시끄럽게 떠들고, 심지어 코를 골면서 조시는 분이 있어도 좀처럼 감정이 동요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들이 아니라 감실 안의 예수님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앨리스 워커의 소설 『컬러 퍼플』에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옵니다. 등장인물 슈그는 억압받는 여성 셀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말이야, 우리가 어느 들판을 지나가다가 거기 피어 있는 보라색 꽃(Color Purple)을 보고도 눈길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면, 하느님이 몹시 화를 내실 거라고 생각해.”

하느님은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그 꽃을 거기 두셨는데, 우리가 무관심하게 지나치면 그분의 사랑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깔아놓은 이 아름다운 옷자락의 주름 하나하나를 기쁘게 감상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혼자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선택하십시오. 변덕스러운 관객(세상)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위해 들판에 보라색 꽃을 피워두신 감독(하느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기쁘게 사시겠습니까? 믿음은 선택과 결단입니다. 그리고 실천입니다. 그러면 비로소 참 믿음이 생겨납니다.

오늘 하루, 사람들의 평가라는 제4의 벽을 과감히 세우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의 창문을 닦으며, 길가에 핀 작은 꽃 한 송이에서 나를 향해 웃고 계신 하느님의 시선을 발견하십시오. 그 시선과 마주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 보면, 칸칸이 이런 글이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 ‘4당5락’(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 ‘잠은 죽어서 자라’, ‘지금 자면 배우자가 바뀐다.’ 등등…. 실제로 많은 학생이 잠을 줄이고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잠을 줄이고 오래 공부하는 것보다 얼마나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잠을 줄이기보다 유혹을 줄여라. 오래 앉는 것이 아니라, 깊게 집중하라.’ 등의 문구가 요즘 사회에 등장합니다.  

어떤 길이 맞을까요? 과학적으로도 현대의 이 방법이 더 맞다고 합니다. 무조건 잠을 줄인다고 효과가 있지 않음이 실제로 입증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의 사람들의 더 학업 성적이 높을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유혹이 너무 많아서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것을 미신적인 것에서만 찾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진리의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진리의 길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어째서 선생님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따르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마르 7,5)라고 말합니다. 조상들의 전통은 이는 모세의 율법 자체가 아니라, 그 율법을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기 위해 랍비들이 세운 구전 율법을 말합니다. 바리사이들은 이 구전 율법을 성문법만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여기서 ‘더럽다’라는 위생적인 불결함이 아니라 ‘제의적 부정’을 뜻합니다. 속된 것과 접촉하여 제의적으로 부정해진 상태로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상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거룩함을 분리와 형식적 정결로 이해했으나, 예수님은 이를 거부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 자체를 폐기하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정의를 잃어버리고, 세부적인 규칙 준수에만 집착하여 사람을 옥죄는 종교적 태도를 비판하신 것입니다. 수단(전통)이 목적(하느님의 뜻)을 앞설 때 종교는 타락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변치 않는 진리(사랑, 십계명 등)이지만, 사람의 전통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관습입니다. 바리사이들의 잘못은 이 우선순위를 뒤바꾼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선자’라고 부르십니다. 이 단어는 원래 그리스 연극의 '배우'를 뜻합니다. 즉, 겉으로는 경건한 척 연기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전통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정작 더 상위 권위인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있다고 질타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다.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어디에도 데려다주지 않는다(윌 로저스).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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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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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권 8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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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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