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열왕 8,1-7.9-13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 복음
마르 6,53-56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8,1-7.9-13

계약 궤를 지성소 안에 들여다 놓았다.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
1 솔로몬은 주님의 계약 궤를 시온, 곧 다윗 성에서 모시고 올라오려고, 이스라엘의 원로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각 가문 대표인 지파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예루살렘으로 자기 앞에 소집하였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에타님 달, 곧 일곱째 달의 축제 때에 솔로몬 임금 앞으로 모였다.
3 이스라엘의 모든 원로가 도착하자 사제들이 궤를 메었다.
4 그들은 주님의 궤뿐 아니라 만남의 천막과 그 천막 안에 있는 거룩한 기물들도 모두 가지고 올라갔는데, 사제와 레위인들이 그것들을 가지고 올라갔다.
5 솔로몬 임금과 그 앞에 모여든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함께 궤 앞에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은 양과 황소를 잡아 바쳤다.
6 그러고 나서 사제들이 주님의 계약 궤를 제자리에, 곧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 안 커룹들의 날개 아래에 들여다 놓았다.
7 커룹들은 궤가 있는 자리 위에 날개를 펼쳐 궤와 채를 덮었다.
9 궤 안에는 두 개의 돌판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돌판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올 때, 주님께서 그들과 계약을 맺으신 호렙에서 모세가 넣어 둔 것이다.
10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11 사제들은 그 구름 때문에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주님의 영광이 주님의 집에 가득 찼던 것이다.
12 그때 솔로몬이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6,53-56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53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이르러 배를 대었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곧 예수님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께서 계시다는 곳마다 데려오기 시작하였다.
56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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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간절함은 언제나 길이 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병든 이들”(마르 6,55)은 큰 병에 걸린 몇 사람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며 행복하게 살도록 태어난 우리가 삶의 걱정과 고민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어쩌면 우리 또한 병든 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보여 주신 병자들의 치유를 통하여 우리가 현실의 고민과 문제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알려 주신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병고와 장애에도 주저앉지 않고 당신을 찾은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 아래 오늘 복음에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6,56)라는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눈길과 손길, 그 모든 간절함을 외면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온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 특별한 치유를 받은 이들만 낫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그저 옷에 손이 닿기만 해도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조차도 품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옷에 손만 닿은 이도 치유해 주셨다면, 오늘날 그분의 몸인 성체를 받아 모시는 우리의 청은 얼마나 더 잘 들어주시겠습니까. 이러한 깨달음이 오늘 영성체송 안에서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살아가면서 갖가지 문제에 얽매여 삶이 메마를 때, ‘기도’라는 우리만의 방법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거창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옷자락에 손을 대고자 하는 마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려는 겸손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내 안의 안에 지성소를!
“사제들은 주님의 계약 궤를 집의 안쪽 성소인 지성소에 들여다 놓았다. 사제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주님의 집을 가득 채웠다.”
오늘 열왕기는 아버지 다윗이 지으려던 성전을 아들 솔로몬이 짓고서 온 백성과 사제와 함께 하느님께 봉헌하는 얘기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아버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할 때 하느님은 집을 짓지 말고 집안을 하느님의 집안으로 만들라고 하며 만류하셨는데 아들 솔로몬에게는 성전을 지어 바치는 것을 이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주에 성전 건물인 집을 짓는 것보다 하느님 공동체인 집안을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오늘 지성소를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세우는 것에 대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일생 성체가 모셔져 있는 수도원에서 살았는데 그런 제가 지난 7년여는 성당이 없는 수도원 곧 성체가 모셔져 있지 않은 수도원에서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성체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은 미사 때만 가능했고, 기도와 미사도 성당이 아니라 거실에서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당을 받는 막노동을 했고, 다른 형제는 버스 운전을 밤과 낮 번갈아 했기에 기도와 미사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고 혼자 미사 드릴 때는 새벽 서너 시에 저 혼자서 미사를 봉헌할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장소와 시간이 불규칙하기에 불안정하기도 하고, 성당에서 거룩하게 미사 드리고 성체조배도 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이때 제가 터득한 것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주님을 만나는 법이었습니다.
토마스 첼라노가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쓰면서 프란치스코의 기도에 대해 전해주길 성당도 고요한 곳도 없을 때 그는 가슴에 성전을 마련하고 기도했다고 하는데 감히 말하자면 저도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성 밖이 아닌 시온성까지 곧 다윗성까지 모셔 오고, 다윗성으로 모셔 온 뒤에는 성전 안으로 모셔 들이고, 성전 안에서도 지성소를 마련하여 그곳에 모십니다. 이렇게 지성소에 모시기까지 솔로몬의 지극한 정성을 보면서 저도 주님을 제 안의 지성소까지 모셔야 한다는 자극을 받습니다.
제 몸과 마음 밖의 성전이나 지성소가 아니라 내 안의 안에 성전과 지성소를, 내 마음 안의 속마음에 지성소를 짓고 거기에 모셔야겠다는 자극 말입니다. 성전 안에 내가 머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지성소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이 곧 예수님의 옷자락이다.
오늘 <독서>는 태초의 ‘창조 이야기’이고, <복음>은 예수님의 일행이 호수를 건너 온 곳, 곧 겐네사렛 땅에서의 ‘새로운 창조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도 ‘새롭게 창조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마르 6,56)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합니다(설교집).
“그분을 밀쳐대는 이는 많지만, 믿음으로 만지는 이는 적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이 ‘새롭게 창조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열 두 해 동안 하혈증을 앓고 있던 여인’(마르 5,5-25)처럼, 믿음으로 예수님께 접근해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이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권능으로 새로 태어난 이들입니다. 곧 ‘믿음으로 새롭게 창조된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손가락으로 내 손을 만져보아라. 또 너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요한 20,27)
사실, 손을 댄 이는 우리지만, 만지신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우리를 매만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더듬은 것입니다. 당신 손으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쪼물딱거리시고,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을 낫게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는 손을 대었을 뿐, 우리를 붙잡으시는 분은 그분이십니다. 우리를 당신 심장으로 끌어당기신 분은 그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알아본 이들’이 병든 이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이 계신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그들은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분의 옷자락에 손이라도 대게 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청을 들어 주셨고, 과연 그분의 옷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는 이들의 표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중재하는 이가 되어야 하고, 또한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이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 그들을 위해 간청하고, 직접 예수님을 만지며, 그분 사랑의 손길을 반겨 맞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옷을 만지듯, 말씀 속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만져야 할 일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지고,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흘러들게 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1코린 1,18)
그렇습니다. ‘말씀’이 구원이 흘러나오는 예수님의 옷자락입니다. 사실, 오늘도 우리는 옷자락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먹습니다. 그러니 사랑의 전류가 만땅 충전된 몸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6,56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주님!
당신은 옷자락뿐만이 아니라
당신 몸을 통째로 내어주십니다.
손을 내미는 이는 제가 아니라 당신이며
저를 붙드신 분도 당신이십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먼저 어루만지시고
찾기만 하면 먼저 찾아오시는 분도 당신이십니다.
하오니, 주님!
제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여 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느님 자녀가 되면 모든 것에서 하느님 옷자락이 보입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은 참으로 벅찬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겐네사렛 호숫가에 내리시자마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곧바로 알아보고, 온 지방을 뛰어다니며 병자들을 데려옵니다. 그들의 청은 딱 하나였습니다.
“스승님, 제발 저 병자들이 스승님의 옷자락 술에라도 손을 대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손을 댄 사람마다 모두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할 때 이렇게 투덜거립니다.
“하느님, 도대체 어디 계십니까? 한 번만 짠 하고 나타나시면 제가 성인이 될 텐데요. 제발 로또 번호라도 한 번 불러주시든가, 꿈에라도 나와주세요.”
그런데 정말 하느님이 안 보이시는 걸까요? 문제는 하느님이 숨어 계신 게 아니라, 우리 눈에 ‘백내장’이 끼어 그분의 옷자락을 ‘옷자락’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답답한 영적 까막눈인지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짐 캐리가 주연한 ‘브루스 올마이티’입니다. 주인공 브루스는 억세게 운이 없는 날, 빗길 운전을 하며 하늘에 대고 삿대질을 합니다.
“하느님, 제발 저에게 신호를 좀 주세요! 당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좀 보이란 말입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차 앞으로 공사 트럭이 지나갑니다. 트럭 뒤에는 큼지막한 경고판들이 번쩍거립니다.
‘CAUTION(주의)’, ‘STOP(정지)’, ‘DEAD END(막다른 길)’.
이보다 더 확실한 신호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흥분한 브루스는 어떻게 합니까? “비켜! 이 똥차야! 내 앞길 막지 말고!”라며 트럭을 추월해 버리고는, 계속해서 “왜 신호를 안 주시냐”고 징징거리다 결국 전봇대를 들이받습니다.
오래된 우화인 ‘홍수와 보트’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홍수가 나서 지붕 위에 고립된 신자가 구조대원이 보낸 보트도 거절하고, 헬기도 거절합니다.
“하느님이 직접 구해주실 겁니다!”
결국 물에 빠져 죽은 그는 천국에서 따집니다.
“왜 안 구해 주셨습니까?”
하느님께서 기가 차서 대답하십니다.
“야 이 녀석아, 내가 보트도 보내고 헬기도 보냈는데 네가 안 탔잖아! 내가 그럼 수영복 입고 내려가야 속이 시원하겠냐?”
보트와 헬기, 교통 표지판은 투박해 보이는 하느님의 옷자락이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사제, 의사, 가족의 잔소리 같은 평범한 수단들을 거부하고, 천사가 나팔 불며 내려오는 ‘직통 계시’만 바라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오만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옷자락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먼저 ‘정체성’이 바로 서야 합니다. 나는 빛을 사랑하는 존재,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빛을 사랑하는 존재가 캄캄한 동굴에 갇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어둠을 묵상하지 않습니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바늘구멍만 한 틈새라도 빛이 스며 들어오는 곳을 필사적으로 찾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기어갑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믿는 사람은 세상이라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이웃의 작은 선행, 스쳐 지나가는 바람, 심지어 고통스러운 사건 안에서도 스며 들어오는 하느님의 빛(옷자락)을 발견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냥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보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으로 ‘타인을 인간으로 바라보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끔찍한 학살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인간’이 아닌 ‘벌레’나 ‘도구’로 규정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하느님의 자녀로 존중하지 않으면 타인도 존중할 수 없고, 결국 짐승이 되고 맙니다.결국 신앙은 ‘숨은그림찾기’입니다. 세상이라는 그림 속에서 하느님의 옷자락을 찾아내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치트키는 바로 ‘희망, 믿음, 사랑’입니다.
기자가 “어떻게 그 징그러운 환자들을 만집니까?”라고 묻자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답했습니다.
“이분들은 변장하고 오신 예수님입니다. 저는 지금 예수님의 상처를 닦아드리고 있습니다.”
수녀님은 의도적으로 환자들의 고름 속에서 하느님의 옷자락을 찾아내셨습니다. 그것을 바랐고, 믿었고,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보려고 했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본인도 거룩해졌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을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바란다면, 이제 눈을 크게 뜨고 찾아야 합니다.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 속 썩이는 자식의 등짝,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이 모든 것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하느님의 옷자락입니다.
오늘 하루, 똥파리처럼 남의 흠집만 찾아다니며 “하느님은 없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대신 꿀벌처럼 형제의 마음속에 숨겨진 작은 꽃을 찾아내십시오. 사랑하려 하면 모든 것에서 하느님 옷자락이 보입니다. 그 옷자락을 꽉 잡으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너무 ’늦은 때‘란 없어 보입니다. 30대에 “나는 매일 운동해”라고 했던 사람은 4~50대가 되면 아주 튼튼한 몸을 갖게 됩니다. 4~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6~70대에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이름을 날리는 사람도 봅니다. 제 친구 중에 30대에 수능을 보고 의대에 들어가 지금 의사로 보람 있게 사는 친구도 있습니다. 사실 30대에 수능을 본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모두 말렸습니다. 늦었다고, 정신을 차리라고…. 그러나 늦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했던 우리가 정신 차려야 했습니다.
고민만 하고 있으면 성취도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시작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고민의 시간을 줄이는 것이고, 그 노력이 분명 나를 새로운 나로 변화시켜 줄 것입니다.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비록 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해도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고통을 쌓아야 행복에 가까워지고,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야 뛸 수 있고, 실패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성공으로 가는 법은 없다.”
늦었다는 말을 또 그런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지금 시작하면 됩니다. 꾸준히, 열심히…. 이렇게 살아야 먼 훗날 하느님 나라에서 당당할 수 있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삶, 열심히 살았다고 칭찬받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그곳에 계셨고, 사람들이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의 육화의 신비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의 치유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마르 6,56)라는 표현을 씁니다. 또 들것에 눕혀 있는 병든 이들이 나오는데, ’들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신분이나 자격에 상관없이 치유하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몰려드는 병자들을 귀찮아하거나 조건을 걸지 않으시고, 단지 믿음을 가지고 손을 뻗는 모든 이에게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그 옷자락 술에 손을 댄 사람은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 그들 중에는 오랫동안 병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포기하고 좌절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은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번 더 힘을 내서 예수님 옷자락 술을 향해 손을 뻗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옷자락 술이 있습니다. 바로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체성사 그리고 나의 이웃을 향한 사랑 실천이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옷자락 술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옷자락 술에 손을 대는 믿음을 가지고 있나요? 세상일이 바쁘다고, 주님을 도저히 모르겠다고, 그밖에 각종 이유를 붙여서 아예 주님 곁으로 가지 않는 우리가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 불가능하면서도 필연적인 존재이다(호프 자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손을 댄다는 행위는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는 신뢰의 행위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삶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믿음은 이미 내려와 계신 하느님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아픔이 있는 곳으로 먼저 가시는 은총의 현존입니다.
구원은 강한 확신에서가 아니라, 부서지기 쉬운 의탁에서 이루어집니다.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현존을 놓치지 않는 깨어 있음이 구원입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치유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맡길 때 열리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머리로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바로 서는 겸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조심스레 손을 내미는 그 자리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손을 내밀 때 비로소 우리는 고립된 주체에서 관계적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손을 내민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지 않습니다.
인격적 접촉이란 누군가를 바꾸기 위해 만지는 행위가 아니라, 그가 그대로 존재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가장 깊은 수용입니다. 관계를 회복시키고, 관계의 온도를 바꿉니다. 예수님께는 사람을 살리는 가장 깊은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을 믿습니다. 구원은 손을 내미는 만남이요 만남을 통한 회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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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6장 5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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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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