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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2.0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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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5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 기념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2월 5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열왕 2,1-4.10-12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솔로몬아,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 복음
    마르 6,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2,1-4.10-12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솔로몬아,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1 다윗은 죽을 날이 가까워지자,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렇게 일렀다.

2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3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4 또한 주님께서 나에게 ‘네 자손들이 제 길을 지켜 내 앞에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성실히 걸으면, 네 자손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오를 사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당신 약속을 그대로 이루어 주실 것이다.

10 다윗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묻혔다.

11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은 마흔 해이다. 헤브론에서 일곱 해, 예루살렘에서 서른세 해를 다스렸다.

12 솔로몬이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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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6,7-1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7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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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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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5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녀 아가타 소개 00:06

✚ 교황님 2월 기도지향 01:05

✚ 미사시작 01:16

✚ 강론시작 07:3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완벽해서가 아니라 믿어서 파견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그런데 왜 굳이 제자들을 보내셨을까요? 예수님께서 직접 마귀를 쫓고 병자를 고치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아마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수동적 태도에 머무를까 염려하신 것이 아닐까요? 모든 일을 예수님께서 해 주신다면,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할수록 오히려 능동성을 잃고, 점점 의존적으로 변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든 것이 풍족하게 마련된 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부족함 가운데 그들을 파견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제자들이 책임을 느끼며, 고난 속에서도 성장하고 강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 또한 복음을 전하라고 세상에 파견된 이들입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이 하면 되지요.” 또는 “먼저 저에게 기쁨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태도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요? 때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부족하다며 불평하고, 복음을 전하기보다 불만을 토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물질과 세속의 기쁨에만 집중한 나머지, 주님께서 맡기신 고유한 사명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부족하더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제자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주님께 파견받은 제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사람을 착각하거나 잘못 부르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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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아무것도 없이' 정신

저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잘 아실 텐데 제 일생 꿈은 오늘 복음 말씀을 프란치스코 방식으로 사는 것 곧 돌아다니며 일도 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그래서 여러 차례 시도한 바도 있고 안식년이 주어지면 올해 이렇게 지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얘기하면 흉내나 조금 내고 시늉이나 하는 것이지,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똑같이 실천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면 두 가지 면에서 오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다니라고 하시는데 제가 최소한으로 가지고 다녀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다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없이 다니지는 못할지라도 그 정신만은 지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 그 정신이란 무엇이겠습니까? 프란치스칸 정신은 다니며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의 방식이기도 하지요.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데 바오로 사도나 프란치스코가 애긍으로 산 것이 아닙니다.

게으르지 않고 열심히 일해야 하고 일을 해줬는데도 먹을 것을 주지 않을 때 그때 먹을 것을 애긍하라고 하였고 돈은 받지 말라고 하였지요. 그래서 저는 아무것도 없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돈 없이 일해서 먹고 살 생각이며 일을 하더라도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려운 집을 돕는 차원에서 할 것입니다.

사실 ‘아무것도 없이’ 정신 곧 무소유의 정신이나 가난 정신은 하느님 외에 다른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으려는 정신이지요. 그러므로 이 정신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이 없어도 하느님만 계시면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정신이요, 바오로 사도 말씀대로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무엇이든 하려는 정신입니다.

두 번째로 제가 걸리는 것은 복음 선포입니다.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복음 선포를 위한 여행이라면 다니며 복음 선포를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그렇게 적극적으로 복음 선포를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적극적인 복음 선포란 물론 광장에서 외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능한 한 복음을 말과 행위로 전해야 하는데 저는 말로도 전하려는 그런 적극성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적극성이 없다고 제가 얘기했는데 실은 적극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성이 없는 것이 아닌지, 열성이 없는 것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 아닌지 반성하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의 지팡이를 꼭 붙들자.

오늘 <복음>은 열두 제자의 파견장면으로, “말씀 선포의 사명”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세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기에 앞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마르 6,7) 미리 준비시키고 무장시키십니다.

<둘째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이는 진리가 검증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당시의 고대 근동의 관습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이미 ‘그들 안에’ 실현되어야 함을 요청합니다. 곧 ‘파견 받은 자들’ 사이에 이미 형성된 하느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복음 선포’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파견 받은 자’는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선포하면서 동시에 하느님 나라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복음 선포의 길’이 본질적으로 ‘함께 가는 길이요 여정’(시노달리따스, sinodalitas)임을 말해줍니다. 그것은 결국, ‘함께 가는 길’로의 초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견 받은 우리가 함께 가는 길이며, 동시에 하느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바로 그러한 그들의 삶 자체가 증거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선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과 자세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길을 떠날 때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의 돈도 가져가지 말라”(마르 6,8)

이는 오로지 당신께 의탁하고 당신께 신뢰를 두고 가는 길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왜 지팡이는 가져가라고 하셨을까요?

‘지팡이’는 여행자에게 있어 들짐승을 쫓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모세의 ‘지팡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양치기 모세에게는 단순히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지팡이였지만, 말씀과 함께 바다를 내려치면 물결이 갈라지고, 바위를 두드리면 물이 솟아나고, 병든 이들이 쳐다보면 살아나게 하는 ‘구원의 지팡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지팡이’로 인류 구원과 사랑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바로 그 ‘지팡이’에 매달려 있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1코린 1,23)로 말입니다.

<셋째 장면>에서는 ‘파견 받은 이’가 할 일이 “회개하라고 선포하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를 고쳐주는”(6,12-13 참조) 것이며, 그 일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파견하신 분의 뜻에 따라, 그분의 능력으로 일하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파견하신 그분께 매여 있고, 그분 권능의 지팡이인 ‘말씀의 지팡이’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6,8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

 

그렇습니다. 주님!
제가 길을 떠나온 것이 아니라
당신이 보내셨습니다.

저를 뽑아 부르시어
당신의 권한과
말씀을 심어 보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여행 보따리도 전대도 필요하지 않음은
당신께만 의탁하는 까닭입니다.

더 이상은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음은
당신의 말씀이 전부인 까닭입니다.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이유 : 절대 나를 믿지 마십시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둘씩 짝지어 파견하십니다.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할 때마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은 왜 하필 둘씩 보내셨을까요? 단순히 외롭지 말라는 배려였을까요? 아니면 혼자 보내면 가다가 나무 그늘에서 낮잠이나 자고 농땡이 피울까 봐 서로 감시하라고 붙여주신 걸까요? 아니면 현실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본당에서 구역장님이나 단체장님들이 봉사할 때 가장 많이 하는 하소연이 있습니다.

"신부님, 저는 일이 힘든 건 참겠는데요, 저 자매님이랑 같이 일하는 건 죽어도 못 하겠어요. 차라리 저 혼자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게 낫지, 저 형제님이랑은 천국도 같이 가기 싫습니다."

예수님이 짝지어 주신 그 동료가 내 성질을 긁어놓는 '원수'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굳이 둘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가장 약하고, 혼자 있을 때 가장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똑똑하고 강하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혼자를 선택했다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 보십시오. 1934년,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을 시도했던 영국인 모리스 윌슨(Maurice Wilson)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그는 전문 산악인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신력과 기도만 있다면 장비나 셰르파의 도움 없이도 산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맹신했습니다. 주변의 만류를 비웃으며 홀로 설산으로 들어간 그는, 결국 1년 뒤 찢어진 텐트 속에서 얼어붙은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의 마지막 줄은 "또다시, 끔찍한 날이다"였습니다.

영화 '인투 더 와일드'의 실제 주인공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는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였습니다. 그는 위선적인 사회가 싫어 모든 것을 버리고 알래스카의 야생으로 떠납니다. 그는 혼자 힘으로 자연 속에서 완벽한 자유를 누리겠다고 자신했습니다. 가족의 연락도 끊고 지도조차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자연 속에서 그는 굶주림과 고독에 시달리다 버려진 버스 안에서 쓸쓸히 죽어갑니다. 그가 죽기 직전 책 귀퉁이에 남긴 마지막 메모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처절한 후회였습니다.

"행복은, 오직 나눌 때만 실재한다(Happiness is only real when shared)."

영화 '127 시간'의 주인공 아론 랄스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신의 팔을 스스로 자르고 탈출한 뒤, 나중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바위에 갇힌 건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내 오만함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습니다. 나는 혼자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탄은 무조건 우리를 혼자 떼어놓으려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윗 왕도 그렇습니다. 그가 전장에서 부하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할 때는 성군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하들을 전장에 보내고 혼자 왕궁 옥상을 거닐 때, 긴장이 풀리고 '보는 눈'이 사라진 그 순간 욕망이 치고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범했습니다. 전장에서 칼을 들고 적군과 싸울 때는 빈틈이 없던 다윗이, 혼자 뒷짐 지고 거닐 때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습니다. 공동체라는 방패가 사라지자, 욕망이라는 화살이 심장에 꽂힌 것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사탄에게는 축제요, 우리에게는 지옥의 입구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 '고독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은수자 성 안토니오가 사막으로 간 이유는 마귀와 맞짱(?)을 뜨러 간 게 아닙니다. 도시의 화려함과 유혹 앞에서는 자신이 무력함을 알았기에, 유혹의 대상이 없는 곳으로 '도피'한 것입니다. 유혹 앞에서 "한번 버텨보지 뭐, 내 믿음이 얼만데" 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객기입니다. 진정한 용사는 유혹의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는 겁쟁이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사이렌의 유혹(욕망)을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원들에게 "나를 돛대에 꽁꽁 묶어라. 내가 풀어달라고 소리쳐도 절대 풀어주지 마라"고 명령합니다. 그는 자신의 강한 의지를 믿은 게 아니라, 자신을 구속해 줄 '밧줄'을 믿었습니다. "나는 안 넘어가"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넘어갑니다. 묶이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혼자서 자신의 욕망을 이겨낼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룩한 밧줄'이 되어주라는 뜻입니다. 때로는 그 밧줄이 나를 귀찮게 하고 구속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구속이 나를 유혹의 바다에 빠지지 않게 붙들어 줍니다.

봉쇄 수도원의 높은 담장은 수녀님들을 가두는 감옥이 아닙니다. 세상의 거센 욕망의 파도가 밀려들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파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방파제를 쌓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동체'라는 담장, '계명'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러야 안전합니다. 16세기 로마의 사도 필립보 네리 성인은 매일 아침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 필립보를 잘 감시해 주십시오. 안 그러면 이 녀석이 또 당신을 배반할지 모릅니다!"

성인조차 자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믿음이 좋아서 괜찮아"라는 말은 가장 위험한 헛소리입니다. 오늘, 내 옆에 앉은 배우자가 잔소리를 합니까? 감사하십시오. 그 잔소리가 나를 죄에서 지켜주는 사이렌 소리입니다. 본당의 까칠한 형제자매가 있습니까? 감사하십시오. 그들이 바로 나를 묶어주어 천국까지 안전하게 데려갈 오디세우스의 밧줄입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예전에 강원도로 래프팅하러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함께 갔던 우리는 전날 비가 많이 왔기에 물살이 빨라 재미있겠다고 서로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예상대로 물살은 정말로 빨랐습니다. 그러다가 배가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배에서 떨어져 나간 뒤에 다시 배에 타기 위해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나 유속이 너무 빨라서 배를 따라잡을 수 없었고 제가 원하는 대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아주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합니다.  

“수영하지 마. 그냥 가만히 있어.”  

구명조끼와 안전모를 하고 있으니, 그냥 물의 흐름에 맡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수영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주 편안해졌습니다. 그리고 물살이 잔잔해지는 곳까지 내려온 뒤에 수영해서 다시 배에 올라탈 수 있었습니다. 수영을 잘한다 해도 자연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유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편안히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맡기면 편안한데 세상의 기준을 내세우면서 ‘이것도 필요해.’, ‘저것도 필요해.’라면서 욕심과 이기심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리는 만들려고 하지 않고, 그저 세상의 자리만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누구도 하느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합니다. 그런데 주신 것은 딱 하나,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마르 6,7)이었습니다. 능력이 아닌 권한을 주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유일하게 허용된 것은 지팡이와 신발입니다. 이집트 탈출 때를 연상하게 합니다. 탈출기에서 “신을 신고 지팡이를 쥐고 급히 먹어라.”(탈출 12,11)라는 구절이 있거든요. 즉, 제자들은 새로운 해방을 선포하는 나그네이자 순례자로서 길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일까요? 세상 안에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는 식량, 여행 보따리, 돈 등을 비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하느님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렵고 힘든 세상 안에서 하느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권능과 보호하심에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힘은 세상 것의 소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세상 안에서 인정받는 특별한 능력에서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 안에서만 힘을 낼 수 있으며, 그 힘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나는 대리석 안에 숨어 있는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풀려날 때까지 돌을 깎았다(미켈란젤로).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께서 그들을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참된 신앙은 성당 안에서 머무르지 않고 삶의 현장에서 더 힘있게 드러납니다. 떠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머무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나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직접 보내십니다.

복음은 혼자의 외침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살아나는 참된 진리입니다. 머무름도, 떠남도 하느님께 온전히 맡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길은 화려한 길이 아니라 가볍게 빈손으로 걷는 길입니다. 많이 지닐수록 길은 무거워지고, 비울수록 복음은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돌보심과 사람들의 환대에 자신을 맡기는 섭리 안에서 구원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환영받는 곳에 머무르고 거절당하면 떠나라는 명령은 구원이 결코 강요가 아님을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을 믿고 떠날 때, 길 위에서 우리는 가장 좋은 은총을 만납니다.

하느님께 맡기고 사람을 존중하며 그 섭리 안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자비의 길을 두려움 없이 함께 걸어가는 우리이기를 기도드립니다. 우리는 가져서 안전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맡길 때 비로소 살아나는 평화의 존재입니다.

 

오늘 말씀 묵상 목차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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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 상권 2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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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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