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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2.0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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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2월 3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18,9-10.14ㄴㄷ.24-25ㄱㄴ.30―19,3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그 무렵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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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5,21-43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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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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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3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2월 기도지향 00:20

✚ 미사시작 00:39

✚ 강론시작 08:2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전부를 맡길 때 비로소 열리는 길

오늘 독서와 복음은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중심 주제로 삼습니다. 독서에서는 죄인의 죽음조차 바라시지 않는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복음에서는 그 자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자유롭게 흘러넘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알아차리시거나 승낙하시기 전, 오직 믿음 하나로 은총을 체험하는 복음 속 여인의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표징입니다.

특히 주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받으리라는 마음으로 주님께 다가간 여인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배웁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이 설명되고, 내가 이해하고 납득이 되기에 무언가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도무지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기에 상대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드리는 기도가 과연 내 뜻을 주장하려는 것인지,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인지를 말이지요. 이렇게 전적으로 주님께 의지하는 믿음이라면, 주님께서는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그렇게도 신뢰하는데, 좋으신 하느님께서 어찌 그냥 빈손으로 돌려보내시겠습니까? 실제로 오늘 복음에서도, 먼저 은총으로 병이 나은 다음에야, 주님께서는 누가 당신에게 손을 대었는지 물으십니다. 이른바 ‘선조치 후보고’, ‘선은총 후판단’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할 때 이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계획의 협조자로서 주님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저에게는 이득입니다.’는 마음으로 나를 내어놓는 믿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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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생명 접촉, 생명의 Spark

기(氣)와 관련한 여러 말이 우리말에 있습니다. 기가 세다 또는 기가 약하다. 기절(氣絶)하다. 기진맥진(氣盡脈盡)하다. 기운동과 기치료 등 그중에서도 오늘은 기가 막히다는 말로 오늘 강론을 열려고 합니다.

기가 막히다는 말은 너무 훌륭하다는 긍정적인 뜻과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할 때처럼 부정적인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가 막힐 정도로 좋거나 나쁜 것입니다. 기가 흘러야 몸이 건강한데 기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절은 막히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기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번개가 집을 때리면 집에 불이 나거나 집 안의 가전제품이 다 망가지지 않도록 휴즈가 끊기는 것처럼 일생일대의 감당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이 생기면 충격으로 생명이 끊기지 않도록 기절 또는 혼절하게 되는 거지요.

아무튼 기가 막히면 안 되고 통해야 하고, 기나 기운이 쇠약해져도 기를 불어넣어 기운을 차리게 하는 것이 제가 알기에 기운동이고 기치료입니다. 그런데 기치료라는 것이 기가 센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기를 불어넣어 치료해 주는 것인데 기가 센 사람은 저절로 기가 세지는 것이 아니라 기운동을 통해 기를 자기 안에 모아들임으로써 세지는 거라고 하지요.

왜 이 얘기를 길게 했냐 하면 오늘 복음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주님의 옷자락에 손을 댔을 때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는 고작 기 치료사로부터 기를 받아 치료받을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손을 대어 주님께 치유의 기를 받아 치료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손을 주님께 뻗치고 주님께서는 손을 잡아주시고, 주님께서 안수해 주시고 우리는 그분께 머리를 맡깁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죽은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키십니다. 주님께 손이 잡히자 죽은 소녀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은 소녀도 주님께 손이 잡혀 살아나는데 살아있는 우리가 주님 손을 잡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더 강력한 생명 접촉/생명의 Spark가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떠오릅니다. 천지창조 때 하느님의 손가락과 아담의 손가락이 닿는 그림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생명 접촉이 필요합니다. 지금 살아있어도 생기 없이 살아간다면 이 생명 접촉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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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끝났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시작되는 믿음

오늘 <복음>은 ‘하혈병을 치유 받은 여인 이야기’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소생 이야기’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으로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자였지만, 죽어가는 어린 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속수무책의 슬픔과 절망 속에서 야이로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간청을 드립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 5,23)

죽어가는 딸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의 이 애틋한 사랑과 믿음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 나섭니다. 비로소 딸을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막 길을 돌아서는데, 사람들이 소식을 전합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마르 5,35)

참으로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드는 순간입니다. 오로지 한 곳에 희망을 두었는데, 그 희망이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와르르 무너져 버린 참담한 순간입니다. 그야말로 하염없이 넘어지는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어찌하는가? 이 절망의 순간, 억울함과 원망이 밀어닥치는 이 순간, 하염없이 넘어지고 말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데서 물을 길어 올릴 것인가?

사실, 바로 이 순간이 우리가 응답해야 할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퍼 올리는 기회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

그렇습니다. 바로 이 죽음의 순간이 더 깊은 곳으로부터 믿음을 길러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생명을 들어 올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이 믿음의 시련이기도 했지만, 바로 기회의 순간이었습니다. ‘따님이 이미 죽었으니,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을 따를 것인가? 라는 결단의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믿음을 끌어올리십니다. 딸의 병을 고쳐주실 분으로 믿었던 예수님을, 이제는 이미 죽은 딸을 살려내실 수 있는 분으로, 그 믿음을 끌어올리시는 순간입니다. 바로 이 순간이 믿음이 자라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더 깊은 믿음에로 이끄신 까닭입니다.

참으로 ‘믿음’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 있습니다. 우리가 끝났다고 여길 때,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절망적이라고 여길 때, 바로 그 때가 구원의 때요, 은총의 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마르 5,41)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일어나게 하소서! 말씀을 듣고 일어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소서! 당신과 함께 일어나게 하소서! 일어나 진리 안을 걷게 하소서!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5,23
손을 얹으시어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당신의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하혈병 여인이 군중과 달랐던 점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쳐대는 장면을 봅니다. 물리적으로 예수님과 살이 닿은 사람은 수십, 수백 명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수많은 사람의 ‘밀침(Press)’ 속에서 단 한 사람, 하혈하는 여인의 간절한 ‘접촉(Touch)’만이 당신의 마음과 접속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밀치는 것’과 ‘닿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상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유리를 두드리고 사진을 찍습니다(밀침). 그들은 "와,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고 인증샷을 남기지만, 정작 성모님의 슬픔이나 예수님의 희생과는 교감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구경꾼은 밀치고, 순례자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순례자의 신앙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이 능력이 어디서 오는지 보여주는 아주 유명한 심리학 실험이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에드워드 트로닉 박사의 ‘무표정 실험(Still Face Experiment)’입니다. 실험실에서 엄마와 아기가 마주 보고 놉니다. 엄마가 웃으며 반응해 줄 때 아기는 까르르 웃으며 행복해합니다. 엄마의 감정과 아기의 감정이 연결된 상태, 이것이 ‘접촉’입니다.

그러나 엄마가 갑자기 표정을 싹 지우고 무표정으로 아기를 쳐다보기만 하면 상황은 급변합니다. 아기는 당황해서 엄마의 관심을 끌려고 손짓하다가, 결국 2분도 안 되어 자지러지게 울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물리적으로 엄마는 바로 앞에 있었지만, 정서적인 ‘반응’이 끊어지자 아기에게 엄마는 거대한 벽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아기가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이렇게 부모에게서 배웁니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이의 표정을 읽는 것은 아기에게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에게서 충분히 사랑받고 그 표정을 읽으며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타인의 감정을 기가 막히게 읽어냅니다. 그래서 누구와도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반면, 이 사랑의 거울을 갖지 못한 아이들은 커서도 상대가 아픈지 슬픈지 느끼지 못합니다. 수많은 사람 속에 섞여 살아도 늘 외딴섬처럼 고립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출근길 지하철 2호선을 떠올려 보십시오. 콩나물시루처럼 살이 닿을 정도로 꽉 끼어 있지만,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고 닿는 것을 불쾌해합니다. 몸은 밀착되어 있으나 마음은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이 ‘고립된 밀집’이 바로 예수님을 에워싼 군중의 모습입니다. 감정을 읽을 줄 모르는 영적 미숙아들의 슬픈 초상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신 하느님의 감정을 느끼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우리는 천상에서 그분과, 그리고 다른 성인들과 관계를 맺을 능력을 잃게 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을 보십시오. 그는 겟세마니에서 예수님께 입 맞추었습니다. 입맞춤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접촉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 입맞춤은 사랑의 접속이 아니라 배신의 신호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곁에 3년을 있었지만, 스승의 표정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결국 ‘차가운 충돌’로 끝났습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하혈하는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군중 틈에서 예수님의 뒷모습만 보고도 그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자비의 감정’을 읽어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열하던 여인처럼 하느님의 표정을 읽는 연습을 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쏟아놓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하느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봉쇄 수도원에서 매일 하느님의 표정을 살폈습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자매들이여, 기도가 끝났다고 하느님이 떠나신 게 아닙니다. 주님은 부엌의 냄비와 프라이팬 사이에서도 걸어 다니십니다. 요리할 때도 그분을 보십시오.”라고 가르쳤습니다. 기도 안에서 주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확인한 사람은, 일상의 소란 속에서도 아버지의 미소를 찾아냅니다.

두 번째는 ‘이웃 안에서 하느님의 감정을 보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이는 유치원에 가서도 친구들을 잘 챙겨줍니다. 왜냐하면 친구에게서 자신을 사랑해 주던 부모의 따뜻함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 직후, 기자들이 “어떻게 그 징그러운 병자들을 혐오감 없이 만질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수녀님은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습니다.

“비결은 이 다섯 손가락에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25장 40절, ‘You Did It To Me’(너희가 내 형제들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수녀님은 기도 중에 만난 예수님의 그 애틋한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캘커타의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똑같은 예수님의 눈빛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에게 그들은 남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의 새 왕을 뽑을 때 하느님께서는 사무엘 예언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지 마라. 나는 그를 배척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1사무 16,7)

하느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도 그분의 마음을 봐야 합니다. 오늘 하루,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아보십시오. 그리고 나를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표정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분이 나를 보며 웃고 계심을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지하철 옆자리에 앉은 타인의 피곤한 얼굴에서 하느님의 고단함을 읽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받은 자녀만이 형제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봅니다. 밀치는 군중이 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마음을 읽고 그분께 닿는(Touch) 사랑받는 자녀가 되십시오.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친구가 남편과 통화하다가 끊기 전에 아주 자연스럽게 “사랑해요.”라고 말합니다. 이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남편에게 바로 전화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끊기 전에 친구처럼 “사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이 곧바로 이렇게 말합니다.  

“너 낮술 했니?”  

앞으로 이 자매는 남편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할까요? 그 뒤로 이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이 너무나도 미워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만약 평소에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해요.”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면 어떠했을까요? 낮술 했냐는 실망스러운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주 하지 않던 말이었기에 남편은 어색한 마음에 그런 말을 했던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말과 행동을 자주 표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어떤가요?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의 사랑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있는 곳에 당신의 은총과 사랑을 풍성히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딸을 살려달라고 청합니다. 당시 회당장은 유다인 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층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의심받는 젊은 랍비였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것은 체면을 버린 아버지의 절박한 사랑과 절대적 신뢰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사랑을 본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가십니다. 그런데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예수님 소문을 듣고서 옷에 손을 댑니다. 율법에 따르면 피를 흘리는 여인은 부정하기에, 그녀의 행동은 율법적으로는 예수님을 부정하게 만드는 대담하고 위험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마르 5,30)라고 공개적으로 물으십니다.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몰래 치유받고 사라지면 그녀는 육체적으로는 낫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부정한 여인’으로 남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녀를 군중 앞에 세워 치유를 공증하고 사회적 지위를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때 회당장의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여인의 치유 사건으로 회당장 야이로에게 원망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마르 5,3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죽었다는 회당장의 딸의 손을 잡으시며 “탈리타 쿰”(마르 5,41)라면서 살려내십니다. 사실 시체에 접촉하는 것도 부정한 것이 됩니다. 부정한 여인의 손대심을 허용했고 죽은 아이의 손을 잡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부정해지시지 않습니다. 당신의 거룩함과 생명이 부정함을 정화한 것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사랑,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사랑이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과연 표현하는 사랑일까요? 생각만 하는 사랑일까요?

 

오늘의 명언

가족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늘어나는 일도 있습니다만 슬픈 이별도 있습니다. 추억 또한 가족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마스다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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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겨울이라는 계절은 멈춤이 아니라 생명을 회복하기 위한 쉼의 시간입니다. 소녀를 깨우는 것은 주님의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흐를 때 생명은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옵니다. 사랑은 끊어내지 않고, 다시 이어지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일어나라”는 말씀은 무언가를 해내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포기해 버린 자리에서 다시 살아도 된다는 하느님의 허락입니다.

예수님의 치유는 무언가를 더해 주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서게 하는 치유입니다. 하느님과 우리는 본래부터 하나였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요구가 아니라 내어맡김으로 드러납니다. 우리의 힘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길 때, 삶은 비로소 숨을 쉽니다. 하느님께 속한 우리의 삶은 존귀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지위가 아니라 같은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아이를 일으키시며 모든 ‘작은 이들’의 삶을 함께 일으켜 세우십니다. 아무리 작고 늦어 보일지라도, 우리 모두는 하느님께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소중한 자녀들입니다. 소중한 자녀들을 오늘도 다시 일으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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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5장 3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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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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