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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3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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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11,1-4ㄱㄷ.5-10ㄱ.13-1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는 나를 무시하고,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다.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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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4,26-34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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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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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0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9:3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조용히 자라는 믿음의 힘

땅에 뿌려진 씨앗은 농부가 일할 때도, 잠든 사이에도 조용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자라납니다. 콩나물을 키워 본 사람은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물을 주며 묵묵히 기다리면, 일주일쯤 지나 빛을 가린 검은 천 아래에 어느덧 훌쩍 자란 콩나물을 보게 됩니다.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생명은 조용히 자라납니다.

하느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당장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기도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콩나물시루에 성실히 물을 주면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꾸준히 인내하며 성실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때에 하느님께서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은]”(마르 4,31)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싹을 틔우고 자라나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4,32) 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노력이 적어 보이더라도 주님의 은총으로 풍성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하는 비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가 당장은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조용히, 그러나 성실하게 믿음을 키워 갑시다. 성숙한 신앙은 소란스럽거나 번잡하지 않습니다. 인내와 성실 안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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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뿌리기만 하면 된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이 말씀이 오늘 저에게는 이렇게 들립니다. 그러니 다른 생각이나 걱정하지 말고 너는 그저 씨나 뿌려라! 그런데 씨만 뿌리면 나머지는 저절로 된다고 하는데도 우리가 씨뿌리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태평 농법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씨만 뿌리고 태평하게 내버려 두는 농법이지요. 힘들게 땅 갈아엎기나 비료나 농약 주기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해도 된다면 농사짓는 것 너무 쉽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리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거의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써야만 수확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느님 나라 농법에 대한 믿음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씨만 뿌리면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해 주신다고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씨여도 문제없습니다. 우리 사랑이 겨자씨만큼 작아도 문제없습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하느님께는 겨자씨처럼 작은 사랑으로 백배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사랑이기만 하면 되고,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믿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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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건설되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는 결코 외부에서부터 이루어지는 변화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듣고 받아들여 안으로부터 오는 나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하느님 나라가 우리 안에서 어떻게 건설되는 것일까?

오늘 <복음>인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는 이에 대한 해답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땅에 씨를 뿌려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 4,27)

그렇습니다. 분명, ‘씨앗’은 자신 안에 싹을 틔우고 잎으로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우리 안에 뿌려진 ‘씨앗’(말씀)의 권능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레고리우스 교종은 말합니다.

“성경(말씀, 하늘나라)은 읽는 이(응답하는 이) 안에서 자란다(성장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놀랍고 신비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씨가 우리 안에 뿌려지면, 그것이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 어떻게 성장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매 순간 하느님의 힘이 작용하여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햇살을 받은 나뭇잎이 광합성을 못 알아들으면서도 그것을 채워가고 푸르러가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느님 나라’ 안에서 나날이 그 신비를 마시며 살아가는 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마르 4,31)

‘겨자씨’는 비록 작은 씨앗이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됩니다. 마치 십자나무처럼, 모든 인류를 끌어안은 큰 나무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십자나무에 인간이 거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겨자씨’지만,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썩기만 하면, 바로 이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와서 깃들일 수 있는 큰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하오니, 주님!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트고 자라나는 이 놀라운 신비에 순응하게 하소서. 저의 힘이 아니라 당신의 권능으로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4,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주님!
당신은 겨자씨처럼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사랑하는 이 위에
군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낮추어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방법이고
사랑의 길인 까닭입니다.

오늘 제가 형제들 앞에서
작아지게 하소서.

십자나무에
인류의 거처를 마련하듯
제가 형제들의
거처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내가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수천 명의 안식처가 됩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농부가 밤낮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 마침내 하늘의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 나라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만 생각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맛보는 행복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행복한지,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내 곁에 누군가 와서 편안히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원리를 심리학적으로 꿰뚫어 본 사람이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에게 한 우울증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환자는 독한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지만, 아들러는 아주 기이한 처방전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이 이 처방을 따른다면 2주 안에 완치될 수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어떻게 하면 한 사람이라도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실천하십시오."

사실 이 말이 모든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우울과 불행의 본질은 자기 몰입(Self-obsession)입니다. 온종일 나, 내 상처, 내 결핍, 내 기분만 생각하면 영혼은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남을 위한 쉼터가 되려고 고민하는 순간, 시선이 나에게서 너에게로 옮겨갑니다. 그 순간 자아의 감옥 문이 열리고 해방감, 곧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그 좁은 감옥에서 꺼내기 위한 탈출구입니다.

실제로 마더 데레사 수녀님에게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한 귀부인이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수녀님은 그녀에게 설교하는 대신, 죽어가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돕게 했습니다. 한 달 동안 냄새나는 환자들을 씻기고 먹이면서 그녀의 우울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나만을 위할 때 세상은 뺏고 뺏기는 정글이지만, 남을 위해 살 때 세상은 사랑이 흐르는 화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의 원리를 본능적으로 보여주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남미에 사는 설치류 카피바라입니다. 인터넷에서 카피바라 사진을 보신 적이 있나요? 이 동물 곁에는 항상 다른 동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쉬고 있습니다. 오리, 거북이, 원숭이, 심지어 천적인 악어조차도 카피바라 옆에서는 입을 다물고 평온하게 쉽니다. 그래서 별명이 동물계의 부처 혹은 친화력 끝판왕입니다.

동물학자들은 그 이유를 카피바라 특유의 공격성 없음과 느긋함에서 찾습니다. 카피바라는 먹이를 독점하려 하지 않고, 영역을 지키려고 으르렁대지도 않습니다. 즉, 동물들에게 있는 삼구(욕심과 본능)가 제어된 상태입니다. 그 무해한 평화로움이 주변 동물들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키고 쉼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내 곁에 사람이 없고 가족들이 나를 피한다면, 내가 너무 날카로운 욕심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기적인 정글에서 건져내어 남을 위한 쉼터로 만드시려고 우리 마음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십니다. 행복의 시스템은 이렇습니다. 먼저 말씀이 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자라려면 우리는 삼구(세속, 육신, 마귀)와 싸우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게으름을 이겨내며, 말씀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삼구는 나의 생존을 생각하는 욕망이고, 말씀은 타인의 기쁨을 먼저 생각하라는 가르침입니다. 만약 말씀을 매일 등경 위에 행동으로 올려놓는다면, 예를 들어 미소 짓기, 참아주기, 나누기 같은 작은 행위들이 밤사이에 하느님의 손길을 거쳐 자라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저절로(automatē) 자란다는 말은 하느님의 자동 시스템입니다. 내가 억지로 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면 영혼은 자동으로 넓어지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내 영혼이 커지면, 어느새 내 곁에 지친 이웃들이 날아와 둥지를 틉니다. 내가 나무가 되어 그들에게 그늘을 내어줄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가 내 안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 쉼터가 되는 길은 꼭 거창한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르멜 수녀원의 소화 데레사는 몸이 약해 거창한 단식이나 고행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그녀는 매일 아주 작은 말씀을 붙잡고 실천했습니다. 빨래터에서 옆 수녀가 더러운 물을 튀길 때 화를 내는 대신(삼구와의 싸움) 살짝 미소 지었습니다. 식당에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불평 없이 먹었습니다. 짜증 나는 수녀님을 만날 때 가장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겠습니다."

이 사소해 보이는 매일의 실천들이 쌓여, 그녀의 영혼은 거대한 쉼터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24세에 요절했을 때, 그녀의 영적 일기는 전 세계 수많은 영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가장 큰 겨자 나무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 세라핌은 숲속 오두막에서 은수 생활을 했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 먼 숲길을 걸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단지 그의 곁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얻으십시오. 그러면 그대 곁에 있는 수천 명의 사람이 구원(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통해 삼구의 욕망과 싸워 이기면 평화를 얻고, 그러면 굳이 전교하려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은 내 안의 평화 냄새를 맡고 모여듭니다. 카피바라 곁에 동물들이 모이듯 말입니다.

오늘 하루, 내 욕심을 조금 덜어내고 그 자리에 말씀을 채우십시오. 그래서 누군가가 "너랑 있으면 참 편안해"라고 말하며 내 곁에 머문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행복하다는, 내 안에 하느님 나라가 자라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씨를 뿌리고 자는 사이에 씨는 자라는데, 그 사람은 모른다.

사람들에게 언제 즐거운지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을 적었을까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치킨 먹을 때, 애들도 남편도 다 잘 때, 봉사활동으로 벽화 그릴 때, 오랜만에 입는 옷에서 돈이 나올 때, 한밤중 늦게 집에 갔는데 주차할 자리가 있을 때, 내 새끼들 깔깔 웃을 때, 공공의 적 뒷담화할 때, 콘서트 볼 때, 7개월 된 아이와 산책할 때, 좋아하는 책 다시 읽을 때, 늦잠 자고 일어나서 빨래할 때, 커피 한 잔 내려서 진한 향 맡으며 마실 때, 퇴근했을 때, 우리 강아지가 뽀뽀해 줄 때, 새벽 조용할 때….’  

어떻습니까? 특별한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 그리 대단하지 않은 것에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아닌 자기 욕심과 이기심 채우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100% 채울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어서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즐겁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것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이시기에 그 즐거움 안에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습니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즐겁지 않을까요?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뜻밖의 상황을 오히려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기 때문입니다.  

이 사소한 것도 중요함을 예수님 말씀으로 깨닫게 됩니다. 즉, 사소함 안에서 주님의 손길을 찾아야 하고, 주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저절로 자라는 씨앗과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먼저 농부가 땅에 씨를 뿌려 놓고 기다리면 어느 순간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고 하십니다.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씨를 뿌리는 것까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성장은 이렇게 이해와 분석을 넘어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거나 선행을 하고 나서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합니다.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실망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가 밤에 자는 동안에도 씨앗은 자라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유다인의 표현에서 ‘겨자씨’는 지극히 작은 것의 대명사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시작은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보면 초라하고 미약해 보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는 것을 이야기하십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사소함 안의 주님을 찾습니다. 과정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목수는 목수의 일을 함으로써 목수가 된다(라틴어 속담).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믿음은 하느님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기꺼이 맡겨 드리는 일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설명할 수 없어도 하느님 나라는 오늘도 우리 안에서 조용히 자라고 있습니다. 조급해질수록 성장은 멀어지고, 하느님께 맡길수록 생명은 제 길을 찾습니다.

믿음은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조급해지지 않는 용기입니다. 이 모든 시간은 실패가 아니라 은총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씨를 위한다는 이유로 씨를 괴롭히지 않는 것, 그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씨는 은혜를 입어 자라고, 사람은 사랑을 따라 성숙합니다.

씨가 흙속에서 자랄 때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듯, 영혼의 성숙 또한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먼저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는 이 고백은 믿음이 약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신비를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씨가 자라는 시간은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하느님의 시간입니다.

서두르지 않는 믿음, 때를 침범하지 않는 경외, 그것이 신앙의 성숙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자라고, 이해되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 앞에서 믿음이란 결과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때를 신뢰하며 오늘을 충실히 사는 일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이해하기 시작할 때가 아니라, 내려놓기 시작할 때 자라납니다. 그 하느님 나라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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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4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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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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