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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1.3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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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1월 3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12,1-7ㄷ.10-1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그 무렵

1 주님께서 나탄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나탄이 다윗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가난했습니다.

2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매우 많았으나,

3 가난한 이에게는 자기가 산 작은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는 이 암양을 길렀는데, 암양은 그의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자라면서, 그의 음식을 나누어 먹고 그의 잔을 나누어 마시며 그의 품 안에서 자곤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이 암양이 딸과 같았습니다.

4 그런데 부자에게 길손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나그네를 대접하려고 자기 양과 소 가운데에서 하나를 잡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잡아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대접하였습니다.”

5 다윗은 그 부자에 대하여 몹시 화를 내며 나탄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6 그는 그런 짓을 하고 동정심도 없었으니, 그 암양을 네 곱절로 갚아야 한다.”

7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 ‘이제 네 집안에서는 칼부림이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를 무시하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데려다가 네 아내로 삼았기 때문이다.’

11 주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내가 너를 거슬러 너의 집안에서 재앙이 일어나게 하겠다.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내가 너의 아내들을 데려다 이웃에게 넘겨주리니, 저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너의 아내들과 잠자리를 같이할 것이다.

12 너는 그 짓을 은밀하게 하였지만, 나는 이 일을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 앞에서, 그리고 태양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할 것이다.’”

13 그때 다윗이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하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탄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하셨으니 임금님께서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14 다만 임금님께서 이 일로 주님을 몹시 업신여기셨으니, 임금님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반드시 죽고 말 것입니다.”

15 그러고 나서 나탄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주님께서 우리야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아 준 아이를 치시니, 아이가 큰 병이 들었다.

16 다윗은 그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님께 호소하였다. 다윗은 단식하며 방에 와서도 바닥에 누워 밤을 지냈다.

17 그의 궁 원로들이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바닥에서 일으키려 하였으나, 그는 마다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으로 돌아가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4,35-41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35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37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4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41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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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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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3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요한 보스코 소개 00:06

✚ 미사시작 01:31

✚ 강론시작 10:39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파도 위에서 배우는 신뢰

돌풍이 일어 물이 배 안으로 들이치는데도 예수님께서는 무심하게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여쭙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아직도”라는 말의 뜻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없지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도 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그만한 믿음을 가질 만도 한데 아직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말이냐? 너희가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랐다면 이제 삶도 죽음도 나에게 맡겨야 한다.’

그렇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믿음에 믿음을 더하면 그것은 용기가 되고, 그 용기는 희망이 됩니다. 끝없이 믿고, 아낌없이 내주는 것이 주님의 사랑이기에,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는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4,40)라고 물으십니다. 무엇이 우리를 주저하게 하고, 무엇이 우리의 앞길을 막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분을 믿고 의지하여 용기를 얻고, 사랑의 원천이신 주님에게서 흘러넘치는 그 사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이 세상을 향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아직도’ 믿음이 없는 우리와 달리 ‘이미’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는 조건이 없고, 변함도 없습니다. 두려움 없이 주님의 사랑 안으로 나아갑시다. 그 사랑이 세상 속으로 흘러넘치게 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채워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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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걱정하지 말고 다만 믿게 하소서!

오늘 복음은 요리조리 조목조목 따져볼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하신 점입니다. 이어지는 얘기를 볼 때 주님은 제자들을 고통스러운 길로 내몬 나쁜 스승입니다.

그런데 더 잘 생각하면 같이 가자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경우처럼 제자들만 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 오늘 주님께서는 한배를 타고 가시며 하시는 말씀이고 너희와 나는 공동 운명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니 말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은 같이 길을 가기 위함이고, 우리가 갈 곳까지 우리를 틀림없이 데려가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같이 가자고 우리를 초대하시고 한배를 타심은 우리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고 갈 수도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스스로 가려 하고 잘 갈 수 있다면 굳이 같이 가자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호수 이편에서 저편으로 가는 것은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로 건너감인데 이 여행길이 실은 싫고 매우 두렵기에 떠나려고도 하지 않고 혹 떠나더라도 끝까지 가는 것이 힘들기에 초대도 하시고 같이도 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제는 주님께서 한배를 타시긴 하셨어도 주무시고 계십니다. 그렇게 풍랑이 거세고 제자들이 죽게 되었어도 주무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믿음 시험입니까? 뒤에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을 시험해 보고 야단치시기 위함입니까?

사실 그런 면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아브라함의 경우처럼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면서 우리 믿음을 시험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바칠 때 야훼이레 하느님께서는 제물을 다 마련해주실 거면서도 아들을 바치라 시험하셨지요.

이런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믿음을 단련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의 한 가운데 있을 때는 하느님께서 함께 계셔도 안 계신 것 같거나 내 고통을 모른 채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느껴져도 우리와 한배를 타고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느님께서도 우리처럼 걱정하시는가 그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묻는데 주님은 진정 걱정하지 않으실까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걱정은 우리같이 믿음이 부족한 사람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다른 걱정은 하십니다. 우리 구원과 관련하여 걱정은 하십니다. 죽게 될까 봐 걱정은 하지 않아도 구원의 길에서 벗어날까 봐 걱정은 하십니다. 한배를 타고 같이 가시는데도 우리가 이탈할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 구원을 걱정하시며 한배를 타고 가시는 하느님! 늘 저희와 함께하심을 저희가 느끼게 하시고 믿게 하소서! 세상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구원을 걱정케 하소서!

 

오늘 말씀 묵상으로 다시 돌아가기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풍랑보다 큰 것은 믿음의 부재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비유들을 통해서 하늘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고, 저녁이 되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마르 4,35)

저녁이 되어 어둠이 닥쳐오는데도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도 저녁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는 ‘새로운 출애굽’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어둠을 가르고 나아가는 이 여행에 거센 돌풍이 일고,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쳤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가지만, 동시에 온갖 환란과 위험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제자들의 위험에 수수방관으로 그냥 침묵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죽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대체, 예수님의 이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예수님의 이 침묵은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지만, 동시에 믿음이 요청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풍랑 속에서 주무신다는 것은 아버지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나타냅니다.

<시편> 작가는 노래합니다.

“당신만이 저를 평안히 살게 하시니 저는 평화로이 누워 잠이 듭니다.”(시편 4,9)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전적으로 아버지께 신뢰를 두고 계시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실, 잠들어 있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현존에 깨어있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이 바로 잠들어 있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막상 깨어나야 할 이들은 제자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청에 응답해주지 않으신다고 투덜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바로 그 때가 현존하신 그분께 의탁하고 믿음으로 응답해야 할 때임을 말입니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주님께서 ‘함께 계시며 동행하심’에 대한 믿음과 의탁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신을 깨우쳐주시고, 당신께서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곧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하시며 광풍을 잠재웁니다. 우리의 온갖 두려움과 걱정과 불신을 잠재우시고, 믿음으로 깨우십니다. ‘새로운 출애굽’을 통해 어둠을 건너, 새로운 생명으로 이끄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침묵”은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마치 십자가에서의 “아버지의 침묵”이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였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 믿음이 예수님께서 그 거센 돌풍 속에서도 간직할 수 있었던 평화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일깨우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

그러니 우리도 <시편>작가처럼 ‘함께 계시는 주님’께 믿음의 노래를 불러야 할 일입니다.

주님,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 23,4).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4,40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주님!
잠들어 있는 이는
당신이 아니라 저 자신입니다.

깨어나야 할 이는
당신이 아니라 저 자신입니다.

당신이 함께 계시건만
불신으로 제가 두려워합니다.

주님, 풍랑을 맞아 가라앉으면서야
비로소 제가 키잡이가 아님을 봅니다.

풍랑 속에서 잠들어 계셔도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키시는 분
당신이 저의 주님이십니다.

당신은 주무셔도 주님이시오
깨어 계셔도 주님이십니다.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향심기도가 겸손의 표징인 이유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 속 장면을 가만히 들여다봅시다.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들입니다.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 닥쳤을 때, 그들은 처음에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본능적으로 돛을 내리고, 노를 저으며, 물을 퍼냈을 것입니다. 자신의 근육과 경험, 그리고 '내 힘'으로 이 위기를 돌파하려 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인간의 뿌리 깊은 '교만'을 봅니다.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 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파도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착각, 주님 없이도 내 기술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자기 확신, 이것이 바로 영적인 교만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파도는 더 거세졌고, 배에는 물이 가득 찼으며, 그들은 결국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두려움은 '상황'이 아니라 '시선'에서 옵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내 감정을 결정합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 하권 6장에는 이 진리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엘리사 예언자를 잡으려고 성읍을 겹겹이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은 성 밖을 가득 메운 적군과 병거를 보고 공포에 질려 소리칩니다.

"아아,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우리는 이제 다 죽었습니다!"

사환의 눈에는 '적군'이라는 절망적인 상황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태평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 편이 저들보다 더 많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하자 사환의 눈이 열립니다. 그러자 그는 보게 됩니다. 아람 군대보다 훨씬 더 크고 많은 '불말과 불 병거'가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광경을 말입니다. 상황은 변한 게 없습니다. 적군은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시선'이 바뀌어 하느님의 군대를 보게 되자, 죽음의 공포는 순식간에 든든한 안도감으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하늘의 군대를 보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노력일까요? 정답은 '둘 다의 합작품'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 배 안에 함께 계셔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총'입니다. 하지만 은총은 딱 거기까지입니다.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신 그분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그분을 깨우며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입니다.

신앙생활을 항해에 비유할 때, 돛단배의 원리가 이를 아주 잘 설명해 줍니다. 바다 위에서 배가 나아가게 하는 동력은 전적으로 '바람'입니다. 인간이 입으로 불어서 거대한 배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이 바람이 바로 은총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바람이 불어도, 사공이 돛을 올리고 키를 잡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배는 제자리에서 맴돌거나 표류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느님이 다 해주실 거야, 알아서 해주시겠지"라고 말하며 가만히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돛을 내리고 바람만 기다리는 '게으름'입니다. 은총의 바람은 지금도 불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 돛이 올라가 있느냐입니다.

우리가 돛을 올리는 가장 구체적인 노력,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특히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향심기도'와 '화살기도'입니다. 예리코의 맹인 바르티매오를 떠올려 보십시오(마르코 10장).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그가 외치기 시작하자, 주위 사람들은 "조용히 해!"라며 그를 억압하고 꾸짖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소음이자, 우리 내면의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바르티매오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거나 상황을 분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굴하지 않고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 외침이 바로 동방 정교회의 오랜 전통인 '예수 기도(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입니다. 두려움의 파도가 덮칠 때, 복잡한 묵상 대신 바르티매오처럼 주님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십시오. 그 이름이 나의 시선을 파도에서 예수님께로 강제로 돌려놓습니다.

19세기 러시아의 영성 고전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에는 이 기도의 신비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인공 순례자는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라는 성경 말씀에 꽂혀 방법을 찾아 헤맵니다. 영적 스승인 스타레츠는 그에게 '예수 기도'를 하루에 3천 번, 나중에는 6천 번, 1만 2천 번 바치라고 시킵니다.

처음에는 입술이 아프고 혀가 굳는 고통스러운 육체적 노력이었습니다. 숫자를 채우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계속 주님을 부르며 바라보자, 어느 순간 기도가 입술에서 마음으로 내려가, 심장이 뛸 때마다 저절로 기도가 흘러나오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노력'으로 시작한 기도가 그를 '걸어 다니는 기도 그 자체'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본성이 되는 과정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은총이 없으면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노력이 없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제자들은 파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믿는 교만을 내려놓고, 주님을 깨우는 겸손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칩니까? 내가 쥐고 있던 노를 놓으십시오.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시선을 거두십시오. 그리고 바르티매오처럼, 순례자처럼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나를 포기하고 그분을 바라보려 노력하는 그 순간,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둘러싼 거센 파도보다, 나를 감싸고 있는 주님의 불 병거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뮤지션이자, 작가, 그리고 책방 주인이기도 한 요조 씨가 쓴 두 줄이 있습니다.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 나뉜다.”  

이 문장에서 오랫동안 머물렀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시간 안에서 이런 모습이 나뉘어 나타났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는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로움에 관심이 많았고, 모른다는 것에 새로움을 얻으리라는 기대감으로 설레기도 했습니다.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에서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서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것에 너무 낯설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보다 옛 친구 만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발전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삶을 매번 살아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새로운 만남 안에서 기쁨과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이 주님과 가까워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이 주님과 가까워질까요? 당연히 후자의 모습이 주님과 가까워지며, 주님과 함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어떤 형제님으로부터, “신부님, 열심히 살았고, 또 신앙생활도 나름으로 열심히 했는데 왜 저에게 이렇게 커다란 아픔과 시련이 찾아올까요? 주님이 정말로 계십니까? 그래서 저는 이제 성당에 나가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님을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과 함께하면 아무런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고통이나 시련 없이 살까요? 보통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뜻하지 않은 고통과 시련을 보낼 수 있으며, 전지전능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도 고민이나 걱정 없이 살지 못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과 함께하는 제자들은 어떠했을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배에 풍랑이 닥쳤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고통이나 시련을 면제받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나 시련 속에서 누구와 함께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기억하고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 4,38)라고 솔직하게 부르짖을 때, 주님의 개입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마르 4,39)라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아무리 거센 인생의 파도라도 예수님의 말씀 아래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더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 순간 상대는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기쁨을 느낍니다(와타나베 가즈코).

 

다른 말씀 묵상도 함께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바꾸려 할수록 사람은 멀어지고, 내려놓을수록 길은 스스로 열립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멀리 있지 않고, 사람 곁에 머무는 구체적인 사랑 안에서 드러납니다. 성 요한 보스코는 성덕을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매일의 성실함 속에서 발견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멀리서 다스리는 권력이 아니라, 사람 곁에 머물며 믿어 주는 사랑 안에서 자라납니다.

요한 보스코에게 가난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끌어안고 가야 할 십자가였습니다. 특히 길거리 소년들과의 사목은 교회 안에서도 문제아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러나 요한 보스코의 실패는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일하실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의 성덕은 모든 것이 잘되었기 때문에가 아니라, 계속 잘되지 않았기 때문에 탄생했습니다.

열매가 없어 보일 때에도, 인정받지 못할 때에도, 반복해서 무너질 때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면 그 실패는 헛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성공을 통해서보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은 자리에서 더 자주 일하십니다. 사람은 옳기 때문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 비로소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공동체가 무너져도 사람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그 사목은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를 부정하는 공동체는 굳어가고, 실패를 감당하는 공동체는 살아 움직입니다. 사랑은 무엇을 이루려 애쓰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사람이 스스로 자라도록 조용히 물러설 줄 아는 지혜입니다. 우리의 모든 실패와 좌절도 하느님을 향할 때는 우리 모두를 성장시키는 은총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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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복음 4장 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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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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