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2사무 7,18-19.24-29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며,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 복음
마르 4,21-25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2사무 7,18-19.24-29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며,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나탄이 다윗에게 말씀을 전한 뒤
18 다윗 임금이 주님 앞에 나아가 앉아 아뢰었다.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19 주 하느님, 당신 눈에는 이것도 부족하게 보이셨는지, 당신 종의 집안에 일어날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일러 주셨습니다. 주 하느님, 이 또한 사람들을 위한 가르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24 또한 당신을 위하여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영원히 당신의 백성으로 튼튼하게 하시고, 주님, 당신 친히 그들의 하느님이 되셨습니다.
25 그러니 이제 주 하느님, 당신 종과 그 집안을 두고 하신 말씀을 영원히 변치 않게 하시고, 친히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주십시오.
26 그러면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한 당신 종 다윗의 집안도 당신 앞에서 튼튼해질 것입니다.
27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당신께서는 당신 종의 귀를 열어 주시며, ‘내가 너에게서 한 집안을 세워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 종은 이런 기도를 당신께 드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28 이제 주 하느님, 당신은 하느님이시며 당신의 말씀은 참되십니다. 당신 종에게 이 좋은 일을 일러 주셨으니,
29 이제 당신 종의 집안에 기꺼이 복을 내리시어, 당신 앞에서 영원히 있게 해 주십시오. 주 하느님, 당신께서 말씀하셨으니, 당신 종의 집안은 영원히 당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4,21-25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1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1월 29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06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나눌수록 더 커지는 사랑의 힘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5).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진 자”와 “가진 것 없는 자”는 과연 무엇을 가지거나 가지지 못한 것일까요?
저는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감정으로서 사랑이 아니라, 나눔과 희생, 봉사와 배려를 구체적 행동으로 드러내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 사랑을 가진 이는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그 사랑을 더욱 키워 나갑니다.
베풀수록 더 큰 기쁨과 은총을 받고, 희생할수록 더 깊은 평화를 얻게 되는 신비를 체험합니다. 반대로 “가진 것 없는 자”는 사랑 없이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에 갇힌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에, 그나마 있던 작은 희망과 선한 마음마저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님께서는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4,21) 두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그 빛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삶이고, 더 큰 사랑 속에서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 빛이 퍼질 때, 더 많은 이가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나눔과 배려로 더욱 풍요로워지는 사랑의 신비를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주님께서 바라시는 삶입니다. 우리 안에 사랑의 등불을 밝히고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이 흘러넘쳐 이웃에 전해지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들을 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주님께서는 들을 귀 있으면 들으라고 하시고, 새겨들으라고도 하시기에 듣는 것에 관해 묵상을 좀 해봤는데 먼저 듣지 않는 귀와 들을 수 없는 귀에 관해 묵상해봤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들을 귀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이런 뜻은 아니겠지만 들을 수 없는 귀 가운데 우선 아무것도 듣기 싫은 귀가 있을 겁니다. 닫아버린 귀라고나 할까 시달린 귀라고나 할까요? 이 얘기 저 얘기 하도 말이 많아 귀를 닫는 것인데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으니 내 귀를 닫아버리는 그런 경우입니다.
전에 삼차신경통 때문에 신경을 끊은 분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커 신경을 끊어버리니 통증을 못 느끼는 것은 좋은데 다른 감각도 죽어 좋은 것이나 맛있는 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듣기 싫은 말 듣지 않으려다가 들어야 할 말을 못 듣게 되겠지요.
다음으로 아주 편하게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귀도 있습니다. 불리한 말이나 귀찮은 말은 들어도 듣지 않는 편리한 귀입니다. 우리말에 가는귀먹었다는 말이 있는데 아주 편리하게 듣고 싶은 말은 듣고 듣기 싫은 말은 자동으로 못 듣는 귀이고, 선택적 기억 상실증과 마찬가지로 선택적인 청력 상실증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성모님 귀와 정확하게 반대입니다. 성모님은 이 세상의 쓸데없는 소리는 듣지 않으시고 들어야 할 하느님의 말씀은 들어서 말씀이신 주님을 잉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귀가 있다고 함은 마리아의 귀와 같은 귀일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영적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귀이고, 그 외의 말은 듣지 않을 수 있는 귀입니다.
방금 저는 듣지 않을 수 있는 귀라고 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불행히도 어떤 사람은 그런 능력이 없어서 병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새겨듣는 것과 건성으로 듣는 것에 관해 보겠습니다. 건성으로 듣는 것을 우리는 보통 무성의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저는 차라리 사랑 없다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유익한 말을 명심 곧 마음에 새길 것이고, 연인이 있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말을 마음에 새길 것이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말씀은 모두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어쨌거나 우리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고 들어야 할 것은 듣지 않을 것이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듣지 말아야 할 것은 듣지 않고, 꼭 들어야 할 생명의 말씀은 명심하라는 오늘 말씀을 명심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을 읽을 때, 빛은 켜집니다.
오늘 <복음>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 4,21)
앞 장면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맥락에서 보면, “등불”은 ‘하느님 말씀’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곧 ‘말씀’이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요 ‘빛’입니다. 그래서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것은 세상 만민을 비추고, 진리의 빛으로 집 안에 있는 이들을 밝히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거룩한 지식으로 채우게 된다.”
그러니 말씀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아두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의 능력인 “함지”(루카; 그릇)로 하느님의 말씀을 가두거나, 우리의 몸인 “침상”으로 말씀을 덮지 말고, 오히려 우리 위로 드높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말씀”은 숨겨 덮어지지도, 감추어 가려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마태 5,14)처럼, 감추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집안을 가장 잘 비출 수 있는 곳에 “등경”을 올려놓고, 말씀인 “등불”을 켜서 밝혀두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안에 간직되어 있는 “말씀”은 우리가 읽고 경청할 때라야, 켜져서 ‘빛’이 되어 온 집 안과 집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을 비추어 밝혀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혹 우리는 ‘빛’을 간직하고 있는 성경을 “등경” 위에 올려놓고만 있지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을 읽고 경청하게 되면, “(빛이신)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우리의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참조).
이를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마르 4,22)
‘말씀의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밝히 드러나게 되므로 거짓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은 빛이 되어 비추고 우리의 민낯을 드러낼 것입니다. 동시에 하느님과 하늘나라의 신비는 드러낼 것입니다. 곧 세상을 환히 비추고, 빛과 진리로 이끌어 줄 것입니다.
그런데 혹 우리는 ‘쌍날칼’이 되어 비추는 말씀의 빛을 피해 달아나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깊이 새겨듣도록 반복해서 촉구하십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원어:주의를 기울여) 들어라.”(마르 4,23).
“너희는 새겨들어라.”(마르 4,24)
그것은 단지 “들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들어라.”(마르 4,23), “새겨들어라.”(마르 4,24)는 각성의 촉구요 경고입니다. 이는 ‘귀담아듣는 일이요 그래서 실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쉐마 이스라엘’(신명 5,1)에서도 ‘쉐마’(들어라)라는 말은 ‘귀에 담아 행동에 옮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는 그것들을 배우고 명심하여 실천하여라.”(신명 5,1;28,1-2 참조)고 말합니다.
새겨들은 말씀에 실행으로 응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에 기도와 삶 속에서 실행으로 응답하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응답에 더 보태어 은총을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르 4,25)
결국,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은 더 가지게 될 것입니다. 더 많은 열매를 맺고, 더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을 등불을 켜고, 그 비추임으로 우리의 삶 안에서 기도와 실행으로 응답하고, 주님이 주신 관상적 변형의 은총을 갈망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4,21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주님!
말씀을 제 안에 덮어 두거나
제 발 아래에 두지 않게 하소서.
제 한량한 능력으로
당신 말씀의 권능을
가리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보다 아무 것도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 말씀의 빛으로 살고
빛에 속한 이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진리는 입이 아니라 손발에서 빛납니다.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통해 아주 중요한 영적 법칙을 말씀하십니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그리고 아주 무서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이 말씀은 영적 세계의 냉정한 법칙입니다. 진리의 빛을 받아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는(실천하는) 사람은 더 큰 은총과 지혜를 받지만, 그것을 덮어두는 사람은 있던 믿음마저 말라버리고, 결국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조차 못 하는 영적 맹인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들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바로 뒤에 이어집니다. 내용상으로 보면,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씨가 잘 자라 열매를 맺은 ‘좋은 밭’을 상징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좋은 밭인 사람은 깨달은 진리를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처박아 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온 집안을 비추도록 등경 위에 올려놓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가진 자가 더 받게 되는, 30배, 60배의 소출을 내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리의 등불을 꺼뜨리는 두 가지 뚜껑이 있습니다. 바로 ‘함지’와 ‘침상’입니다. 함지는 곡식을 재는 ‘됫박’입니다. 교부들은 이것을 ‘계산적인 마음’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으로 해석했습니다. 이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덤불과 같습니다. 돈 걱정 때문에, 혹은 손해 볼까 봐 계산하느라 진리를 실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침상은 우리가 눕는 곳입니다. 이는 ‘게으름’이나 ‘육체적 쾌락’을 의미합니다. 길바닥이나 돌밭과 같습니다.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어서 말씀을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만약 ‘십일조’라는 진리를 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침상(게으름/탐욕)에 누운 사람은 귀찮아서 안 하고, 됫박(계산)을 든 사람은 아까워서 안 합니다. 이런 사람은 남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권하지도 못합니다. 자기도 안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진리의 빛은 내 안에서 질식해 꺼지고, 더 이상의 은총은 들어오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말씀을 듣고도 이 뚜껑을 덮어버려 비극을 맞이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맞이한 결말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영혼이 마비되고 판단력이 흐려져,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게 되는 무서운 저주였습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등불)를 받았지만, 말년에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결혼과 쾌락(침상)에 빠져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 찬란했던 지혜를 욕망으로 덮어버리자, 그는 더 이상 지혜로운 판관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고통을 보지 못하는 폭군이 되었고, 하느님의 경고조차 무시하는 영적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판단력이 흐려졌고 결국 그가 자랑하던 통일 왕국은 아들 대에 이르러 두 쪽으로 찢어지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지혜를 가졌으나 쓰지 않으니, 그 지혜마저 빼앗긴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드러나게 하는 ‘등경’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등경은 높은 곳입니다. 내가 편안한 침상에서 일어나고, 내 이익을 챙기는 됫박을 뒤집어엎고 올라가야 하는 희생의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5장 16절에서 등경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설해 주셨습니다.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됫박이 ‘나에게 얼마나 이익이 될까?’를 계산하는 마음이라면, 등경은 계산 없이 퍼주는 ‘선행’입니다. 말로만 하는 전교는 됫박 안에서 웅웅거리는 소음일 뿐입니다. 하지만 내 몸을 움직여 가난한 이를 돕고, 자존심을 굽혀 용서하는 그 ‘착한 행실’은 침묵 속에서도 세상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 등경은 꼭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진리라도 실천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그릇을 넓혀 더 거대한 진리를 담아주십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의 ‘작은 길’을 보십시오.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핀 하나를 줍더라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겠다”는 아주 작은 진리를 실천했습니다. 빨래터에서 더러운 물을 튀기는 수녀에게 화를 내는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이 작은 행실들을 등경 위에 올려놓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더 큰 진리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소명이 ‘사랑’ 자체임을 깨닫게 되었고, 24세의 나이에 요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의 박사(Doctor)가 되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작은 핀 하나를 주운 사랑이 전 세계를 품는 선교의 수호자라는 거대한 열매로 되돌려 받은 것입니다. 가진 자는 더 받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진리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손과 발로 살아내는 생명입니다. 로렌 아이슬리의 에세이에 나오는 ‘불가사리 이야기’로 강론을 마치고 싶습니다.
거센 폭풍우가 지나간 해변에 수만 마리의 불가사리가 밀려와 말라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노인이 불가사리를 하나씩 집어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청년이 비웃으며 물었습니다.
“노인장, 해변에 불가사리가 수만 마리나 널려 있는데 고작 몇 마리 던진다고 세상이 달라지기나 합니까?”
노인은 집어 든 불가사리 하나를 바다로 힘껏 던지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저 불가사리에게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는 일이지!”
이 해변은 우리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하느님의 말씀들이 불가사리처럼 널려 있습니다. 듣기는 했으나 실천하지 않아 말라 죽어가는 말씀들입니다.
우리가 그중 단 하나, ‘용서하라’ 혹은 ‘사랑하라’는 작은 말씀 하나를 집어 실천이라는 바다로 던질 때, 세상은 안 바뀔지 몰라도 ‘죽어가던 말씀’은 완전히 바뀝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씀을 살린 존재도 바뀝니다. 그렇게 말씀을 행동이라는 바다에 넣읍시다. 한없는 진리가 보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깨달은 작은 말씀 하나라도 침상 밑에 두지 마십시오. 그 말씀을 등경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감당할 수 없는 더 큰 빛과 진리를 보태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자기계발 강연자인 짐 론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 주변에 있는 5명의 평균이 바로 내 모습이다.”
크게 공감되는 말입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에 그 모습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내 주변에 긍정적인 사람이 많다면 나 역시 긍정적인 사람이고,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면 나도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랑을 베푸는 사람 곁에는 그런 사람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기 원하십니까? 먼저 자기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합니다. 나의 모습으로 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괜히 다른 사람 탓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이가 남 탓을 많이 합니다. 그 남 때문에 자기 삶이 이렇게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가 그런 사람을 끌어모았던 것이 아닐까요?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나의 말과 행동부터 바꿔야 할 것입니다. 자기 주변에 훌륭한 사람이 함께하도록 스스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니 참 좋은 존재’로 창조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참 좋으신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고 또 내 곁에 오시지 못하게 하니, 자기 모습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 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분과 늘 함께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마르 4,21)라고 말씀하십니다.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빛으로 예수님 자신 또는 그분이 전하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이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빛을 차단하는 방해물로 예수님을 볼 수 없도록 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 방해를 누가 할까요? 하느님을 잘 모르는 사람이 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가로막았고, 기쁜 소식을 알아채지 못하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절대로 숨겨지지도 또 감추어지지도 않는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세상에 훤히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주님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혹시 주님을 숨기는 잘못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과 함께해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주님을 가리는 삶이 아닌, 주님을 드러내는 삶으로 나의 이웃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무감각한 우리를 다시 깨어나게 하는 것은 삶에 대한 관심과 희망뿐이다(알렉산더 버트야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숨기려 애쓰고 있습니까. 아무리 감추어도 삶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참모습은 자연히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감추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맡기면, 진실은 말없이 관계의 빛이 됩니다. 감추는 삶은 더 무거워지고, 드러나는 삶은 점점 가벼워집니다.
등불은 빛으로 비출 때에만 등불이 됩니다. 복음의 빛은 감추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삶으로 비추라고 맡겨진 빛입니다. 삶으로 드러나야 할 빛입니다. 어둠은 스스로 무너지고, 빛은 자연스럽게 퍼져나갑니다.
하느님 앞에서 숨겨진 것은 심판을 위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진실을 위해 빛을 만납니다. 하느님 앞에 그 어떤 것도 숨길 것은 없습니다. 잘못이 드러날 때 우리는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르게 설 기회를 얻습니다.
그래서 드러남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격 성숙의 은총이 됩니다. 붙잡지 않으면, 숨길 것도 없고 드러낼 것도 없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대로 드러나도 되는 하느님의 가장 좋은 은총입니다. 드러나도 무너지지 않는 은총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시편 119편 105절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1.2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8 |
|---|---|
| 2026.01.2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7 |
| 2026.01.2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6 |
| 2026.01.25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5 |
| 2026.01.24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4 |
| 2026.01.2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3 |
| 2026.01.2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