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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2.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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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2월 2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말라 3,1-4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 복음
    루카 2,22-40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말라 3,1-4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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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2,22-40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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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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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주님봉헌축일 소개 00:06

✚ 서울 길동성당 소개 01:40

✚ 미사시작 02:52

✚ 강론시작 14:1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오늘의 봉헌이 내일의 은총

‘봉헌’이라는 말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내어놓음’이라는 행위를 실제로 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모든 것은 주님께 받은 것이니 기꺼이 돌려드려야 한다.’고 배웠더라도, 막상 내가 가진 것을 실제로 내놓아야 하는 순간이 오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솔직한 마음이니까요.

이러한 불편함을 넘어서는 길은 관점의 전환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곧 ‘내가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십일조를 흔히 ‘십 분의 일을 낸다.’고 표현하지만,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십 분의 구를 내가 받는다.’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에도, 그 가운데 일부를 내가 받아 쓴다는 생각입니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께 받은 것임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실제 삶에서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는 일은 결코 녹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돌려드리는’ 그 순간, 심지어 돌려드릴 수 있는 ‘형편과 여유’조차도 주님께 받은 것임을 되새겨야 합니다.

오늘 주님 봉헌을 기념하며, 특별히 삶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놓은 그들의 열정과 신앙을 기리며, 우리도 되새겨 봅니다. 수도자들이 드린 것이 곧 받은 것임을, 그렇기에 내어놓은 만큼 많은 것을 받을 수 있음을 말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가진 것을 봉헌함으로써, 곧 내어놓음으로써 그 안에 숨겨진 더 큰 선물을 받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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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을 향하여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봉헌 축일에 왜 교회는 초를 봉헌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주님은 초처럼 세상의 빛이시니 주님께서 봉헌되신 것처럼 초도 봉헌되는 것이고 우리도 주님과 초처럼 봉헌되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부모에 의해 봉헌되고 세상의 빛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을 스스로 봉헌함으로써 다시 말해서 초처럼 자신을 태움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세상의 빛이 되는 것에 관해 전에 많이 생각했던 것이 생각나면서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생각을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뭐가 되려고 해서 되기보다 초처럼 저를 태우다 보면 빛이 되겠지요. 사랑하면 되지 빛이 되려는 것은 유명인 되는 것처럼 욕심일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다 보면 빛도 되는 것입니다. 불을 피우고 태우면 불에서 빛도 나오고 열도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수도 생활을 이만큼 하고 나서야 축성생활자들의 날인 오늘 이런 성찰과 반성을 합니다. 그런데 불을 피우고 태워 열과 빛을 내되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화의 불이 먼저 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말라키서의 말씀처럼 제련사와 정련사이신 주님께서 붙여주신 불로 시작되고 지속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때 보면 사랑한다는 수도자에게 화가 더 많습니다. 사랑의 불이어야 하는데 분노의 화가 더 많은 것입니다. 우리말 사전에 화를 찾아보면 화(火)라고 나오고, 그 뜻풀이를 보면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생기는 노엽고 답답한 감정’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랑의 불에 이런 불순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만한 너’이기를 바라는 욕심이 함께 자리하고, 그럴 때 사랑하는 것만큼 ‘그렇지 못한 너’에 대해 화가 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성숙한 수도자란 수도 생활에 관한 공의회 문헌의 그 ‘완전한 사랑(Perfectae Caritatis)’을 향해 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사랑은 정화에서 시작되고 점차 열을 내고 빛을 내는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축성 생활의 날을 맞이한 수도자들이 저를 포함하여 이 사랑의 완성을 향해 가는 수도자들이 되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여러분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라고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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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깨어 있는 기다림이 변화의 시작이다.

“축성생활이 어떻게 변화를 만드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콘솔라따 선교 수도원 소속으로 현재 교황청 축성생활부와 사도생활단 장관으로 있는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님과 살레시오회 소속으로 수도회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페르난데스 아르티메 추기경이 작년(2025년)에 로마에서 열린 UISG모임에서 한 강의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부터 ‘시노달리따스’를 주제로 개최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의 [최종문서](2024.10.26.)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축성생활은 고유한 예언자적 목소리로 교회와 사회에 도전을 제시하라.”

“오늘날 많은 축성생활 공동체는 교회와 세상을 위하여 예언자적 역할을 하는 상호문화의 실험실이다.”

그렇다면, 예언자란 누구인가?

<성경>에서 예언자란 무엇보다도 초월적이면서도 인격적인 하느님의 메신저로, ‘부름 받은 자’, ‘하느님의 사람’, ‘환시를 보는 자’,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 곧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대변자 역할을 합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이기보다 지금 이 시대 안에서, 역사와 사회, 고통과 동 시대의 고통과 현실에 깊이 관여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예언자적 목소리’를 우리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예언자적 인물인 시메온과 한나를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 깨어있음’과 ‘사랑을 담은 귀 기울임’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강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에 충실할 때 감각이 더 예리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께서 바로 이 일, 우리의 감각을 밝혀주시는 일을 하십니다.”(2022.3.22.)

“이 두 노인을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들은 인내로이 기다리며, 영적으로 깨어있고,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세월도 그들을 약하게 만들지 못했는데, 그들의 눈이 늘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고, 희망을 ‘거두지’ 않았습니다.”(2024.2.2.)

또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눈은 무엇을 보는지요? 시메온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그리스도를 뵙고 알아봅니다. 그리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루카 2,30)라고 말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믿음에서 나온 위대한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눈을 뜨게 하고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고, 관점을 바꿉니다. ~이 시선은 겉모습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약함과 실패의 틈바구니로 들어가서 그곳에서도 하느님의 현존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2022.2.2.)

오늘 우리는 기다리는 사람인가? 그래서 ‘성령께 깨어있음’과 ‘사랑을 담은 귀 기울임’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시도록 하는 인내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눈이 늘 하느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하느님께서는 시련을 통해서도, 우리가 복 받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니다. 아니, 오히려 시련을 통해서 복을 내려주기도 하십니다. 그러니 ‘축성의 삶’, ‘축복의 삶’은 어려움과 시련이 없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축복하시는 그분의 뜻에 봉헌하고 사는 일일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깨어 있으며 희망으로 기다릴 줄을 알게 하소서. 당신 사랑의 힘을 경이감과 감동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시선을 시메온과 한나에게 주셨듯이, 저희에게도 그 시선을 허락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주님!
구원을 보는 눈을 열어 주소서.

포대기에 싸인 아기에게서
알몸으로 매달린 십자가에서
구원을 보게 하소서.

양팔로 제 삶의 무력함을 쳐들고
구원과 자비의
찬미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무력함에서 흘러내리는
당신의 구원을 따라
관상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봉헌의 목적 : 나를 잊음

찬미 예수님.

오늘은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날이자, 우리 자신의 초를 축복하며 봉헌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봉헌'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물건을 바치는 행위가 아닙니다. 봉헌은 곧 '축성'입니다. 내 것을 하느님께 드리고,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거룩하게 변화시켜 다시 우리에게 돌려주시는 신비로운 교환입니다.

인도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에 나오는 '거지와 왕' 이야기는 이 진리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마을에 황금 마차를 탄 왕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왕이 자선을 베푸시면 내 가난도 이제 끝이겠구나!" 그런데 마차에서 내린 왕은 오히려 거지에게 손을 내밀며 뜻밖의 말을 합니다.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는가?"

거지는 당황했습니다. 줄 것을 기대했는데 달라고 하니 말입니다. 그는 망설이다가 자루를 뒤적거려 가장 작은 쌀알 한 톨을 꺼내 왕에게 주었습니다.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자루를 비우던 거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쌀더미 속에서 쌀알만 한 황금 조각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지는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아, 내가 가진 것을 몽땅 털어 드렸더라면, 이 전부가 황금이 되었을 텐데!"

봉헌은 하느님께 빼앗기는 것이 아닙니다. 유한한 내 것을 드리고 무한한 하느님의 것을 돌려받는 거룩한 투자인 셈입니다. 우리가 아까워서 조금만 드린다면, 우리는 딱 그만큼의 축복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봉헌이 축성이 될까요?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수태를 알렸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온 우주와 천사들이 숨을 죽이고 한 시골 처녀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허락을 기다리시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은 마리아의 자궁에 강제로 잉태되신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가 "이 몸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고 자신을 봉헌하며 문을 열어드렸을 때, 비로소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제 삶에 오소서"라고 봉헌할 때, 우리 인생에도 똑같은 강생의 신비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주 봉헌금을 내고 기도를 바치는데도, 왜 내 삶은 거룩하게 축성되지 않는 것 같을까요? 하느님은 당신의 가장 귀한 자유를 주시고 자신을 잊을 만큼 겸손해지시는데, 정작 우리는 봉헌한다고 하면서도 내 것을 꽉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은 돈이나 쌀알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내 손에서 힘을 빼는 것입니다.

음악의 성인 베토벤이 제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칠 때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어깨와 손가락에 힘을 꽉 주고 건반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베토벤은 제자의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으려다 멈추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힘을 빼지 않으면, 내가 너를 도울 수 없다."

제자가 깊은숨을 내쉬고 손에 힘을 빼며 스승에게 손을 맡기자(봉헌), 베토벤은 제자의 손을 이끌어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습니다. 내가 내 인생의 건반을 꽉 쥐고 있으면 하느님은 연주하실 수 없습니다. 내 힘을 빼고 그분께 손을 맡기는 것, 그것이 봉헌이며 그때 내 인생은 명곡으로 축성됩니다.

골프나 검도 같은 운동을 배우러 가면 코치들이 입이 닳도록 하는 말이 있습니다.

"회원님, 어깨에 힘 좀 빼세요. 힘 빼는 데만 3년 걸립니다."

초보자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온몸에 힘을 줍니다. 그러면 공은 빗나가고 칼은 무거워집니다. 반면 고수는 마치 채를 던지듯이 툭 칩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성인이 되어야지, 내가 봉사를 완벽하게 해야지" 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하느님이 쓰시기에 너무 뻣뻣합니다. 하느님이 휘두르시는 대로 휘둘려지는 유연함, 나를 잊은 그 부드러움이 영적 고수의 경지입니다.

영화 '샤인'의 실제 모델인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을 기억하십니까? 그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라는 악마적인 난곡을 완벽하게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과 아버지의 압박 속에 정신 분열을 겪고 무너졌습니다. 그는 악보 하나하나를 정복하려다 파괴되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되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 그는 더 이상 잘 치려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웅얼거리며,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저절로 춤추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연주는 내가 하는 게 아니야. 그냥 음악이 나를 통과해 지나가는 거야."

자신의 기교를 뽐내려는 자아를 잊고 음악의 신에게 손을 맡겼을 때, 사람들은 그의 연주에서 전에 없던 전율을 느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장 완전한 봉헌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를 잊음'입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지, 내가 얼마나 거룩한지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을 잊고 우리에게 오시는 분을 맞기 위해 우리 자신을 잊는 일이 봉헌입니다.

중세의 아름다운 전설 『성모님의 곡예사』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간 한 곡예사는 라틴어 기도도 모르고 학식도 없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수사들이 멋진 성가와 필사본을 봉헌할 때, 그는 아무도 없는 밤에 성당으로 들어가 성모상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곡예'를 했습니다.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물구나무를 서고 공을 굴렸습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거룩한 성당에 있다는 사실도, 자신이 기도를 모른다는 사실도,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잊을 만큼 몰입했습니다. 오직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숨어서 이를 지켜보던 원장 수사가 "이런 신성 모독이 있나!" 하며 야단치려 뛰어들 때였습니다. 놀랍게도 성모상이 움직여 내려오더니, 자신의 푸른 베일로 땀 범벅이 된 곡예사의 이마를 닦아주었습니다.

우리가 봉헌해야 할 가장 귀한 제물은 쌀알도, 황금도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잘나고 싶다는 욕심,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고집, 이 모든 힘을 빼고 나를 잊어버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땀을 닦아주시고 우리 인생을 황금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우리 모두 어깨에 힘을 뺍시다. 그리고 나를 잊고 오직 그분만을 바라봅시다. 아멘.

 

오늘의 모든 말씀 묵상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세 명의 작가를 초대해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명의 작가를 소개할 때, 사회자는 “세 분의 독자를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작가들은 이 소개에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독자라는 말보다 작가라는 말에 더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독자’라는 호칭이 훨씬 정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는 언제나 독서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책을 읽으며 글쓰기에 흥미가 생겨 창작을 시작했고, 또 다른 사람의 책 속에서 지식을 얻고 글을 쓰는 감각을 익혔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11권의 책을 출판해서 작가라는 말을 듣지만, 가장 기본은 독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서 시작할까요? 성경 읽기에서 시작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주님께 흥미가 생겨 기도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 읽기로 주님을 알게 되면서 주님처럼 살고자 하는 마음도 생깁니다. 성경에 전혀 가까이하지 않으면서 과연 주님을 뜨겁게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불가능한 일을 기적처럼 일어나길 원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것도 욕심입니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로, 성모님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아이를 낳은 여인은 부정하므로 40일 후에 정결 예식을 치러야 한다는 산모의 정결례와 태를 열고 나온 모든 맏아들은 하느님의 소유로 봉헌해야 한다는 말이 율법에 나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성모님께서는 원죄 없이 태어나신 분이기에 정결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율법의 수여자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께서 율법에 복종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는 하느님이시지만 인간의 법과 질서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의 겸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마리아와 요셉은 어린 양 한 마리를 바칠 형편이 안 되어서, 가난한 이들의 제물인 ‘산비둘기 한 쌍’을 바치시지요.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그 누가 아기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성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겠지만, 단 두 사람만이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시메온과 한나 예언자입니다. 그들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사셨기에 성령께서 함께하실 수 있었고, 성령의 인도로 구원자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알아보려면, 우리의 삶을 바꿔야 합니다.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삶에서 벗어나 주님 중심의 삶을 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서도 주님과 함께하려 한다면? 아주 큰 욕심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아무리 긴 이야기도 길다고 느끼지 않는다(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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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봉헌은 시작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께 속한 우리 삶의 뜨거운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 자신을 먼저 봉헌하십니다. 봉헌된 삶은 빛이 됩니다. 주님 봉헌은 곧 빛의 선포이며, 빛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봉헌은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입니다. 주님 봉헌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앙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맡기는 것입니다. 봉헌은 순종입니다. 하느님께 되돌아가는 것이 봉헌입니다. 그것은 관계의 진실을 회복하는 길이며, 하느님의 뜻에 삶을 맡기는 선택입니다.

봉헌의 믿음은 미래를 통제하지 않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용기입니다. 은총을 알아보는 삶, 그 자체가 봉헌의 삶입니다. 이 봉헌은 성전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노동과 조용한 돌봄 속에서도 계속됩니다.

하느님께 더 맡길수록 삶은 더 맑아지고, 신앙은 더 단순해집니다. 삶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빛이 되시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내려놓을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내려놓는 한 가지가,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진심어린 봉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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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키서 3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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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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