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열왕 11,29-32; 12,19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 - 복음
마르 7,31-37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열왕 11,29-32; 12,19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였다.
29 그때에 예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다가 실로 사람 아히야 예언자를 길에서 만났다. 그 예언자는 새 옷을 입고 있었다. 들에는 그들 둘뿐이었는데,
30 아히야는 자기가 입고 있던 새 옷을 움켜쥐고 열두 조각으로 찢으면서,
31 예로보암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열 조각을 그대가 가지시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이제 내가 솔로몬의 손에서 이 나라를 찢어 내어 너에게 열 지파를 주겠다.
32 그러나 한 지파만은 나의 종 다윗을 생각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서 내가 뽑은 예루살렘 도성을 생각하여 그에게 남겨 두겠다.’”
12,19 이렇게 이스라엘은 다윗 집안에 반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7,31-37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그때에
31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을 떠나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릴래아 호수로 돌아오셨다.
32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34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35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36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들에게 분부하셨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다.
37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서 말하였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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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완벽하지 않아도 이미 소중한 나
제가 일반 대학에 다닐 때의 일입니다. 그때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난 선배가 있었는데, 하루는 이제 막 출간된 책을 읽다가 버럭 화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책에 오타라니! 에이, 짜증 나!”
그런데 옆에 있던 또 다른 선배가 책을 집어 들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멋있고 완벽한 책에, 그까짓 오타 몇 개 가지고 왜 그래?”
같은 상황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작은 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단순한 취향의 차이를 넘어 우리 마음의 ‘열림’과도 깊은 관련이 있으니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 주시면서 “‘에파타!’, 곧 ‘열려라!’”(마르 7,34)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싶었던 신앙인의 자세가 이것이겠지요. 진정한 열림으로서, 사소한 흠보다 전체를 보는 넉넉한 시선 말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의 삶’이라는 멋진 책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삶에 날마다 새롭게 감격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같은 탄소로 이루어진 연필심과 다이아몬드의 차이는 희귀성에 있듯이 이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기에,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하느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뒤, 우리의 수많은 악행에도 당신 아드님을 내주신 까닭도 결국 이 한 가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요.
오늘 복음 환호송을 노래하며 먼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기쁨을 되찾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저희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아드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섬세한 사랑
“예수님께서는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의 얘기는 마르코 복음에만 나오는 얘기인데 굳이 구분하자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ㅡ 군중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주님께 데리고 온 일
ㅡ 주님께서 그를 따로 데리고 나가 치유해주신 일
ㅡ 사람들이 함구령을 어기고 있었던 일에 대해 떠벌린 일
그래서 오늘은 세 부분으로 나눠 묵상과 나눔을 하려고 하는데 ‘왜 그랬을까?’라는 형식으로 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은 왜 장애인을 데리고 왔을까요? 스스로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왜 사람들에 의해 왔을까요? 치유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거나 수줍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의 치유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온 것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치유의 공동체성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치유가 공동체적으로 일어나기 위해서는 개인도 공동체에 열려있고 공동체도 개인의 필요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를 치유해주실 때 “열려라!” 하고 명령하시는데 열려야 할 것은 귀와 입뿐 아니라 마음까지이고, 사실 마음이 먼저 열려야 합니다. 사실 많은 장애인이 장애로 인해 자기 안에 웅크리고 있기 쉬운데 그렇기에 치유를 위해서는 마음이 열리는 것이 먼저 필요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열리기 위해서는 개인도 열어야 하지만 공동체도 그가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섬세한 사랑을 보여야 합니다. 섬세한 사랑! 이것이 또한 주님께서 치유해주시며 보인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왜 그를 굳이 사람들로부터 데리고 나가 치유해주셨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그 설명이 없지만 분명 그에게 그럴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다른 많은 경우 사람들 앞에서 또는 사람들 가운데 나오게 하여 고쳐주시던 주님께서 따로 데리고 나가 치유해주신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열리라는 말씀 한마디로 얼마든지 고쳐주실 수 있는데도 침을 혀에 발라주시고 귀에 손을 대시고 숨을 불어 넣어주시는 등 오늘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치유해주십니다.
섬세한 사랑에 모든 사랑을 더 하시는 주님의 사랑에 사람들은 감동하여 입을 닫으라는 데도 입을 열어 떠들어댑니다. 크고 섬세한 사랑에 마음이 열리고 입이 열려 복음과 구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사랑하긴 하지만 우격다짐으로 사랑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작은 사랑으로 생색이나 내며 마음 열리길 바라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조금 더 큰 사랑에 조금 더 섬세한 사랑을 더 해야겠다는 자극을 듬뿍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귀와 입이 닫혀있어 말씀이 드나들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인 티로와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지역을 지나 다시 갈릴래아로 오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마르 7,32)
사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교는 혼자 깨달음에 이르는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그 ‘말씀’에 따라 사는 종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귀’와 ‘입’은 신앙을 형성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됩니다. 그러기에,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신앙형성에 있어 치명적입니다.
그러니 ‘귀먹은 이’란 단지 듣지 못하는 이가 아니라, 곧 귀가 있어도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입니다. 또한 ‘말 더듬는 이’란 입이 있어도 혀가 굳어져 말씀을 삼키지 않는 이입니다. 따라서 ‘귀먹고 말 더듬는다’는 것은 소통과 통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곧 친교를 나누지 않음이요, 단절과 분리요,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친교를 나누지 않고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것일까?
그것은 귀와 입이 닫혀있어 말씀이 드나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막혀 있어서 흘러들고 흘러내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완고하여 고집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사실, 우리도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임에 틀림없습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우리는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우리는 벙어리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을 따로 광야로 불러내듯, 여인을 광야로 불러내어 사랑을 속삭여주듯(호세 2,16-25 참조),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마르 7,33).
그리고 빵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셨을 때처럼, “하늘을 우러러” 아버지의 뜻에 의탁하여 ‘숨을 내쉬어’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에파타!(열려라)”(마르 7,34)
바로 그 순간, 저희는 그분 손가락을 통하여 만질 수 없는 신성을 만집니다. 곧바로 묶였던 ‘혀’가 풀리고 닫혔던 ‘귀’의 문이 열립니다. 마치, 아담이 말을 배우지 않고도 곧바로 말을 하게 해 주셨던 것처럼(창세 1,27-28;2,20), 힘들게 배워야 하는 말을 배우지도 않고도 말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당신 말씀을 듣도록 ‘듣는 귀’를 열어 당신 말씀을 심으십니다. 당신 손가락으로 혀를 도유하여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리고 이로써, “귀 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5-6)는 이사야의 예언을 저희에게서 이루시고, 메시아 시대가 왔음을 알리십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도유하십니다. 저희 귀를 열어주시어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십니다.
하오니, 주님! 오늘 저희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소서!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7,34
에파타! (열려라)
주님!
주님, 저는 귀 막고 입 막고 사는
귀머거리요, 벙어리입니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바로 귀머거리요
타인을 칭찬하지 않을 때가
바로 벙어리입니다.
당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당신께 감사드리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때
귀머거리요
하고 싶은 말만하고
하고 싶지 않는 말은 하지 않을 때
벙어리입니다.
주님, 저의 영혼을 도유하소서.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어
저의 귀와 입을 열어주소서.
저희 귀에 당신 말씀을 담아주시고
저의 혀로
그 아름다운 향기를 맛보게 하소서.
제가 당신 말씀의 향기를 뿜게 하시고
당신 영으로 도유된
진리의 말씀을 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우리 공동체엔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가?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할머니가 요즘 통 못 알아듣는 것 같아 걱정이 됐습니다. 그래서 뒤에서 몰래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죠. 거실 끝에서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습니다. 조금 더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뭐야?"
역시 조용합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할머니 귀 바로 뒤까지 다가가 소리쳤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냐고!"
그러자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습니다.
"영감님! 벌써 다섯 번째 닭볶음탕이라고 말했잖아요!"
우리는 남이 못 듣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귀가 막힌 쪽은 나 자신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귀먹고 말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단순히 신체적인 치유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를 다시 듣게 하시고, 다시 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듣고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는 영적 귀머거리입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그들은 뱀의 감언이설은 기가 막히게 들으면서 하느님의 금령은 못 들은 체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너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피해 덤불 속에 숨었습니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무서워진 것입니다. 이것이 귀가 막힌 상태입니다. 입이 막힌 것은 또 어떻습니까?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고백하지 못하고 "저 여자 때문에", "저 뱀 때문에"라며 남 탓만 늘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영적 벙어리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귀머거리와 벙어리들이 모이면 공동체는 지옥으로 변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7세기 프랑스의 포르 로아얄(Port-Royal) 수도원입니다. 이곳 수녀들은 엄격한 금욕과 지성으로 당대 최고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얀세니즘'이라는 엄격한 교리에 사로잡혀, 교회의 권고나 교황의 가르침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당시 파리 대주교였던 페레픽스는 그들을 방문한 뒤 "그들은 천사처럼 순결하지만, 악마처럼 오만하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이 세운 완벽한 논리라는 벽 뒤에 숨었습니다. 한번은 수도원에 큰 위기가 닥쳐 서로의 도움이 절실했을 때조차, 수녀들은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어 미안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화해하기보다, "누가 더 교리에 충실한가"를 따지며 서로를 정죄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라는 소리에 귀를 닫으니, 입에서는 오직 타인을 향한 칼날 같은 비판만 흘러나왔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의로움이라는 벽돌로 창문 하나 없는 캄캄한 감옥을 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짓말과 위선은 영혼의 벽돌과 같습니다. 하나씩 쌓을 때는 견고해 보이지만, 어느새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방에 갇히게 됩니다. 내가 더러워도 더러운 줄 모르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과 함께 있는 공동체는 이 벽을 깨부수고 서로의 민낯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의 엘비라 수녀님이 세운 체나콜로 공동체(Comunità Cenacolo)는 마약과 절망에 빠진 이들의 피난처입니다. 이곳의 치유는 '진실의 시간(Revisione di Vita)'에서 시작됩니다.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던 안드레아라는 청년은 어느 날 동료들의 물건에 손을 댔습니다. 예전 같으면 숨기고 거짓말을 했겠지만, 그는 떨리는 다리로 형제들 앞에 섰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어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너희의 것을 훔쳤다. 내 안의 어둠이 다시 나를 집어삼키려 한다. 제발 나를 위해 기도해다오."
그 순간 공동체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고, 곧이어 동료들이 다가와 안드레아를 안아주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이 시간은 『La Risurrezione』(부활)이라 불립니다. 죄를 입 밖으로 내뱉어 어둠을 드러내는 순간, 막혔던 영적 귀가 뚫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분명히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서로 고백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야고보 5,16). 고해성사가 주님과의 수직적인 화해라면, 형제들과의 죄 고백은 우리 공동체를 살리는 수평적인 호흡입니다. 거짓말은 벽돌과 같아서 쌓을수록 영혼을 가두지만, 고백은 그 벽을 허물고 빛을 들여보내는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결론으로 시리아의 교부 성 에프렘의 영성 깊은 묵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귀머거리의 혀에 침을 바르시고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사건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신성이라는 손가락으로 우리 영혼의 빗장을 만지셨다. 그분이 '에파타'라고 외치신 것은, 인간이 죄로 인해 닫아걸었던 마음의 문을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서 직접 열어젖히신 사랑의 폭력이다."
이제 입을 열어 나의 더러움과 나약함을 솔직히 고백합시다. 그런 분위기의 공동체에 머뭅시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것에 비추어 나의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공동체라면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이 확실하고,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 신부님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요.”
선배 신부님이신 이분은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마다 왠지 잘될 것 같은 기운을 주변에 퍼뜨립니다. 그래서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의 빛을 받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신부님께서는 늘 긍정적인 말로 격려해 주십니다. 또 현실을 귀찮아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마주하려 합니다. 이런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찾아오는 빈도는 그리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찾아오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해석의 차이입니다. 누구는 불운 속에서도 행복을 찾고, 어떤 사람은 축복 속에서도 불만을 찾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자기 인생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운은 자기 발로 찾아오는 선물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내는 믿음의 결과물이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말, 삶 안에서 적극성을 보이는 행동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좋은 일만 계속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불평불만을 만들어 내는 사람도 참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벌을 주시고,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치유 방식이 독특합니다. 먼저 따로 데리고 나가십니다. 즉, 군중과 차단된 곳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이는 듣지 못하고 말 못 하는 이 사람이 군중 속에서 구경거리가 되거나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을 배려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1:1의 인격적인 관계 안으로 초대하여 안심시키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치유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귀를 먼저 치유하셨고, 그다음에는 혀였습니다. 잘 듣지 못하면 제대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야 이 안에서 믿음이 생깁니다.
육체적으로 잘 듣고 말한다고 하지만, 영적으로 귀머거리와 벙어리인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왜냐하면 사랑을 말하고 실천해야 할 때에도 침묵하고 있으며, 주님께 대한 믿음을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칠 때 한숨을 내쉬셨던 것처럼, 우리를 향해서도 한숨을 내쉬며 ‘에파타’(열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배려와 사랑, 이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어떨까요? 끊임없이 ‘에파타’(열려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를 돌아보면서, 이웃에게 그 사랑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승자가 즐겨 쓰는 말은 “다시 한번 해 보자.”, 패자가 즐겨 쓰는 말은 “해봐야 별 수 없다.”(탈무드 중에서).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믿음은 먼저 듣는 데서 시작됩니다. 닫힘은 교만에서 나오고, 열림은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때로 들으려 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침묵하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채 지나칠 때가 많습니다. 듣지 못하면 우리의 말도 공허해집니다.
참된 언어는 깊은 경청에서 태어납니다. 판단으로 닫지 않고, 비난으로 막지 않으며, 경청으로 사람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숙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열리는 것입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참된 말은 사라지고, 귀를 닫을수록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막힘은 육체의 문제가 아니라 굳어진 생각의 문제입니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닫힘은 관계의 단절이지만, 열림은 사랑의 시작입니다. 치유는 상대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맑히는 사랑입니다. 열림은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듣지 않으려 했던 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외면해 온 목소리는 누구의 것입니까? 말씀을 듣고 자신의 언어를 회복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자기 자리를 찾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의 귀가 열리면 하느님을 듣게 되고, 참으로 우리의 입이 열리면 사랑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제대로 듣게 하시고 제대로 말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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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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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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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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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0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2.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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