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야고 1,1-11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 복음
마르 8,11-13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야고 1,1-11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리하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1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2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3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4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5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6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7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8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어떠한 길을 걷든 안정을 찾지 못합니다.
9 비천한 형제는 자기가 고귀해졌음을 자랑하고,
10 부자는 자기가 비천해졌음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꽃처럼 스러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11 해가 떠서 뜨겁게 내리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만 골몰하다가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르 8,11-13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그때에
11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13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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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먼저 믿을 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우리도 때로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정말 계시다면, 저희한테 직접 보여 주실 수는 없나요?”
그러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요청을 단호히 거절하시고 탄식하시며 자리를 떠나십니다. 그들의 태도는 ‘하느님이시기에 믿겠다.’가 아니라, ‘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믿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기적이 먼저, 믿음은 나중’이라는 잘못된 순서였습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표징을 본 뒤에 믿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기 때문에 삶 안에서 표징을 발견합니다. 오늘 독서는 이러한 믿음의 길에 지혜를 더합니다.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야고 1,3).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십니다]”(1,5).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그저 고난을 피하는 요령이나 세상의 지식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련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뜻을 분별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께 믿음을 두며 희망을 잃지 않는 마음의 눈을 가리킵니다.
온갖 균과 바이러스가 가득한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균을 없앤 무균실에 머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면역력을 키워서 이겨 내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 우리가 신앙으로 받는 은총은 후자와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악과 시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신앙의 힘으로 그것들을 이겨 내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화답송으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 자비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제가 살리이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믿음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
오늘 독서는 야고보서의 시작 부분인데 제 생각에 신앙생활 곧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믿음을 어떻게 성장하게 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로 신앙인이라면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치는데 신앙인에게 믿음의 시험은 인내를 낳게 하는 것임을 알기에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라고 합니다.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겪는 갖가지 시련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도 하지만 인내를 낳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초보자들은 하느님을 믿으면 시련이 없을 줄로 압니다. 시련을 없애 줄 분으로 생각하고 하느님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초장에 오히려 시련이 많게 되면 여기서 믿음을 포기하는 자와 시험을 통해 믿음이 단련되는, 인내력이 자라고 강해지는 기회로 삼는 자로 갈리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초보자 때의 시련은 믿는 것의 효력에 대해 의심하게 하면서 이럴 바에 신앙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하지요. 그런데 믿음의 효력은 시련을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시련을 견디고 이기는 힘을 길러주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최민순 신부님의 <기도>라는 시를 보면 내 인생길에서 바위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바위를 딛고 넘어갈 힘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지요.
같은 맥락에서 저는 매일 미사 때 주의 기도 다음에 모든 죄와 악에서 구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해달라고 기도할 때도 모든 악과 시련을 없애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악과 시련을 겪는 중에도 복된 희망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무튼 지혜로운 사람이란 이렇게 시련 때문에 믿음의 효력에 대해 의심이 들 때 시련이 우리의 인내력이 생기게 하고 자라게 하는 데 효력이 있음을 아는 자이고, 인내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 되게 하는 데 효력이 있는 것임을 아는 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는 이렇게 가르치며 권고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에 있어서 지혜로운 사람이란 시련이 인내심이 생기고 인내심을 단련하는 데 효력이 있음을 알고, 완전한 자 되도록 시련을 기회로 쓸 줄 아는 사람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고 받아들이는 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기적이고 신비다.
오늘 <독서>는 야고보 사도가 ‘시련과 시험’을 겪게 되는 신자들에게, <복음>은 예수님께 대한 바리사이들의 ‘시험’을 전해줍니다.
<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어려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야고 1,2-4)
<복음>에서는 예수님께 대한 바리사이들의 요구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마르 8,11)
그들은 “하늘에서 오는 표징”, 마치 모세 때에 광야에서 내린 ‘만나’(탈출 16장)나, 여호수아의 간구로 해와 달이 멈춰졌던 일(여호 1,12-14)과 같은 하늘에서 오는 초자연적인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그것은 마치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기 위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마태 4,3)라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당신이 메시아인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라는 지극히 도전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12)
“이 세대”를 <마태오복음>의 병행구절에서는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마태 16,4)라고 표현합니다. 곧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고 왜곡되어 있고 악의에 찬 까닭입니다. 어쩌면, 도처에서 드러내시는 당신의 신성을 보고 또 보고 그렇게 보면서도, 여전히 무시하고 거부하고 있는 우리의 마음이 바로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의혹과 불신을 넘어서는 믿음의 눈, 세상을 호의로 바라보는 선한 눈, 사랑으로 신비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할 것입니다.
과학자 아인쉬타인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한 부류는 세상에는 기적이 없다는 사람들이요, 또 한 부류는 세상의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믿고 받아들이는 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본 훼퍼 목사님이 갈파한 대로,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하느님을 드러내는 성사입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고백한대로, 그 무엇도 이 지고한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사랑을 피해가고 거부해 버리는 일이 없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르 8,12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주님!
당신의 진실은
오늘도 저의 믿음을 다그칩니다.
불신으로 왜곡되고 굳어진
제 마음을 풀어주소서.
감겨있고 가려져 있는
제 마음의 눈을 열게 하소서.
도처에 드러내시는
당신을 보게 하소서.
도처에 흐르는
당신의 사랑을 피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신성을 보고 또 보고 보면서도
무시하고 거부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그가 당신 사랑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
어느 부부가 결혼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죠. "여보, 당신 나 사랑해?" 남편은 쑥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사랑하지."
하지만 아내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면 증거를 대봐. 요즘 내 친구들은 남편한테 다이아몬드 반지도 받고, 유럽 여행권도 받는다던데 당신은 뭐야?"
남편은 고민 끝에 다음 날 아주 커다란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설레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었죠. 그런데 그 안에는 명품 가방 영수증이나 비행기 티켓 대신, 두툼한 서류 한 뭉치가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남편의 생명보험 증서였습니다. 남편이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여보, 내가 죽으면 당신한테 10억이 나와. 내 목숨을 건 이 증거보다 더 큰 사랑의 표징이 어디 있겠어?"
그러자 아내가 서류를 바닥에 내던지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양반아! 당장 죽지도 않을 거면서 이런 게 무슨 소용이야?"
우리는 웃지만, 사실 이 아내의 모습이 오늘 복음 속 바리사이들의 모습이자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또다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진정으로 사랑을 해 본 사람은 상대방에게 거창한 표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발견하는 것이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젖은 눈동자, 무심코 건네는 따뜻한 물 한 잔, 나를 바라보는 그 미세한 입꼬리의 떨림만으로도 온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사랑을 느낍니다.
만약 누군가 여러분에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전 재산을 내 명의로 돌려라" 혹은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위해 무릎을 꿇어라"라고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사람 안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그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악한 사람일 뿐입니다.
실제로 이런 비극은 우리 현실에서 너무나 자주 일어납니다. 최근 유행하는 '로맨스 스캠'이나 가스라이팅 범죄를 보십시오. 사기꾼들은 말합니다.
"내가 지금 급한 돈이 필요한데,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이게 우리 사랑의 증거야."
이런 악한 요구에 넘어가는 이들은 사랑이 너무 간절한 나머지, 사랑의 본질을 잊어버립니다. "내 사랑을 증명해야 해"라는 강박에 빠져 재산을 다 털리고 인생을 바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비참함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을 증명하라고 압박하는 사람은 결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당신의 사랑을 연료 삼아 자신의 욕망이라는 괴물을 키우고 있을 뿐입니다. 악한 자는 결코 사랑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는 오직 숫자로 된 증거, 육체적인 굴복, 눈에 보이는 커다란 표징만을 탐할 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보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법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시인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은 그의 시 『오로라 리』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지구는 하늘나라로 가득 차 있고, 모든 가시덤불은 하느님의 불로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사람만이 신을 벗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그 주위에 둘러앉아 블랙베리나 따 먹는다.』
꽃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길가에 핀 작은 들꽃 한 송이 앞에서도 발을 멈추고 창조주의 신비를 읽어냅니다. 하지만 마음이 악하고 무딘 자는 꽃을 밟으며 지나갑니다. 그리고 말하죠. "이게 뭐가 아름답다는 거야? 금으로 만든 꽃이라도 가져와 봐. 그럼 믿어주지." 개는 장미꽃의 향기에 감동하지 않습니다.
오직 먹을 수 있는 고기 덩어리라는 표징에만 반응합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끊임없이 "내 병을 고쳐주시면 믿겠다", "내 자식을 합격시켜주시면 하느님 사랑을 인정하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영적으로 세속과 육신에 갇힌 개와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자백과 같습니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평생을 바친 복자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막의 뜨거운 모래바람 속에서 아무런 가시적인 성과도 내지 못했습니다. 개종시킨 사람도 거의 없었고, 화려한 성당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매일 아침 사막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 아침, 하느님께서는 나를 위해 태양을 띄워주셨고, 목마른 나를 위해 작은 오아시스의 물 한 모금을 허락하셨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느님은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신다.』
샤를 드 푸코 신부님은 세상이 요구하는 표징, 즉 교회의 성장이나 기적의 숫자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막의 고요함 속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듣고 말 한마디에서 그분의 뜻을 읽어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이처럼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하느님을 볼 줄 압니다.
교우 여러분,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들처럼 주님을 시험하지 맙시다. 여러분이 오늘 성당에 올 수 있었던 건강, 오늘 점심에 먹을 따뜻한 밥 한 그릇,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있는 형제자매의 존재 자체가 바로 하느님이 보내주신 가장 확실한 표징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작은 것들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늘이 갈라지고 죽은 이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는 잠시 놀랄 뿐, 결코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이 약속보다 더 큰 표징은 없습니다. 이 사랑을 알아보는 눈을 가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이용당하거나 버려지지 않고, 하느님 안에서 영원히 안전하고 행복한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죽음을 앞둔 어떤 문학가에게 마지막 병자성사를 드리기 위해 사제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을 믿습니까?”
“네. 믿습니다.”
“당신의 모든 죄를 뉘우칩니까?”
“네. 그렇습니다.”
“당신은 사탄과 그의 모든 행위와 허영을 끊어 버립니까?”
이 질문에 문학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지금 적을 만들기에는 좋은 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포기하겠습니다.”
병자성사는 적을 만드는 성사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우정을 받아들이는 성사입니다. 이 사실에 집중하면 하느님의 적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 어떤 것과도 대치될 수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이익이라면 어떤 것도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곤 이렇게 말하지요. ‘하느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야.’
자기의 생각과 행동대로 하느님께서 움직이셔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런 하느님을 믿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과 논쟁하면서 계속해서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이미 수많은 기적(치유, 구마, 빵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질병의 치유 등은 마귀의 힘으로도 가능하다고 여겼고, 메시아의 증거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엘리야가 불을 내리거나,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거나, 모세가 만나를 내린 것처럼, 하느님께서 직접 행하시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표징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생각대로 해야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는 자기 생각과 방식대로 주님께서 움직이셔야 믿겠다는 억지입니다. 우리도 종종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져야 주님을 믿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 안에서의 주님 손길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르 8,12)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버려두신 채 떠나십니다. 그들을 포기한 것입니다. 완고한 불신앙 앞에서는 어떤 대화도, 어떤 표징도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빛이 왔으나 어둠이 거부했기에, 빛이 그들을 떠나는 것입니다.
많은 청원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그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님을 떠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 삶 안에서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과 방식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맞춰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인생을 낭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이다(아인슈타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표징이 없어도 주님은 계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표징을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라 현존을 알아보는 신앙입니다. 이미 많은 은총을 받았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기적이 없으면 주님의 현존을 의심합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강요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선물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 우리 의지의 문제입니다. 계시 앞에서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결단이 중요합니다. 사랑은 기적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함께 걸어주는 동행입니다.
표징보다 함께하는 동행입니다. 표징을 요구하는 우리들인지, 아니면 표징이 되는 삶을 사는 우리들인지를 다시 한번 묻게 됩니다. 결단은 항상 불확실성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은 불확실성의 제거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의 올바른 선택입니다. 그래서 삶을 움직이는 힘은 완벽한 증명이 아니라 감히 믿어보는 진실된 용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숨 쉬고 있음이 이 시간이 은총이고, 누군가 곁에 있음이 진정한 은총이며, 말씀을 들을 수 있음이 고마운 은총입니다. 우리는 평범함 속의 신비를 보지 못하고 특별함만을 기다립니다. 이 모든 시간이 날마다 이어지는 은총의 표징입니다. 우리는 이미 기적 속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매 순간이 은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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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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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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