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레위 19,1-2.11-18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 복음
마태 25,31-46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레위 19,1-2.11-18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25,31-46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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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진슬기 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
시장 골목에서 배운 신앙의 지혜
저는 기분이 울적해질 때면 재래시장에 가고는 합니다. 복작거리는 시장에서 활기를 얻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장을 거닐다 문득 흥미로운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른 아침 가장 먼저 문을 여는 가게는 어김없이 채소 가게, 생선 가게, 과일 가게 같이 자연에서 나는 것들을 파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과일 가게 옆 신발 가게는 아직도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신선도’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러자 문득 ‘사람에게도 신선도 같은 것이 있을까? 신선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하는 군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고는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신선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정말로 그가 그러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신선함은 그가 사람들과 맺는 관계에 있지 않을까요? 그 핵심은 ‘먼저’라는 단어에 담겨 있고요. 채소 가게와 과일 가게가 자연에서 막 거둔 것들을 신선하게 내놓고자 누구보다 ‘먼저’ 문을 열고 새벽부터 부산한 것처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먼저’ 다가가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사랑할 때 신선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생각이 납니다. 내가 좋아하던 짝이 나를 싫어한다 해도, 다음 날이면 또 먼저 말을 걸던 그때의 순수함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복음의 이 말씀에 마음이 머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나처럼이 아니라 주님처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 레위기는 당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되어 이웃에게 나쁜 짓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나열한 다음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끝맺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이것이 제게는 하느님처럼 거룩한 것은 하느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웃 사랑이란 다름 아니라 한편으로 이웃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렇긴 하지만 나쁜 짓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사랑이 완전하지 않고, 사랑을 완성할 수도 없으며 심지어 사랑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미워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관심하고 무관계할 수도 있잖습니까? 무관심과 무관계만큼 미워하지 않는 데 쉬운 방법도 없고 완벽한 방법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워하는 고통이 싫어서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끊을 수 없으면 손 닭 보듯 무관심해 버리는 방법을 쓰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워하지 않고 나쁜 짓 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말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해야 하고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는 이 정도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 자신처럼’이 아니라 주님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웃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도 대단한 사랑이지만 하느님과 동일시하는 것이 더 대단한 사랑이고 더 완전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하는 이유도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이어야 완벽합니다.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할 때 그것이 주님께 순종이요 성사적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레위기는 하느님의 계명을 전하고는 그 끝에 후렴구처럼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하느님을 경외하기에 하느님의 계명을 실천할 때, 그때에야 하느님은 진정 우리의 주인님임을 우리는 다시금 깨닫고 나처럼이 아니라 주님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을 실천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
오늘 우리는 <사순 첫 주간 월요일>을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는 성덕으로의 부르심은 나중에 바오로 사도에 의해 “아버지의 뜻”으로 선포됩니다. 곧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오늘 <복음>은 ‘최후의 심판’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기준’이 무엇인지 눈여겨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 ‘기준’은 신앙이나 종파가 아닙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이 믿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인이냐 이방인이냐, 죄를 지었느냐 짓지 안했느냐가 아닙니다. 초월적인 신비체험이나 관상, 기적이나 예배도 아닙니다. 교리나 신심도, 신분이나 성공도, 부나 힘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사랑과 자비의 실천’일 뿐입니다. 특별히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마태 25,40)에게 해준 사랑과 자비의 실천입니다. 그들에게 해 준 것이 곧 예수님께 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를 분명히 말해줍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그렇습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을 당신의 ‘형제’라고 부르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해준 것이 당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하시고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 되고, 하느님을 인간들 사이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마더 데레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외면하는 버려진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보았다.’
한편, 이 심판에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벌을 받은 왼 편의 사람들이 어떤 큰 범죄나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무관심하고 소극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처벌을 받은 것은 그들이 특별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적극적인 사랑을 하지 않은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않음, 곧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죄’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도 야고보는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야고 4,17).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5,40
너희가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님!
당신의 선물을
보잘 것 없이 여기지 않게 하소서.
어느 누구에게나
무관심하지 않게 하소서.
어느 누구든지
하잖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나에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그가 존귀하기에
귀중하게 여길 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체 제대로 영하는 법: 봉성체 나가는 마음으로
교우 여러분, 사순 시기의 첫 주간을 보내는 오늘 우리는 최후의 심판 복음을 듣습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천국행 티켓의 검수원은 베드로 사도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이 세상에서 마주친 보잘것없고 밉살스러운 형제들입니다.
주님은 심판 날에 "네가 얼마나 거룩한 표정으로 성체를 영했느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너는 성당 문밖에서 떨고 있는 나에게 얼마나 거룩한 미소를 보냈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성체를 모시면서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내 손바닥 위의 성체와 길 위의 형제가 같은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논리적으로만 알 뿐, 영성적으로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의 한 전설에 따르면, 아주 부유하고 열심한 귀족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금으로 장식된 미사 책을 들고 가장 앞자리에서 성체를 모셨습니다. 하루는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성당 문앞에 굶주린 노인이 손을 내밀었습니다. 부인은 "지금 내가 주님을 모시고 거룩한 침묵 중에 있으니까 이 행복을 깨지 말아주세요"라며 노인을 밀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날 밤 부인의 꿈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인이 "주님, 제가 오늘 얼마나 정성껏 당신을 모셨는지 아시지요?"라고 묻자, 주님은 피 흘리는 모습으로 답하셨습니다.
"너는 성당 안에서 나를 입으로 받아 모셨지만, 성당 밖에서는 나를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네가 모신 것은 내가 아니라 그저 차가운 밀떡뿐이었다."
이것은 성체를 영한 사람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고, 그 인간이 우리를 위해 밀떡까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존재의 원인입니다. 그분을 사랑할수록 우리 눈에는 신비로운 시력이 생깁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라는 존재를 빚어낸 거푸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죠.
이탈리아의 위대한 성녀, 시에나의 가타리나의 일화입니다. 성녀는 자신에게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붓던 고약한 나병 환자 테페 할머니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냈습니다. 사람들은 구역질 난다고 고개를 돌렸지만, 성녀는 그 피고름 속에서 성혈의 맛을 보았습니다. 왜일까요? 성녀에게는 그 할머니가 단순한 환자가 아니라, 주님이 당신을 내어주어 거룩하게 만들고 싶어 하시는 '밀떡'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잊지 못할 체험이 있습니다. 첫 본당 신부 시절, 어느 요양원 시설에서 팔다리가 묶인 채 온갖 욕설을 내뱉는 한 자매님께 봉성체를 가야 했습니다. 그분의 이빨은 마치 짐승처럼 뾰족하게 갈려 있었고, 눈빛은 마귀처럼 섬뜩했습니다. 처음엔 성체를 모시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제 얼굴 앞에 성체를 뱉어버렸습니다. 땅에 떨어진 성체에는 입안에 있던 고춧가루까지 묻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뱉은 침이 묻은 성체를 제가 모시며, 예수님이 저에게 들어오기를 바라시는 것이나 그 자매에게 들어가 거룩하게 만들려는 것이나 다를 게 없음을 알았습니다. 왜 마귀로 변해버린 유다에게까지 성체를 영해주셨을까? 그게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고 싶은 그분 마음이었습니다.
성체를 모시고 있으면 신자들에게서 그 성체를 모실 자격을 조금이라도 찾아내려 합니다. 저는 그 자매에게서 성체를 모실 자격이 없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몸!’ 하는 순간에 갑자기 옛 기억이 나서 ‘아멘!’이라고 하는 것을 찾아내려 했습니다. 그래서 성체를 영해드리려 했습니다.
만약 제가 성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그 사람에게까지 들어가 그를 거룩하게 하고 싶은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없고, 그냥 치매 걸려 미쳐버린 할머니로 치부하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결국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는 내 안에 그 사람에게 내어줄 성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제만 봉성체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체를 영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미운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주님을 모셔다드리는 '움직이는 감실'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프랑스 뉴스에 실린 파리의 한 청년 이야기는 성체성사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매일 아침 성체조배를 하던 이 청년은 미사가 끝나면 성당 문앞 노숙자에게 자기 점심 도시락을 건넸습니다.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자 청년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방금 제 입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이, 저분 입으로도 들어가고 싶어 하시는 게 느껴져서요. 제 입만 예수님을 모시고 저분 입은 굶주리게 한다면, 그건 예수님을 반토막 내는 거잖아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손바닥 위에 성체가 놓일 때 가만히 고백하십시오. "주님, 저는 오늘 당신을 모시고 제가 제일 미워하는 그 사람에게 봉성체를 가겠습니다. 제 안에 계신 당신의 사랑으로 그 사람의 형상 안에 찍힌 당신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97항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게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으려면, 그리스도의 형제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뵈어야 한다.』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이라면, 당연히 '봉성체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모신 가장 귀중한 보물을 세상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내어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성체를 모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밀가루만 모시지 말고 그분 마음을 모시고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이것만이 진정한 성체성사입니다. 그리고 봉성체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천국행 티켓의 검수원인 '가장 작은 이'들로부터 합격 도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작년에는 운동을 참 게을리했습니다. 그래서 몸이 둔해질 정도로 살도 많이 불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에는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기도한 후 곧바로 근처 공원을 1시간 30분 정도 돌았고, 방에 들어와서는 근육 운동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근육 운동을 해서일까요? 허리 쪽에 불편함이 찾아왔습니다. 예전에 허리 때문에 고생한 기억에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내 머릿속의 많은 부분을 ‘허리’가 계속 채우고 있었습니다.
몸의 중심은 머리나 뇌가 아니라 ‘아픈 곳’에 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온 신경이 아픈 곳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면서 몸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아픈 곳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렇게 중심을 두고 살아야 실제로 아픔이 사라집니다.
아픈 곳에 중심을 두어야 그 아픔에서 벗어나 편안한 평화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만약 아픈 곳에 중심을 두지 않고, 그냥 숨기고 무시한다면 어떨까요? 아픔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힘듦이 떠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도 아픈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소외되고 힘들어하는 작은 이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민족들을 당신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르실 것이다.”(마태 25,32)
모든 민족들이 모인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심판의 대상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는 기준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나그네, 헐벗은 이, 감옥에 갇힌 이에 대한 자비의 실천임을 이야기하십니다. 더군다나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께서 누구와 함께하는지를 분명하게 하십니다.
반대로 저주받은 자들을 향해서는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들은 살인, 강도, 사기를 친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직접 보았다면 누구보다 극진히 모셨을 것이라고 억울해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유일한 죄는 ‘하지 않은 것’, 즉 무관심입니다.
주님께서 아파하는 이들을 향해 무관심으로 나아가서는 예수님 말씀처럼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이 아픈 이를 위해 적극적인 관심과 사랑을 쏟는 사람은 최후의 심판 때 나를 변화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알 수 있고,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다(모리 S.슈워츠).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존귀함을 다시 만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존재들입니다. 익숙함은 때로 마음을 무디게 하고 감정을 마비시킵니다. 그러나 세상이 밀어낸 자리에서 하느님의 참된 가치가 드러납니다.
고통받는 이웃 안에 주님은 이미 현존하십니다. 그들을 외면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을 거부하는 일입니다. 약자가 존중받을 때 삶은 비로소 조화를 회복합니다. 은총을 아는 삶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집니다.
타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스스로 끊는 일입니다. 가장 작은 이를 향한 봉사는 우리를 낮추는 일이 아니라 모든 존재 안에 깃든 하느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보여주기 위한 선행은 오래갈 수 없고 진실한 사랑만이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보고, 가장 작은 이 안에서 그분을 만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사순은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음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구원은 서로를 인정하는 사랑의 행위 안에서 더욱 구체화됩니다. 우리는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타자를 살리는 사랑 안에서 비로소 참된 사람이 됩니다. 사람의 사순은 사람을 존중하는 사랑임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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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린토2서 6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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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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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2.1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2.18 |
| 2026.02.17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2.17 |
| 2026.02.16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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