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예레 17,5-10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 복음
루카 16,19-31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예레 17,5-10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는 저주를 받지만, 주님을 신뢰하는 이는 복되다.
5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6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의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7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8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10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16,19-31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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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5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3월 기도지향 00:20
✚ 미사시작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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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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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인생의 반전은 나눔에서 시작된다.
영화나 드라마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반전’입니다. 예상을 뒤엎는 전개는 이야기에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 속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그러한 반전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두 사람의 지상에서 삶이 저승에서 완전히 뒤바뀌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비유는 부자가 재물을 가졌다는 사실 그 자체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의 잘못은, 눈앞에 있었던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재물의 양이 아니라 나눔의 깊이를 보십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의 도움’ 또는 ‘하느님께서 도우셨다’는 뜻을 지닙니다. 그 이름 자체가 이미 하느님께서 누구를 도우시고자 하는지, 또 우리가 구원의 길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도 많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세상의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땀과 기도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또한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나누고 있는가?’
나눔은 단순한 외적 행동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 안에는 반드시 기도가 함께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의 여정, 특히 사순 시기 동안 기도와 자선, 단식을 함께 강조합니다.
하느님과 멀어졌다면 기도로 다시 그분께 다가가십시오. 이웃과 멀어졌다면 자선으로 다시 사랑의 끈을 이으십시오. 자기 자신과 멀어졌다면 단식으로 내면의 질서를 회복하십시오. 사순 시기, 우리 안에서도 새로운 회심이라는 반전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부자의 불행과 단절의 지옥
오늘 복음의 어떤 부자는 불타는 지옥에서 물 한 방울을 목타하는 신세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이런 묵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에 살 때 이런 목마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이 세상 살 때 하느님을 이 정도로 목말라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는 그렇게 목말라하지 않았는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그것을 복음은 그가 좋은 옷에다가 매일 즐겁고 호화롭게 산 부자였기 때문이라고, 독서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람에게 의지하고”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겨” “하느님의 저주”를 받아 종국에는 “사막의 덤불”같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독서는 두 가지 이유를 대는 것입니다. 하나는 인간에게 의지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으면 좋다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하려는 태도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입니다. 직역하면 ‘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다.’라는 뜻이지만 풀이하면 나라는 존재는 누구에게 의지하는 존재가 되어선 안 되고 이 우주 안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이것을 흔히 ‘무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는 존재’라고 얘기하곤 하지요.
그래서 모든 것이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고통과 불행은 자기 업보(業報)이며 그러니 누구에게 의지하지도 누구를 탓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불교에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고 또 훌륭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인간에게 의지하거나 자기를 믿는 것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요 그래서 하느님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잘못한 것은 거지 라자로의 가난과 고통을 외면한 잘못도 있지만 하느님께 의탁하지 않은 것이 무엇보다 큰 잘못이고, 자기의 부와 힘을 믿었기에 자기 안에 갇힌 것이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하느님과 이웃과의 단절입니다. 하느님은 필요하지 않아서 단절하고, 이웃은 성가시기만 해서 단절했으며, 모든 것이 다 갖춰진 안락한 집에서 자기 가족들하고만 자유와 평화와 행복을 누리려고 했고, 이 세상 사는 동안에는 불행 중 다행인지, 행복 중 불행인지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어쨌거나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가르치는 바는 하느님이 이것을 괜찮다고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저주와 벌을 내리신다는 것이며 그것이 단절의 지옥이요 돈만 있고 사랑이 없는 자의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이웃은 의지하지 말고 사랑해야 하고 하느님은 만유 위에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가르침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극단적인 두 인물의 대조된 모습을 통해, 불신과 재물의 올가미에 사로잡힌 우리를 하느님의 말씀에로 초대합니다.
사실, 이 부자는 특별한 악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의 재물을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과 즐거움을 위해 사용하고, 타인에게는 무관심하고 인색했습니다. 곧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대문 앞에 누워있는 가난한 라자로를 무시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해서 할 바를 다한 것이 아니라, 선행과 자비를 베풀지 않음이 곧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합니다.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야고 4,17)
그렇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곧 죄’입니다. 그가 심판받은 것은 그가 단순히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웃사랑을 하지 않은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어야 하고, 마시되 자신의 혀만 적시는 것이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재물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아가서, 자비를 입어 부자가 되었으니, 가난한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니 오늘 복음에서 부자가 죽어서 아브라함에게 한 말, 곧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6,24)라는 간청은 이제 ‘제가 자비를 베풀게 해주십시오.’ 라는 간청으로 바뀌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부자가 대문 앞에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로 누워있어도 못 본 것은 자신의 호사스러움과 즐거움, 탐욕과 인색에 눈이 가려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형제들 사이에, 또 가난한 이들과의 사이에, 냉대와 무시와 무관심의 골짜기를 파놓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것은 곧 저승에서의 골짜기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라자로’라는 이름은 ‘하느님이 도와주시는 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라자로가 구원을 입은 것이 그의 가난하고 고통 받은 삶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도움과 자비를 입은 것’임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을 입고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그렇습니다. 라자로가 은총을 입은 것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승에서 처지가 뒤바뀐 부자는 자기 형제들에게 라자로를 보내달라고 청하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루카 16,29)
사실, 우리가 당신을 믿지 못함은 기적을 보지 못했거나 듣지 못했거나 체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듣고 보고 체험하고도 받아들이지를 않는 완고함 때문일 것입니다. 곧 믿음을 일으키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에서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이 복되다.”(루카 11,28).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6,20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주님!
마음의 눈을 열어
타인의 처지를 볼 줄 알게 하소서.
음식을 먹되 나누어 먹고
자신의 혀만 아니라
남의 혀도 적셔주게 하소서.
재물을 소유하되
소유당하지 않게 하시고
탐욕에 빠지지 않고
인색하지 않게 하소서.
악을 저지르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을 베풀게 하시고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십일조만으로는 부족할까?
오늘은 사순 제2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그저 "돈 많은 사람은 지옥 가고, 가난한 사람은 천국 간다"는 식의 단순한 논리로 이해하시면 곤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소유격인 '수(σου)'입니다. 즉 '너의 것'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이 지옥 불꽃 속에서 괴로워하는 부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그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루카 16,25)
주목해 보십시오. 부자가 세상에서 누린 것들에는 분명하게 "너의 것"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반면, 라자로가 겪은 고통에는 소유격이 없습니다. 그냥 "그 나쁜 것들"입니다. 부자는 세상의 좋은 것들을 "이건 다 내 거야!"라며 꽉 움켜쥐고 살았습니다. 반면 라자로는 고통조차 자기 것이라 고집하지 않고 하느님께 내맡겼던 것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천국과 지옥의 문이 갈립니다.
왜 지상 것에 ‘나의 것’이란 딱지를 붙이면 안 될까요? 그 이유는 내 것이란 딱지가 붙으면 그것에만 시선을 고정시켜 사탄에게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원숭이 잡는 법입니다. 원숭이는 집착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것 안에 그놈이 좋아할 것을 넣어놓고 그것을 집으면 주먹이 안 빠지게 만듭니다. 그러면 사냥꾼이 와도 주먹을 놓지 못하고 잡힙니다.
사탄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멸망해 버릴 것이 집착해서 그것과 한 몸이 되고 그래서 함께 멸망하게 하는 것. 부자가 지옥 간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희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지상의 것에서 눈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지상의 것에 나의 것이란 딱지가 붙어있으면 그것을 보느라고 하늘을 볼 여유가 없습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에 나오는 주인공 파홈도 똑같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걸어서 돌아오는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말에, 그는 단 한 뼘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바닥만 뚫어지게 보며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립니다. 결국 해가 지기 직전 출발선에 당도하긴 했지만, 피를 토하며 엎어져 죽고 맙니다.
이제 우리가 닮아야 할 존재가 거지 라자로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라자로처럼 천국에 가려면, 우리도 당장 전 재산을 다 내다 버리고 개가 와서 상처를 핥는 철저한 거지가 되어야만 할까요? 사실 정말 가난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하늘을 보게 됩니다.
김미경 강사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에 나와서 이런 기가 막힌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땅에 아무것도 볼 것이 없고,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도 없을 때 비로소 하늘을 본다. 그래서 그분을 만날 수 있게 된다. 결국 완벽하게 망해야 그분을 만난다." 정확한 영적 통찰입니다.
라자로 역시 철저하게 가난해져서, 개들이 와서 종기를 핥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완벽한 절망의 바닥에 떨어졌기에 하늘의 위로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진 것이 다 없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한 분께만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돈만 없다고 다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신문지 하나 때문에 피 터지게 싸우는 노숙자들을 보았습니다. ‘나의 것’이란 딱지를 떼는 게 더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돈이 많아도 1억이나 1원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의 것이란 딱지를 뗄 수 있을까요?
그 연습이 바로 '십일조'와 '절제'입니다. 십일조는 에덴동산의 선악과와 같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동산에서 선악과 하나만은 건드리지 않음으로써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였습니다. 우리가 수입의 십일조를 떼어 봉헌할 때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온전한 내 것은 없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왜 중요할까요? 절제하지 않으면, 그래서 나의 것을 즐기면, 나의 것이라고 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이 그것에 ‘나의 것’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십일조의 목적이 딱지를 떼는 것인데, 절제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다시 붙이게 되는 것입니다. 절제하면 마음이 나의 것이 나의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합니다. 그러면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영국의 대법관이었던 성 토마스 모어를 보십시오. 그는 왕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고 막대한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화려한 귀족의 옷 속에는 언제나 까칠까칠한 짐승 털옷(헤어셔츠)을 입고 철저하게 육신을 절제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끊임없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의 집에 큰불이 나서 창고와 곡식이 모조리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토마스 모어는 아내에게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거두어 가신 것이오. 그분의 뜻을 찬양합시다. 절대로 불평하지 마시오."
평소에 십일조와 절제의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불행이 닥치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것을 왜 가져갔느냐고. 십일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절제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나의 것이란 딱지가 완전히 떼어집니다. 그리고 거지 라자로처럼, 어쩌면 그의 이름이 ‘하느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나의 도움으로 온전히 섬길 수 있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 십일조와 절제로 ‘나의 것’이란 딱지를 다 떼고 나를 도우시려는 하느님을 정말 나의 도우심으로 섬기는 우리가 되어봅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 인류는 아주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강한 이빨이나 발톱, 손톱도 없습니다. 빨리 달릴 수도 없고, 하늘을 날 수도 없으며, 물속에서 숨을 쉬며 살 수도 없습니다.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문명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돌봐주는 사랑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대 인류 유적에서 다리가 골절되었지만, 치유된 흔적이 남은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을 보살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호의 역사는 인류 문명의 시작이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약자를 돌보는 것은 인류 역사 안에서 계속 이어졌고, 지금도 또 미래에도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자기중심의 삶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만 잘 살면 그만이고, 간섭이 싫다는 식의 표현으로 자기 앞에 커다란 장벽을 치면서 인류 역사 안에서 계속 이루어졌던 사랑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 진정한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받지 않은 것을 왜 남에게 주어야 하냐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직접 갚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차고 넘치게 갚아주신다고 했습니다. 이 진실은 인류의 역사 안에서 이미 밝혀졌습니다.
오늘 복음에 두 인물의 지상 삶을 극단적으로 대조하여 보여줍니다. 먼저 당대 최고의 사치품인 자주색 옷(황족이나 최고위층이 입는 옷)과 고운 아마포 옷(최고급 속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연회를 즐기는 이름 없는 부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는 라자로입니다.
부자가 불의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의 죄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굶주리고 병든 라자로를 철저하게 외면했던 무관심뿐입니다.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당시 손을 닦고 버리던 빵조각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개들이 종기를 핥았다는 것은 유다인들에게 있어 가장 큰 수치이자 율법적인 부정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음이 죽음 뒤에 역전된 운명을 갖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부자의 이름은 없고, 불쌍한 거지의 이름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누리는 그 모든 것이 그렇게 의미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주님께서는 사랑 자체에 의미를 두시기에, 고통과 시련 속에서 사랑을 누려야 할 라자로를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에 관한 우리의 사랑을 다시금 떠올려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 말씀을 따르며 지금 당장 회개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아무리 작아도 친절한 행동은 낭비되는 법이 없다(이솝).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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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복음 8장 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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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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