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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026.03.0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by 평화다방 2026.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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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8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2026년 3월 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탈출 17,3-7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
  • 제2독서
    로마 5,1-2.5-8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 복음
    요한 4,5-42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탈출 17,3-7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가 마실 물을 내놓으시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왔소? 우리와 우리 자식들과 가축들을 목말라 죽게 하려고 그랬소?”

4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5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나아가거라. 나일 강을 친 너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거라.

6 이제 내가 저기 호렙의 바위 위에서 네 앞에 서 있겠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비하였다 해서, 그리고 그들이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 하였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으로 돌아가기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로마 5,1-2.5-8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매일미사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부어졌습니다.

형제 여러분, 1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2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5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6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7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8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매일미사 오늘 말씀 요약 보기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4,5-42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매일미사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그때에

5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다.

6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다.

7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8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다.

9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다.

10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

11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두레박도 가지고 계시지 않고 우물도 깊은데, 어디에서 그 생수를 마련하시렵니까?

12 선생님이 저희 조상 야곱보다 더 훌륭한 분이시라는 말씀입니까? 그분께서 저희에게 이 우물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물론 그분의 자녀들과 가축들도 이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이다.

14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15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16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이리 함께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한 것은 맞는 말이다.

18 너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대로 말하였다.”

19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20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22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24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25 그 여자가 예수님께,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시겠지요.” 하였다.

2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27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저 여자와 무슨 이야기를 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29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30 그리하여 그들이 고을에서 나와 예수님께 모여 왔다.

31 그러는 동안 제자들은 예수님께 “스승님, 잡수십시오.” 하고 권하였다.

32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는 너희가 모르는 먹을 양식이 있다.” 하시자,

33 제자들은 서로 “누가 스승님께 잡수실 것을 갖다드리기라도 하였다는 말인가?” 하고 말하였다.

3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

35 너희는 ‘아직도 넉 달이 지나야 수확 때가 온다.’ 하고 말하지 않느냐? 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 이미

36 수확하는 이가 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이도 수확하는 이와 함께 기뻐하게 되었다.

37 과연 ‘씨 뿌리는 이가 다르고 수확하는 이가 다르다.’는 말이 옳다.

38 나는 너희가 애쓰지 않은 것을 수확하라고 너희를 보냈다. 사실 수고는 다른 이들이 하였는데, 너희가 그 수고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39 그 고을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 여자가 “저분은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말을 하였기 때문이다.

40 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께서는 거기에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리하여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이 한 말 때문이 아니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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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8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3:1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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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 묵상 성경 말씀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재형 베드로 신부

경청은 사랑의 시작

대화를 나누다 보면 유독 믿음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한결같은 태도를 보이고 한결같은 말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는 감정에 따라 말투나 행동이 쉽게 바뀌지 않고, 늘 같은 마음으로 있습니다.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습니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만으로도 위로를 전합니다.

오늘 복음 속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에는 이러한 자세가 스며 있습니다. 바로 서로를 향한 믿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된 대화는, 그 고을의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결실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온화한 태도와 부드러운 말투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여인의 진심 어린 경청과 영적 갈망은 예수님을 알아 뵙는 은총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인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그분을 증언하는 이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과 가족과 이웃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솔직히 드러내는 고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실천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 속에서 믿음을 증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인 오늘, 한결같은 태도와 말투로 하느님과 가족과 이웃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하느님께서 메마른 우리 영혼을 적셔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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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이제부터는 이 사랑을!

저는 오늘 주제를 ‘생명인 물인 사랑’으로 잡아봤습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생명의 물을 마셔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생명의 물인 사랑이 필요하고, 저세상에서도 영원히 살게 하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생명의 물인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도 저세상에서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 물을 마셔야지 살 수 있고, 마시기 위해서는 목이 말라야 하고 타는 듯이 목이 말라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누가 더 목말라 할까요? 주님과 우물가의 여인 사이에 누가 더 목말라 합니까? 누가 더 사랑합니까? 누가 더 사랑이 필요합니까?

필요하긴 우물가의 여인이 더 필요하고, 그래서 주님을 만나기 전에 다섯 남자나 사랑했습니다. 사랑이 필요했지만 주님을 사랑한 것은 아니라 남자를 사랑한 것이고, 사랑했지만 남자가 충족해주지 못하였기에 다섯이나 사랑한 것입니다.

그때 마침 주님께서 여인에게 나타나셨지만 여인이 아직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래서 주님과 우물가의 여인 사이에서 더 사랑한 것은 주님이었으며, 그래서 주님께서 먼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고 목말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목말라 하고, 더 사랑하는 사람이 더 목말라 합니다. 주님과 우물가의 여인 사이처럼 주님과 우리 사이에서도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길 주님께서 더 목말라 하시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시길 우리가 더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주님께서 먼저 물을 달라고 간절히 청하시며 우리도 당신을 목말라 하도록 수작을 부리십니다.

그렇습니다. 물을 달라고 하심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간청이요 우리의 목마름을 일깨우려는 주님의 수작입니다. 네가 다섯이나 사랑했는데도 여전히 목마르지 않으냐? 너는 이제 목마르지 않을 사랑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수작을 통해 일깨우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일깨우시면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계속 목말랐구나! 그러니 이제는 목마르지 않을 사랑을 찾아야겠구나! 그리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사랑이 주님이구나! 이것을 깨달아야 하고 이제부터는 다른 사랑이 아니라 이 사랑을 목말라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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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예수님이 먼저 다가오신 이유

오늘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남의 장면’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지만, 결코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목마름으로 빈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한 사마리아 여인과 자신을 내어주어도 결코 다할 수없는 사랑의 목마름으로 샘솟는 물을 들고 우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렇게도 목말랐던 이 여인은 이제 마침내 일곱 번째 남자, 완전한 사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목마른 두 영혼의 만남, 이 아름다운 만남은 곧 ‘십자가에 메달리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드러내 줍니다.

오늘 우리 역시 사랑과 생명에 대한 목마름으로, 영과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여기 ‘양주 올리베타노 수도원이라는 우물’에 물을 기르러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샘솟는 물”(요한 4,10)을 마시겠다고 이 ‘거룩한 미사’에 함께 모였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요한 19,28)라고 하셨던 것처럼,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청하면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이 아름다운 만남의 때는 십자가에서처럼 우물가에서도 “정오 무렵이었습니다.”(요한 4,6). 그리고 우리에게는 “바로 지금이 그때입니다”(요한 4,23). 바로 이때가 서로 상종하지도 않던 사마리아인과 유대인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전 휘장을 찢으신 때요(마태 27,51), 우리에게 당신의 말씀과 몸을 쪼개어 오시는 바로 지금입니다. 바로 지금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요한 4,10) 아느냐?

이 질문은 ‘대체 무엇을 목말라해야 하는지?’, ‘그것을 채워줄 자가 누구인지?’를 깨우쳐줍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의 “첫째 주제”는 “하느님의 선물”, 곧 “생수”(요한 4,10.11)입니다. “물”은 성경에서 생명과 탄생의 시작을 드러냅니다. 창조 때는 물 위에 하느님의 영이 감돌고 우주의 질서를 세우셨고, 노아의 홍수는 죄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에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요르단의 물은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을 알려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선물”인 “생수”를 마시는 이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요한 4,14)

바로 이 “물”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쏟아진 구원의 물이요(요한 19,34 참조), <제1독서>에서 예표된 호렙의 바위에서 터져 나온 생명의 물이요(출애 17,6), 하느님을 예배하게 하는 영이며 진리이신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오늘 <복음>의 둘째 주제는 ‘예수님의 신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요한 4,25)라고 말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6)

그래서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1)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이제, 이 아름다운 만남의 마지막 장면을 보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만남의 마지막은 신앙고백으로 마무리 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이방인 백부장이 “참으로 이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라고 고백했듯이, 이방인으로 취급되었던 사마리아인들이 신앙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42)

이처럼 만나는 이를 믿는 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일, 이만큼 아름다운 만남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만남이 바로 오늘 복음의 우물에서의 만남이요, 또한 십자가에서의 만남이요, 바로 이 거룩한 미사에서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물’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부분인 짧은 복음을 중심으로 보았으며, ‘빵’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제자들과의 대화부분인 긴 복음은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거룩한 미사 중에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려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총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하느님의 선물이 이루어지는 일’, 그래서 ‘하느님 아닌 그 어떤 것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일’, 아니 ‘모든 일에서 하느님만을 찾는 일’, ‘하느님이 내 안에서 샘솟게 하고 그 물을 이웃에게 퍼주는 일’, ‘이웃들과 함께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고백하는 일’, 그리고 ‘영과 진리로 아빠 아버지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일’을 몸소 실행하는 일일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4,7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주님!
빈 물동이의 목마름으로
샘에서 물을 긷게 하소서.

당신을 만남이
믿는 일, 사랑을 고백하는 일,
그 아름다운 일이 되게 하소서.

주님!
십자가의 우물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게 하소서.

당신을 만남이
몸을 쪼개는 일, 장벽이 무너지는 일,
그 아름다운 일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제 몸을 부수어
샘솟는 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 말씀 묵상 한눈에 보기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생명수를 주시기 위해 물을 청하시는 이유

교우 여러분, 사순 제3주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물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밀당' 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한낱 피조물인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청하십니다. 온 우주의 물을 만드신 분이 물 한 바가지의 봉헌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서부터 하느님의 기막힌 구원 전략이 시작됩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우리에게 왜 '봉헌'과 '순종'이 축복의 필수 조건인지 일깨워주는 명백한 역사적 실험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68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 정부는 뉴저지와 덴버 등지에서 '부의 부정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대규모 사회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이나 노동의 의무(봉헌) 없이 일정 금액의 현금을 무상으로 지급한 것입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수혜자들의 이혼율은 40% 이상 급증했고 노동 의욕은 감퇴했으며 공동체는 급격히 와해되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수혜자들의 심리 변화였습니다. 처음에는 "정부가 우리를 돕는다"며 감사해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원금을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실험이 종료되거나 지원금이 조정될 때, 그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왜 내 돈을 뺏느냐"며 정부를 향해 분노를 쏟아냈고 불평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갔습니다.

이와 비슷한 비극은 미국 인디언 원주민 거주구역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미국 정부는 과거의 잘못을 보상한다는 명목으로 인디언들에게 막대한 무상 보조금을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이나 봉헌 없이 주어진 이 돈은 독이 되었습니다. 자립 의지는 꺾였고, 거주구역 내 알코올 중독률과 자살률은 전국 평균의 몇 배를 상회하게 되었습니다. 무상 지원이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정체성을 앗아가는 '문화적 학살'이 된 셈입니다.

이것은 '봉헌 없는 베풂'이 인간을 축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물 한 바가지, 십일조, 선악과를 요구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누가 진짜 은총을 주시는 분인가'를 잊지 않게 하려는, 즉 우리가 은혜를 모르는 괴물이 되지 않고 축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상속자'로 남게 하려는 하느님의 지혜로운 사랑의 전략입니다.

예수님은 정말 목이 마르셨을까요? 물론 육신으로는 그러셨겠지만, 영적으로는 그 여인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나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냥 공짜로 주지 않으십니다. 왜일까요? 공짜로 받으면 소중함을 모르고, 누가 갑인지 모르며, 순종할 줄도 모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청하십니다'. 여인이 가진 아주 작은 '물 한 바가지'를 요구하심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열고 그 빈자리에 영원한 생명을 채우려 하시는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셨지만, 딱 하나 '선악과'는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의 본분인 '순종'을 봉헌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려다 생명나무를 잃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 여인이 든 물동이는 어쩌면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욕망인 '선악과'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야만 생명나무의 실과인 당신 자신(성체)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물을 좀 다오 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요한 4,10) 믿음의 핵심은 '누가 주시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은총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면 봉헌은 '세금'이 되지만, 주인이 누구인지 알면 봉헌은 '사랑'이 됩니다. 이 봉헌은 사실 아브라함이 멜키체덱에게 바친 '십일조'로 표현됩니다. 십일조는 모든 축복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축복을 담기 위한 필수적인 그릇입니다. 과부의 헌금이 그러했듯, 그것이 나의 전부일 때 하느님 또한 당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주십니다.

세계적인 비누 회사 '콜게이트'의 창업자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의 실화입니다. 그는 아주 가난한 집안의 소년이었습니다. 16살에 고향을 떠날 때, 한 경건한 이웃이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윌리엄, 네가 버는 첫 1달러에서 10센트를 떼어 반드시 하느님께 바치거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네 사업의 동반자가 되어주실 것이다." 그는 뉴욕의 한 비누 공장에 취직해 첫 주급을 받자마자, 당장의 배고픔을 채울 수 있는 소중한 돈인 10센트를 떼어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불콩죽'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은총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하기 위해 기쁘게 봉헌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보시고 엄청난 마중물로 응답하셨습니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그는 십일조를 2/10, 5/10로 늘려갔고, 말년에는 수입의 전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렸을 때,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 세상 전체를 맡겨주셨습니다." 윌리엄 콜게이트는 마중물을 청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했고, 자신의 작은 봉헌을 통해 하느님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상속받은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여러분의 '선악과'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것만은 내 거야"라고 꽉 움켜쥐고 있는 그 물동이는 무엇입니까? 이번 사순 시기, 주님께 그 물 한 바가지를 기쁘게 드립시다. 내가 주님께 십일조와 순종의 물을 부어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세상의 집착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샘물을 터뜨려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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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솟아오르는 영원한 생명의 샘물

세례받은 자매님께서 “신부님! 세례받은 후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냥 기쁘고, 사람들이 다 좋아 보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느 책에서 회개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회개는 세례받은 이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므로, 여기서 ‘자기 삶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더 이상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모든 이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무수한 피조물 가운데 하나로서 모든 생명의 참된 중심이신 그분 주위에서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긍정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쿠르트 코호, ‘죽음에서 생명에로’ 중에서)  

아마 이 글의 내용을 앞선 자매님께서 체험하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면 필요한 것이 참으로 많아집니다. 욕심과 이기심이 늘어나면서 어렵고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웃이 협조자가 아닌, 경쟁자가 되었을 때 당연히 편안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면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만이 자기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된 한 여인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방인과 혼혈되었다고 해서 상종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랍비가 길에서 여자와 말을 섞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여인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장 뜨거운 정오 무렵에 물을 길으러 온, 상처 많고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물을 청하는 것 같지만, 사실 여인에게 믿음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의 구원은 경계 밖의 사람에게도 열려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여기서 두 가지 물이 나옵니다. 야곱의 우물물과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입니다. 야곱의 우물물은 아무리 마셔도 다시 목마른 현세적인 만족인 쾌락, 물질, 사람에 대한 집착 등을 의미합니다. 반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과 구원의 은총입니다.  

세상의 것은 세상 물이 다시 목마른 것처럼, 인정받아도 또 허전해지고, 많이 가져도 또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또 사랑받아도 불안하게 되고, 성공해도 또 공허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목마릅니다. 인정에 목마르고, 위로에 목마르고, 성공에 목마르고, 관계에 목마릅니다. 이런 목마름에서 벗어나려면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목마르지 않을 생수를 주십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 여인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향한 호칭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적대적인 호칭이라 할 수 있는 ‘유다 사람’이라고 했다가, 호기심과 존중의 마음이 생기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자기의 숨겨진 과거(다섯 남편)를 꿰뚫어 보는 영적 권위를 인정하면서 ‘예언자’라고 부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라면서, 세상의 구원자로 예수님을 고백합니다.  

우리 내면에 자리한 ‘깊은 갈증’이 참 많습니다. 세상의 성취, 물질, 타인의 인정이라는 유한한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목말라하는 우리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신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도 먼저 다가오셔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당신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이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기쁘게 지금을 살고, 영원한 생명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무조건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힘으로 반드시, 반듯하게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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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늘 어떤 목마름이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채우려 하고, 성취에서 찾으려 하고, 더 많은 것 속에서 만족을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창조된 존재이기에, 하느님과의 친교 없이는 완전한 충만에 이를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들도 그 근원적 목마름을 완전히 채워 주지 못합니다.

생명의 물은 우리가 스스로 길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렇듯 구원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집니다.

참된 충만은 더 많이 얻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존재의 깊은 차원에 뿌리를 내린 삶은 더 이상 외적인 조건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성공 속에서, 소유 속에서 그 갈증을 채우려 하지만, 잠시의 만족 뒤에 다시 목마름을 느끼곤 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단순한 가르침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전달되는 생명의 가장 좋은 은총입니다.

우리의 갈증을 꾸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생명의 샘을 만나도록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길이 되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고,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참된 치유는 더 많은 것을 얻는 데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받아들여지고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는 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연결될 때 내면에서 생명의 샘이 흐르는 존재입니다.

참된 신앙은 물을 찾아 헤매는 삶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샘이 되도록 마음을 여는 삶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물은 갈증을 채우는 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영원히 흐르는 생명의 샘입니다. 생명의 샘과 함께하는 은총의 기쁜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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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4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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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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