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4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이사 60,1-6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 제2독서
에페 3,2.3ㄴ.5-6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복음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이사 60,1-6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예루살렘아,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2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아라. 그들이 모두 모여 네게로 온다. 너의 아들들이 먼 곳에서 오고 너의 딸들이 팔에 안겨 온다.
5 그때 이것을 보는 너는 기쁜 빛으로 가득하고 너의 마음은 두근거리며 벅차오르리라. 바다의 보화가 너에게로 흘러들고 민족들의 재물이 너에게로 들어온다.
6 낙타 무리가 너를 덮고 미디안과 에파의 수낙타들이 너를 덮으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에페 3,2.3ㄴ.5-6

지금은 그리스도의 신비가 계시되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도 약속의 공동 상속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2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를 여러분은 들었을 줄 압니다.
3 나는 계시를 통하여 그 신비를 알게 되었습니다.
5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6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2,1-12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4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5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6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7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9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11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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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4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주님공현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0:53
✚ 강론시작 15:08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별을 따라 모인 젊은이들
지난해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젊은이의 희년’ 행사가 열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그곳에 모여, 레오 14세 교황께서 주례하신 밤샘 기도와 미사에 함께하며 밤을 지새웠습니다.
교황께서는 젊은이들에게 선한 일을 위하여 과감히 투신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그리고 ‘우정’이야말로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고 평화로 나아가는 길임을 강조하시면서, 세상은 정의와 평화의 증인이자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젊은이가 언어와 인종을 넘어, 같은 신앙을 고백하며 주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자 모인 그 광경을 보면서 저는 이천 년 전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젊은이들의 모습은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라고 하며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자 먼 길을 걸어온 동방 박사들의 모습과 닮아 보였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께 드릴 선물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물로 드릴 수 있을까요? 교황께서 말씀하신 ‘우정’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우리를 벗이라 부르시는 주님께 의지하고 연대하며, 선을 위하여 과감히 용기 낼 수 있는 참된 우정을 예수님께 드리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빛이 되고, 촛불이 되고, 등불이 되어라!
오늘 공현 대축일에 동방박사들이 빛이신 주님을 찾아와 뵙기까지 그 배경이랄까 상황은 어두움이고 그러나 하늘에 별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오늘 이사야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자 보라, 어둠이 땅을 덮고 암흑이 겨레들을 덮으리라. 그러나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성탄은 하늘에 계시던 주님이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시고, 인간인 우리가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있게 오신 것입니다. 이 성탄 축제 안에 공현 축일은 마리아와 요셉을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 외에 어둠 속에 있던 이방인들에게도 공적으로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로서 이방인들의 성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방인들이란 꼭 지역 곧 이스라엘이 아닌 나라나 민족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일지라도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교 신자일지라도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은 빛이신 주님이 안 계셔서 어둠 속에 있는 것이요, 우리가 주님의 빛 안에 있지 않고 주님 밖에 있기에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처음부터 주님 빛 가운데 있지 않고 한때 어둠 속에 있었을 겁니다. 한때는 누구나 다 어둠 속에 있었지만 거기서 갈렸을 것입니다. 자기가 어둠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던 사람도 있고, 어둠 속에 있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하던 사람도 있고, 자포자기적으로 어둠 속에 안주하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반대로 동방박사들처럼 빛을 찾던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둡기에 어둠 속에서 빛을 갈망하고 찾았으며 그래서 오늘 복음이 얘기하듯 별을 연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이 온통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고, 나라도 촛불 하나를 들겠다는 마음으로 빛을 찾았고 그래서 그들에게 별이 은총으로 나타났을 것이고 빛이신 주님을 마침내 뵐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젠 빛을 발견한 사람이 별이 되고 등불이나 촛불이 될 차례입니다. 옛날 제가 야학할 때 많이 부르던 노래 가운데 등불이란 노래가 있었습니다.
“비오는 저녁 홀로 일어나 창밖을 보니 구름 사이로 푸른 빛을 보이는 내 하나밖에 없는 등불을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받게 하소서 희망의 빛을 항상 볼 수 있도록 내게 행운을 내리소서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두운 여행길 너와 나누리 하나의 꽃을 만나기 위해 긴긴 밤들을 보람되도록 우리 두 사람은 저 험한 세상 등불이 되리.”
내가 처한 상황이 지금은 비록 너무 힘들고 세상은 너무도 악하고 가혹하더라도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열심히 공부하여 등불이 되겠다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공현 축일을 지내는 우리는, 이 축일을 제대로 지내는 우리라면 어둠을 그저 불평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주님 말씀대로 그리고 오늘 동방박사들처럼 세상의 별이 되고, 촛불이 되고, 등불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아기 예수님
찬미 성탄! 오늘은 “제2의 성탄절”이라고도 불리는 “주님의 공현 대축일” 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동들에게만 알려져 있고 감추어져 있었던 메시아의 탄생이 비로소 오늘 동방박사들을 통해 전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계시되었습니다.”(에페 2,5)
오늘 <말씀전례>의 주제는 ‘왕’입니다. 오늘 <복음>의 ‘빛’은 바로 이 ‘왕’을 비춥니다. 여기에서 의미하는 ‘왕’은 ‘하느님이 기름 부으신 자’를 말합니다. 고대의 이스라엘에서 ‘왕들’과 ‘제사장’들은 맡은 일을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았고,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 마쉬아흐(mashiach)에서 메시아(messiah), 그리스도(christos)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성경>에는 오실 ‘왕’에 대한 암시가 미리 주어졌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나탄이 다윗에게 전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나는 네 아들들 가운데에서 네 뒤를 이을 후손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내 집안과 내 나라 안에서 그를 영원히 세우리니, 그의 왕좌는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1역대 17,11-14; 2사무 7,11-16 참조)
이 구절은 ‘왕’인 그리스도 오심을 약속하신 모든 메시아 예언의 모태가 되었고, 이러한 미래 구원자에 대한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그 왕이 오실 때를 묘사해줍니다.
“네 위에는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라.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2-6)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오늘 <복음>을 비춰줍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는 두 명의 ‘왕’이 등장합니다. 한 ‘왕’은 황포를 걸치고 화려한 왕궁에 사는 지상의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헤로데 왕이요, 또 한 ‘왕’은 포대기로 둘러싸여 무력하게 누추한 마구간에 누워있는 새 이스라엘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인 ‘왕’은 어떤 ‘왕’일까요? 이를 오늘 <화답송>인 <시편> 72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가 당신의 백성을 정의로,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통치하게 하소서. ~그가 백성 가운데 가련한 이들의 권리를 보살피고 불쌍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풀며 폭행하는 자를 쳐부수게 하소서. ~적들은 그 앞에 엎드리고 그의 원수들은 먼지를 핥게 하소서. ~그는 약한 이와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줍니다.”
진정, 그들이 기다리는 ‘왕’이 이러한 ‘왕’일진데, 헤로데 왕으로서는 참으로 난감하고 두려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복음’(기쁜 소식, euanggelion)이란 의미도 왕과 지배자들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곧 ‘새 왕이 책봉되었고, 새 왕국이 집권했다.’는 선포를 뜻합니다. 그러니 제국의 지배권자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고,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환호와 감격의 기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헤로데 왕이 동방박사의 말을 듣고 기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헤로데 왕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다 같이 메시아인 ‘왕’에 대해 오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의 왕국’은 이미 이 세상에 왔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요한 18,33)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요한 18,36)
그렇다면 다윗을 계승한 메시아인 왕은 어떤 왕인가?
사실, 유대인들은 ‘왕 메시아 관’과 동시에, ‘제사장 메시아 관’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레위 지파에서 나오는 ‘제사장 메시아’와 다윗 지파에서 나오는 ‘왕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상황을 잘 알려주는 [사해문서]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실, 제사장 메시아에 대한 증거는 ‘왕’ 메시아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시편>에서는 말합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시 110,4)
이는 다윗가문의 왕이 멜키세덱(창세 14장)의 계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맹세입니다. 사실, 다윗은 오직 제사장들만 할 수 있는 제물을 드렸고(1사무 24,25) 제사장 역할을 했으며, 그의 아들들도 제사장들이었습니다(2사무 8,18). 그러니 메시아의 원형인 다윗은 ‘왕’임과 동시에 ‘제사장’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으로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를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종의 노래’(53, 4-12)에서 미리 알려주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을 이렇게 말해줍니다.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4-15)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 오신 왕이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2,2
그분의 별
주님!
빛으로 오신 주님!
당신은 먼저 저를
찾아와 비추셨습니다.
제 마음에 열망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사랑을 심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살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의 빛을
드러내게 하소서.
당신 사랑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성당에 와서도 불안할까?
찬미 예수님.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새해 인사를 나눈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여러분의 마음 기상도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평안'하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십니까?
오늘은 조금 엉뚱한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여러분, 인간을 가장 간단하게 정의하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철학자들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고, 경제학자들은 '소비하는 동물'이라고도 하고, 사회학자들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인간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경배하는 동물이다."
조금 거창하게 들리시나요? 사실 아주 본능적인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아니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자신의 '생존'을 책임져주는 대상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그 앞에 납작 엎드립니다. 그게 바로 경배입니다.
집에서 강아지 키우시는 분들 계시지요? 강아지가 주인에게 보여주는 행동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주인이 퇴근해서 들어오면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돌아갑니다. 기분이 좋으면 바닥에 발라당 누워 배를 훤히 드러냅니다. 개에게 있어서 배는 가장 약한 급소입니다. 그걸 보여준다는 건 이런 뜻입니다.
"당신은 나의 생명줄입니다. 당신이 나를 먹여 살리니, 내 생사여탈권을 당신께 맡깁니다."
이게 바로 동물이 보여주는 경배의 원형입니다. 개는 밥을 주는 주인에게 경배하고, 직장인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 경배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개들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꼬리 치며 살갑게 굴다가도, 주인이 밥그릇을 치우려고 손을 뻗으면 "으르렁"거리며 이빨을 드러내는 녀석들 말입니다. 이는 주인을 '주인'으로 섬기는 게 아니라, 단지 밥을 주는 '물주'로만 보는 겁니다. 내 생존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 싶으면, 그게 주인이라도 언제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슬프게도 그런 개의 최후는 유기견 보호소이거나, 안타깝지만 안락사일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주인과 있으면서도 진정 주인의 본모습, 곧 자신들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그 개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경배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소름 돋는 사실은,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이 그 '사나운 개'를 닮아있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 주님" 하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내 생존을 위해 하느님을 '금송아지'로, 혹은 성능 좋은 '보험 상품'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거짓 경배'의 전형적인 모델이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부자 청년'입니다. 이 청년은 요즘 말로 하면 '1등 신랑감'이자 '본당 회장감'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었으며, 젊은 나이에 큰 재산까지 모았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겉보기엔 완벽한 경배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의 가장 깊은 곳, 즉 그의 '생존 수단'을 건드리셨을 때 그의 본색이 드러납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이 말씀은 "너의 통장, 너의 부동산, 네가 믿고 있는 그 든든한 '생존 키트'를 버리고 나를 너의 유일한 생존 대책으로 삼으라"는 초대였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그가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하느님을 경배하러 왔지만, 사실 그가 진짜 경배하던 신은 자신의 '재물'이었습니다. 하느님조차도 내 재물을 지켜주지 못한다면 필요 없다는 태도,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속의 불안의 실체입니다. 꽉 쥐고 있는 것을 놓지 못하기에, 그는 영원히 슬프고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자신이 쥐고 있던 거대한 권력과 생존의 칼자루를 미련 없이 내려놓고 진짜 별을 쫓아간 동방의 박사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성인, 복자 다카야마 우콘(Justo Takayama Ukon)입니다. 1587년 일본, 천하를 호령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립니다. 당시 다카야마 우콘은 타카츠키 성의 성주이자, 존경받는 다이묘(영주)였습니다. 그에게는 비옥한 영지(황금)가 있었고, 사무라이로서의 높은 명예(유향)가 있었으며, 자신과 가문을 지켜줄 강력한 군대와 칼(몰약)이 있었습니다. 이것들은 당시 난세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키트'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우콘에게 전갈을 보냅니다.
"신앙을 버리면 더 큰 영지와 관직을 주겠다. 하지만 거부하면 모든 것을 빼앗고 추방하겠다."
주변의 가신들이 울면서 말렸습니다. "주군, 딱 한 번만 눈 딱 감고 믿지 않는 척하십시오. 그래야 훗날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존 본능의 속삭임이었습니다. 우콘 역시 밤새 고민했습니다. 이 칼을 버리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데, 내 가족은 어떻게 하나...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우콘은 놀라운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사무라이의 자존심이자 신분 그 자체인 머리의 상투(촌마게)를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던 '두 자루의 칼'을 풀어 히데요시의 사자 앞에 내려놓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나의 영지와 나의 칼, 나의 명예를 모두 반납하겠소."
그렇다면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도착한 유배지 마닐라에서, 하느님은 그를 어떻게 만나주셨을까요?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기뻐했던 것처럼, 우콘에게도 그런 '공현(Epiphany)'이 있었을까요? 1614년 12월, 우콘이 마닐라항에 도착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스페인 총독이 예포를 쏘며 그를 국빈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리고 은밀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당신에게 무적함대와 군사를 주겠소. 일본으로 돌아가 그들을 정벌하고 영지를 되찾으시오."
이것은 악마의 유혹이자, 그가 버리고 온 '생존의 칼'을 다시 쥐여주겠다는 달콤한 제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나는 무력으로 내 구원을 도모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의 인내와 겸손으로 죽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는 총독의 화려한 관저를 마다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지 불과 44일 만에 열병으로 쓰러졌습니다. 임종의 순간, 사람들은 그가 고통스러워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낯선 땅에서 객사하는 처지였으니까요.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숨을 거두는 우콘의 얼굴은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평온하고 빛이 났다고 합니다. 그가 십자가를 꼭 쥐고 마지막 숨을 내쉬었을 때, 그는 비로소 본 것입니다. 자신의 영지와 칼을 버린 그 빈자리에, 세상이 줄 수 없는 거대한 평화이신 분이 꽉 차 계심을 말입니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별'은 화려한 일본의 성(城)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그 초라한 병상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카야마 우콘이 체험한 '주님 공현'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동방박사들의 예물도 바로 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져온 황금, 유향, 몰약. 우리는 이것을 비싼 선물로만 생각하지만, 고대 여행자에게 이 세 가지는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서바이벌 키트'였습니다. '황금'은 어디서든 통용되는 화폐, 곧 경제적 생존 수단입니다. '유향'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악취를 막는, 명예와 품위 유지의 수단입니다. '몰약'은 상처를 치료하고 시신을 보존하는 비상약, 곧 육체적 생명 보존의 수단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 앞에 엎드려 이 보따리들을 풀었다는 것은 단순히 선물을 드린 행위가 아닙니다. 다카야마 우콘이 자신의 칼을 풀어놓은 것과 똑같은 항복 선언입니다.
"주님, 이제부터 제 돈(황금), 제 자존심(유향), 제 목숨(몰약)까지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죽습니다."
자신의 생존 수단을 완전히 내려놓는 것, 이것이 바로 '경배(Proskuneo)'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탈리아의 작가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소설 『쿠오레(Cuore)』에 보면 '엄마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짧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인 열세 살 소년 마르코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엄마를 찾아 지구 반바퀴를 도는 목숨 건 여행을 합니다. 주변 어른들이 말립니다.
"그 작은 몸으로 죽을 수도 있어."
하지만 마르코는 떠납니다. 왜일까요? 엄마가 없으면 어차피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엄마는 마르코에게 단순한 보호자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마침내 낯선 병원에서 죽어가던 엄마를 만났을 때, 마르코가 엄마 품에 안겨 보여준 그 표정을 기억하십니까? 그 안도감, 그 평화. 그 순간 마르코에게 세상의 모든 고통은 사라졌습니다. 엄마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기 때문입니다.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보태려 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앞서 말씀드린 그 '사나운 개'처럼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사제 지망생이었고 신학생이었지만, 속으로는 주님을 향해 으르렁대고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이만큼 했으니 제 인생 책임져 주셔야 합니다.'
그것은 경배가 아니라 거래였습니다. 제 생존이 조금이라도 위협받는다 싶으면 언제든 주님을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러니 늘 불안했고, 주님의 참모습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늦은 나이인 스물여섯 살, 신학교에 입학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사다리, 다카야마 우콘이 내려놓았던 그 화려한 칼과 명예들을 다 내려놓고 진짜 '항복'을 선언했을 때였습니다. 마치 강아지가 배를 까뒤집듯이, 제 가장 약한 부분을 주님 앞에 드러냈습니다.
"주님, 이제 제 생존은 당신께 달렸습니다. 죽이시든 살리시든 뜻대로 하소서."
그때 매일 영하던 성체였는데, 그날따라 주님의 목소리가 제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그래, 너는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
성체 안의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모든 것, 생명까지도 저에게 내어주신 상태였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경배는 곧 '항복'입니다. 항복이 무엇입니까? 전쟁터에서 흰 수건을 들고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적의 총부리 앞에 내 생명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사랑의 호르몬, 유대 호르몬, 포옹 호르몬이라 불리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옥시토신’입니다. 이 호르몬은 따뜻한 신체 접촉, 신뢰와 편안한 대화, 기도와 묵상, 그리고 부모가 아이를 안아줄 때 등의 상황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안정과 평화, 신뢰 형성, 관계 강화, 스트레스 완화 등이 이루어집니다.
이 옥시토신을 이야기할 때 함께 말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도파민’입니다. 흥분할 때 나오며 짜릿한 기쁨을 줍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마약, 도박, 게임 등을 할 때 나온다고 합니다. 문제는 빠른 보상과 자극을 주지만 그만큼 빨리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옥시토신은 흥분보다 평화를 주며, 이는 오랫동안 유지되는 따뜻한 행복을 줍니다. 비록 반응은 느리지만 확실한 행복을 줍니다.
빠른 자극, 그러나 빨리 없어지는 행복을 추구해야 할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유지되는 따뜻한 행복을 추구해야 할까요? 순간의 만족보다 영원한 만족을 주는 주님과 함께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동방 박사들로 대변되는 모든 민족(이방인)에게 당신을 드러내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즉, 하느님의 구원은 민족,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뵐 수 있었던 사람 중에서 유다인는 요셉 성인과 성모님을 제외하고 없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동방 박사들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던 목동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났던 것은 신분이 높아서도, 또 능력과 재주가 많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진리를 찾기 위해 떠나는 용기가 있었고, 더불어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황금, 유향, 몰약)을 주님께 내어놓는 봉헌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동들 역시 자기가 돌봐야 하는 동물들을 뒤로 하고 주님을 찾아갔기에 가능했습니다.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요? 헤로데와 수석 사제들은 메시아가 어디서 태어날지 성경 지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득권을 잃을지 두려워하며 적대감을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헤로데는 무죄한 어린이들을 죽이는 끔찍한 죄악을 펼칩니다.
쉽고 편한 길만 쫓는다면, 또 자기 욕심과 이기심이 가득하다면 헤로데의 길을 걸을 뿐입니다. 주님을 만날 수 없게 됩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이사 60,1)라고 선포합니다. 지금 당장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커다란 용기와 봉헌의 마음 그리고 주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확실한 행복이 주님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존 메이너드 케인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말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보이십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조용히 스스로를 드러내는 참된 길을 우리는 만납니다. 참된 진리는 소란 속이 아니라 고요 속에서 드러납니다. 이 만남은 어둠이 사라진 사건이 아니라, 눈이 열려 빛을 알아본 만남입니다. 주님 공현은 숨겨져 있던 하느님의 빛이 세상 앞에 드러나는 사랑의 사건입니다.
빛을 본 사람은 반드시 새로운 삶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느님 계시의 본질과 방향을 드러내는 결정적 사건이 바로 주님 공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멀리 계시지 않고, 사랑 때문에 스스로 낮아지시며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가장 작은 아기가 가장 큰 사랑을 품는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모든 확신 이후에 행동하겠다는 태도는 결국 아무 길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신앙이며 신앙은 또한 갈망이며 누군가를 향해 사는가의 참된 문제입니다. 길을 떠난 순간부터 이미 변화는 시작됩니다. 그래서 신앙은 앎이 아니라 경배로 완성됩니다. 하느님을 만난 신앙은 말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길 위에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 없는 열심은 길을 잃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경배의 삶으로 옮겨 가는 날이며 믿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믿음의 여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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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2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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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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