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1요한 2,22-28)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 복음
(요한 1,19-28)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2,22-28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2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
23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는 아무도 아버지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24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25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26 나는 여러분을 속이는 자들과 관련하여 이 글을 씁니다.
27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28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19-28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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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광야에 설 용기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라고 말합니다. 저는 ‘광야’라는 낱말을 보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 앞섭니다. 광야에 서면 나 자신의 모든 것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나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마주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떤 조건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그곳은, 내가 얼마나 위선적이고 욕심에 가득 차 있는지를 깨닫게 할 것 같아, 할 수 있는 한 광야보다는 세상이라는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제 마음입니다.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광야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 광야에서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1,27)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는 광야에 당당히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은수자가 광야에서 주님을 찾았듯이, 우리도 광야에 서서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자연스럽게 겸손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 모두 ‘광야에 선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한 자세로 주님의 앞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겸손한 자기 관상
저는 지금 관상 수녀원에 와 있기에 겸손과 관상의 관점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고 나누고자 하는데 오늘은 겸손한 자기 관상에 관해서 나누고 내일은 겸손한 하느님 관상에 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관상하면 보통 하느님 관상에 관해서만 얘기하는데 온전한 관상은 하느님도 관상하고 자신과 이웃도 하느님 안에서 관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온전한 관상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겸손과 성령입니다. 아시다시피 겸손은 자기를 정확히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사람은 모름지기 국어와 산수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어를 잘해서 자기 주제 파악을 잘해야 하고, 산수를 잘해서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해서 주제를 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자기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참으로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고, 이에 비해 오늘 독서에서 얘기되는 적 그리스도들은 주제넘게 날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얼마나 자기 주제를 잘 알고 있느냐 하면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자기를 주제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주제 파악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정확히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신앙적인 겸손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을 낮추거나 높이지 않는 것을 뛰어넘어서, 하느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도 겸손에 관해 구구절절 너절하게 얘기하지 않고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게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이지 그 이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그리스도가 아닐뿐더러 그리스도 앞에서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오늘 독서에서 적 그리스도들은 하느님 앞에 있지 않고 하느님 안에 머물지 않을뿐더러 자기가 그리스도인 양함으로써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착각함으로써 그리스도 밖에 있고, 자기를 그리스로라고 함으로써 사람들을 속이고 오도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자기를 신이라고 하며 날뛰는 자들이 있어 우매한 백성을 속이고 오도합니다. 오도(誤導)한다는 말은 말 그대로 길을 잘못 인도한다는 말인데 하느님께 가 하느님 안에 머물도록 하지 않고 자기에게 와 자기 밑에 있으라고 하는 거지요.
그러므로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가르침을 받는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해야 할 뿐 아니라 우매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라고 오늘 서간이 세 번이나 얘기하듯 우리는 적 그리스도를 따라가지 말고 참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자로서 하느님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한은 자신이 외치는 이가 아니고,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그런데 나는 어떠한가? 나 자신을 외치는 이인가? 아니면 내 안에서 외치는 이를 드러내는 소리인가?
사실, 소리를 내는 것은 피리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입니다. 피리가 결코 스스로 소리를 낼 수는 없는 까닭입니다. 마치 붓이 스스로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붓을 쥔 이가 글씨를 쓰는 것이듯이 말입니다. 곧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향하여 있는 화살표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피리를 부는 이가 아니라, 피리를 부는 이를 담아내는 소리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는 진정 비워진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요한은 참으로 비워진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채우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비워진 데서 오는 기쁨을 찾아야 할 일입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이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타인을 드러내는 데서 오는 기쁨 말입니다. 그러기에 비워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하는 사람처럼 추하게 보이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이들을 자기 발밑에 두려는 것처럼 추한 모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한을 보십시오! 요한은 자신의 발밑에 다른 이를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다른 이의 발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나, 그 발밑에 내려갈 자격마저 없는 몸이라 고백합니다.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본래 주인이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종이 그 신발 끈을 풀어주는 법인데, 요한은 그런 종의 일마저도 할 만한 자격조차 없는 부당한 몸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 자신을 온전히 비운 까닭입니다.
오늘 우리도 요한이 받은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받습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21.22)
이 질문에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나는 어떤 이인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닌 존재로 살고 있는 이인가?’ ‘예수님과는 어떤 결속을 맺고 살아가고 있는 이인가?’
저는 이렇게 대답해 봅니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새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의 벗이요.’ 라고 말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19
당신은 누구요?
주님!
당신을 향하여 있는
화살표 같은 존재가 되게 하소서.
피리가 되어 당신의 사랑,
당신의 노래를
온몸으로 드러내게 하소서.
붓이 되어 당신의 말씀을
삶으로 쓰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생명의 춤이 되고,
당신 축복의 강복이 되게 하소서.
저는 당신의 사랑받는 새끼,
당신의 귀염둥이 아들,
당신의 사랑이니,
당신께만 속해 있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금반지를 낀 손가락으로는 달을 가리킬 수 없습니다.
찬미 예수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는 제가 한 일에 너무 제 자신을 드러내려 한 것은 아닌지 후회할 때가 많습니다. 매번 그렇습니다. "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나도 좀 봐주소서"라고 속삭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은 이런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뉘우치게 합니다. 그는 철저히 자신을 지우고 오직 주님만을 가리켰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한 배우의 이야기를 통해 이 겸손의 신비를 묵상해 보고 싶습니다. 헐리우드의 슈퍼스타 멜 깁슨입니다. 그는 젊은 시절 수려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진 그의 내면은 썩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실 거짓말에 능숙했습니다. 배우라는 직업 자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 즉 멋진 가면을 쓰고 대중을 속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는 너무 일찍, 너무 높이 올라갔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성공의 무게는 그를 알코올 중독과 분노 조절 장애라는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가족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그는 스스로 쌓아 올린 명성의 탑을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끼워준 '성공'이라는 금반지가 그의 손가락을 조여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연기(거짓)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 3천만 달러(약 400억 원)를 털어 영화 한 편을 제작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미쳤다고 말렸습니다.
"누가 아람어와 라틴어로만 대사하는 잔인한 영화를 보겠어? 당신은 파산할 거야!"
하지만 멜 깁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을 철저히 지웠습니다. 그는 감독으로서 카메라 뒤에 숨었고, 심지어 영화 속에서 딱 한 장면, 예수님의 손바닥에 못을 박는 로마 병사의 손만 직접 연기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나의 죄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진 스타의 금반지를 빼버리고, 대신 죄인의 망치를 들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죽이고 오직 예수님의 수난만을 드러내려 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영화는 전 세계 수억 명의 영혼을 울렸고, 그 자신도 깊은 회개와 신앙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매일 미사를 봉헌하며, 화려한 배우가 아닌 겸손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자신을 죽이자,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멜 깁슨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온 유다가 그에게 몰려들었고, 사람들은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구세주 행세를 하며 금반지를 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손가락에 화려한 금반지를 끼고 달을 가리키면, 사람들은 달을 보지 않고 금반지만 쳐다봅니다. 요한은 그것을 알았기에, 자신의 손가락에서 모든 영광을 빼버리고 오직 예수님만을 가리키는 투박한 표지판이 되기를 자처했습니다. 반면, 자신이 가리켜야 할 소명을 잊고 자기 영광에 취해 망해버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솝 우화의 '젖 짜는 처녀와 우유통'입니다.
처녀가 머리에 우유통을 이고 시장에 갑니다. 그녀는 걷으면서 즐거운 상상에 빠집니다.
'이 우유를 팔아 달걀을 사고, 병아리를 까서 닭을 팔아 돼지를 사고, 소를 사야지. 그리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에 가서 나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에게 콧방귀를 뀌어 줄 거야!'
그녀는 상상 속에서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고개를 홱 젖혔고, 머리 위의 우유통은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났습니다. 현재의 소명(우유 운반/주님 증거)보다 미래의 내 영광(드레스/금반지)에 취해 있을 때, 지금 가지고 있는 은총마저 쏟아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자기 이름을 크게 쓰면 작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일화를 기억하십니까? 젊은 시절, 그는 '피에타' 상을 조각하고 나서 사람들이 작가를 몰라보자 밤에 몰래 들어가 성모님 어깨띠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습니다. 자신의 금반지를 끼워 넣은 것이지요. 하지만 나중에 그는 깊이 후회하며 그 이후로는 어떤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시고도 어디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으셨는데, 보잘것없는 내가 내 이름을 자랑하려 했구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오직 작품 속의 영성만을 드러내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나를 지울 때, 하느님이 드러납니다. 내 손가락의 반지를 뺄 때, 사람들이 비로소 내가 가리키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내 말과 행동에서 '나'라는 이름을 지우는 연습을 해봅시다. 내가 사라진 그 자리에, 주님의 영광만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면서 이혼하겠다는 부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혼의 이유 중에서 무엇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할까요? 대부분이 ‘성격 차이’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성격이란 같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다릅니다. 그렇다면 성격 차이라는 것은 자기 성격에 상대방이 맞춰주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 성격에만 맞추길 바란다면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차라리 ‘개’를 키우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젊은이 중에는 결혼하지 않고 대신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부정하는 사람은 남도, 더 나아가 세상까지 부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제대로 알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또 세상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제대로 아는 것이 넓은 마음을 갖게 하는 시작이 됩니다.
자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족하고 나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함께 사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함을 갖게 되며 더 나아가, 이렇게 부족한 ‘나’를 사랑해 주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이 이렇게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회개의 설교를 듣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가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합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만약 타인의 기대나 칭송에 취해 있었다면, 그리고 세상의 부귀영화를 원했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그냥 인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라고 말하지요. 소리는 뜻을 전달하고 나면 사라지고 맙니다. 이처럼 요한은 자기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닦고 사라지는 도구임을 보여줍니다. 또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라고 말합니다. 당시 유다 사회에서 주인의 신발 끈을 푸는 일은 노예가 하는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다인 노예에게는 시키지 않는 비천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를 낮추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을 통해 겸손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알고 하느님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느님의 자리를 침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일인데도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단죄합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영역에 있는 것인데,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라고 함부로 말합니다. 하느님께 청원의 기도를 바치면서, 마치 종 부리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우리,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실천이 말보다 낮다(벤저민 프랭클린).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바빠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일상과 생활 속에 구현되어야 할 우리의 신앙입니다. 겸손 이전에 정직입니다. 정직을 실천하는 사람은 자기 자리를 정확히 압니다. 진실성은 자기를 부풀리지 않는 데서 드러납니다. 이렇듯 깨달음은 새로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일을 가로막지 않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앞에 설 줄 아는 사람만이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계시는 사람을 통해 말해지지만 결코 사람에 머물지 않는 은총을 보여줍니다. 비움으로써 참된 중심을 드러내는 것이 참된 열림의 길입니다. 그는 오실 분을 준비할 뿐, 그분의 자리를 결코 차지하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아니다”라고 고백함으로 참된 길을 밝힙니다.
메시아 역할을 붙잡지 않음으로써, 자기를 중심에 두는 어리석은 집착에서 우리는 벗어납니다. 그리스도를 알아본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 나에게서 그분으로 옮겨지는 체험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는 사랑을 알아보는 기쁜 하루 되십시오. 그리스도를 알아본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여는 우리 생활의 참된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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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2장 2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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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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