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1요한 2,3-11)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 복음
(루카 2,22-35)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2,3-11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3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그것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4 “나는 그분을 안다.” 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5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는 참으로 하느님 사랑이 완성됩니다. 그것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 있음을 알게 됩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리스도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이 처음부터 지녀 온 옛 계명입니다. 이 옛 계명은 여러분이 들은 그 말씀입니다.
8 그러면서도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것은 새 계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도 또 여러분에게도 참된 사실입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빛이 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9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
10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11 그러나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2,22-35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23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29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34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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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9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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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아기가 이끄는 길
오늘 복음의 이야기가 성가정 축일인 어제 복음의 이집트 피난보다 시간 순서로는 앞서는 것으로 보입니다. 젊은 부부는 율법에 따라 아기가 태어난 지 40일이 지난 뒤 제물과 맏아들을 봉헌하고자 예루살렘의 성전을 찾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저 율법에 따라 봉헌한다는 사실을 넘어서는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일찍이 말라키 예언자는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3,1)라는 말로 구원자가 성전에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성전에서 부부는 한 노인을 만나는데 루카 복음사가가 그를 소개할 때 ‘성령’을 세 번이나 이야기할 만큼 성령으로 충만한 시메온입니다. 그는 내일 복음에서 보게 될 한나와 함께 구원자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백성이 수 세기에 걸쳐 기다리던 구원자가 드디어 성전에 오시어 처음 당신 백성을 만나는 일종의 상견례라고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동방 교회의 전통을 따라 이 이야기를 “만남의 축제”(2014년 2월 2일 강론)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과 당신 백성의 만남, 젊은이들(마리아와 요셉)과 노인들(시메온과 한나)의 만남이 이루어지니까요.
아기 예수님을 안고 걸어가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그려 봅시다.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께서 당신 백성을 만나시도록 그분을 성전으로 이끄십니다. 그러나 사실은 예수님께서 성모님보다 앞서가십니다. 노인 시메온이 아기를 팔에 안지만 사실 그를 이끄시는 분은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젊은 어머니 마리아와 나이 든 시메온을 이끄시는 분은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그 아기가 우리도 이끌어 주시기를 청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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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당신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성탄 팔일 축제 제5일 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치르시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십니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죄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었던 이 모세의 율법규정을 지키지 않으셔도 되셨지만, 굳이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으셨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는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게 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갈라4,4-5)
사실, 율법(속량법)에 따른다 하더라도 굳이 성전에 가지 않고 어디서든 사제에게 성전비용(다섯 세켈)을 바치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예수님을 성전에 데려간 것은 한나가 사무엘을 낳은 후 남편 엘카나와 함께 나이 많은 사제 엘리를 만나는 이야기를 반영해줍니다(1사무 24-28).
이스라엘의 관습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를 성전에 있는 나이 많은 사제에게 데려가 복을 빌어주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할례를 받고 나자 즈카르야가 하느님을 찬미했듯이(루카 1,67-79), 예수님이 할례를 받은 후에도 시메온이 하느님을 찬미합니다(루카 2,28-32).
“이제는 떠나가게 하소서.”(Nunc Dimittis)로 시작되는 이 찬미노래는 <이사야서>(40,5;42,6;46,13;49,6;52,9-10)를 반영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성인들이 세상을 떠날 때 불리기도 하고, 동방교회에서는 ‘저녁기도 때’, 서방교회에서는 ‘끝기도 때’ 바쳐집니다.
시메온은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노래합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29-32)
“이제야”라는 말은 현재가 구원이 성취된 시대임을 말해주며,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는 말은 ’풀어주셨다. 쉬게 하다‘, 죽게 하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이사야서>(40,5)의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함께 그것을 보리라.”는 말을 반영합니다. 또한 “모든 민족들, 다른 민족들”은 이방인을 뜻하며, 그들에게도 “계시의 빛”이 비추심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아기 예수님의 부모는 “놀라워하는데”, 시메온은 마리아에게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이는 예수님은 “모퉁이 돌”로서 믿는 이들에게는 요긴한 돌이지만,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걸림돌”이 될 것을 말해줍니다(이사 8,14-15;28,26;로마 9,33;1베드 2,6-8). 그리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그들의 “마음 속 생각”, 곧 믿지 않는 마음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이라는 예고는 마리아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겪게 될 고통을 암시해줍니다.
오늘 우리도 시메온의 눈이 되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루카 2,30).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34
반대를 받는 표징
주님!
반대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
비난 받고 모욕당하기를
두려워하지 말게 하소서.
미움 받을 용기를 주소서.
욕먹지 않으려 불의에
타협하지도 말게 하소서.
당신 때문에 기꺼이
반대 받을 줄을 알게 하소서.
나쁜 사람으로
취급당할 줄을 알게 하소서.
반대와 고통 속에서도
사랑할 줄을 알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관계는 우연이 아니라 눈물로 짓는 농사입니다.
찬미 예수님.
살아가면서 마음을 터놓을 진정한 친구 하나 얻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는 친구가 없어"라고 한탄하기 전에, 먼저 우리가 왜 관계 맺기에 실패하는지, 그 이유부터 짚어보려 합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관계 실패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여우는 두루미와 친구가 되고 싶어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나름대로는 정성을 다해 맛있는 수프를 끓였지요. 그런데 여우는 그 수프를 자신이 먹기 편한 납작한 접시에 담아 내왔습니다. 부리가 긴 두루미는 접시를 쪼아대기만 할 뿐 한 입도 먹지 못했습니다. 화가 난 두루미도 여우를 초대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주었고, 주둥이가 짧은 여우 역시 굶어야 했습니다.
이 관계가 깨진 이유는 명확합니다.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했어(접시에 담아줌)"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철저히 '자기 기준'의 봉헌이었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먹을 수 없는 열매,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그렇다면 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간관계론의 대가 데일 카네기는 아주 명쾌한 비유를 듭니다.
"저는 딸기와 생크림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낚시를 갈 때는 딸기를 가져가지 않습니다. 물고기는 딸기가 아니라 지렁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을 낚을 때는 자신이 좋아하는 딸기만 들이밀면서 물고기가 안 잡힌다고 투덜대십니까?"
많은 사람이 친구를 사귈 때 이 실수를 범합니다. 상대가 무엇에 굶주려 있는지(지렁이)는 보지 않고, 내가 주고 싶은 것(딸기, 내 자랑, 내 방식의 조언)만 줍니다. 상대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열매를 준비하지 않으면 관계의 바늘에 아무도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대가 원하는 대로만 해 주면 좋은 친구가 될까요? 그건 또 그렇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비굴해지거나 관계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솝 우화의 '당나귀와 강아지'를 보십시오. 당나귀는 주인이 강아지를 무릎에 앉히고 예뻐하는 것을 보고 몹시 부러웠습니다. '나도 강아지처럼 굴면 사랑받겠지?' 당나귀는 앞발을 들고 주인 무릎에 뛰어올랐고, 꼬리를 흔들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주인은 기겁하며 몽둥이로 당나귀를 때려 쫓아냈습니다.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당나귀에게는 당나귀만의 열매(짐을 나르는 듬직함)가 있습니다. 남이 주는 열매가 좋아 보인다고 해서, 자신의 본성에 맞지 않는 열매를 억지로 흉내 내어 주려 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기쁨이 아니라 공포가 됩니다. "나답게" 봉헌하지 못하면 친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친구, 나와 생명을 나눌 수 있는 깊은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정답은 '내가 원하는 열매를 상대방이 맺을 수 있도록, 내가 먼저 씨를 뿌리고 가꾸는 것'입니다. 친구는 길가에서 줍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는 것입니다. 여기 한 선생님이 갱단 아이들을 친구로 길러낸 감동적인 실화가 있습니다. 영화 '프리덤 라이터스'의 실제 주인공 에린 그루웰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윌슨 고등학교 203호 교실. 그곳은 학교라기보다 전쟁터였습니다. 흑인, 라틴계, 아시아계 갱단으로 나뉜 아이들은 서로를 죽일 듯이 미워했고, 그들의 주머니에는 연필 대신 총과 마약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곳에 하얀 진주 목걸이를 한 백인 여교사 에린 그루웰이 부임했습니다. 아이들은 비웃었습니다.
"저 여자는 관광객이야. 며칠 못 버티고 도망갈걸."
아이들은 마음의 문을 철저히 걸어 잠갔습니다. 그루웰 선생님은 그 차가운 벽 앞에서 매일 밤 눈물 흘렸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교과서 대신 자신의 사비를 털어 아이들에게 새 책을 사주고, 무엇보다 깨끗한 공책 한 권씩을 선물하며 말했습니다.
"이건 너희들의 일기장이야. 너희의 이야기를 써주렴. 아무도 너희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지? 내가 들어줄게. 너희는 틀리지 않았어."
그것은 선생님이 눈물로 뿌린 '신뢰의 씨앗'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며 펜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꾹꾹 눌러왔던 슬픔과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학생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나는 16살 생일을 맞았다. 놀라운 일이다.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내 친구가 어제 총에 맞아 죽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언되지 않은 전쟁이다. 아무도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다른 학생은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관(Coffin) 뿐이다. 내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그루웰 선생님은 그들의 일기를 하나하나 읽으며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선생님의 눈물이 아이들의 굳은 마음을 적셨습니다.
'아, 이 사람은 진짜구나.'
선생님이 먼저 사랑의 씨앗을 뿌리자, 아이들은 닫혔던 마음을 열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친구'라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명장면인 '변화를 위한 건배(Toast for Change)' 시간, 한 학생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저는 제가 18살까지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미래를 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프리덤 라이터스(Freedom Writers)』라 명명했고, 대부분 대학에 진학했으며, 그들의 일기는 전 세계에 희망을 전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150명의 갱단 아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친구라는 기쁨의 곡식단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녀도 그들의 영원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울며 씨를 뿌리지 않으면, 결코 친구라는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친구로 만드시는 방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완벽한 친교를 맺고 싶으셨습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 당신께 봉헌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밭을 탓하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밭인 마리아에게 먼저 씨를 뿌리셨습니다. 루카 복음 1장을 보십시오.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고, '은총이 가득한 이'라는 선행 은총의 씨앗을 먼저 뿌리셨습니다.
마리아가 그 은총을 받아들여 "그대로 이루어지소서(Fiat)"라는 순종의 열매를 내어드렸을 때, 하느님과 마리아 사이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완벽한 관계이자 영원한 파트너십이 형성되었습니다. 하느님도 거저 얻지 않으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먼저 주셨기에 성모님도 아드님을 봉헌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 씨앗을 뿌리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와 맞는 사람이 없다고,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외로워하십니까? 기다리지 마십시오. 우정은 완성된 채로 배달되는 상품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열매가 있다면, 내가 먼저 그 씨앗을 가지고 울면서라도 밭으로 나가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따뜻함을 주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온기를 심어야 하고, 이해받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경청을 심어야 합니다. 관계는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눈물로 짓는 농사입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울며 씨 뿌리러 나간 자들이 반드시 기쁨으로 곡식단 들고 돌아온다."(시편 126,6)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유일하고도 영원한 법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십니다.
“용서하겠다.”라고 말하면 자기 기억에서 상대방이 준 아픔과 상처가 모두 사라질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용서한다고 말해도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어서 나의 몸과 마음을 욱신거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용서할 필요가 없을까요? 용서해도 또 용서하지 않아도 힘드니까요. 그러나 용서하면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 상처가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신경 과학자들은 용서가 인간의 뇌와 몸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용서하는 순간에 뇌파가 달라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은 줄어들며 면역력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용서는 단순히 도덕적 덕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지혜이고 영혼을 살리는 처방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복수는 본능이지만, 용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등한 의식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으면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용서하는 순간, 풀려나는 것은 누가 될까요? 상대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습니다. 상처 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오직 사랑으로만 원한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로써 가장 숭고한 승리를 만들게 됩니다.
주님께서 끊임없이 “사랑하라” 하신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상대를 위한 사랑이 아니라, 아파하는 자기를 위한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신 주님 안에 머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독서와 복음은 ‘빛을 알아보는 눈’과 ‘빛 안에 머무르는 삶’을 연결합니다. 특별히 복음에서는 시메온이 등장합니다. 그는 나이 든 노인이었지만, 성령 안에서 깨어있었기에 가난한 부부의 품에 안긴 평범해 보이는 아기에게서 ‘세상의 빛’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오늘 제1독서에서 말합니다.
“빛 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직도 어둠 속에 있는 자입니다.”(1요한 2,9)
주님이라는 빛을 알아본 사람이라면 마땅히 형제 사랑을 통해 주님이신 빛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눈을 멀게 하여 빛이신 주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게 합니다. 이 세상 삶에서도 어렵고 힘든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성탄 팔일 축제를 보내며, 우리 안의 미움이나 편견이 예수님을 알아보는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공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계시의 빛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드러내는 은총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을 설명하는 분이 아니라, 하느님을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빛은 움켜쥘수록 사라지고, 나눌수록 밝아집니다. 하느님의 약속과 질서는 우리의 역사 안에서 결코 무너지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사건이 성탄입니다.
계시의 빛은 우리의 어둠을 적대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낼 뿐입니다. 빛은 특별한 장소에 있지 않으며, 우리의 일상 안에서 존재합니다. 영광은 높아짐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빛은 강할수록 짧고, 약할수록 오래 남습니다. 구유의 아기로 시작된 빛은 이미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참된 빛은 모두를 비추고 참된 영광은 사랑의 관계로 드러납니다. 함께 걸을수록 깊어지는 계시의 빛이며, 기꺼이 자리를 내어 주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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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2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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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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