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1요한 2,18-21)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복음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2,18-21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1-18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5년 12월 3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미사시작 00:45
✚ 강론시작 07:42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오늘, 우리 식탁에 누가 앉아야 하는가?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라는 구절을 그리스 말 표현으로 옮기면 “말씀이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입니다. 당시 유목민의 거주지로 쓰이던 천막은 우리의 몸을 가리키기도 합니다(2코린 5,1-4 참조). 구약 성경에서 천막은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요 아브라함이 천사들을 대접하던 환대와(창세 18,1-15 참조) 친교의 자리였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취하신 ‘인성’이라는 천막 안에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닌 모든 인간을 모아들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언젠가 죽어 없어지는 사람의 몸을 입으시어 우리와 같은 입장에서 연대하시고 친교를 이루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우물 바닥에 있는 인간이, 사람이 되신 말씀이라는 두레박에 담겨 올라가듯이, “그렇게 우리 인간들은 말씀의 육신 안에 담겨 그분을 통하여 신화되었습니다”(성 아타나시오). 주인께서 종을 구하시고자 “종의 모습을 취하[신]”(필리 2,7)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이 그 가난으로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2코린 8,9).
그러니 “부유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이날에,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을 자기 식탁에 앉혀야”(성 에프렘, 『성탄 찬미가』)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다시 욕망에 대하여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 첫 장으로서 성탄 대축일에 읽었던 것을 한해의 끝자락인 오늘 다시 읽는데 한처음부터 계셨던 말씀이 육화하시어 찾아오심을 얘기합니다.
그러니까 매우 장엄한 역사 서사인데 마침 한해의 끝자락에 이 말씀을 읽으니 한해의 끝에서 미시적으로 보지 않고 거시적으로 한해를 돌아보게 합니다. 왜냐면 주님께서 말씀이자 빛으로 우리에게 오셨는데 우리는 한해를 빛 속에서 살았는지 아니면 어둠 속에서 살았는지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빛이 세상이 왔는데 그리고 우리를 비추고 있는데 세상은 빛을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왜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냐 하면 빛을 어둠이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니까 빛이 찾아오기 전에 세상은 어둠 가운데 있었고, 그래서 어둠을 밝히려 빛이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지만 세상은 빛을 깨닫지 못했기에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둠 속에 있거나 우리 안에 어둠이 있다면 어둠이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이 우리 안에 없는 것이고, 빛이 우리 안에 없다면 빛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올 한해를 돌아보며 반성한다면 곧 우리가 한 해 동안 왜 어두웠을까 반성한다면 어둠의 이유를 다른 데서 찾지 말고 빛의 주님께서 아니 계신 데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어두울 수 있습니다.
죄를 짓고 죄책감 때문에 어두울 수 있고, 희망이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어두울 수도 있으며, 사이가 안 좋은 사람 때문에 내내 어두울 수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빛의 주님께서 우리 안에 안 계셨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더 근원적으로 반성하면 곧 왜 빛이 우리 안에 안 계셨는지 반성하면 주님이 진정 우리의 빛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 욕망, 그것이 빛을 깨닫지도 찾지도 못하게 한 것이고, 그것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게 한 것이라고 어제 독서와 오늘 복음은 연이어 일깨워 주는데 그러므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세상 욕망 대신 하늘나라 갈망으로 새해를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욕망은 희망을 주지 않습니다. 욕망은 절망을 줄 뿐입니다. 욕망은 결핍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아무 것도 아님에 머물기
오늘은 “성탄 8부 내 7일”이며, 2025년을 마감하는 올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다보며, 오늘을 가져다 준 지난날들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결코 보낼 수 없었던 한해를 보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독서>를 통해서는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복음>을 통해서는 ‘한 처음의 날’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한 처음’의 놀라운 일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
여기서, “사람”은 직역하면 ‘살을 취하였다’는 것으로 약함 안으로 들어온 것을 말하고, “사셨다”는 것은 ‘천막을 치고 우리와 함께 거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느님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시어 오셨고, 사람이 되시어 오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 참으로 인간의 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는 믿음과 ‘그분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고 함께 거주하고 사신다.’는 믿음은 초기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이자 핵심교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사도 바오로가 인용한 초대교회의 찬미가에서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이는 단지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하느님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사시면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엄청난 사랑’을 말해줍니다. 교부들은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까닭은 인간이 하느님 되기 위함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개의 변모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변모’와 ‘인간이 하느님이 되는 변모’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자신을 ‘비우는’ 일이 있고, 그와 ‘같아지는’ 일이 있고, ‘하나 되는’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단순히 ‘본받는’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심도 깊은 신비적 차원을 일이 벌어집니다. 곧 베드로가 표현한대로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2,4) 되는 일이 있고, 바오로가 표현한대로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1코린 15,49), “그리스도를 입고”(로마 13,14;갈라 3,27;콜로 3,10), “같은 모습이 되는”(로마 8,29)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타자에게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 내어주어, 그로 하여금 당신께서 누리는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함께 누리게 해 주는 것입니다. 곧 ‘사랑’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타자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아가, 자신이 그의 자리로 들어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내어주는 것은 곧 들어가는 일이 됩니다. 곧 자신을 내어주고 나아가 상대에게 들어가기에, 동시에 자신의 그 빈자리에 그를 받아들이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취하고 상대를 받아들여 상대와 같아지고, 비로소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 전통에서 전해져 오는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오직 같아지는 것만이 구원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진정으로 ‘비우는’ 행위의 종착지는 ‘같아지는’ 것이요, ‘하나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것은 또 다시 당신에게로의 변형을 가져옵니다. 곧 이러한 변화는 변화 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변화로 끌고 갑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같아짐’을 통해 우리와 자리를 바꾸는 지점까지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곧 인간을 하느님이 되게까지 이르게 합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은 본질 자체로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은총으로 하느님이 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옛 교부들은 이를 “놀라운 교환”(admirabile commerc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느님이 되는” 길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바로 그 길뿐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도 이와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온전히 비우고 그저 자기 자신의 ‘아무 것도 아님’ 안에 머물면, 하느님께서 그 안에 들어와 ‘전부’가 되실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4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주님!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제 발길이 당신을 향하여 있는지
제 마음에는 당신의 평화가
들어와 있는지를 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께서는 이미 제 안에
생명의 빛을 불어넣으셨으니
이제는 죽음의 어둠에
물들지 않게 하소서.
제가 당신 생명으로 새로워지고
세상에 당신의 생명을
드러내게 하소서.
온 세상이 생명의
빛으로 차오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2025년, 당신은 빛이었습니까, 등불이었습니까?
찬미 예수님.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저는 여러분께 냄새나는 생선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자신을 인간을 넘어선 신, 곧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거부하며 불로초를 찾았고, 자신의 무덤 지하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장의 별자리를 보석으로 박아 영원한 빛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스스로 빛이 되려 했던 욕망의 끝판왕이었지요.
그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그는 순행 중에 객사했습니다. 한여름이라 시신은 금방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환관 조고는 황제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시신이 실린 수레 앞뒤에 절인 생선, 즉 썩은 생선을 가득 실어 시체 썩는 냄새를 생선 비린내로 덮어야 했습니다. 영원히 빛나려 했던 신의 육신은 썩은 생선 더미 속에 숨겨져 옮겨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2장의 헤로데 아그리파 1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은으로 짠 눈부신 옷을 입고 연설하자, 아침 햇살을 받아 옷이 번쩍였고 아첨꾼들은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다!"
헤로데는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이 진짜 빛인 양 으스대며 즐겼습니다. 그 즉시 주님의 천사가 그를 쳤고, 그는 구더기들에게 먹혀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던 몸은 가장 하찮은 벌레의 밥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구가 필라멘트를 태워 스스로 빛이 되려 하면 결국 끊어지고 타버립니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내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분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요한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등불 행세를 하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 빛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즉 형체 없는 도구로 낮추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며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스스로 빛이 되기를 거부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여자가 낳은 이들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며 진짜 별처럼 높여주셨습니다. 만들어진 존재가 좋은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만드신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전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폴로 13'의 실화를 기억하십니까? 우주선 고장으로 궤도를 잃은 아폴로 13호의 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해 창밖의 별자리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켜둔 계기판 불빛들과 떠다니는 잔해들이 반짝거려 밖의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길을 찾기 위해 우주선의 모든 전원을 껐습니다. 내부가 춥고 캄캄해지자, 비로소 창밖으로 그들을 인도할 진짜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 빛을 끌 때 별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입니다.
지난 1년, 우리는 내가 이룬 성취, 내 자존심, 내 계획이라는 불빛을 너무 밝게 켜놓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작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오늘 밤, 나의 빛을 끄십시오. 그리고 먼저 참 빛을 바라보고 그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시오. 그러면 내년 이맘때, 우리는 훨씬 더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하.사.시.' 연구 모임을 만들고, 번역을 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다녔습니다. 많은 냉담 교우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스피커였고, 몽당연필이었습니다. 제가 사라지고 오직 제가 증언한 주님만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제 한 해 농사는 대성공입니다. 마지막으로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성모님을 18번이나 만난 기적의 주인공이었지만,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 궂은 일만 했습니다. 한 수녀가 "당신은 기적의 증인인데 왜 이렇게 숨어 지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답했습니다.
"저는 빗자루입니다. 성모님은 청소할 때 저를 쓰셨고, 일이 끝나면 문 뒤에 세워두셨습니다. 빗자루가 스스로 나서면 안 되지요."
그녀는 빛을 반사한 뒤 철저히 그림자 속으로, 문 뒤로 숨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스스로 태양이라 칭했던 진시황과 헤로데는 썩어 문드러졌지만, 스스로 빗자루라 칭했던 베르나데트의 시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25년은 빛이 되려는 해였습니까, 아니면 빛을 전하는 해였습니까? 새해에는 내가 빛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는 맑은 거울이 됩시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의 하느님은 커지십니다.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내년 이맘 때는 스스로 타오른 재가 아닌, 빛을 머금은 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요즘이야 거의 모든 분이 아파트에 사시지만, 예전에는 거의가 주택에 살았습니다. 저 역시 주택에서 오랫동안 살았는데, 아파트에 살기 직전의 주택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 집에는 다락방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다락방이 저와 제 바로 위의 형님과 함께 지내는 방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나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아주 낮은 다락방이었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좁고 아늑한 곳을 좋아합니다. 엄마 뱃속에 열 달 동안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요? 그래서 굳이 식탁 밑이나 책상 아래 공간에 들어가서 놀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제게는 좁은 공간인 이 다락방이 너무나 편안했고 좋았습니다.
자기에게 편안함을 주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화려하고 멋질 필요는 없습니다. 보호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공간에 머물러야 어렵고 힘들 때 다시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직접 이런 공간이 되어주십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이들은 모두 당신께 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세상의 공간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절대로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서 계속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십니다. 무조건 주님과 함께하고, 주님의 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전례는 12월 31일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우리에게 ‘처음과 끝’을 묵상하게 합니다. 그래서 독서에서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8)라고 말하고, 복음에서는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요한 1,1)라고 전해줍니다.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한 해는 저물지만, 영원하신 말씀은 시간의 시작이자 마침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어둠 속의 빛이십니다(요한 1,5 참조).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 주님께서는 어둠을 이기기 위해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실제로 올 한 해 동안 우리 삶에 어두운 순간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주님께서는 빛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이를 요한 사도는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요한 1,16)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함께해주신 주님께 감사드리는 시간을 가지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삶의 어두운 순간에 빛이 되어주심을 깊이 묵상하면서, 내년에도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올 한 해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의 명언
진실은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안창호).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요한복음 1장 1절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5년 12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30 |
|---|---|
| 2025년 12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9 |
| 2025년 12월 2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8 |
| 2025년 12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7 |
| 2025년 12월 26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6 |
| 2025 성탄절 낮미사 실시간 생중계|12월 25일 명동성당 평화방송 (0) | 2025.12.25 |
| 2025 성탄절 밤미사 실시간 생중계|12월 25일 명동성당 바티칸 평화방송 (0) | 2025.1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