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1요한 2,29―3,6)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 복음
(요한 1,29-34)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2,29―3,6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29 의로우신 분이심을 깨달으면,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3,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저지르는 자는 모두 불법을 자행하는 자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5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분 안에는 죄가 없습니다.
6 그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모두 그분을 뵙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입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요한 1,29-34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때에
29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실시간 시청

2026년 1월 3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1월 기도지향 00:06
✚ 미사시작 00:37
✚ 강론시작 07:47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와 함께해 보세요.
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드러나지 않아도 길이 되는 증언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34).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왜 참될까요? 그의 증언은 상상이나 소문에 따른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보고 들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모습을 직접 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듣고 본 것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증언하였고, 덕분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아이시며, 세상의 죄를 없애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사명에 충실하였고, 자신의 증언으로 ‘구원의 문’이신(요한 10,9 참조) 예수님께 사람들을 이끌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우리도 하느님께서 저마다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는 올바로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의 욕망이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도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야고 4,3)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뜻을 올바로 식별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이든지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소중합니다. 작은 밀알 하나가 많은 열매를 맺듯, 우리도 주님의 은총 안에서 작은 일에도 충실한 일꾼, 주님의 뜻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충실한 일꾼이 되도록 노력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겸손한 하느님 관상
어제 저는 겸손한 자기 관상에 관해서 묵상과 나눔을 하였고, 오늘은 겸손한 하느님 관상을 할 거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하느님 관상에 관해 묵상하는데 이때 떠오른 생각이 바로 ‘겸손하다고 해서 다 하느님을 관상하는 것은 아니다.’였습니다.
물론 교만한 사람이 하느님 관상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겸손이 하느님 관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겸손하면 자동 하느님 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인간적으로 겸손한 것만으로는 하느님 관상이 불가능하고, 영적으로 겸손해야만 하느님 관상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세례자 요한도 성령께서 주님 위에 내려오시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는 것이 성령 없이 가능하겠습니까? 성령의 눈이 없으면 성령도,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주님 위에 머무신 성령께서 세례자 요한에게도 머무셨을 겁니다. 관건은 이제 우리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세례자 요한처럼 성령의 눈을 지닐 수 있는가 그것입니다. 이를 위해 겸손은 기본입니다. 그런데 그 겸손이 그저 인간적인 겸손이 아니라 어제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이어야 합니다. 베드로나 프란치스코처럼 극적으로 하느님 체험을 하게 되든지 클라라나 데레사처럼 자연스럽게 하느님 앞에 있게 되든지 어떻게든지 영적인 수동태가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하느님 체험을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고기를 잡으러 여느 때처럼 나갔습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했습니다. 있는 힘이란 능력과 노력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이란 능력과 노력 두 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오랜 고기잡이로 능력이 갈릴래아에서 최고였습니다. 그날 밤 밤새도록 열심히 고기를 잡았으니 베드로는 노력도 다했습니다.
그러면 평소 같으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어야 했는데 허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힘으로 허탕이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이것이 모든 하느님 체험의 공식입니다. 나의 힘이 다했을 때 하느님의 힘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그의 때가 다했다거나 그의 힘이 다했다! 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는 능력도 다하고 노력도 다해 이제는 더 이상 힘이 없다는 뜻이고, 내 힘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내 힘이 하나도 없을 때 두 가지입니다. 다른 인간에게 힘을 빌리려고 들던지 하느님께 눈을 돌리든지. 그런데 인간에게 힘을 빌리려던 것까지 허탕이 되었을 때 그때 하느님께 눈을 돌릴 수 있게 되고 그때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다가오심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은총의 때이고 영적인 겸손의 때인데 이때 받은 성령의 눈으로 하느님을 관상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어제 <복음>이 세례자 요한의 신원과 사명에 대한 말씀이었다면,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통한 ‘예수님의 신원과 사명’을 말해줍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
예수님의 언어인 아람어로 ‘양’(탈리야)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곧 ‘유월절의 어린 양’과 ‘주님의 종인 어린 양’입니다.
<첫째>로, ‘어린 양’(하말), ‘새끼 양’, ‘아기’(아들)을 의미하는데, ‘지고 가다’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곧 나무, 과일 또는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지고 간다.’고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시 ‘양’은 물건을 실어 나르는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어린 양’이란 ‘속죄양’으로서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해방절 양’을 상징합니다(탈출 12,1-13).
<둘째>로, ‘어린 양’이란 ‘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라고 하듯이,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는 ‘종인 메시아’를 상징합니다(이사야 53장).
그러니 ‘어린 양’이란 표징에는 인류의 죄에 대한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이 전제되고 있으며, 동시에 세상의 죄를 없애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가져오는 ‘메시아’로 증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체험한 환시를 통해, 보고 들은 바를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요한 1,32)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요한 1,33)
성령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내려오신 것은 노아의 홍수 때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물고 그에게 돌아와 새 시대를 알렸듯이, 이제 예수님에게서 구원이 시작되는 ‘새 시대’를 알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어린 양의 흰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성령을 통하여 입이신 옷입니다. 속죄양이 되시어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깨끗이 빨아 입히신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어린 양’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린 양’은 대속으로 자신을 내어놓기에 억울함이나 원망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향이 있는 ‘봉헌’의 삶이요, ‘향하여’ 바치는 삶입니다.
그러니, 오늘 진정 내 삶이 그리스도의 생명이 피어나고 있고, 그분을 향하여 바치고 있는 봉헌된 삶인지를 살펴보아야 할 일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권고를 되새겨 봅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요한 1,29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주님!
죄를 탓하기보다
스스로 짊어질 줄을 알게 하소서.
허물을 뒤집어쓰고
하늘을 여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기꺼이 바치는 삶이기에
그 어떤 억울함도 원망도 없게 하소서.
위하여 내어놓는 삶이기에
당신의 생명이 피어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작심(作心)하지 말고, 수심(受心)하라.
찬미 예수님. 희망찬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해 첫날이면 우리는 누구나 비장한 각오로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꼭 담배를 끊겠다, 성경을 읽겠다, 더 성공하겠다." 우리는 이것을 '작심(作心)'이라고 부릅니다. 내 마음을 내가 지어먹는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심은 대부분 '삼일'을 넘기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 욕심이나 의지만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이길 수 없고, 내 힘은 배터리처럼 금방 방전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가 아니라, "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인가?"를 식별하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삶은 이 식별의 여정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링컨을 승리자로 기억하지만, 그의 인생 전반부는 처참한 실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무던히 애썼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주 의원 낙선, 사업 파산, 약혼녀의 죽음, 신경쇠약, 하원 의원 탈락, 상원 의원 낙선 등 끝없는 추락이었습니다.
그는 일기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자신의 야망(작심)으로 쌓아 올리려던 탑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벼랑 끝에 몰린 링컨은 그때 비로소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성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묻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제가 가야 할 길은 어디입니까?"
그는 성경 안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진리를 재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가장 큰 죄악인 노예 제도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1862년, 링컨은 내각 회의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하느님께 서약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다면, 그것을 노예 해방을 선포하라는 그분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말입니다."
그가 '노예 해방'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던 힘은 정치적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난한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라"는 성경 말씀과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내 작심은 실패했지만, 말씀에 비추어 식별한 하느님의 뜻(수심)은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성모님의 영성도 바로 이 '말씀을 통한 식별'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처녀인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단순히 겁에 질려 맹종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구약의 율법과 예언을 깊이 알고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 "보라,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이사야 7,14)라는 약속을 기억해 냈을 것입니다. 천사의 전갈이 뜬금없는 소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하느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약속하신 구원 계획의 성취임을 식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어떻게 그런 일이?"라고 물으면서도,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과 인류 구원의 계획에 어긋나지 않음을 확인하자마자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Fiat)"라고 응답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순종은 맹목적인 '작심'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확인하고 받아들인 거룩한 '수심(受心)'이었습니다.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하며 끊임없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즉흥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성경을 통해 미리 보여주신 가르침의 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복음과 연결되는 베드로 사도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빈 배였습니다. 어부의 경험과 기술(작심)은 실패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고 하십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제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라면 따르겠다는 이 식별과 결단이 만선의 기적을 불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26년 새해 계획을 세우고 계십니까? 종이에 적기 전에 먼저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질문하십시오.
"내 이 계획이 과연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에 맞는가? 이것이 나를 더 겸손하게 하고 이웃을 살리는 길인가?"
만약 내 계획이 내 욕심을 채우거나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아무리 굳게 '작심'해도 바벨탑처럼 무너질 것입니다. 하지만 링컨처럼, 성모님처럼, 베드로처럼 말씀에 비추어 하느님의 뜻임을 확인했다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 하고 받아들이십시오(수심).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계획, 말씀을 성취하려는 소망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책임지시고 완성해 주십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모든 계획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식별되고 성취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어떤 자매님께서 공무원 시험에 힘들게 합격한 후에, 민원을 처리하는 부서에 배치되었습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과 동시에 행복도 시작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매일 사람들에게 시달려서 스트레스만 쌓여갔습니다. 점차 직장에서 보내는 하루가 끔찍했습니다.
‘힘들다. 짜증 난다’라는 말만 하는 자기인데, 자기와 달리 같은 부서에서 일하는 선배는 너무나 밝은 모습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이분 역시 자기와 똑같이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데 기쁘게 일하는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선배님! 힘들지 않으세요? 저는 사람 상대하는 게 너무 힘든데, 선배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자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민원인을 향해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해. ‘당신이 나를 먹여 살리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민원인이 없으면 우리는 직장을 잃겠지. 그러니 감사한 것 아냐?”
자기를 힘들게 하는 사람 때문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는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늘 자기 안에만 갇혀 있습니다. 자기 힘든 것만을 생각하면서 그 원인이 외부에 있다고 여깁니다. 감사의 이유보다 미움과 원망의 이유만 찾고 있는 모습입니다.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괜찮다고 말할 힘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합니다. 어린양은 이집트 탈출 때 문설주에 피를 발라 죽음을 면하게 했던 희생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파스카의 어린양으로서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죄’는 누구의 죄를 말할까요? 바로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죄입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점을 분명히 알기에, 제자들과 사람들이 예수님께 향하도록 철저히 자신을 낮춥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줄 뿐”이라며 자기 한계를 인정하고,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돋보이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보여주듯, 우리의 중심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중심에 있을 때, 우리는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만을 드러내려고 노력합니다. 겸손하지 못한 모습이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없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공자).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하느님께 시선을 돌리게 하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무너뜨리십니다. 마음을 바로 세우며 하느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하는 어린양의 삶입니다. 삶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은총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사람의 시간입니다. 구원은 힘이 아니라 연민에서 비롯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사랑은 먼저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보게하는 일입니다. 죄로 상처 입은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비 안으로 데려오는 일입니다. 은총을 다시 깨닫게 하는 사랑입니다.
신앙은 소유가 아니라 전달이며, 영성은 드러남이 아니라 비켜섬입니다. 요한이 사용한 동사는 그래서 덮는다가 아니라 없앤다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모든 어둠을 받아들이십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뜨겁게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문제를 없애는 빠른 해답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입니다. 새해의 이 빛은 죄를 밝히는 단순한 빛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는 법을 보여 주시는 어린양의 빛입니다.
오늘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요한1서 3장 2절
오늘 성경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매일미사 말씀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6.01.02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02 |
|---|---|
| 2026.01.0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평화방송 (0) | 2026.01.01 |
| 2025년 12월 31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31 |
| 2025년 12월 30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30 |
| 2025년 12월 29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9 |
| 2025년 12월 28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8 |
| 2025년 12월 27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평화방송 (0) | 2025.12.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