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한 페이지에 모아 정리했어요.

매일미사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가톨릭 전례에 따라 전해지는 오늘의 독서와 복음입니다. 원하는 구절을 누르면 해당 말씀으로 바로 이동합니다.
- 제1독서
1요한 3,22―4,6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 복음
마태 4,12-17.23-25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1요한 3,22―4,6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22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4,1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느님의 영을 이렇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
4 자녀 여러분, 여러분은 하느님께 속한 사람으로서 거짓 예언자들을 이미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분께서 세상에 있는 그자보다 더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을 알고 또 사람을 속이는 영을 압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4,12-17.23-25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때에 12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갈릴래아로 물러가셨다.
13 그리고 나자렛을 떠나 즈불룬과 납탈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카파르나움으로 가시어 자리를 잡으셨다.
14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
15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16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17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23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24 그분의 소문이 온 시리아에 퍼졌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갖가지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과 마귀 들린 이들, 간질 병자들과 중풍 병자들을 그분께 데려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25 그러자 갈릴래아,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다,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에서 온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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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5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교황님 1월 기도지향 00:21
✚ 미사시작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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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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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오늘 말씀 묵상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말씀묵상부터 말씀카드까지, 오늘 말씀의 흐름을 따라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방향을 바꾸는 순간 시작되는 나라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큰 빛이 떠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권능을 알리시며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그리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 마귀 들린 이들을 고쳐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복음 선포에 ‘회개’가 앞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치유되려면 주님을 향하여 돌아서야 합니다.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것은 가까이 다가온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되는 첫걸음입니다. 하늘 나라가 아직 멀리 있다고 착각하면, 이미 와 있는 하늘 나라를 보지 못합니다. 바로 곁에 있는 하늘 나라를 모르고 지나치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많은 군중이 복음 선포 소식을 듣고 회개하며 예수님을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복음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이미 와 있는 하느님 나라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늘 나라에 이르는 길은 빛을 따르는 길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마음에 새깁시다. 그리고 그 시작은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마음에 있음을 기억합시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공현 시기의 죄와 회개
어제 공현 대축일에 아기로서 당신을 공현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어른이 되시어 당신을 공현하신다는 것이 오늘 복음이고, 이는 이사야 예언서의 다음과 같은 예언의 실현이라는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그런데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복음을 보면 두 부류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오늘 주님께서 치유해주신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들도 어둠 속에 있는 것 맞습니다. 병과 가난에 짓눌려 암울하게 살아가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어둠은 주님께서 거기서 꺼내주시고자 하신 어둠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정작 거기서 꺼내주시고자 하는 어둠은 죄의 어둠입니다. 죄로부터 회개하는 것이고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영접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공생활의 일성으로 이런 선언을 하십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지점에서 죄가 뭔지도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현 시기의 죄와 회개 말입니다. 공현 시기의 죄는 주님께서 빛으로 오셔서 빛을 비춰주시는데도 요한복음 1장의 말씀대로 그 빛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아보지도 못하고 맞아들이지도 않는 것으로서의 어둠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께서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짱짱히 비춰주시는데도 그 빛을 받아들이지 않는 악한 사람의 어둠입니다. 그러니까 빛을 받아들이면 선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악한 사람이지요. 그리고 빛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죄이고 그러다가 받아들이면 회개한 거고요. 이제 공현 시기의 죄와 회개를 오늘 독서와 연결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오늘 요한의 서간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명령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켜 주님 안에 머물러야 하는데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죄이고 그러다가 머물게 되면 회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님 안에 머물게 되기에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이고 그러다가 사랑하게 되면 그것이 회개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 하느님께 머무는 사랑,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사랑이요 회개임을 묵상하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기
빛의 축제일인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월요일’입니다. 오늘도 어제 말씀의 연장선상에서 또 하나의 ‘빛의 공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빛을 받으며, 빛 속에서 첫걸음을 내딛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빛을 증언하러 왔던 요한은 물러가고, 참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요한 1,6-9 참조).
오늘 <복음>은 이사야가 예언한 빛이 이미 도래했음을 선포합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6)
그 빛은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부터 비추어왔습니다. 질곡의 땅 갈릴래아, 이곳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곳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는 당신 ‘사명’의 내용을 밝혀줍니다.
곧 하늘나라는 먼저 이방인의 압박, 곧 죽음의 그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먼저 선포되었음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당신은 어두움 속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으로 오시는 분임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빛 안에서 걸어야 하는 첫걸음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밝혀줍니다. 곧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슈브,שב)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돌이키다’, ‘돌아오다’라는 뜻인데, 원래의 그림문자의 뜻은 ‘집을 무너뜨리는 것’을 뜻합니다. 곧 자신이 ‘이전에 살던 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집에 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전에 살던 집’이란 우리가 거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더 넓은 의미로 우리가 이전에 행하던 행위나 지식까지도 포함합니다.
곧 우리의 행위와 앎으로부터 벗어나 새집으로 돌아와 하늘의 양식을 먹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바오로 사도는 “옛사람의 행위와 지식(옛집)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는 것(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는 것)”(콜로 3,9-10 참조)이라고 말합니다. 곧 ‘우상의 집’을 무너뜨리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으로 돌아가 하느님의 양식인 말씀을 먹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는 죄악을 버리는 것보다 하느님께로 돌아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에덴의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기 위하여 만든 하느님의 처소(집)임과 동시에, 마지막 때에 다시 회복될 ‘새 예루살렘’(묵시 21,2)입니다.
‘회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호세아를 통하여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아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 ~너희는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돌아와 아뢰어라.”(호세 14,2-3)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지켜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있게 하고,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요한 14,23 참조)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거처를 함께 하시면 우리 안에 ‘하느님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 안으로의 전환이 곧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건설되도록 수락하는 일입니다. 곧 우리의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하늘나라를 받아들이는 일, 곧 그분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거처가 되는 일이 벌어져야 할 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4,16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주님!
당신께서는 어둠이 덮인 곳에
큰 빛을 비추셨습니다.
질곡의 땅,
핍박받는 이들에게
의로움의 빛줄기를 뿌리셨습니다.
오늘, 저희의 오류와
완고함을 뚫으소서.
어둠의 갇혀 있는
저희의 속박을 풀고
묶인 이들을 해방하소서.
무지와 어리석음을 밝혀 주시어
진리의 빛 속을 걷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회개한 사람이 물불을 안 가리고 움켜쥐는 것은?
찬미 예수님.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내고, 전례력은 다시 일상의 시간으로 흘러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본격적으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십니다. 그 첫 일성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흔히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으로 나가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씻고 깨끗해지는 것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진정한 회개란, '자신의 처참한 어둠을 직시하는 자리로 내려앉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물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음을 뼈저리게 인정하는 것, 그리하여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손을 뻗는 그 절박한 상태,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제가 영적으로 깊은 어둠 속에 있을 때였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는지조차 희미하고, 제 영혼은 갈길 몰라 방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제 손에 잡힌 지푸라기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마리아 발토르타가 쓴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라는 책이었습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 책의 신빙성을 의심하고, 어떤 이들은 사적 계시라며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물에 빠져 숨이 넘어가는 저에게 그런 '평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책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시는 예수님을 만났고, 그 빛에 이끌려 신학교라는, 세상이 보기엔 또 다른 어둠의 골짜기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로소 '진짜 빛'이신 주님을 뵈올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그 책은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본당의 풍경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있습니다. 많은 분이 성당에 오시지만, 정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왜일까요? 그분들이 '물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육지에 서 있는 심판관'의 자세로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끊임없이 '우편배달부'를 평가합니다.
"저 신부님 강론은 너무 길어."
"저 수녀님은 인상이 왜 저래?"
"성경 공부는 지루해."
"이 책은 저자가 별로야."
편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우편배달부의 손때를 보지 않습니다. 배달부의 손톱에 때가 끼었든, 옷이 좀 남루하든, 인상이 험악하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그가 전해주는 '편지', 그 안에 담긴 기쁜 소식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당원이었던 오스카 쉰들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습니다. 술주정뱅이에, 여자를 밝히는 바람둥이였고, 뇌물을 일삼는 속물 사업가였습니다. 겉만 보면 영락없이 '더러운 우편 배달부'였습니다.
하지만 가스실로 끌려가던 유대인들에게 쉰들러의 사생활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쉰들러를 도덕적으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 죽음이라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쉰들러의 인격이 아니라, 그가 작성한 '리스트(생명의 편지)'에 내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뿐이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조자의 손이 깨끗한지 더러운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시베리아 유형소라는 지옥 같은 어둠 속에 던져졌을 때, 그곳은 살인자와 강도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때 12월 당원(데카브리스트)의 아내들이 그에게 쥐여준 것은 낡고 때 묻은 『신약 성경』 한 권이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책이 너무 더럽군. 종이 질이 나쁘군." 하며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더러운 책을 닳도록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고백합니다.
"그 지옥 같은 감옥, 그 더러운 책 속에서 나는 비로소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성당에 와서도 말씀과 성체를 붙들지 못하고, 사제와 이웃을 판단하고 있을까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가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죄의 바다에 빠져 죽어가고 있다는 '자신의 처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육지에 안전하게 서 있다고 착각하기에, 우편 배달부의 손때나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여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사람은, 타인을 판단할 겨를이 없습니다. 대신 오직 나를 살리는 '말씀'과 '성체'에만 시선을 고정합니다.
여기, 자신이 처한 어둠 속에서 오직 빛만을 바라본 한 사형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57년 프랑스, 자크 페슈(Jacques Fesch)라는 27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행 강도를 저지르다 경찰관을 살해한 흉악범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살인마'라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그 역시 감옥이라는 깊은 어둠 속에서 자신의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끝에서 지푸라기처럼 십자가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감옥을 수도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사형 집행이 다가올수록 그는 공포에 떠는 대신, 주님을 만난다는 설렘으로 전율했습니다. 처형 5시간 전, 그는 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5시간 후면 나는 예수님을 볼 것이다! 마지막 날, 나는 춤을 추러 가는 것이 아니다... 내 눈은 오직 십자가에!"
단두대의 서슬 퍼런 칼날 앞에서도 그는 사형 집행인의 손(우편 배달부)을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죽을 죄인이라는 '처지'를 뼛속 깊이 알았기에, 오직 자신을 구원할 '십자가(편지)'만을 뚫어지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교회는 지금 그를 복자품에 올리기 위해 시복 조사를 진행 중입니다.
우리는 지금 물에 빠진 사람입니까, 아니면 뒷짐 지고 배달부의 손때를 지적하는 구경꾼입니까? 나의 처지를 아는 것, 나의 절박함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빛을 만나는 첫걸음입니다.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우선입니다. 멜 깁슨이 결국 자신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인임을 고백하며, 영화에 예수님의 못을 박는 군사의 손으로만 등장한 것이 회개의 예입니다. 회개한 사람은 절대 말씀과 성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읽고 묵상하고 조배합니다.
이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분이 바로 '거지 성인' 베네딕토 요셉 라브르입니다. 그는 평생을 씻지 않고 넝마를 걸친 채 로마의 콜로세움 폐허에서 노숙했습니다. 겉모습만 보면 냄새나고 더러운, 영락없는 걸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피했고, 때로는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하지만 라브르는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단 한 번도 판단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은 오직 한 곳, 성당의 '감실'에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루 종일 성당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행복해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인정도, 자신의 명예도 필요 없었습니다. 오직 '성체'라는 생명의 빵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그가 로마의 길거리에서 숨을 거두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로마의 아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외쳤습니다.
"성자가 돌아가셨다! 거룩한 거지가 돌아가셨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고 외치십니다. 회개란 표를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복음을 만날 준비가 된 것입니다. 사제의 강론이든, 우연히 집어 든 신심 서적이든, 혹은 밉상인 이웃의 한마디든, 그 '배달부의 손때' 너머에 있는 주님의 붉은 '편지'를 읽어내려고 노력해 봅시다. 그 지푸라기가 여러분을 빛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말씀과 성체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가 생명이 될 때 생명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은 살인적인 공부량에 짓눌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뒤에는 학원으로, 그리고 집에 와서도 공부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곤 합니다. 많은 학생이 책만 펼쳐놓은 상태로 딴짓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는 것도 아니고, 공부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가 요즘 고등학생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 때를 떠올려 봅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과 다를 것 같지만 그때도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교에서 공부했지만, 모두가 열심히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이나 3~40년 전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지금의 자기 삶과 미래의 자기 삶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그냥 살면 별 차이가 없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금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이 미래의 삶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느님 뜻과 정반대로 살아간다면 미래에는 어떨까요? 저절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삶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시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라고 복음은 강조합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갈릴래아 북부 지역인 즈불론 땅과 납탈리 땅은 기원전 732년 아시리아에 의해 점령당하고 파괴된 곳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불행을 맛본 땅이고, 이방인들이 섞여 살아 정통 유다인들에게 멸시받던 변방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화려한 성전이 아닌, 가장 소외되고 어두운 곳에서부터 빛을 비추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어디에서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빛은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희망을 얻게 됩니다. 그 희망은 과거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서, 또 삶의 영역 안에서 ‘즈불룬과 납탈리’처럼 황폐하고 어둡게 느껴지는 순간에 희망으로 다가오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가장 먼저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 선포를 따라야 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4,17)
지금 우리가 해야 할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잘못을 뉘우치는 도덕적 반성을 넘어, 삶의 방향을 완전히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희망의 주님과 함께하면서 우리의 미래가 바뀌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행복해 질 필요는 없다(달라이 라마).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만큼 이미 우리는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가까이 온 하늘 나라는 예수님의 첫 선포이자 그분 삶 전체를 꿰뚫는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늘 나라 역시 믿음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생활 속에서 실현되어야 할 우리의 길입니다. 하늘 나라의 방식은 언제나 사람을 살리는 방식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사랑으로 응답할 때, 하늘 나라는 지금 여기서 열립니다. 지금 우리는 다르게 살 수 있습니다. 용서, 화해, 나눔은 이상이 아니라 가능한 현실입니다.
하늘 나라의 가치는 과거에 묶이지 않습니다. 회개는 처벌이 아니라 새 출발의 특권이 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 현존하시며,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방식 그 자체가 가까이 온 하늘 나라의 본질입니다. 사랑이 회복되는 곳에서 하늘 나라는 이미 존재합니다. 하늘 나라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하늘 나라는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입니다. 그 사랑에 응답하는 삶 자체가 이미 하늘 나라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 삶 가까이 오셔서 사랑으로 머무시는 하늘 나라의 현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이미 하늘 나라를 살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관계이며 현실입니다. 이 모든 것을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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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서 3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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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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