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민수 6,22-27)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 제2독서
(갈라 4,4-7)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 복음
(루카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민수 6,22-27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2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3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일러라. ‘너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24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25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26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시리라.′’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오늘 제2독서 성경 말씀
갈라 4,4-7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형제 여러분,
4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5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6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7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루카 2,16-21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때에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16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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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천주의 성모마리아 대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1
✚ 강론시작 14:35
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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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과 함께 하는
오늘 말씀 묵상과 말씀 카드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이철구 요셉 신부
성모님처럼, 마음에 간직하는 새해
오늘 우리는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은 또한 세계 평화의 날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의 축일인 오늘,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것을 넘어 더 넓은 의미의 진정한 평화를 얻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모님의 모습을 떠올려 봅시다.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8-19). 메시아에 관한 소식을 들은 모든 이가 놀라워할 때, 성모님께서는 조용히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참된 평화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평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곧 마음의 평화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먼저 하느님 사랑 안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분심이 아닌 차분한 마음으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왜 메시아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는지’를 깊이 묵상할 때, 참된 평화가 마음에서 비롯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맑은 눈동자에서 전해지는 순수함과 성모님의 사랑 가득한 미소 속에서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새해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 속에서, 주님 사랑의 온기를 우리 주변에 널리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복을 가장 많이 받은 마리아처럼 새해를!
2026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새해 시작을 생각하다가 더 나은 표현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새해가 밝았다는 표현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 말에. 그러고 보니 해(年)는 해(太陽)와 연관이 있는 말 같습니다. 2026년의 새로운 해가 뜨면서 새해가 열리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는 새해가 밝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런 묵상을 하게 된 것은 어제 해맞이 덕분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저희는 공동체 피정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피정 장소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었고 저는 일출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해맞이 풍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에 왔으면서도 늦잠 자느라 또는 관심 자체가 없어서인지 일출을 보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비교하면 해맞이 나온 사람은 한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새로운 해와 함께 새로운 한 해를 밝게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해맞이 나온 사람 가운데서도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일출을 보자마자 얼른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것이 제겐 희망만 보고 은총은 팽개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뜨는 해 보는 것은 그만두고 뜬 해의 햇빛을 받고 햇살을 느끼며 밖에서 더 걸었습니다. 사실 해는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보게 되는 것이고 이미 뜬 해는 계속해서 볼 수 없고 뜨는 해만 볼 수 있으며 떠 있는 해는 보진 않고 그 빛을 보고 그 빛에 비추어 보며 햇볕을 쬘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새해 첫날 새로운 빛이요 희망이신 주님을 마치 어둠 속에 있던 사람이 빛을 보게 되듯 새롭게 뵙도록 합시다. 지금까지 욕망 때문에 욕망하는 것밖에 보지 못하던 어둠에서 벗어나 주님께 대한 갈망과 주님으로 인한 새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하십시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 새해는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모님처럼 삽시다. 주께서 함께 계셔 은총이 늘 충만하고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성모님처럼 삽시다.
사실 새해 첫날 마리아 축일을 지내는 것도 이런 뜻일 겁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까떼나 기도처럼 먼동이 트듯 나타나고 달과 같이 아름답고 해와 같이 빛나시는 여인 마리아를 보며 살아 복된 한 해가 되도록 하십시다. 마리아를 보며 우리도 Fiat!(말씀하신 그대로 되소서!) 하고, 마리아를 보며 우리도 말씀을 잉태하는 천주의 어머니가 되고, 마리아를 보며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낳아주는 어머니가 됨으로써 세상에서 복을 가장 많이 받아 여인 중에 가장 복된 여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주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잘 받아 가장 복되고 행복한 한해가 되길 두 손 모아 빕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다.
새해 첫 날! 오늘은 2026년을 여는 새해의 첫 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요, 세계평화의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동들이 어둠을 가르고 첫 새벽을 달려와 구세주를 찬양하였듯이, 우리도 기쁨과 희망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그 기쁨과 희망으로,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여러분 모두에게 축복을 빕니다.
“축복의 멋진 새해 되세요!”
<성경>에서, ‘첫 번째’, 곧 ‘맏배’, ‘첫 자녀’, ‘첫 수확’, ‘첫 봉헌’ 등 ‘첫 번째’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우리는 성경의 정신에 따라, 새해의 이 ‘첫 번째 날’을 통해, 1년을 하느님께 봉헌합니다.
또한 오늘은 ‘천주의 모친 마리아’를 기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원’, 곧 ‘구원 생명의 시원’을 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 다름 아닌 구원자를 낳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건네줍니다. 왜냐하면, 이미 너덜너덜해진 지난 한 해의 종이를 덮어버리고, 앞에 놓인 날들을 새롭게 색칠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의 관계는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에게서 당신 아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께서는 세상에 하느님을 낳아주시고, 하늘을 열어주셨습니다. 복된 은총의 하늘 문을 여시고 세상에 빛을 건네주신 빛의 문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와가 잠갔던 낙원의 문을 다시 여셨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품위’를 최상으로 끌어올리신 일이었습니다. 곧 ‘인간을 하느님의 어머니 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비를 꿰뚫어보았던 중세의 유명한 신비신학자 에크하르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태어났다.”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듯, 오늘 우리 안에서도 그분이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도 “하느님을 낳는 날”이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크신 자비’, ‘그분이 하신 일’을 간직하고 되새깁니다.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루카 2,19)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 ‘하느님의 자비’를 기억하며 되새기고, 한 해 동안 가슴 깊이 품고 간직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따라서 이 ‘새해 첫날’에, ‘천주의 모친 축일’을 지내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 큰 자비의 상속자임을 상기시켜줌으로써, 긍지를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라는 희망의 호소요, 외침이라 할 것입니다.
또한, 오늘은 ‘평화의 날’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그리스도 제자들이 맡은 사명의 핵심이며,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이 지구를 돌보고 부름을 받고”(2019년 53차 평화의 날 담화)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목동들이 어둠을 가르고 첫 새벽을 달려와 구세주를 찬양하였듯이, 우리도 기쁨과 희망을 품고 어둠을 가르고 새벽을 열치고 달려가야 할 일입니다.
천주의 모친 마리아의 전구를 통하여 빛이 어둠을 몰아내고 평화의 밝은 날이 오기를 빌며, 여러분 모두에게 새해의 빛나는 축복을 빕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2,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주님!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이 하신 일
그 큰 자비를 제 마음
한가운데 새겨 주소서.
그 자비가 제 중심이 되고
제 기쁨이 되게 하소서.
그 자비를 늘 맨 첫자리에 두고
그 어느 것도 그보다
낫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올 해도 그 자비가 날로 커지고
그 기쁨이 새로워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계 평화는 마음의 평화로부터
찬미 예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오늘은 2026년의 첫날이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교회는 이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지냅니다. 거창하게 세계 평화를 논하기 전에, 저는 오늘 한 사람을 살게 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이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 어머니는 고아셨습니다. 키워준 가족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어머니를 식구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것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어머니는 그들을 죽이고 당신도 죽으려 했다고 합니다. 바다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려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 어머니를 붙잡은 것은 누군가의 손길이 아니라, 당신 내면에서 솟아오른 한마디 외침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고작 물고기 밥밖에 안 되지 않는가?'
어머니는 자신이 고작 물고기 먹이나 되려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심어주신 '자존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셨는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나병 환자촌으로 가시는 모습을 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답니다.
'저 사람들도 사는데, 너는 왜 못 사니? 너는 저들보다 귀하다.'
그 꿈이 어머니의 자존감을 끌어올려 주셨고, 어머니는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돈도 명예도 아닌, 바로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는 자존감입니다.
그런데 형제자매 여러분, 이 자존감은 혼자 힘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감(Self-esteem)은 스스로 높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존재로부터 인정받을 때 생겨나는 선물입니다. 만약 사랑받지 못하고 스스로 자존감을 찾으려 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날까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괴물의 절규가 그 답을 줍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은 태어나자마자 흉측하다는 이유로 창조주에게 버림받습니다. 그는 숲속을 헤매며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돌팔매질뿐이었습니다. 사랑받지 못한 괴물은 결국 잔혹한 살인귀가 되어 창조주에게 따집니다.
"나는 뼛속까지 외롭다. 나의 창조주여, 나를 행복하게 해 달라. 나를 사랑해 달라. 그러면 나는 다시 온순해질 것이다."
괴물이 악해서 평화가 깨진 것이 아닙니다. 사랑받지 못해 자존감이 바닥난 존재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파괴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자존감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자존감이 아니라 '자존심' 혹은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나르키소스를 보십시오. 그는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고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의 아름다운 얼굴에만 도취되었습니다.
"나는 너무 완벽해."
하지만 그 끝은 무엇입니까? 그는 물속의 자신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습니다. 타인, 특히 하느님이라는 거울 없이 스스로 만든 자존감은 결국 자기 파괴로 끝납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받아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개 소녀' 옥사나 말라야의 실화는 이를 끔찍할 정도로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3살 때 알코올 중독 부모에게 버림받아 개집에서 5년 동안 개들과 함께 자란 소녀입니다. 발견 당시 그녀는 네 발로 뛰고 짖었으며 날고기를 먹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는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자신을 '개'라고 여겼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나는 인간이다"라고 자존감을 세울 수 없습니다. 부모가 인간으로 대우해 주고 사랑해 줄 때만 인간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이 우리를 "너는 내 자녀다, 너는 신(神)을 닮았다"라고 대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흙으로 돌아갈 본능만 가진 동물처럼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모 마리아가 위대한 이유는, 하느님이 주시는 이 엄청난 자존감을 온전히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와서 "너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라고 했을 때, 마리아는 "감히 제가 어떻게..."라며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비천한 여종인 자신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신분 상승이었지만,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에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며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이 참된 겸손이자 최고의 자존감입니다.
교회 역사 속에 '네스토리우스'라는 총대주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인간인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을 수 있느냐? 마리아는 그냥 인간 예수의 어머니일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얼핏 보면 인간의 분수를 지키는 겸손한 말 같지만, 교회는 그를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장은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없다"는 인본주의적 교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면, 그 인간을 향해서도 당신보다 높여주려는 마음, 당신과 같아지게 하려는 마음이 없으시겠습니까?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놀라운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이 되게 하시기 위함이다."(가톨릭 교리서 460항)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계획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12)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높은 자존감을 거부합니다. 마치 닭장에서 태어난 독수리 새끼가 "나는 하늘을 날 거야"라고 말하면, 닭들이 "감히 네가? 너는 닭이야! 주제를 알아라"며 쪼아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신이다"라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며 인간의 존엄을 선포하셨지만, 사람들은 "네가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 하느냐"며 그분을 신성모독으로 죽였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세계 평화는 어디서 옵니까? 유엔의 회의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려는 사람들, 즉 내가 내 힘으로 하느님처럼 높아지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남을 깎아내리고, 더 많이 가지려 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처럼 "하느님이 나를 당신의 어머니로, 당신의 자녀로 높여주셨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세상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이미 나는 하느님을 소유했기에, 땅의 것을 두고 다투지 않습니다.
오늘 1월 1일, 새해 첫날.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물고기 밥이나 짐승의 사료를 먹으며 낮은 자존감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주시는 최상의 자존감을 입을 것인가.
"나는 하느님의 자녀다. 나는 하느님처럼 될 운명이다."
이 거룩한 자존감을 회복하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고 우리 가정과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성당에서 아이와 엄마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는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엄마는 다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런 장면을 본 적도 있습니다. 엄마가 중학생인 아이에게 뭐라고 이야기하자 아이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듣기 싫어!!”
부모는 자녀의 말을 다 들어주는데, 왜 자녀는 어느 정도 성장한 뒤에는 부모의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을까요? 어느 심리학자는 이를 정상적으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부모의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이지요. 즉,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려는 것은 자기를 보호하는 울타리를 뛰어넘으려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 김혜남 박사는 말합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
우리는 과연 어른이 되었나요? 주님의 말씀을 도대체 듣지 않는 우리가 아닐까요?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오늘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새해의 첫날이자 세계 평화의 날입니다. 새해 첫날, 우리는 특별히 천주의 성모 마리아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묵상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복음에서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라고 말하면서 성모님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사실 이 태도가 평화의 원천입니다. 평화는 보통 외부의 소란스러움이 없을 때 오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혼란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찾고 중심을 잡는 ‘내적 고요’에서 진정한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평화의 어머니’로서 그 모범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고통이나 신비로운 사건 앞에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시면서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특별히 목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과 비교하게 됩니다. 목자들은 주님의 천사로부터 주님 탄생 소식을 듣고서 서둘러 베들레헴 마구간을 찾습니다. 그리고 경배 후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줍니다. 목자들은 자기들이 보살펴야 할 동물이 있었을 것이고, 이 동물들을 이끌고 예수님 계신 마구간을 찾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계산하지 않고 서둘러 나아갔기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직접 뵐 수 있었고 평화를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세상 것을 뒤로 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고 있었을까요? 또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며 진정한 평화를 누리고 있나요? 올해는 하느님의 말씀을 끝까지 들으며 진정한 평화 안에 머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플라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도록 길을 내어드린 분이십니다.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십니다. 마리아의 선택과 응답은 우리 공로의 결과가 아니라 조건 없는 은총에서 비롯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을 비워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마리아는 계획을 세우기보다 하느님의 때에 자신을 내어맡기십니다. 이로써 구원은 추상이 아니라 살과 피의 역사가 됩니다. 하느님께서 오실 수 있다는 희망의 가치로 드러납니다.
어떤 삶도 하찮지 않으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의 자리가 됩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길을 냅니다. 마리아께서 낳으신 분이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시라는 신앙 고백입니다. 마치 한 아이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아기의 몸만 낳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 전체를 낳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짜 하느님이시고 동시에 진짜 사람이십니다. 우리가 이렇듯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심을 가장 분명하게 믿음으로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성탄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그 성탄이 어떻게 우리에게 가능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마리아는 평화 그 자체이신 분을 세상에 내어놓은 어머니이십니다. 평화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평화는 하느님을 품고 내어주는 삶에서 뜨겁게 태어납니다. 새로 태어나는 2026년! 병오년 새해가 마리아처럼 하느님을 믿고 품어 평화를 살아내는 소중한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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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6장 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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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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