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6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추며 하루를 시작하게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 안에서 함께 머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매일미사 복음과 오늘의 성경말씀 묵상을 정리해 안내드립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1독서
(사도 6,8-10; 7,54-5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 복음
(마태 10,17-22)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오늘 제1독서 성경 말씀
사도 6,8-10; 7,54-59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오늘 복음 성경 말씀
마태 10,17-22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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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6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주요 순서입니다. 아래 시간을 클릭하면 해당 타임스탬프로 바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 성 스테파노 축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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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마음을 여는 미사
하루의 첫 순간을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영혼이 깨어나는 새벽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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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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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하고 싶다면 아래에서 매일미사 말씀묵상과 성경말씀 이미지를 한눈에 살펴보세요. 다양한 시선으로 전해지는 오늘의 말씀 묵상부터, 하루를 오래 기억하도록 돕는 성경말씀 카드 이미지, 그리고 삶에 꼭 필요한 성경구절 모음까지 함께 정리했습니다. 마음에 와닿는 말씀을 천천히 읽고, 필요한 말씀은 마음에 담아 저장하고, 다시 꺼내어 묵상하며 오늘 하루를 말씀 안에서 이어가 보세요.
- 매일미사 말씀묵상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 전삼용 요셉 신부
- 조명연 마태오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
-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이미지 다운로드
-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매일미사 말씀묵상
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제자의 길은 낮아짐과 용서
교회의 전례는 구원자의 탄생을 장엄하게 거행한 바로 다음 날 그분을 믿고 섬겼던 한 제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지상의 영광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는 모든 시대에 빛나는 증언으로 가득 차게 될 그리스도교 박해 역사의 첫 장입니다. 그렇게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은 성탄 팔일 축제의 첫 부분부터 말씀의 육화가,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임을 상기시키면서 성탄의 의미에 깊이를 더해 줍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은 스승을 신뢰하며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맡깁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육화하신 말씀의 탄생과 첫 순교자의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증언입니다. 스테파노 성인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증언한 것은 바로 그 아드님의 길을 기꺼이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아버지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입니다.
육화에서 중요한 몫을 하신 성령께서는 이제 스테파노 성인 안에 충만히 머무르시면서 제자를 스승과 온전히 일치시키십니다. 따라서 성인은 교회 역사에서 시간적으로 첫 번째 순교자일 뿐만 아니라, 참된 제자직을 가려내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본보기로도 첫 번째입니다.
오늘 구유를 경배하면서 거기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 배웁시다. 아기는 구유, 곧 짐승의 밥그릇에 누워 있는 모습만으로도 제자가 스승을 진정으로 따르는 길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또한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언하려면 믿음과 용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박해자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참된 제자직의 결정적 요소는 끝까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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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어제는 ‘하느님의 지상탄생일’이었다면, 오늘은 ‘인간의 천상탄일’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지상탄생’과 ‘순교자 스테파노의 천상탄생’, 이 ‘두 탄생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타인을 향한 자기 비움’입니다. 구세주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셨으며, 스테파노는 ‘인간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으신 분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았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사랑의 순교’로 죽으셨듯이, 스테파노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순교’로 죽었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 기도했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사도 6,59)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 하고 기도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이처럼, 그는 자신을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서도 불타는 사랑으로 기도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이들을 위해 죽음으로써, 그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사랑에 “하늘이 열리고”(사도 7,56), 하늘은 그를 받아들여 사랑의 순교자로 삼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서는 비록 목숨 바쳐 순교할 기회는 없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생각과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이 바로 ‘순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순교’는 믿고 있는 자신을 증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고 있는 분을 증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짜증내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순간, 오히려 자신 안에 품은 하느님의 사랑을 퍼 올리면, 우리 안에서 ‘열리는 하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이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미움이나 배척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미움과 배척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곧 미움과 박해를 벗어나게 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려움’과 ‘인내’를 통하여, 구세주와 협력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어려움’과 ‘인내’에는 고통을 변화시켜 하느님과의 만남이 되게 하는 묘한 이법이 있습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0,22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
제 안에 새겨 두신
당신 이름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으로 부어 주신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이름에 희망을 두오니
당신 이름에서 구원을 주소서.
당신 이름 때문에
돌팔매질하는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이 당신 이름을 증거 하는
순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관상은 과학입니다.
찬미 예수님.
어제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흰색 제의를 입고 축제를 벌였는데, 하루 만에 붉은색 제의를 입고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입니다. 교회는 성탄 바로 다음 날, 가장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은 스테파노의 순교를 기념합니다. 이것은 성탄의 완성이 낭만이 아니라, 생명을 바치는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오늘은 조금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관상은 과학이다"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사람의 얼굴만 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살아온 인생이 보인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꽤 일리가 있습니다.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일화가 있지요. 한번은 참모가 내각 각료로 아주 유능한 인재를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얼굴이 마음에 안 드네."
참모가 황당해하며 "아니, 얼굴은 타고나는 것인데 본인의 잘못이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자, 링컨은 정색하며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 탓이지만,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네. 그 사람이 평생 마음에 무엇을 품고 살았는지가 얼굴 근육 하나하나에 다 기록되기 때문이지."
링컨의 말처럼, 얼굴은 그저 피부가 아닙니다. 영혼의 이력서이자, 내 마음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생중계하는 '모니터'입니다. 탐욕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탐욕스러운 주름이 잡히고, 사랑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온화한 미소가 번집니다.
오늘 독서를 보면, 스테파노를 죽이려고 둘러싼 의회 의원들은 '격분'하여 이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땅의 돌멩이'와 '미움'에 고정되어 있었기에, 그 얼굴은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똑같은 현장에 있었던 스테파노의 얼굴은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사도 6,15)
도대체 어떻게 날아오는 돌무더기 앞에서 천사의 표정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스테파노가 강철 멘탈을 가져서가 아닙니다. 그의 시선이 땅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았다."(사도 7,55)
그때 스테파노가 본 것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었습니다. 보통 신경(Credo)에서는 예수님이 하느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왜 스테파노의 눈에는 '서 계신' 것으로 보였을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녀가 배에서 떨어져 허우적대고 있는데, 점잖게 앉아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벌떡 일어나서 뛰어들 준비를 하거나, 밧줄을 던지며 "조금만 버텨라, 내가 여기 있다!"라고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스테파노는 자신을 응원하고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신 스승님의 안타까운 사랑을 본 것입니다. 그 사랑의 눈빛을 마주 보는 순간, 날아오는 돌멩이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도 이와 똑같은 원리를 증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엘리너 깁슨의 '시각 벼랑(Visual Cliff)' 실험입니다. 아기 앞에 낭떠러지처럼 보이는 투명한 유리 판을 설치해 둡니다. 아기는 건너편으로 가고 싶지만, 발밑이 낭떠러지처럼 보여 공포를 느낍니다. 이때 아기는 본능적으로 건너편에 있는 엄마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만약 엄마가 '공포'나 '불안'의 표정을 지으면,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며 뒤로 물러납니다. 하지만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미소'를 지으면, 아기는 그 낭떠러지를 씩씩하게 기어서 건너갑니다. 아기에게 세상(벼랑)은 객관적 사실이 아닙니다. 엄마의 얼굴(모니터)에 비친 감정이 곧 아기의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스테파노가 죽음의 벼랑 앞에서도 평화로웠던 건, 그가 바라본 예수님의 얼굴이 자신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평화는 그 어떤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빼앗길 수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상이라는 벼랑 끝에 몰릴수록 주님의 미소를 더 선명하게 보기에 그 평화는 더욱 커집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님을 기억하십니까? 탈주자가 생겨 그 벌로 10명이 굶어 죽어야 하는 지하 감방. 그곳은 비명과 저주가 가득한 생지옥이었습니다. 하지만 콜베 신부님이 들어가자 그곳은 기도와 찬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성당으로 변했습니다.
2주 뒤 시신을 수습하러 들어간 사람은 콜베 신부님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굶어 죽은 시신인데도 너무나 평온하고 빛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죄수들은 '굶주림'과 '나치'를 보았기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콜베 신부님은 감방 벽 너머의 '하느님 나라'와 '원죄 없으신 성모님'을 보고 있었기에 천사의 얼굴이 출력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의 '얼굴'을 보고 하느님을 믿을지 말지 결정합니다. 찌푸리고, 화내고,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방해입니다. 우리의 표정이 곧 복음 선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도 스테파노처럼 천사의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억지로 거울 보고 웃는 연습을 한다고 될까요? 아닙니다. 주님의 '웃는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성녀 소화 데레사의 어린 시절 일화가 우리에게 그 답을 줍니다. 어린 시절 데레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약도 소용없었고, 데레사는 극심한 우울과 공포에 시달렸습니다. 어느 날 데레사는 침대 곁에 있는 성모상을 간절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성모상이 살아있는 것처럼 환하게 빛나며 어린 데레사를 향해 더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 보인 것입니다. 훗날 데레사 성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성모님의 그 황홀한 미소가 내 영혼 깊숙이 들어오자마자,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두 뺨에는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데레사가 '작은 꽃'처럼 예쁜 얼굴의 성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병상에서 성모님의 미소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할 때 어떤 하느님의 얼굴을 상상합니까? 혹시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나를 노려보거나, 벌을 주려고 벼르는 무서운 얼굴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책감은 우리 눈을 가려 하느님을 심판관으로 보게 만듭니다. 두려운 얼굴을 보면 우리 얼굴도 두려움으로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스테파노처럼, 그리고 어린 데레사처럼 죄가 없는 순수한 마음, 혹은 용서받은 자녀의 마음으로 눈을 들면, 우리는 우리를 향해 활짝 웃고 계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 내 영혼의 거울을 닦으십시오. 고해성사로 죄의 얼룩을 지우고, 미사 안에서 나를 보며 기뻐하시는 주님의 미소를 자주 바라보십시오. 아기가 엄마의 미소를 보며 웃는 법을 배우듯, 우리도 주님의 미소를 자주 볼 때 비로소 세상이 감당 못 할 평온하고 행복한 천사의 얼굴을 갖게 될 것입니다. 관상은 과학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계시는 그분의 미소를 바라보십시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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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사실 말하는 이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참된 순교는 봉사를 떠난 삶의 극단이 아니라 섬김으로 시작된 삶의 완성입니다. 스테파노는 생명이 위협받는 자리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돌에 맞으면서도 원한 대신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스테파노는 예수를 존경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예수처럼 살고 예수처럼 죽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를 포기하지 않으며, 용서로 미래를 여는 존재임을 삶으로 증언하는 데 있습니다. 진실함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습니다. 삶의 가치는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에 있습니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바오로에게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한 번의 정직한 선택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사건이고, 순교는 사람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긴 믿음입니다. 성탄은 하루의 축제가 아니라, 성 스테파노처럼 살아 보라는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성탄은 외면받는 이들 곁으로 다가가라는 부르심이고 순교는 불리한 순간에도 양심을 지키라는 진실한 초대입니다. 진실한 성탄 진실한 순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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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복음 10장 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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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말씀 한 구절은 하루를 새롭게 하고 지친 마음에 조용한 위로를 건네며,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깨달음과 용기를 선물합니다. 오늘을 위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 6가지 성경구절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삶에 꼭 필요한 말씀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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