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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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8월 12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신명 31,1-8)
여호수아,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백성과 함께 그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 오늘 복음
(마태 18,1-5.10.12-14)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신명 31,1-8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백성과 함께 그 땅으로 들어가야 한다.
1 모세는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을 하였다.
2 “나는 오늘로 백스무 살이나 되어 더 이상 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또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 주 너희 하느님께서 친히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가시고, 저 모든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시어, 너희가 그들을 쫓아내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너희 앞에 서서 건너갈 것이다.
4 주님께서는 아모리족의 임금 시혼과 옥과 그 나라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저들에게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5 이렇게 주님께서 그들을 너희에게 넘겨주시면,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대로 그들에게 해야 한다.
6 너희는 힘과 용기를 내어라. 그들을 두려워해서도 겁내서도 안 된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가시면서, 너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
7 그러고 나서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놓고,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말하였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너는 이 백성과 함께, 주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땅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저 땅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8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
마태 18,1-5.10.12-14
오늘 복음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8월 12일
김용주 마태오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44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인간에게서 오는 위로와 인정은 영원할 수 없다.
신명기 31―34장은 구약 성경 오경의 결론을 제시하며 여호수아기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모세는 온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너는 이 요르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신명 31,2).
또한 여호수아를 앞에 세우며 말합니다.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니, 너는 두려워해서도 낙심해서도 안 된다”(31,8).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한 위대한 지도자인 예언자 모세는 약속의 땅에 발을 딛지 못합니다. 그는 사십 년 광야 생활에 고통과 두려움, 의심과 번뇌를 겪었을 테지만, 하느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사명은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까지였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에 서운해하거나 섭섭해할 필요도 없습니다. 거기까지가 그에게 주어진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에 관한 논쟁을 다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마태 18,4), 다시 말해서 스스로 우쭐거리거나 자기 잘난 맛에 살기보다 회개하고 겸손한 이가 되라는 초대입니다.
아울러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18,14)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화려하고 위대하며 길이 남을 것 같은 역할이나 업적도,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그저 초라하고 덧없으며 짧은 한때의 것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자연스러운 욕구이겠지요. 그런데 이 욕구 충족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게서 오는 위로와 인정은 영원할 수 없고, 하느님만이 우리의 전부이시며 온전히 채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어린이처럼 낮아져야 하는 이유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늘 어린이를 주제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래야만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 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다 잘해야 합니다. 그러나 순서로는 어린이처럼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가 어린이처럼 되어야 어린이를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권력 숭배자가 힘없는 어린이를 소중히 여기겠습니까? 큰 것을 쫓는 자가 보잘것없는 어린이를 받아들이고, 잃어버린 어린이를 찾아 헤매고 오늘 주님 말씀처럼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려고 갖은 애를 쓰겠습니까?
그렇지요. 어린이는 동전 하나도 소중하기에 찾기 위해 애쓰지만 돈이 많은 어른은 동전 하나쯤은 아무것도 아니기에 그것을 찾기 위해 애를 쓰는 짓을 결코 하지 않지요.
그렇다면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관련하여 주님께서는 다른 것은 말씀하시지 않고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자신을 낮추지 않습니다. 더 이상 낮출 수도 낮출 필요도 없을 정도로 이미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거나 높아지려는 사람이 낮출 필요도 있고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것은 왜 낮아져야 하는지?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왜 괜히 낮아지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까? 높아지는 것도 힘들지만 낮아지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낮아지는 것이 왜 힘듭니까? 그것은 오르막길을 걷는 것이 힘들지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힘듭니까? 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힘들지 따라 흘러내리는 것은 쉽잖습니까? 높아지는 것이 힘든 것은 높이 오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만 낮아지는 것이 힘든 것은 높이 오르고 싶은 우리 욕망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낮아지는 것은 높아지고 싶은 우리 욕망을 꺾는 것인데 왜 우리는 이 욕망을 꺾고 낮아져야 하는지 다시 묻게 됩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하느님의 산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산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산과 우리 인간의 산 사이에는 깊은 계곡이 있습니다. 이 세상 어른에서 하느님 나라 어린이가 되는 그것과 같습니다. 어른을 넘어 늙은이가 되어가면서 그래서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노숙해져야 하는데 노추해지는 것은 아닌지. 나이 먹어 이제 힘도 없고 자연스레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하느님의 산으로 오를 생각은 하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지는 않은지. 주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을 꾸짖으셨듯이 윗자리를 차지하거나 어른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는지. 저를 돌아보는 오늘 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는 글을 드리려고 합니다. 며칠 전에 외국 신부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지금 울산에 있는 한 자매님을 도와달라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외국 신부님들에게도 알려져 종종 도움 청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데 같은 것입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을 두고 있는 엄마인데 한쪽 눈은 이미 실명이고 나머지 눈마저 실명이 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법 체류자이기에 의료 보험이 안 돼 검사도 받지 못하니 검사라도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도움을 청하는데 마땅히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도움을 청합니다.
울산 지역이면 더 좋겠지만 어디서라도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제 글을 읽는 분 가운데 안과 의사가 있어서 도와주실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과 의사가 아니더라도 도울 길을 알고 계시면 제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제 전화 번호는 010-2340-5501(김찬선 레오나르도)입니다.
도움 청하는 김에 한 가족에 대해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가족은 파키스탄 가족으로서 자녀와 손자들 함께 한국으로 종교 망명을 청한 사람들인데 망명이 불허된 분들입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이어서 가톨릭을 믿는 것 때문에 살해 위협을 받았고 그래서 그것을 피해 한국에 온 것이고, 자기 동생은 이미 살해 당했다고 합니다.
이 가족 가운데 의료보험이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중에 손녀가 역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고, 의료 보험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백방으로 도울 길을 찾겠지만 혹시 도울 길을 알고 계신 분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
오늘 <복음>인 마태오복음 18장은 ‘교회설교’ 혹은 ‘공동체설교’라 불립니다. 곧 교회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에 대한 설교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전반부로서, 제자들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에 세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첫째>는 ‘누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인가?’를 밝히십니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 사람이라야 그곳에서 큰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사람, 곧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린이’는 손이 많이 가고 책임감도 없고, 늘 어른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하찮은 존재요, 율법을 모르는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된’ 사람이란 어른처럼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능력함을 받아들이고, 주인께 신뢰로 의탁하는 죄인을 말합니다. 이를 산상설교에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둘째>는 ‘누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인가?’를 밝히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마태 18,4)
그러니 명예나 권력을 가진 이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주님을 예배하는 이가 ‘가장 큰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제시하셨습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9)
<셋째>는 ‘누가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5)
사실, 당신께서는 먼저 미천하고 무력한 이들을 당신 제자로 받아들이셨고,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10)
그리고 “되찾은 양의 비유”(12-14절)를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마태 18,14)
이는 작은 것 하나마저도 귀중하게 여기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말해줍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죄인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치 전부인 양 소중히 여기시는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8,1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주님!
제 마음과 영혼이
날로 자라나게 하소서.
몸은 자라나기를 멈추어도
마음과 영혼이 자라나기를
멈추지 않게 하소서.
작은이라 하여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작은이기에
더 소중하게 여기고
더 사랑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법
찬미 예수님.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스승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마태 18,1)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품고 사는 이 질문, ‘어떻게 하면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세상이 기억하는 가장 위대한 배와 가장 위대한 선장의 비극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1912년, ‘신조차 침몰시킬 수 없다.’라고 불리던 배, 타이타닉호가 첫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그 배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당대 최고의 선장으로 인정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선장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한다고 하며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사람들을 구하려다 자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조심하기는 해야 했습니다. 그는 ‘가장 빠르고 화려한 첫 항해’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달렸습니다. 항해 도중, 다른 배들로부터 최소 일곱 차례나 ‘빙산이 떠다니고 있다.’라는 ‘작은 경고’들이 무선 전신으로 날아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경고들을 무시했습니다. 거대한 배, 화려한 승객들, 자신의 명성이라는 ‘아흔아홉 마리의 안전함’에 취해, 다가오는 ‘단 하나의 위험’을 외면한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의 위대함은 1,500명이 넘는 영혼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는 정말 ‘큰 사람’이었을까요? 작은 것을 작게 보는 큰 사람은 절대 없습니다.
큰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작은 것을 크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처럼 겸손하여서 잃어버린 작은 양 한 마리도 결코 작게 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님 나라에서 큰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아멜리에는, 파리의 평범한 카페 종업원입니다. 그저 그런 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작은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자기 집 욕실 벽 속에서 50년도 더 된 낡은 보물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녀는 상자의 주인인 ‘단 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합니다.
수소문 끝에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상자의 주인을 찾아 몰래 상자를 돌려준 아멜리에는, 멀리서 그가 어린 시절의 추억에 눈물 흘리며 감격하는 모습을 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충만한 기쁨을 맛봅니다. 그리고 그 작은 선행 속에서 가족과 같은 친구들이 생기고 남자 친구도 만나게 됩니다.
세상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아멜리에가 과연 ‘큰 사람’일까요, ‘작은 사람’일까요? 정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작은 들꽃과 같은 아름답고 큰 사람입니다. 그녀는 잊혀진 ‘단 한 사람’의 작은 행복을 찾아주는 일이 온 세상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학자나 부자가 아니라,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마태 18,4)
어린이는 겸손합니다. 그 어린이와 같은 마음은 작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는 존재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마태 18,14)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이며, 우리가 ‘큰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주 작은 시골 기차역 이야기입니다. 이용객이 없어 폐역 예정이었던 ‘구 시라타키’라는 간이역이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 그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여고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철도 회사는 놀라운 결정을 내립니다. 그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 3년 동안 역을 유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3년 동안 기차는 아침 7시 15분과 오후 5시 8분, 하루에 단 두 번, 오직 그 소녀만을 위해 멈췄습니다. 수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고, 거대한 철도 회사가 단 한 명의 아이를 위해 움직인 것입니다.
마침내 소녀가 졸업식을 마친 2016년 3월 26일, 수많은 사람의 박수 속에서 마지막 열차가 떠나고 기차역도 비로소 소임을 다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는 하느님의 사랑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철도 회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업’이 아닐까요?
우리 각자의 삶에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은 내가 오랫동안 외면했던 가족일 수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일 수도, 아니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작은 소임일 수도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가 다스리게 될 고을의 수를 아는 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내가 어느 한계까지 사랑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머리만 신경 쓰며 손발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 시신 기증과 같은 것을 통해 자기 몸을 내어주어야만 한다면, 손끝 발끝까지 신경 쓸 줄 아는 사람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중세 시대,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높은 첨탑 꼭대기에 놓일 천사 석상을 조각하던 한 석공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천사의 등 뒤 날개까지 세밀하게 조각하고 있었습니다. 한 조수가 “스승님, 어차피 아무도 보지 못할 텐데 왜 보이지 않는 등 뒤까지 그렇게 공을 들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석공은 조각을 멈추고 조수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보지 못하고, 자네도 보지 못하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보고 계시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일은 간단합니다.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여러분은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 중에 누구를 더 믿습니까? 또 광고 문구와 친한 친구의 말 중에서 무엇을 더 믿습니까?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말했을 때, “다 맛있어요.”라고 말하는 종업원과 “닭요리는 빼세요.”라고 말하는 종업원 중에 누구의 말을 더 믿을까요?
어떤 자매님께서 사람들이 자기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서 억울해하십니다. 그렇다면 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앞의 경우를 도입해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상대방이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친구처럼 가까운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상대가 믿을 수 있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주님을 잘 믿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합니다. 주님을 잘 알지 못하고, 친구로 여기지 않으며, 마지막으로 삶 안에서 주님의 디테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면서 좀 더 가까워져야 하며, 무엇보다 삶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주님께도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믿음을 주는 방법 그대로 주님께 믿음을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마태 18,1)라고 묻습니다. 서열과 우위를 궁금해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문화에서는 메사아 왕국이 세워지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느냐가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이 관심사를 제자들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어린이 하나를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이르십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어린이는 자기 힘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즉, 보호와 사랑을 전적으로 받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고 체면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다가섭니다. 어린이는 당시 사회에서 하찮게 여기는 존재로, 어떤 법적 권리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이를 환대하는 사람만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모습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고, 우리에게 계속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 뜻을 따르는 사람은 주님을 굳게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주님과 친한 친구의 관계를 만듭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삶 안에서 계속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만이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의 가진 바 때문에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되어진 바로 인해 감사한다 (헬렌 켈러).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은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겸손한 회개입니다. 어린이처럼 된다는 것은 세상의 힘과 계산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사랑과 보호를 믿는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안의 겸손과 순수의 회복을 뜻합니다.
자기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는 어린이와 같은 관계는 참된 관계 안에서만 가능한 자유를 낳습니다. 겸손이 곧 자유입니다. 힘의 경쟁에서 벗어나, 관계와 신뢰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열어 놓는 순순한 믿음, 그것이 어린이의 마음입니다.
하늘 나라는 세상의 서열 구조와 반대되는 질서로 움직입니다. 세상에서는 힘과 지식, 지위가 우선되지만 하늘 나라는 겸손과 의존, 순수함을 기준으로 전적인 신뢰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비우시고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셨듯, 우리도 그분을 닮아 낮아짐을 통한 참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결국 하늘 나라는 어린이처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오늘,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 품에 안겨봅시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자유로우며,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를 여는 겸손이며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기쁜 날 되십시오.
마태오복음 18장 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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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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