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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8/09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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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저의 도움, 저의 구원은 주님이시니, 주님, 더디 오지 마소서.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끊임없이 자비를 베푸시니 주님을 창조주요 인도자로 모시는 이들과 함께하시어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신 모든 것을 지켜 주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8월 9일 (토)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8월 9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8월 9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신명 6,4-13
오늘 제1독서

너희는 마음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4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5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6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7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8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9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10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을 너희에게 주시려고, 너희를 그곳으로 데려가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좋은 성읍들이 있고, 

11 너희가 채우지 않았는데도 이미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들과, 너희가 파지 않았는데도 이미 파인 저수 동굴들과, 너희가 가꾸지도 않은 포도밭과 올리브 밭이 있다. 거기에서 너희가 마음껏 먹게 될 때, 

12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주님을 잊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13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이름으로만 맹세해야 한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7,14ㄴ-20
오늘 복음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8월 9일
한성훈 가브리엘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6::5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오늘 독서는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 6,4)를 뜻하는 ‘쉐마 이스라엘’을 전합니다. 유다인들이 하루에 두 번 읊조리는 신앙의 정수입니다.

신명기 6장 4-13절은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6,4)라는 전반부와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6,5)라는 후반부입니다.

전반부는 하느님께서 유일한 주님이시라고 고백하는 유일신 신앙을, 후반부는 그분을 향한 인간의 맞갖은 자세를 다룹니다. 이 후반부에서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라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하느님을 섬기라는, 곧 특정 목적이나 꿍꿍이 또는 잇속을 차리려고 하느님을 섬기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마귀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먼저 제자들에게, 그다음으로 예수님께 찾아와 구마를 청하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기에 실패한 까닭을 스승께 여쭙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역설적이면서도 명쾌합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잴 수도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과 산은 크기 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차이가 납니다. 작은 믿음이더라도 그것이 질적으로 훌륭하며 전인격적인 믿음이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목적 지향적이지는 않습니까? 치유, 행복, 평화,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저마다 잇속을 차리려 ‘하느님’이라는 보험을 들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언제고 어디서고 성사화하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  

오늘 신명기는 그 유명한 ‘쉐마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은 들어라.’이고,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 년을 이어 매일 모든 가정에서 읽는 말씀으로서 제일 중요한 계명이자 모든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교육입니다.  

옛날 저의 집의 경우 저의 아버지가 집에서 신앙 교육을 하셨답니다. 매일 아침 여섯 시면 모두 일어나 조과와 교리 공부한 다음 아침을 먹고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만과와 교리 공부하고 저녁 먹는 일이 반복되었는데 바로 이런 식의 신앙 교육을 온 가정에서 시키는 것이 ‘쉐마 이스라엘’이고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말씀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들은 매우 성사적입니다. 이 명령을 마음에 새기라고 한 다음 모든 시간과 모든 곳에서 이 말씀을 상기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하라고 합니다.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이 말을 너희 자녀에게 거듭 들려주고 일러 주어라. 또한 이 말을 너희 손에 표징으로 묶고 이마에 표지로 붙여라. 그리고 너희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 놓아라."  

우선 시간적으로 <언제나>입니다. 다음 공간적으로 <어디서나>입니다. 그래서 언제고 기회만 되면 이 말씀을 듣게 하고, 손과 이마에도 그 표지를 붙이고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이 말씀을 써 놓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도록 손과 이마에도 이 말씀을 붙이고 다니고, 집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보도록 문설주와 대문에도 적으라고 하니 이 말씀과 떨어져서 살 수 없는 것이지요.  

이 말씀에 힌트를 얻어 저는 수도원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름 아닌 화장실에도 성경 말씀이나 프란치스코의 말을 적어 놓은 거지요. 그랬더니 어떻게 화장실에 불경하게도 성경 말씀과 사부님 말씀을 적어 놓냐고 고루하게 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화장실에서 일 볼 때 거기서도 주님을 만나고, 거기서도 주님 말씀을 읽는다면 그 일이 결코 속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지요.  

제가 처음 본당에 보좌 신부로 갔을 때 마침 첫영성체 할 때였고, 그래서 제가 그 많은 아이를 찰고를 하게 되었는데 일일이 다 찰고를 할 수 없어서 전체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 번째 제일 중요한 질문, 하느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다 계시다고 모두 잘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음 질문으로 그러면 화장실에도 계시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이 두 패로 갈려 웅성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어디든지 계시다면 우리가 어디서고 언제고 만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 일에서 주님을 만난다면 그 일은 어떤 일이건 성사가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길을 가다 보면 늘 묵주를 손에 들고 다니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묵주를 들고 실제 기도글 하건 말건 저는 이것이 모든 일을 성사화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어떻게 해서라도 주님 말씀을 늘 상기하라는 가르침을 오늘 신명기의 <쉐마 이스라엘>로부터 받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무능한 자신을 믿으면 무능해질 것이고, 전능하신 그분을 믿으면 전능해질 것이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후, 산을 내려오시어 군중에게 가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말하였습니다.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마태 17,15-16)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를 개탄하시면서,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주어야 한다는 말이냐?”(마태 17,17)라고 하십니다. “언제까지”라는 표현은 당신 수난의 시간에 대한 급박감을 드러내줍니다.  

특별히 여기서는 ‘비뚤어졌다’는 말과 ‘믿는다.’는 말이 대조를 이루는데, ‘비뚤어졌다’는 것은 <신명기> 32장 5절에서 모세가 말해주듯이, 주님을 향하지 않아 비뚤어 우상숭배에 빠짐을 말합니다. 곧 주님께 속하기보다 우상을 소유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함을 말해줍니다. 반면에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무능과 한계를 인정하기에 전능하신 분을 주님으로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그러니 ‘비뚤어졌다’는 것은 주님을 믿으려 하지 않음이요, 그 결과 병을 치유하지 못하는 무능력임을 말해주는 반면, ‘믿는다.’는 것은 주님을 받아들임이요, 그 결과 병을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못할 일은 하나도 없는”(마태 17,20) 전능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마태 17,19) 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그렇습니다. 믿음이 약한 탓입니다. 믿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약해서입니다. 곧 믿음의 지향이 흐트러진 것입니다. 지향이 올바르면, 곧 오롯이 주님을 향하여 있으면,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굳세어지고 강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마태 17,20). 

그런데 우리는 주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어버리는 바람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약해져 버립니다. 결국, 우리는 무능한 자신을 믿으면 무능해질 것이고, 전능하신 그분을 믿으면 전능해질 것입니다.  

사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믿음’이란 “초월성이 진짜임을 인정하는(assentire) 능력”, 곧 ‘삶의 이면에 실재하는 우리가 경험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실재하는 더 성스러운 차원을 인정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정’은 지성의 굴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비경험적인 실재들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곧 믿음에는 기쁨이 동반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믿음을 지니고 있다면, 기쁨 속에 있을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7,20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
제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당신 뜻에 합당하게 하소서. 

당신을 통해 제 뜻을 이루기보다
당신 뜻을 알아듣게 하소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당신과 함께 하고
먼저 기도하게 하소서.  

힘을 주시는 당신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소서. 

모든 것 안에서
당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믿음이 있으면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세상 안에는 많은 리더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있고, 회사 대표가 있고, 학교장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많은 리더를 통해 세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특별한 리더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진심으로 이끄는 리더입니다. 
 
이런 리더는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만들며, 사람의 마음속에 목적의식과 소속감을 심어줍니다. 설득하려 하지 않고 열망을 일깨워 따라오게 만듭니다. 즉, ‘그래야만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러고 싶어서’ 행동하게 합니다. 
 
이런 리더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직접 모범을 보여주시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안에서 우리 역시 당신과 같은 리더, 즉 진심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길 바라십니다. 가정 안에서, 직장 안에서, 학교 안에서, 교회 안에서, 그밖에 우리가 사는 공동체 안에서 그런 리더의 모습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리더들이 많아질수록 주님의 뜻이 이 세상에 가득할 수 있게 됩니다. 외적 보상이나 세속적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함께하는 것만으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주님, 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마태 17,14.15)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굳은 믿음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이 예수님을 단순한 라삐나 예언자로 생각하고 있는 반면, 이 사람은 구원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와 비슷하게 간절한 형태로 자비를 간청하는 신뢰의 표현을 쓴 것입니다. 
 
사실 이 사람은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아들을 데려갔었지요.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받았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그 이유를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단순히 주님께 의존만 한다면 여기서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참된 믿음과 기도가 없다면 하느님의 일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커다란 믿음도 아닙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주님의 일은 우리의 작은 믿음을 가지고도 큰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리더의 모습으로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을 굳게 믿는다면 우리도 세상 안에서 주님을 따르는 또 다른 리더의 모습으로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마음의 문을 여는 손잡이는 안쪽에만 달려 있다 (게오르크 헤겔).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믿음이 약한 이유는 하느님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두려움에 마음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기도 안에서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릴 때 불가능은 사라지고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가능성 위에 서게 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크기보다 하느님을 향한 방향이 더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가 깃들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하느님 안에서 현실이 됩니다. 믿음은 단순한 긍정의 마음이 아니라 기도와 삶 속에서 끊임없이 길러지고 단련되는 관계의 힘입니다.  

작아도 순수한 믿음은 하느님의 능력을 통로로 삼아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믿음이 약하면 존재는 자기 한계 안에 갇히고 변화의 힘을 잃습니다. 약한 믿음은 행동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강한 믿음은 현실을 성장시키는 실천을 이끌어냅니다.  

믿음은 단순한 동의나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비롯된 전적인 신뢰입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하느님과의 일치가 얕아졌음을 뜻합니다. 능력은 인간 안에서 스스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은총입니다.  

작아 보여도 하느님의 은총과 결합된 믿음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또한 기도는 믿음을 지탱하고 자라게 하는 호흡입니다. 기도 없는 믿음은 금세 메말라 버립니다.  

오늘 우리 삶에도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하느님께 내어드릴 때, 작아 보이는 우리의 발걸음은 역사를 움직이는 기적이 됩니다. 하늘 나라의 씨앗은 믿음이라는 씨앗입니다.

 

 

 

신명기 6장 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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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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