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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8/10 (일)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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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의 계약을 돌아보소서! 가련한 이들의 생명을 저버리지 마소서. 일어나소서, 주님, 당신의 소송을 친히 이끄소서. 당신을 찾는 이들이 외치는 소리를 잊지 마소서.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성령의 이끄심으로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라 부르오니 저희 마음에 자녀다운 효성을 심어 주시어 약속하신 유산을 이어받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8월 10일 (일)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8월 1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9주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8월 10일 연중 제19주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지혜 18,6-9)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 제 2독서
    (히브 11,1-2.8-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오늘 복음
    (루카 12,32-48)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지혜 18,6-9
오늘 제1독서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해방의 날 

6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7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은 의인들의 구원과 원수들의 파멸을 기대하였습니다. 

8 과연 당신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9 선인들의 거룩한 자녀들은 몰래 희생 제물을 바치고 한마음으로 하느님의 법에 동의하였습니다. 그 법은 거룩한 이들이 모든 것을 다 같이, 성공도 위험도 함께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벌써 조상들의 찬미가들을 불렀습니다.

 

 

 

히브 11,1-2.8-19
오늘 제2독서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설계하시고 건축하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2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8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9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10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1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12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13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14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15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16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17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18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9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루카 12,32-48
오늘 복음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2 “너희들 작은 양 떼야,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기로 하셨다. 

33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34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39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40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41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다. 

42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43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에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인은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에게 맡길 것이다. 

45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46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그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48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모르고서 매 맞을 짓을 한 종은 적게 맞을 것이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8월 10일
최영진 그레고리오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16:41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상우 바오로 신부

여러분은 어디쯤 계시나요?

믿음의 여정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극적인 결과를 보여 주지도 않지요. 그렇기에 믿음의 여정은 희망과 준비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지혜서입니다.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스라엘인들의 여정, 다시 말하여 구약의 하느님 백성이 믿음으로 걸어온 해방과 구원의 여정을 간략히 그립니다.

제2독서는 히브리서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11,1)라는 명제로 시작하여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야곱이 걸어온 길을 재조명합니다.

이를 통하여 구약의 성조들에게 믿음의 여정은 희망과 인내와 기다림의 여정이었음을 확인합니다. 복음은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종에 관한 비유입니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40)라는 결론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믿음의 여정을 희망과 인내와 기다림의 여정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드러내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희망의 순례자들’이라는 주제로 희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는 믿음의 여정을 무엇으로 채워 가고 있나요? 희년의 여정이 다만 전대사와 은총을 받는 데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희망하고 하느님 아드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세상을 하느님 뜻에 맞갖도록 채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세상이 겪고 있는 고통에 침묵하고 무관심하거나,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려 무미건조하게 되어 세상 속에서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면 믿음의 여정에 걸맞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쯤 계시나요, 여러분은?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행복 식탁에서 행복 시중을 받는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우리 인생은 행불행의 인생입니다. 개에게는 행불행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입니다. 개는 우리 인간이 느끼는 행복을 행복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고, 개에게는 고통이 있을지언정 불행을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쨌거나 우리 인간은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존재인데 아주 적극적으로 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행복하거나 행복하지 않아 불행한 사람도 있는데 제 생각에 많은 사람이 불행하지 않으니 행복하다는 식으로 행복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행복한 종이 될 수 있는지 가르치시며 그 비결은 ‘깨어있음’이라고 가르치시는데 그 깨어있음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신께 깨어있음이고 다른 하나는 도둑에게 깨어있음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당연히 행복을 주시는 분이고 도둑이란 행복 도둑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고자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 깨어있지 않으면 도둑이 그 행복을 우리에게서 뺏어가기에 도둑에게도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도둑이 몇 시에 올지, 그러니까 몇 시에 행복을 뺏으러 올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실은 우리가 압니다. 앞서 행복하지 않아 불행하다고 한 것처럼, 우리가 주님께 깨어있지 않을 때가 그때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에 깨어있지 않을 때가 그때입니다. 오늘 지혜서는 이것을 이렇게도 얘기합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저희의 적들을 처벌하신 그 방법으로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해방의 날 밤이 조상들에게 예고되었다고 하며 예고된 것은 조상들이 어떠한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기 위함이라고 지혜서는 또 얘기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주님의 행복 선언을 가지고 이해합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 우는 사람, 박해받는 사람이 지금 불행해 보이지만 실은 행복하고 하느님 나라에서 진정 행복하게 된다고 예고하시고 약속하십니다.

문제는 이 예고와 약속을 믿느냐 그것인데 불신의 적들은 우리 안팎에 널려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행복을 주신다는 약속은 허무맹랑하다고, 이 세상에서 행복해야지 하느님 나라 행복은 사기라고 하는 적들이 참으로 많으며 그것을 확고하게 믿지 못하는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이런 행복의 도둑들인 하느님의 적들을 깨부수심으로 주님께서는 행복을 되찾아 주시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깨부수시는 방법은 미천한 이를 굽어보시고 교만한 자를 내치시는 방법이요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보내시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조건은 지혜서의 말씀대로 이 방법에 동의하는 것이고 히브리서가 말하듯 아브라함처럼 약속의 주님을 성실한 분으로 믿는 것이며, 복음서가 말하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처럼 주님을 깨어 기다리는 것입니다.

자,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 방법에 동의하시겠습니까? 행복 도둑을 경계하면서 행복 식탁에서 행복 시중을 드시는 주님을 깨어 기다리겠습니까?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하늘에 보물을 마련하여라.

+ 찬미 예수님! 무엇보다 먼저 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우리 주님과 오늘 이 자리를 배려해주신 ‘본당 신부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들 드립니다. 그리고 이곳 ‘수원교구 주교좌 성당’의 모든 신자 분들께 주님의 축복과 평화를 빕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열대야가 한창입니다. 이 열기와 더불어 ‘사랑의 불가마이신 예수 성심’이 형제자매님들의 가슴에서도 활활 타오르길 빕니다.  

오늘은 연중 제19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제자들에 행하신 교육장면인데, 크게 두 장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장면>에서는 하늘에 보물을 쌓아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12,32-34)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에 재산을 쌓는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묘하게도, 그것은 돈을 모을 때가 아니라 쓸 때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쓸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자선’으로 “하늘에 보물을 마련하여라.”(12,34) 하십니다. 그러면, 그날이 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 

<둘째 장면>에서는 주님의 재림과 관련한 세 가지 비유(35-48), 곧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35-38), “도적의 비유”(39-40), “청지기의 비유”(42-48)가 소개됩니다. 

이 세 비유는 모두 ‘누가 깨어있는 사람인가?’를 알려줍니다. 곧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35-38)에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임을, “도적의 비유”(39-40)에서는 ‘그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임을, “청지기의 비유”(42-48)에서는 ‘맡겨진 일에 충실하고 슬기로운 사람’임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깨어있음의 표시’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루카 12,35)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과월절 음식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를 말씀하실 때를 연상케 합니다(탈출 12,11 참조). 곧 ‘깨어있음’은 마치 출애굽의 긴장을 갖추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청지기”에 비유하여, 이렇게 물으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루카 12,42) 

이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종들이 아니라 ‘주인의 종들’이 맡겨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맡겨진 이들을 돌보는 일’은 “주인의 뜻에 따라 정해진 양식을 내어줄 수 있는 데”(루카 12,42) 있다고 밝히십니다. 그러니 바로 ‘그들을 돌보는 일이 주인을 섬기는 일’이 됩니다. 바로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저희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은 2016년 4월 의정부교구의 승인을 받아, 2018년 5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에 수도원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니 이제 9년 된 걸음마 단계에 있는 수도원입니다. 

저희 수도승원은 ‘기도’와 ‘노동’과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를 세 기둥으로 삼고, ‘정주’를 서원하며 살아가는 ‘수도승생활을 하는 수도원’입니다. 그러기에, 수도원 밖에서 하는 ‘사도직’은 없습니다. 반면에, ‘공동체 본연의 친교와 일치의 삶’과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정신에 따라, ‘손님환대’를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합니다. 아직 ‘수입창출을 위한 사업장’을 갖추지 못하여,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가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수도원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현재 10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처음에, 네 명의 수도승들로 시작하여 차차 숫자가 늘어나면서, 작년부터 숙소가 모자라 세탁실을 숙소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숙소가 부족한 관계로 ‘종신서원자’ 한 명이 따로 ‘손님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내년에는 미얀마의 수련자들 3명이 합류하게 되는데, 숙소가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수도승들이 거처할 방’을 마련해야 하는 긴급한 사정에서, 부득불 ‘모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성소자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의 교회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행복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국가적, 경제적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현시점에서 ‘모금’을 한다는 것이 그지없이 송구하고 죄송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딱한 처지이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삼가 도움을 간청 드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희의 가련하고 안타까운 처지를 헤아려주시어, 뜻있는 분들의 사랑의 도움을 간청 드립니다.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느님께서 품으신 선하신 뜻이 여러분 안에서 이루어지고, 하늘에 재물이 쌓일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루카 12,42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주님!
먼저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찾게 하소서. 

저는 주인이 아니라 
당신께 속해 있는 자인 
까닭입니다.

하오니, 무엇을 하든 
제 방식이 아니라 
당신의 방식을 따르고,

제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을 따르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관리인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기도는 나만의 보물을 확인하는 시간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단순히 밤에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깨어 있지 못함이란, 정말 중요한 핵심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스페인에서는 47층짜리 초고층 건물을 지으면서 엘리베이터 설계를 빠뜨리는 황당한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17세기 스웨덴에서는, 국왕의 욕심 때문에 대포를 너무 많이 실은 군함이 출항하자마자 균형을 잃고 가라앉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요? 돈에 대한 집착이 엘리베이터의 필요성을 잊게 만들고, 과시욕과 교만이 배의 균형이라는 기본을 무시하게 만든 것입니다.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군 복무 시절 운전을 하다가 그만 사고를 내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길을 건너던 예쁜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한눈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순간의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겨 안전이라는 더 큰 가치를 놓친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정말 중요한 것을 잊게 만드는 것. 가톨릭 교회는 이를 ‘세속과 육신과 마귀’의 유혹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오늘 루카 복음은, 바로 이 ‘깨어 있지 못함’의 가장 큰 증거가 ‘나눌 줄 모르는 마음’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진 것을 팔아 자선을 베풀어라.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해지지 않는 돈주머니와 축나지 않는 보물을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좀이 쏠지도 못한다.” (루카 12,33) 

우리는 왜 나눔과 절제의 가치보다 순간적인 욕망의 가치를 더 크게 여길까요?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의 것들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사제가 되기 전부터 강론을 써서 나누는 일을 저만의 자선으로 실천해 왔습니다. 하지만 첫 주임으로 사목하다 지쳐 교구청에 들어왔을 때, 몇 년간 그 나눔을 멈추었습니다.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삶이 주는 안락함은 달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제로서 깨어 있지 못한 삶이었습니다. 다시 영성관으로 오면서, 강론을 쓰지 않는 제 모습이 점점 더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바로 그때, 이 말씀이 제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마음속으로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예상하지 못한 날, 짐작하지 못한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그를 처단하여 불충실한 자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할 것이다.” (루카 12,45-46) 

이 말씀이 제 마음에 들어오자, 더 이상 강론을 나누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제로서 말씀을 나누겠다’는 결심이 제 안에 새로운 빛을 밝혔고, 그 빛이 저를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보물’입니다. 말씀이 나의 보물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런던의 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된 채 살아가던 노숙자, 제임스 보웬의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세상은 그를 없는 사람 취급했고, 그 자신도 스스로를 ‘쓸모없는 중독자’, ‘거리의 쓰레기’라 부르며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자신의 허름한 거처 복도에서 상처 입은 길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그 순간, 그의 얼어붙었던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렸습니다. 그는 며칠을 굶어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고양이의 치료비를 냈고, ‘밥(Bob)’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쓸모없는 노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 생명의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정체성이 바뀐 것입니다. ‘보호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만이 아니라, 밥도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밥을 어깨에 메고 버스킹을 하자, 놀랍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그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가 아니라 ‘어깨에 고양이를 멘 특별한 남자’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시선이 바뀌자, 그 자신도 스스로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마약을 끊기로 결심합니다. 지옥 같은 금단 증세가 찾아올 때마다, 그는 곁에서 조용히 온기를 나누어주는 밥을 보며 다짐했습니다.

‘나는 밥의 보호자다. 나는 무너질 수 없다.’ 

무엇이 제임스를 다시 살게 했을까요? 그의 의지력이 강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자신을 ‘노숙자’라는 낡은 정체성 안에 가두는 대신, ‘보호자’라는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새로운 ‘보물’, 밥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그 이유를 정확히 알려주십니다.

“사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루카 12,34)

 나의 보물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머물고, 나의 마음이 머무는 곳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입니다. 나의 보물이 돈에 있다면 나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일 것이고, 나의 보물이 말씀과 나눔에 있다면 나는 하늘에 속한 사람일 것입니다. 
 
신자 여러분,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보물입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말씀과 성체입니다. 그리고 이 보물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그 가치를 되새기고, 더 깊이 끌어안는 시간이 바로 ‘기도’입니다. 

귀한 보물이 생긴 사람은 그 보물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확인하지 않겠습니까? 남의 밭에 묻힌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사지 않습니까?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기도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인지 날마다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중력에 이끌려 다시 땅으로, 세속의 가치로 떨어지고 맙니다. 기도는 바로 그 마음을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 들어 올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오늘부터 기도하실 때마다, 하늘의 보물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그분의 거룩한 뜻을 내 마음의 저울 위에 올려놓는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잠에서 깨어나, 기쁘게 베푸는 사람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휴일에 편안한 복장으로 소설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계속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주인공인 여자가 너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이 여자는 남자 친구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지극했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도망칠 뿐이었습니다. 자기 필요한 것만 챙기고, 자기 일 바쁘다는 말만 하면서 만남을 계속 피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자도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헤어지자는 말 듣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떻습니까? 답답하지 않습니까? “그 남자, 참 못됐네. 여자를 위한 조금의 마음만 있어도 자유롭게 살도록 솔직하게 싫다고 말해야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마치 주님과 우리의 관계처럼 보였습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일방적인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그토록 우리를 사랑하는데,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만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입으로만 사랑한다고 하면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기보다는 자기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 급급합니다. 그래서 자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계속 늘어놓습니다. 
 
소설 속의 그 못된 남자가 마치 우리의 모습처럼 비칩니다. 차마 우리를 내치지 못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계속 이용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어 있는 종의 비유 말씀을 해주십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항상 준비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즉, 기도와 선행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어 있는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라는 정말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종이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종을 섬기는 장면인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이 겸손한 사랑을 미사 때마다,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주시는 성체 성사에서 보게 됩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제1독서의 지혜서 말씀처럼 저희를 당신께 부르시고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지혜 18,8 참조). 그러나 그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면서, 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서 못된 사람의 길을 가고만 있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이 오시면 과연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지를 묵상했으면 합니다. 참사랑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다 (톨스토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 없는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준비는 내일을 위한 두려움이 아니라 오늘을 위한 사랑입니다. 사랑을 쌓는 삶이 준비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 살며, 내일을 보장받지 못한 존재입니다. 모든 현재는 마지막 순간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습니다.  

준비란, 현재를 사는 것이며 매 순간을 책임 있게 사는 것입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사는 삶입니다. 그래서 '준비'는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는 삶이며 마지막 순간에도 부끄럽지 않을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을 구원의 날처럼 살아가는 신앙인의 참된 태도입니다.  

좋은 마무리는 준비에서 시작됩니다. 준비된 마무리는 감사와 평화를 남깁니다. 또한 준비의 깊이가 마무리의 품격을 결정합니다. 신앙 안에서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죽음도 부활을 향한 준비이며, 하루의 마무리도 소중한 내일의 준비가 됩니다.  

준비와 마무리는 서로를 이어줍니다. 준비가 충실하면 마무리는 평화롭습니다. 오늘을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사는 기쁜 주일 되십시오. 주님의 날은 기쁜 날이며 준비의 은총이 피어나는 가장 좋은 날입니다.

 

 

 

루카복음 12장 34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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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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