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매일미사 말씀묵상

25/07/31 (목)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7. 31.
반응형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네.

하느님, 하느님의 더 큰 영광을 널리 전하도록 복된 이냐시오를 교회에 보내 주셨으니 그의 도움으로 저희가 그를 본받아 이 세상에서 복음을 위하여 열심히 싸우고 마침내 하늘 나라에서 그와 함께 승리의 월계관을 받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7월 31일 (목)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3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40,16-21.34-38)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 오늘 복음
    (마태 13,47-53)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탈출 40,16-21.34-38
오늘 제1독서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그 무렵 

16 모세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하였다. 

17 마침내 둘째 해 첫째 달 초하룻날에 성막이 세워졌다. 

18 모세는 성막을 세우는데, 먼저 밑받침을 놓은 다음 널빤지를 맞추고 가로다지를 끼운 뒤, 기둥을 세웠다. 

19 또 성막 위로 천막을 치고 천막 덮개를 그 위에 씌웠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20 그런 다음 증언판을 가져다 궤 안에 놓았다. 그 궤에 채를 끼우고 궤 위에 속죄판을 덮었다. 

21 또 궤를 성막 안에 들여놓고 칸막이 휘장을 쳐서 증언 궤를 가렸다. 이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34 그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35 모세는 만남의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구름이 그 천막 위에 자리 잡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36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모든 여정 중에, 구름이 성막에서 올라갈 때마다 길을 떠났다. 

37 그러나 구름이 올라가지 않으면, 그 구름이 올라가는 날까지 떠나지 않았다. 

38 그 모든 여정 중에 이스라엘의 온 집안이 보는 앞에서, 낮에는 주님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3,47-53
오늘 복음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7 “하늘 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48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49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50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51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5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3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31일
김민회 시몬 신부

 

✚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소개 00:06

✚ 미사시작 01:13

✚ 강론시작 08:30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내 안에 무엇을 담고 버릴지 식별하기

하늘 나라는 온갖 종류의 고기가 들어 있는 그물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몸소 일러 주시듯이 세상과 공동체 안에는 ‘좋은 것’인 의인들과 ‘나쁜 것’인 악인들이 있습니다. 이 비유를 우리 내면에 적용한다면 우리 안에도 선함과 의로움 같은 것이 있고, 악의와 악습 같은 것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세상이든 내 안이든 나쁜 것은 다 없애고 좋은 것만 남겨 두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둘 다 있게 하십니다. 여기서 모두를 포용하시는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이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같이 놓아두시지는 않고 가려내시어 저마다 걸맞은 장소에 두심은 그분의 의로우심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저마다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다양한 면을 모두 인정하고 품는다면, 그 자체로 덕을 넘어서 하느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마태 13,49)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인들에게 초점을 두시는 것처럼, 우리도 모든 것을 품더라도 좋은 것에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닮아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내 안에 무엇을 담고 버릴지 식별한다면 그 자체로 주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어부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고자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듯이, 우리도 숨은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꺼내 놓아 마주해야 합니다. 그 생각과 시선과 행동이 늘 그분을 닮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그물에 걸린 나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나는 그물에 걸렸다. 그러나 나는 그물에 걸린 줄 몰랐고 그 넓은 바다를 정말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 바다는 정말 나의 바다였다. 나는 한 순간도 하느님의 바다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는 이 바다를 마음껏 헤엄쳐 다녔고, 이 바닷물을 들이켰고 한 번도 갈증을 느낀 적이 없다.

나는 이 바다가 하느님의 나라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당연히 이 바닷물을 은총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주님의 때가 되어 주님의 그물에 걸렸을 때에야 이 바다가 나의 바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물에 걸린 것을 내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재앙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주님의 그물에 걸린 것이었다. 나를 이 은총의 바다로 방생을 하신 하느님께서 또 다른 은총의 바다로 옮기시기 위하여 나를 당신 그물로 잡으신 것이다. 촘촘한 그물을 빠져나가려고 한 적도 있지만 이제 나는 주님의 그물에 걸린 것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는 주님의 그물에 걸렸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그분의 그물에 든 물고기

우리는 <마태오복음> 13장에 나오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에서, 마지막 일곱 번째인 “그물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는 지금까지의 비유들에 대한 결론에 해당합니다. 곧 “심판”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사실, 그물 속에는 “온갖 것”이 한데 섞여 있습니다. 마치 밀밭에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물이 가득 차차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마태 13,48) 

“세상의 끝날”이 오면, 하느님의 천사들이 밀밭에서 가라지를 따로 뽑아 묶어서 불에 태워버리고 밀은 하느님의 곳간에 거두어들이듯이, 하느님의 사명을 받은 어부들이 바다에서 그물을 끌어 올려 쓸모없는 나쁜 고기를 추려내어 내버리고, 좋은 고기는 “하늘나라”라는 그릇에 담는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이 “그물의 비유”는 의인과 악인의 종국적인 결말이 준엄함을 말해줍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바다에 생명의 물을 부으시어 우리를 살게 하시고, 그 물속에서 생명을 모아들이십니다. 곧 우리를 살리려고 당신 생명의 그물에 몰아넣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미 ‘당신의 그물’ 속에 들게 하셨습니다. 이 ‘그물’은 욥을 찾아와 충고했던 친구(빌닷)의 말을 떠올려줍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학대하시고 나에게 당신의 그물을 덮어씌우셨음을!”(욥 19,6)

시편 작가도 이렇게 노래합니다.

“저희를 그물에 걸려들게 하시고 무거운 짐을 저희 허리에 지우셨습니다.”(시 66,11)

이처럼, ‘그분의 그물에 든 물고기’인 우리는 동시에, 하느님께서 “바다에 처져 있는 그물”, 곧 ‘이 세상에 쳐놓은 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바다에 처져서 온갖 것을 끌어올리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비유를 마치시면서, 그 사명을 상기시켜주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마태 13,51-52)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교육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러니, “하늘나라”의 의미를 깨닫고, 또한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우리의 곳간에 ‘하늘나라의 복음’이 채워져야 할 일일 것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3,47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주님!
하늘나라의 그물에 
저를 몰아넣으셨습니다.

당신 말씀의 그물로 덮어씌워 
당신 뜻 안에 가두셨습니다.

세상의 바다에 저를 던지시어
당신의 그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오니, 제가 온갖 고기를 
모아들일 뿐
제 입맛에 맞게 
고르지 않게 하소서.

제가 그물일 뿐, 
주인이 아니듯 
고기의 주인도 아님을 
잊지 않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가톨릭교회가 쇄신에 더딘 이유

한국 가톨릭 신자의 주일 미사 참여율이 10% 아래로 떨어졌다는 뼈아픈 보고서를 마주하는 오늘,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2000년이나 된 찬란한 보물을 가지고 있는데, 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지 못하고, 그저 낡은 유물처럼 희미해져 가는 걸까요? 교회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요? 놀랍게도, 많은 이들이 정답이라 믿는 '새로운 것'을 버려야 할 때인지도 모릅니다.

혹자는 다급하게 ‘새로운 것’이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더 신나는 성가, 더 세련된 프로그램, 더 젊은 감각이 시급하다고 외칩니다. 물론 다 필요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조금 다른, 어쩌면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가 가진 ‘옛것’, 즉 복음이라는 이 엄청난 보물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그리고 완벽하게 이해해 본 적이 있는 걸까요? 

처음에는 저도 그저 '요즘 애들은 글을 안 읽는다니, 그림으로 보여주자!' 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생각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중요한 것은 유튜브라는 ‘새로운 그릇’이 아니라, 그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즉 복음이라는 ‘옛 보물’을 제가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였습니다. 제가 복음의 깊이를 모르면, 아무리 화려한 영상 기술을 써도 결국 알맹이 없는 껍데기만 요란하게 흔드는 꼴이 될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비단 신앙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인류의 모든 위대한 도약은 언제나 ‘옛것’에 대한 지독한 이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03년, 인류의 오랜 꿈이었던 비행을 마침내 성공시킨 라이트 형제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를 뚝딱 만들어낸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가장 흔한 ‘옛것’, 바로 자전거 가게 주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일같이 자전거를 만들고 고치면서, 두 바퀴로 달리는 이 단순한 기계 안에 숨겨진 동력과 균형, 저항이라는 물리학의 핵심 원리를 뼛속 깊이 터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전거를 그저 땅 위를 달리는 기계로만 볼 때, 라이트 형제는 그 안에 숨겨진 ‘비밀’, 즉 하늘을 날 수 있는 원리를 꿰뚫어 본 것입니다. 땅의 기계인 자전거라는 ‘옛것’의 원리를 완벽히 이해했기에, 비로소 하늘의 기계인 비행기라는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자전거의 원리를 대충 알았다면, 그들의 비행기는 결코 1미터도 날아오르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이 우리에게 벼락처럼 내리치는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에 대한 여러 비유를 말씀하신 뒤, 제자들에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마태 13,51)

이 질문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다 들었느냐?”가 아니라 “다 ‘깨달았느냐’?”고 물으십니다. 비유라는 겉포장 속에 숨겨진 하늘 나라의 비밀, 그 작동 원리를 파악했느냐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그제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 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헌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마태 13,52) 

여기서 ‘헌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하늘 나라의 변치 않는 진리이자 근본 원리입니다. 그리고 ‘새것’은 무엇입니까? 그 ‘헌것’의 원리를 완벽하게 깨달은 사람만이 창조해낼 수 있는, 이 시대의 하늘을 날게 할 새로운 비행기입니다. ‘헌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새것’은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그저 날개 모양만 흉내 낸 무거운 쇳덩이일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당신의 제자들에게만 따로 그 뜻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것입니다. 하늘 나라의 비밀은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아니라, 그 비밀을 깨닫기 위해 시간을 내어 주님의 발치에 앉아 씨름하며 묻고, 공부하고, 묵상하는 이들에게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보석과도 같은 선물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가 쇠퇴하는 이유는 ‘새것’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옛것’, 즉 복음의 깊이를 제대로 파고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원리를 완벽하게 깨닫기 위한 공부와 묵상, 연구의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도, 삼구도, 뱀도, 미사를 세우신 이유도, 성탄 트리도, 무엇도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시대에 맞는 새로운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세상의 변화에 그저 끌려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 역사 안에는 언제나 이런 어둠의 순간에, 옛것의 가치를 깊이 꿰뚫어 새 시대를 연 거인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분이 바로 13세기 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그의 시대 교회는 부와 권력으로 스스로 빛을 잃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모든 이가 잊고 있던 가장 낡고 오래된 것, 바로 복음의 ‘가난’이라는 먼지 쌓인 보물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는 가난의 핵심 원리를 온 삶으로 묵상하고 살아냈고, 바로 그 지독한 이해를 통해 교회 전체를 쇄신하는 강력하고 새로운 영성의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가난이라는 ‘옛것’에서 교회의 미래를 보았듯, 우리도 복음이라는 ‘옛것’에서 세상의 미래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참으로 명료합니다. 교회의 미래, 우리 신앙의 미래는 더 화려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보물, 바로 이 복음 말씀을 얼마나 깊이 파고들어 그 핵심 원리를 깨닫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한 주, 이렇게 한번 도전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성체성사를 온전히 이해하는가? 나는 삼위일체를 온전히 이해하는가? 나는 자아가 무엇인지 아는가? 저는 이를 위해 『사랑하는 조카들아, 이것만 읽고 냉담하면 안 되겠니?』를 집필하였습니다. 냉담하는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입니다. 그러나 이는 정통 교리에 대한 이해에서 나왔습니다. 먼저 옛것을 이해해야 새로운 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어렸을 때 저를 슬프게 했던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저의 형, 누나를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입니다. 그리고 어른들이 종종 놀리며 하는 말, “너는 사실 다리 밑에서 주어왔어.”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습니다. 실제로 제 진짜 부모님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동네에 있는 다리 밑을 살펴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 들어가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희 형제는 어떻게 다 똑같이 생겼니?”
 
사랑하는 가족을 닮았다는 것, 그들을 사랑하기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닮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닮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떨까요? 만약 사랑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에 커다란 행복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닮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을 알아야 하고, 그분의 뜻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즉, 그분 말씀에 순명해야 합니다. 만약 학생이 교칙을 지키지 않으면 어떨까요?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됩니다. 회사원이 사규를 따르지 않으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출근 시간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퇴근한다면 어떨까요? 이 사람은 회사를 제대로 다닐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곳에 순명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주님 뜻에 순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닮은 삶은 이런 것입니다. 분명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따라서 주님 닮은 삶을 사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서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시지요. 
 
불구덩이는 하느님을 거부하고 악을 선택한 자들이 맞이할 최종적인 파멸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울며 이를 갈 것’이라고 하신 것은 단순한 고통 표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통회가 늦었다는 후회, 이제 이곳에서 하느님을 영영 잃게 되어 절망에 빠졌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후회가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마태 13,51)라고 말씀하시면서, 단순히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기 삶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께 순명하는 삶이고, 이로써 진정으로 주님을 닮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는 힘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미움과 갈등 속에서 사랑만이 그 모든 어둠을 막아내고 서로를 이어주는 유일한 빛입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마태오복음 13장 47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오늘 성경 구절 이미지
다운로드

250731_오늘성경구절이미지.jpg
0.37MB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