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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7/30 (수)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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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거룩한 거처에 계시네. 하느님은 한마음으로 모인 이들에게 집을 마련해 주시고, 백성에게 권능과 힘을 주시네.

저희의 희망이신 하느님, 하느님이 아니시면 굳셈도 거룩함도 있을 수 없고 하느님만이 저희를 지켜 주시니 풍성한 자비로 저희를 보살피시고 이끄시어 저희가 지금 현세의 재물을 지혜롭게 사용하며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하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7월 30일 (수)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30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30일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34,29-35)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 오늘 복음
    (마태 13,44-46)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탈출 34,29-35
오늘 제1독서

모세의 빛나는 얼굴을 보고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29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3,44-46
오늘 복음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그것을 다시 숨겨 두고서는 기뻐하며 돌아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45 또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과 같다. 

46 그는 값진 진주를 하나 발견하자, 가서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여 그것을 샀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30일
박원구 라파엘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7:38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값진 진주는 바로 우리

오늘 복음에 나온 두 비유는 무엇인가를 수고롭게 찾는 것, 발견하는 기쁨, 발견한 것의 소중함,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것을 산다는 공통 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두 비유는 동일한 주제를 다른 형태로 제시하는 듯합니다.

주님과 그분의 나라를 찾는 데에는 수고가 따르지만 그것을 발견하는 기쁨은 대단히 크고, 그 기쁨으로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두 비유가 가지는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고, 각 비유가 지니는 깊은 뜻을 깨닫게 됩니다.

첫 번째 비유에서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에 비유되는데, 어떤 행동에 대한 대상이 됩니다. 반면 두 번째 비유에서 하늘 나라는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유되어 구체적 행동을 하는 주체가 됩니다.

그런데 마태오 복음서에서 하늘 나라가 어떤 사람에 비유될 때 그 사람은 보통 하느님이나 예수님입니다. 자기 종들과 셈을 하는 임금이(마태 18,23 참조) 그렇고,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려고 새벽부터 나가는 밭 임자가(20,1 참조) 그러하며,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이(22,2 참조)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늘 나라가 찾는 대상으로 제시되는 첫 번째 비유에서는 그분을 찾는 우리의 행동을 강조하지만, 하늘 나라가 행동을 하는 주체로 묘사된 두 번째 비유는 하느님의 행동을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값진 진주는 바로 우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얻으시려고 가진 것을 모두 처분하셨습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도 그분을 차지하고자 가진 것을 다 팔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한눈팔지 않기

“하늘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오늘 복음을 묵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편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  

왜 이 시편이 떠올랐을까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한 번 맛보았다면! 하느님의 좋으심을 한 번이라도 눈여겨봤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다른 것에 눈길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눈팔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이참에 <한눈팔다>는 말을 눈여겨봤습니다. 우리말이 참 재미있지요?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흔히 쓰는 우리말에 담긴 뜻들이 새롭습니다. <한눈팔다>는 말은 한 눈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두 눈을 다 한 곳으로 모아, 봐야 할 것을 눈여겨봐야 하는데 한 눈은 다른 곳에 팔아 눈길이 갈려 봐야 할 것을 눈여겨보지 못함입니다.  

그런데 왜 한눈을 팔겠습니까? 그것도 좋고, 그것도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꽃에 저절로 눈길이 가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저절로 눈길이 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찌 나쁘다고 하고, 이렇게 눈길이 가는 것을 어찌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것을 또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어찌 그리 아름다워 하느님을 가리느냐고 여인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그 아름다움에 한눈이 팔리는 저의 행위를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굳이 나무란다면 이 아름다움에서 저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거지요. 꽃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아름다운 꽃은 아름다우신 하느님을 가리지도 않고 감추지도 않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은 오히려 하느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실지 상상케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맛의 둔함과 우리 눈의 어리석음으로 하느님의 좋으심이 종종 이 세상 좋은 것들에 가리고 묻힙니다.  

그러니 차 맛을 보면서 하느님을 맛보고 꽃들을 보면서 하느님을 눈여겨볼 수만 있다면 하느님을 맛보기 위해 차를 끊을 필요가 없고, 하느님을 관상하기 위해 굳이 꽃밭을 뒤집어엎을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하느님 나라는 땅에 묻혀 있다는군요. 묻혀 있지만 않다면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있을 텐데. 아깝지 않게 다른 것을 다 팔아서라도 이 하느님 나라를 살 텐데. 이 세상 나라가 너무도 좋고, 이 세상 것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하느님 나라는 이 세상 것들에 묻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으로부터 오늘 복음을 들은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그것들 안에 묻혀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알았으니 이제 반은 된 것입니다. 알아보았으니 이제 맛도 보고 눈여겨도 보면 됩니다. 이제 나머지 반의 관상여행을 오늘 출발하는 겁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절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내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얻고 싶은, 참된 행복, 참된 기쁨, 참된 보물,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 그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밭에 묻혀있는 보물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44)

이는 그 ‘보물’이 멀리 하늘 위에 높이 매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곳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일터인 ‘내 직장’, ‘내 가정’, ‘내 공동체’가 바로 보물이 묻혀있는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보물”은 내가 있는 이곳에 ‘이미 묻혀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가 17,21)

그렇지만, 그 보물은 누구나 발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밭을 충실히 일구고 가꾸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장사꾼이 좋은 진주를 찾아다니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마태 13,45). 우리의 머리 속, ‘관념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진주를 찾아다니는” ‘행동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길을 찾는 발길 그 안에’, ‘진리를 더듬는 손길 그 안에’, ‘사랑을 찾아나서는 우리의 행위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하느님을 찾아나서는 신앙의 여정, 신앙의 행위, 바로 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진주는 누구나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찾아다니는 자만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는 이 “하늘나라”를 어떻게 얻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샀다.”(마태 13,44.46)

이는 “하늘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곧 우리가 비록 보물을 발견하고 찾았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진정 그 보물을 차지하려면, “먼저” “가진 것을 다 파는 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내놓으셨듯이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비우지 않고는 채워지지 않는 법인가 봅니다.

그러나 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는” 일입니다. 사는 일이 본질이지, 비우는 일이 본질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것을 “사는” 일입니다. 비록 보물을 발견했다 해도, 또 가진 것을 다 팔았다 해도, 그 보물을 실제로 사들이기 전에는 아직 그 보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살 때라야, 그것은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됩니다.

하지만, 만약 보물이 없다면, 결코 그것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분명한 것은 그 보물이 “먼저” 주어졌다는 사실이요, 그 보물이 우리를 이끈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 있으면서(루카 17,21) 말입니다.

그러니 그 이끄심에 응답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그 ‘보물을 차지하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우리 주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입니다.’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3,44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주님!
밭을 일구는 제 손길이 
당신의 나라를 찾아 
발견하게 하소서.

발견하고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그곳을 사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 더 값지고 
그 모든 것을 합해도
그보다 나을 수 없는
그것을 가지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기에 
목숨을 내어주고서라도 
바로 그것을 얻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인생은 아름다워? 보물을 찾지 못하는 당신에게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없으십니까? 분명 사랑받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외롭거나 불안할 때. 혹은 열심히 사랑을 줬는데, 상대방은 전혀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할 때. 요즘 많은 분이 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부모님이 날 정말 사랑하시는 걸까?", "내 배우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자녀들과 왜 이렇게 소통이 안 될까?" 이런 고민들 말이죠. 사랑하는데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사랑을 표현해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 대체 왜 이런 걸까요?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런 사연이 나왔습니다. 한 아버지가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답니다. 밤낮으로 일하고, 자녀들에게는 늘 엄격한 모습만 보였죠. 자녀들은 아버지를 '강하고 무뚝뚝한 분'으로만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가 낡은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거기에는 자녀들 몰래 찍은 사진들과 함께, "내 아이들이 행복하다면 이 아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글귀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그제야 자녀들은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 깨닫고는 오열했다고 해요. 이처럼 우리는 사랑이 너무 커서 오히려 보이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강론에서는 이 보이지 않는 사랑의 비밀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를 기억하십니까? 아버지 귀도는 어린 아들 조슈아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숨기기 위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운 놀이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끔찍한 수용소 생활마저도 '놀이'로 포장하며 아들을 지켜내죠. 아빠는 목숨을 걸고 아들을 사랑했지만, 조슈아는 전쟁이 끝난 후에서야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그 사랑의 진정한 깊이와 크기를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조슈아는 아버지의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이는 우리 모두가 살면서 겪는 어려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특히 하느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때로는 그 존재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를 둘러싼 공기나 매일 비추는 햇빛처럼, 너무나 당연해서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하죠. 이것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밭에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마태 13,44)고 말씀하십니다. 이 보물을 찾기 위해 사람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 나라를 얻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를 창조하신 분에게 사랑받는 느낌입니다. 이 사랑받는 느낌은 우리의 자존감이 되어 미래를 살아갈 힘을 줍니다.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했거나 그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존감이 부족하여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 사랑을 온전히 느끼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부모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마치 공기와 햇빛처럼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큰 사랑은 그것을 받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되어 그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마치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다가, 숨 막히는 순간에야 그 존재를 절감하는 것처럼 말이죠. 

둘째, 자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존에만 몰두하니, 부모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돈만 바라는 사람이 옆에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보이겠습니까? 그 사람이 보이면 나의 돈까지 내어놓아야 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생존 욕구가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사랑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 사랑을 느끼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은 우리가 직접 부모가 되어보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해 나의 생존을 포기할 때, 비로소 부모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 그 부모가 곁에 없을 수도 있지만, 그분들의 희생과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의 신학교 시절 이야기입니다. 당시 신학교 생활은 제게 지옥 같았습니다. 자유롭던 제가 갇혀 사는 듯했고, 모든 것이 불평투성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사랑의 목소리를 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이틀을 단식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배가 고프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양식을 주실 때 얼마나 배고프고 고통스러울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의 불평과 불만이 사그라들고, 그토록 지옥 같던 신학교가 천국처럼 보였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의 '뱀', 곧 자아의 욕망이 줄어들수록 에덴동산을 주신 주님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십일조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적, 어머니의 사랑이 진짜인지 의심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바쁘셨고, 저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어머니가 일하시는 곳에 찾아가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어머니의 하루를 함께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힘들게 일하시고 받은 단팥빵과 우유를 제게 건네주시던 순간, 저는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모든 사랑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다시 천국의 행복을 찾았습니다. 작은 희생, 작은 포기가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죠. 

그 밭에 묻힌 보물은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그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을 느끼기만을 목숨을 다해 원하는 이들의 것이 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느님의 사랑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그 크고 위대한 사랑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분의 사랑은 나도 힘들 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선 막연한 사랑을 느끼기 위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드립니다. 

"내 생존을 위해 쌓아둔 작은 것들을 기꺼이 포기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커피 한 잔, 매일 습관처럼 하는 게임 시간, 혹은 늦잠 자는 30분. 이런 작은 욕구들을 주님께 봉헌하며 이웃을 위해, 혹은 기도 시간을 위해 내어놓으십시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의 눈을 마주 보며 10분만 대화해 보세요. 그 작은 포기가 당신 안의 자아를 줄이고, 그 빈자리에 하느님의 사랑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 곁의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 보십시오."

배우자에게 평소 하지 않던 진심 어린 칭찬 한마디를, 자녀에게는 그들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경청해 주는 시간을, 부모님께는 따뜻한 안부 전화 한 통을 먼저 건네세요. 나의 작은 희생과 노력이 상대방에게 사랑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통해, 부모의 사랑, 나아가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만큼 느껴지는 법입니다. 

사랑은 클수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의 자아의 욕망을 줄이고 모든 것을 내어줄 때 그 거대한 사랑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참된 자존감을 회복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밭을 산다.

모든 동, 식물은 나름의 생존 전략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보호색도 있고, 꽃가루를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 등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생존 전략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어떤 학자가 말합니다. 혼자 살 수 없기에 함께해야 하고, 생존 전략으로 호감을 얻으려는 말과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호감을 얻어야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방법으로 어떤 이는 외모를 꾸미고, 어떤 이는 돈을 모으고, 또 어떤 이는 세상의 지위를 얻으려고 온 힘을 씁니다. 그러나 자기 능력으로 이 방법을 쓰기에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좌절하면서 ‘될 대로 돼라.’라면서 아무렇게나 삽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식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생존 전략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상호적이기에 함께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주는 사랑으로 받는 사랑도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대신 갚아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사랑은 세상 안에서의 생존 전략을 뛰어넘어 하느님 나라에서의 생존 전략으로 이어집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 삶 안에서의 시간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시간을 비교하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할지가 분명합니다. 영원의 시간이라고 하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생존 전략이 더 중요합니다. 
 
사실 세상 안에서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이 밥 먹여 주냐?”라면서 주님의 뜻을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두 가지 비유 말씀을 통해 설명하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밭에 숨겨진 보물의 비유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은행이 없어서 재산을 땅속에 묻어두는 일이 흔했고, 그래서 가끔 땅속에 숨겨둔 보물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 당연히 보물의 주인을 찾아줘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 비유 말씀은 윤리적인 판단을 이야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밭에 숨은 보물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구원과 평화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값진 진주의 비유입니다. 상인이 아주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는 자기 소유를 모두 처분해서 진주를 삽니다. 첫 번째와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두 번째 비유의 상인은 좋은 진주를 직접 찾아다녔다는 점입니다. 지혜와 진리를 찾다가 마침내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연히 만나든 의도적으로 찾든, 하느님 나라를 발견했다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물을 얻은 것입니다. 이 나라를 위해 세상의 것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까? 구원을 위한 생존 전략을 잘 세워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가 사는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내가 바뀔 때 인생도 바뀐다 (앤드류 매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하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다.

뜨거운 하루를 온몸으로 껴안으며 여름꽃이 그 자리에서 피어납니다. 하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 나라는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으로 열리고, 믿음으로 알아보며, 응답으로 얻어지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상할 수 없는 기쁨과 영원한 가치가 숨겨진 보물과 같은 하늘 나라입니다. 감춰진 보물과 같습니다. '밭'은 우리의 일상이고 '보물'은 그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이는 기쁨에 넘쳐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이 진짜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감춰진 가치를 알아보는 눈과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용기를 함께 품는 삶입니다.

진정한 가치는 겉이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깃들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도 바뀌게 됩니다. 하늘 나라는 우리 삶 한복판에 감춰진 보물처럼 항상 우리 곁에 있지만, 믿음의 눈으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나의 일상이라는 밭을 갈며 그 안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보물을 기쁘게 찾아나설 수 있기를 기도드리며 그리고 그 보물을 위해 기꺼이 나 자신을 내어드릴 수 있기를 기쁘게 청합니다.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 내어드림이 참된 보물입니다.

 

 

 

마태오복음 13장 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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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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