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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25/07/21 (월)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by 평화다방 2025.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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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천주교 온라인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5년 7월 21일 (월) 평화방송 매일미사 온라인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매일미사 김찬선 레오나르도,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이영근 아오스팅, 전삼용 요셉, 조명연 마태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말씀 묵상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21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21일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14,5-18)
    내가 파라오를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 오늘 복음
    (마태 12,38-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탈출 14,5-18
오늘 제1독서

내가 파라오를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무렵 

5 이스라엘 백성이 도망쳤다는 소식이 이집트 임금에게 전해졌다. 그러자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은 이 백성에 대한 마음이 달라져, “우리를 섬기던 이스라엘을 내보내다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하였는가?” 하고 말하였다. 

6 파라오는 자기 병거를 갖추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섰다. 

7 그는 병거 육백 대에 이르는 정예 부대와, 군관이 이끄는 이집트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나섰다. 

8 주님께서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므로,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뒤를 쫓았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당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9 마침내 파라오의 모든 말이며 병거, 그의 기병이며 보병 등 이집트인들이 그들의 뒤를 쫓아가, 바알 츠폰 앞 피 하히롯 근처 바닷가에 진을 친 그들을 따라잡았다. 

10 파라오가 다가왔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눈을 들어 보니, 이집트인들이 그들 뒤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몹시 두려워하며 주님께 부르짖었다. 

11 그들은 모세에게 말하였다. “이집트에는 묏자리가 없어 광야에서 죽으라고 우리를 데려왔소?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 이렇게 만드는 것이오? 

12 ‘우리한테는 이집트인들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나으니, 이집트인들을 섬기게 우리를 그냥 놔두시오.’ 하면서 우리가 이미 이집트에서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소?” 

13 그러자 모세가 백성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오늘 너희가 보는 이집트인들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않게 될 것이다. 

14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1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하여 나에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일러라. 

16 너는 네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손을 뻗어 바다를 가르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가운데로 마른땅을 걸어 들어가게 하여라. 

17 나는 이집트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너희를 뒤따라 들어가게 하겠다. 그런 다음 나는 파라오와 그의 모든 군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겠다. 

18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매일미사 오늘 복음 (Gospel)

 

마태 12,38-42
오늘 복음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38 그때에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40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41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매일미사 실시간 스트리밍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21일
정호영 요셉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53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Reflections)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포기하시지 않고 무한히 인내하시는 사랑의 하느님

오늘 복음을 읽다 보면 표징을 요구하는 것이 매우 잘못된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서 12장의 문맥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 앞 단락에는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이를 치유하시자 사람들이 놀라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곧 메시아로 보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곧바로 예수님께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신다고 하면서 그분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도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까지 방해하였습니다(마태 12,22-32 참조).

바로 이 바리사이들이 이제 예수님께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주장을 수긍할 수 있도록 증거를 달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고집 앞에서 그 어떤 표징도 소용이 없음을 잘 아시기에,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12,39)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표징을 주시지 않겠다는 말씀이라기보다 그들의 마음 자세를 드러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꽉 막힌 사람들에게도 아직 가능성을 열어 두십니다. 그래서 “요나 예언자의 표징”(12,39),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가장 큰 표징만은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는 천사의 발현 소식이 군사들에게서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알려질 것입니다(28,11 참조). 그래서 오늘 복음은 단죄보다도 오히려 포기하시지 않고 무한히 인내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 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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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오늘 말씀 묵상 업데이트 준비중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표징들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이 표징을 요구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며,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시험하여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개탄하시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 구나!”(마태 12,39) 

“악한 세대”라는 말은 단지 마음이나 행실이 악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까지 치달은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마태 17,17)를 의미합니다. 곧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모함할 구실을 찾기 위한 완악함과 비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개 없는 세대”라는 말은 이백주년 성경에는 “간음하는 세대”라고 번역하였듯이, 마치 부부의 신의와 같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대해 불충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는 절개 없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들은 표징을 요구하지만, 표징을 본다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이는 표징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표징을 보았다고 해서 모두가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죽은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아직 살아있는 형제들에게, “죽은 이들 가운데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루카 16,30)라고 간청했을 때, 아브라함은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31)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고 불신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는 이들이 표징을 알아볼 것입니다. 믿음으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말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히브 11,1-3)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요나보다도, 솔로몬보다도 더 큰 분이심을 계시하십니다.

“보라, 요나보다 솔로몬보다도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41.42) 

그러나 요나의 설교만 들고도 회개한 이방인 니네베 사람들과 솔로몬의 지혜를 평판으로만 듣고도 찾아온 이방인 세바의 여왕은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건만, 이스라엘 백성인 유대인들은 주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도, 여러 가지 표징을 보고서도 태도를 고치기는커녕 그분을 죽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굳이 표징을 보여주지 않아도 믿는 이들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실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표징들 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아멘 .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2,39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주님!
제 눈이 기적을 보기보다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불가사의한 일로 
놀라게 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를 
선포하시려 오셨습니다. 

하오니, 주님! 
이미 제 안에 이루어진 
당신의 자비를 보게 하소서. 

오늘 제 안에서 이루시는 
당신의 구원을 보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말씀으로 이끌지 못하는 은총은 가짜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에게서 표징을 하나 보았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악하고 불충한 세대”라고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이것은 마치 사춘기 아이가 부모에게 ‘잔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차리세요!’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은총은 받되 말씀은 물리치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신앙을 ‘표징중독’이라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체 조배를 하면서 주님의 현존 안에 머물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기보다, ‘뭔가 신비한 것을 보거나, 특별한 느낌을 받는 것’에 집착합니다. 심지어 생명의 말씀인 성경마저도 표징으로 취급합니다. 무작위로 성경을 펼쳐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지금 나에게 주시는 직접적인 명령이라 믿는 ‘성경 점’을 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묵상을 통해 나에게 소화되고 삶으로 체화되어야 하는 양식이지, 즉석에서 답을 알려주는 운세 쪽지가 아닙니다. 

표징중독의 위험성은 너무나 명백합니다. 나중엔 부모까지도 해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90년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던 박한상 씨의 사례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는 부모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였지만, 자신을 통제하려는 부모의 ‘잔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부모가 주는 돈(은총)은 원했지만, 그 돈에 담긴 책임과 의무의 가르침(말씀)은 거부한 결과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비극은 미국에서도 있었습니다. 1989년, 라일과 에릭 메넨데즈 형제는 베벌리힐스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부모를 총으로 살해했습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덕에 그야말로 왕자처럼 살았습니다. 최고급 스포츠카, 명품 시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부모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은총)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방탕한 생활을 꾸짖고 올바른 길로 이끌려는 부모의 간섭(말씀)을 증오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부모를 제거하고 1,400만 달러의 유산을 차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달콤한 돈과 사치는 마음껏 집어삼켰지만, 쓴소리와 가르침은 철저히 뱉어냈고, 그 결과는 파멸뿐이었습니다. 

인간이 부모로부터 오는 은총과 표징만을 원하고 말씀은 원하지 않을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녀가 되어야 할까요?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 마의 아버지, 마효준 박사(Dr. Hiao-Tsiun Ma)는 네 살짜리 아들에게 첼로를 가르칠 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단 ‘두 마디’만 주고는, 그것을 완벽하게 익힐 때까지 다른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요요 마에게 아버지는 값비싼 첼로(은총)를 사주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첼로의 대가로 나아가는 길(말씀)을 한 걸음씩 안내하는 스승이었습니다.

오늘의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표징에 대한 갈망 이전에,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에 먼저 관심을 두게 될 수 있을까요? 흥미롭게도, 한때 표징 중독자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그 답을 보여줍니다. 쾌락과 이단 사상이라는 표징을 찾아 헤매던 그가 회심하던 순간, 그는 “집어 들고 읽어라(Tolle, lege)!”라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분명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표징이 가리킨 것은 또 다른 신비 체험이 아니었습니다. 그 표징은 그를 곧장 ‘성경을 읽는 행위’로, 곧 ‘말씀’으로 이끌었습니다. 진정한 표징은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합니다. 표징 자체가 목적이 될 때, 신앙은 길을 잃습니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균형 잡힌 신앙 교육을 받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피카소나 요요 마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신뢰하며 따랐던 것처럼, 우리도 교회라는 어머니의 가르침, 즉 체계적인 교리와 성경 공부의 과정을 신뢰하고 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말씀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주님의 표징이 우리를 결국 ‘성경을 읽는 행위’로 이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피카소와 요요 마처럼, 지루해 보이는 기초와 과정 안에 위대한 은총이 숨겨져 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제가 성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안수를 받고 가장 후회한 것은, 그분께서 안수하신 후에 저에게 한마디 하신 것을 못 알아들었고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수는 은총인데, 그 은총은 말씀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더 이상 달콤한 것만 골라 먹는 뷔페가 아니라, 우리 영혼을 온전히 살리는 거룩한 코스요리가 되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자판기’ 신앙을 넘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다.

언젠가 저녁에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에 대한 험담을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임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끝기도를 하는데 제 모습이 후회되고 부끄러웠습니다. 험담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때 험담하면서 속이 다 시원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제일 재미있어하는 말이 험담, 뒷담화라고 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험담은 전혀 좋지 않습니다. 나에게도 또 그 험담의 대상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사실 험담의 이유를 잘 따져 보면 ‘나는 괜찮다’라는 생각 때문인 것 같습니다. 괜찮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음에 상대를 뒷담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부족함을 가리기 위해 상대의 문제점을 부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대보다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래서 상대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면 절대 험담하지 않게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응원하고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어린아이를 향해 뒷담화하는 부모를 본 적이 없습니다. 다 똑같아 보이는데도 자기 자녀가 더 특별하다고 바라보지 않습니까? 

뒷담화, 험담은 자기를 부끄럽고 힘들게 합니다. 이를 지우는 방법은 딱 한 가지입니다. 상대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기의 발전과 성숙은 필수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스승님이 일으키시는 표징을 보고 싶습니다.”(마태 12,38)라고 말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이제까지 수많은 기적을 보았고 또 기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신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무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마태 12,39)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자기들처럼 올바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과만 어울리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험담만을 늘어놓던 그들은 표징만을 요구하면서 자기들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시지요. 니네베 사람들이 그리고 남방 여왕이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는 세대는 단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뒷담화, 험담을 하기에 앞서서 먼저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와 함께하는 주님의 표징들을 삶 안에서 계속해서 발견하면서 굳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너무 소심하고 까다롭게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지 말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더 많이 실험할수록 더 나아진다 (랄프 왈도 에머슨).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어떤 표징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진정한 표징은 우리의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믿는 신뢰입니다. 솔로몬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보고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신앙입니다.

진리는 기적이 아니라 우리의 삶으로 요구됩니다. 하느님의 지혜는 사람의 지혜를 넘어섭니다. 참된 지혜는 단지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혜는 관계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느님과의 친밀함 안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지혜입니다. 이렇듯 지혜는 개념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혜를 가르치는 분이 아니라 지혜로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우리 삶을 이끄십니다. 교만과 편견이 아니라 겸손한 열림만이 지혜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미 와 계신 하느님을 알아보는 회개가 중요합니다. 회개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기쁜 날 되십시오. 하느님께 사랑으로 응답하는 이 순간이 가장 큰 표징입니다.

 

 

 

탈출기 14장 18절
오늘 성경 말씀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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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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