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주님, 주님의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주님의 은총을 인자로이 더해 주시어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언제나 깨어 주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게 하소서.
온라인으로 언제 어디서든
말씀과 연결되는 시간
2025년 7월 23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의 삶을 환히 비춥니다. 지금 이 순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요.
2025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수요일 온라인 매일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탈출 16,1-5.9-15)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 오늘 복음
(마태 13,1-9)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탈출 16,1-5.9-15
오늘 제1독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1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2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3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줄 터이니, 백성은 날마다 나가서 그날 먹을 만큼 모아들이게 하여라. 이렇게 하여 나는 이 백성이 나의 지시를 따르는지 따르지 않는지 시험해 보겠다.
5 엿샛날에는, 그날 거두어들인 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보면, 날마다 모아들이던 것의 갑절이 될 것이다.”
9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주님께서 너희의 불평을 들으셨으니, 그분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하고 말하십시오.”
10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말하고 있을 때, 그들이 광야 쪽을 바라보니, 주님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났다.
1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12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3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14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15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
마태 13,1-9
오늘 복음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5년 7월 23일
박성경 시몬 신부
✚ 미사시작 00:20
✚ 강론시작 08:53
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태훈 리푸죠 신부
모든 마음에 복음의 씨를 뿌리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의 여러 형태 가운데에서 비유를 선호하셨습니다.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약 3분의 1 정도입니다. 비유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간결하고 생생한 이야기로 꾸며집니다.
씨 뿌리는 이야기, 물고기를 잡아서 고르는 어부 이야기, 포도원의 일꾼들 이야기, 진주 상인 이야기, 잃어버린 양 이야기, 누룩 이야기 등 갈릴래아의 민중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재를 활용하시어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소재들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농부, 어부, 일용직 노동자, 상인, 목자, 심지어 당대 가르침에서 소외된 여자들도 당신 말씀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친밀한 소재이기에 청중들을 생생하게 끌어들였습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소외감이나 열등감 없이 하느님과 그분 나라의 현실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비유가 보여 주는 현실을 추구하며, 그것을 향하여 나아갈 결심을 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본질적으로 비유는 듣는 사람의 반감을 극복하고자 사용되었던 문답식 형태였기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 율법 학자들, 사제들 같은 당신의 반대자들에게서도 공감을 끌어내고자 비유를 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방어하는 데 급급하시지 않고, 직선적이지 않게, 마음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하느님의 존재 양식과 행동 양식을 알려 주시고 그들이 스스로 반성하고 판단하여(마태 18,12; 21,28 참조) 결론을 끌어낼 수 있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려 깊게 사람을 이끄는 방법을 알고 계시면서 그 누구도 복음의 대상에서 제외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이처럼 모든 마음에 복음의 씨를 뿌리십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불평에 대한 성찰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합니다. 배가 고프기 때문이고, 이집트에선 노예로 살아도 배는 불렀는데 광야에선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남의 일처럼, 나는 그렇지 않은 양 이들을 비판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사는 동안 얼마나 불평이 많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불평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오늘 해야겠습니다. 먼저 볼 것은 불평은 불행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행복한 사람의 입에서는 결코 불평이 나오지 않습니다. 불행하거나 적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불평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왜 행복하지 않고 더 나아가 불행합니까? 그것은 불만 때문이고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또 왜 불만이고 왜 만족할 줄 모릅니까? 그것은 욕구는 한계가 없고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도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행복하려면 만족의 비법을 알아야 하는데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곧 하나는 인간적인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방법입니다.
먼저 인간적인 방법을 보면 능력에 한계가 있는 만큼 욕구를 없애거나, 욕구를 없앨 수 없다면 욕구가 욕망이나 욕심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배고파도 화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능력이 없고 가난한 자신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우리 신앙인은 신앙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은 하느님으로 만족하거나 하느님의 도움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곧 배고프면 인간에게 불평하지 않고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반대의 짓을 합니다. 기도해야 할 입으로 불평을 하는 겁니다. 하느님께 향하지 않고 인간에게 향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또 반성해야 할 것은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점입니다.
배고프다고 배불렀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것 말입니다. 복지 곧 행복의 땅인 가나안을 그리워하지 않고, 배고픔 때문에 노예의 땅인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철학자보다 배부른 돼지가 낫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단식하시고 돌로 빵이 되라는 유혹을 광야에서 받으실 때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처럼 하느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빵 문제에만 관심이 있어서 하느님 말씀의 좋은 밭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평 성찰을 한 우리는, 지상에 살면서도 천상의 행복을 그리워하고 배고파도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으로 만족할 줄 아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
말씀의 씨를 가꾸는 농사법
<마태오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대한 비유’ 일곱 가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그 첫 번째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이 비유는 세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씨 뿌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요, <둘째>는 ‘뿌려진 씨’에 대한 이야기, 곧 열매인 ‘결실’에 대한 이야기요, <셋째>로는 ‘씨가 뿌려진 땅’에 대한 이야기, 곧 ‘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첫째>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서 밭을 구별하지 않고 씨를 뿌리는 구원의 보편성을 말해주며, <둘째>로는 그 씨앗은 열매를 맺고 실현되고 성취된다는 사실을 밝혀주며(이사 55,11), <셋째>로는 씨가 뿌려진 밭을 잘 가꾸어야 할 하느님 자녀의 소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마지막 구절에서, 결론처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8)
그렇다면, 분명 나에게도 말씀의 씨앗이 뿌려졌을 터인데, 지금 나에게는 몇 배의 열매가 맺혀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내가 좋은 땅인가를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떨어질 때 그 땅이 ‘좋은 땅’이었는지 아니었는지에 따라 열매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 뿌려지면 그 땅은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좋은 땅’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땅’은 ‘씨앗’과 함께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일구어지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뿌려지기 전의 땅의 상태보다, 씨앗이 뿌려진 후에 땅을 갈고 가꾸는 것에 의해 그 땅의 성질이 결정지어집니다. 곧 ‘말씀의 씨를 가꾸는 농사법’은 먼저 밭을 잘 쟁기질 한 다음에 씨가 뿌려진 것이 아니라, 어느 땅이든 상관없이 먼저 씨가 뿌려진 다음에 그 밭이 쟁기질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땅은 씨앗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땅이라 할지라도 쓸모없는 땅일 뿐입니다. 그러니 밭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씨앗’이 거룩하고 씨앗으로 말미암아 밭이 거룩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밭에 씨앗이 선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은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그 씨앗의 존재와 가치를 깨닫는 일이요, 베풀어진 그 씨앗을 맞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씨앗으로 말미암아 변화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그러니 씨앗이 내 안에 뿌려진 채, 여전히 묻혀 있지 않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것은 뿌려진 씨앗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 사랑이 부어졌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요, 뿌려진 씨와 함께 열매를 맺어야 하는 소명을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하늘을 쳐다보고 밭에서 일할 줄 알며 땅의 노래를 하늘과 함께 부르는 사람이요, 하늘의 노래를 땅과 함께 부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땅을 매만지며 피땀 흘려 자신의 지문을 새기며 사랑할 줄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 열매로 자신의 배를 채우기보다 타인에게 내어주는 사람입니다.
하오니, 주님! 당신 말씀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저희가 살게 하소서! 아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 마태 13,4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주님!
당신 말씀의 씨앗을
품고 살게 하소서.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일구는
일꾼이 되게 하소서.
말씀의 씨앗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행실로 열매 맺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 말씀의 씨앗으로
말미암아 살게 하시고
당신 말씀으로
거룩해 지게 하소서. 아멘.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사랑을 증가시키는 유일한 법
세종대왕은 신하들에게 “백성을 위해 우리의 소리를 담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라.”라고 명했습니다. 당시 사대부와 학자들에게 중화(中華)의 한자를 버리고 ‘언문(諺文)’을 만드는 것은 문명에 역행하는 어리석고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최만리 등 수많은 학자들이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성삼문, 신숙주 등 스승인 세종의 뜻을 믿고 따른 젊은 학자들의 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순종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는 위업으로 이어져, 오늘날까지 모든 백성에게 지식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백성의 이익을 위한 수많은 발명품이 그랬습니다. 세종대왕의 말씀을 자신들 안에서 열매 맺게 하는 이들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그들은 세종대왕을 사랑하여 그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 것뿐인데 이웃 사랑의 열매까지 맺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말을 존중하고, 그 말이 결국 옳았음을 내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그리고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오늘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 비유에서 ‘좋은 땅’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상태가 좋은 땅이 아닙니다. 씨앗을 심어준 주인을 사랑하기에, 어떻게든 열매를 맺어 그분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의지’를 가진 땅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너의 후손이 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다.”(창세 15,5) 하신 하느님의 말씀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말씀하신 분을 믿고 사랑했기에, 그 말씀을 붙들고 고향을 떠났고, 그의 사랑 가득한 순명이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위대한 진리로 열매 맺게 했습니다.
저 역시 한 말씀을 붙들고 거의 30년 가까이 씨름하며 열매 맺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학교 시절, 주님과 거래하려 했던 저에게 주님께서는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씨앗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분을 향한 사랑이 제 안에서 싹트자, ‘이 말씀이 내 삶에서 얼마나 위대한 진리인지를 증명하여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 드리리라’는 거룩한 의지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 의지는 제 삶에서 구체적인 깨달음의 열매들을 맺게 했습니다.
첫째, 내 불행의 근원이 뱀과 같은 ‘자아’와 거기서 비롯된 삼구(교만, 육욕, 소유욕)임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그런 자아 때문에 내가 하느님을 내 목적을 위한 ‘소’처럼 부리고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셋째,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하듯, 내가 할 유일한 일은 예수님께 붙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넷째, 주님이 모든 것을 주셨기에 나에게는 불가능이 없으며, 원수까지 사랑하고 위대한 신학자가 되겠다는 거룩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다섯째,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성체의 ‘은총’과 말씀의 ‘진리’가 함께 가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여섯째, 은총으로 얻는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과 진리로 얻는 ‘이웃에게 꽃을 심는 마음’으로 살아야 다른 이에게 열매를 맺어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열매는 그저 열린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에 그분의 말씀을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다는 저의 작은 의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네가 가진 것의 십분의 일을 봉헌하여라.”(신명 14,22 참조) 혹은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하신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이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하며 길바닥에 버려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니, 내 삶으로 기어코 이 말씀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리라’는 의지로 그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바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말씀을 살아내려는 의지적인 노력으로 표현됩니다. 오늘, 우리 마음 밭에 뿌려진 말씀을 사랑으로 받아, 반드시 열매 맺어 보이겠다는 결심으로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열매는 백배가 되었다.
성공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삶의 방식인 성공 지향적 생각을 하던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업계에서 2등은 의미 없다면서, 1등을 위해 온 힘을 쏟았습니다. 신앙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성공을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전혀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결국 사업은 실패했고, 건강도 잃고 신앙도 잃고 기쁨도 잃고 말았습니다. 후회와 힘든 시간을 거쳐서,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여유 있는 삶을 살면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생활하십니다.
집중력 높이는 공부 잘하는 약이 있습니다. 효과는 분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족지연’을 통해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지적 성취감을 앗아가 버립니다. 과연 집중력 높여 좋은 성적 맞는 것이 최고의 선택이었을까요?
성공 지향적 사고, 세상의 일에 집착하는 것 모두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니체는 하릴없이 자연 속을 거닐 때 가장 위대한 사유를 할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때 얻은 생각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공 지향적 사고, 세상에 집착하는 것에 벗어나야 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으로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좋은 땅에서 열매를 맺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길, 돌밭,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당연히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리고,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맙니다. 또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버립니다. 씨는 주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세상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땅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만, 백 배,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말씀드린 성공 지향적 사고, 세상의 일에만 집착하는 삶을 통해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기도와 성사, 신앙 안에서 꾸준히 길러진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삶을 통해 가꾸어진 마음을 통해서만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농부는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입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요?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땅을 갈아엎습니다.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공기가 들어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도 갈아엎어야 하지 않을까요? 성공과 세상에 집착하는 마음을 갈아엎어, 주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좋은 땅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마음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사랑의 명약, 그것은 진심에서 나오는 배려이다 (메난드로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밭을 믿기에 농부는 씨를 뿌립니다. 기다림과 인내 그리고 침묵의 시간을 받아들이며 결과보다는 과정에 충실합니다. 씨는 뿌려져야만 존재합니다.
씨앗은 그 자체로는 완전하지 않으며 뿌려지고 죽을 때에야 비로소 열매 맺는 존재입니다. 언제나 먼저 다가오시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삶의 상태가 어떤지 상관없이 말씀을 주시고 기회를 주십니다.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입니다. 길가에도 돌밭에도 가시덤불에도 씨를 뿌립니다. 결과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말씀은 지식이 아니라 씨앗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바로 열매 맺는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은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무관심의 길가와 얕은 신앙의 돌밭과 세상 욕심의 가시덤불을 지나며 좋은 땅이 됩니다.
우리는 오늘 어떤 밭인가를 묻게 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말씀이 조용히 뿌리 내릴 수 있는 좋은 날 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씨 뿌리시는 농부는 조급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하느님의 때를 신뢰하기에 이 모든 것을 맡깁니다. 농부의 삶은 내어맡김의 표징입니다.
탈출기 16장 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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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아가는 지혜
놓치면 후회할 성경구절
성경 말씀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삶을 비추는 빛이 되어 하루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말씀 한 구절이 오늘을 새롭게 하고 큰 기적을 이끌어냅니다. 하루를 변화시키는 성경구절 5가지, 지금 만나보세요! 한 말씀이 오늘을 바꾸는 기적이 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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