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저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저와 싸우는 자와 싸워 주소서. 둥근 방패 긴 방패 잡으시고 일어나 저를 도와주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가 나약하여 힘겨워하는 모습을 굽어보시고 외아드님의 수난으로 다시 생기를 얻게 하소서.
2024년 3월 25일 성주간 월요일 온라인 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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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5일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성주간 월요일
오늘 말씀 한 줄 요약
- 제 1독서
(이사 42,1-7)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 오늘 복음
(요한 12,1-11)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오늘 말씀 카드
(요한 12,8)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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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임금님, 경배하나이다. 당신만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나이다.
요한 12,1-11
오늘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가톨릭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4년 3월 25일
박재찬 안셀모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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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그냥 놔두어라.
복음은 파스카 축제 엿새 전 베타니아의 잔치를 배경으로 합니다. 참혹한 수난이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 잔치, 향유, 여성의 머리카락 등의 소재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되었음에도 다시 살아난 라자로의 이야기는 오늘부터 엿새 뒤에 있을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합니다.
마리아의 이야기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상징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리아가 삼백 데나리온(1년 치 품삯에 해당)이나 하는 비싼 향유를 한 번에 사용하며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린 것 때문에 유다 이스카리옷은 분통을 터뜨립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러나 본문은 분명하게 그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냥 놔두어라.” 하시며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행위와 당신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신 것입니다.
사실 ‘향유’를 쏟아 ‘예수님의 발을 닦는 행위’는 당신의 ‘피와 물’을 온전히 쏟아 ‘인간의 죄를 닦으신 예수님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던 것처럼 십자가 주변도 예수님의 피 냄새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듯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예수님의 발을 닦았듯이 예수님께서도 허리를 굽혀 인간의 발을 닦으시고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고, 성실하게 공정을 펴시며,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분께서는 “백성에게 목숨을 ……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이시기에 라자로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이제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숨과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사랑의 순환
오늘 주님께서는 삼백 데라리온 어치의 향유를 발에 바르는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아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는다는 항의와 비판을 받으시는데 제 생각에 이 비판은 날카롭고 정의롭기도 하여 참 뼈아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리아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으신 것은, 유다의 비판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도 같은 생각이셨을 겁니다.
그 비싼 향유를 당신 발에 바르는 것보다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을 더 원하셨을 겁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우리가 믿는다면 주님께서 그 행위를 마리아에게 허용하신 것도 당신이 아니라 마리아를 위해서 허용하신 것일 겁니다.
사랑의 허용,
사랑의 수용,
사랑을 귀히 여김.
이것이 주님의 의도입니다.
적당한 비유가 아닐 수 있습니다만 예전의 저는 누가 무엇을 제게 선물하실 때 칼 같이 거절했습니다. 저의 가난을 위해서입니다. 견물생심처럼 선물을 받기 시작하면 작은 구멍이 봇물 터지듯 하게 할 것이기에 겁먹고 미리 그리고 아예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 저는 주시는 분들의 사랑을 고려하고 배려할 사랑의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할 때 저의 가난은 많이 타락했지만 사랑의 여유는 많이 생겼습니다. 그 선물을 사랑으로 받아 나의 소유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돌려 사랑이 순환하게 하는 것 곧 돌고 돌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허용과 사랑의 수용과 사랑을 귀히 여김이 사랑의 순환이 되게 함이 저의 목적이라는 말입니다. 주님도 이런 마음이셨을 거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마리아의 발 씻음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신 주님은 이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사랑을 모범으로 보여주실 겁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선언하실 것이고, 주님의 발을 씻어드린 마리아도 주님 돌아가신 뒤에는 주님 말씀대로 가난한 이들의 발을 주님 발 씻어드렸듯 씻어줬을 겁니다.
이럴 때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도 대립이 되지 않고 순환이 되는데 이 사랑의 순환을 오늘 주님과 마리아의 사랑에서 배우는 오늘 우리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왜 자비로운 사람에게만 은총을 주시는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자 하느님으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은 방금 죽은 라자로를 살리셨습니다.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께 수천만 원에 해당하는 향유를 발에 붓고 머리를 닦습니다. 가리옷 유다는 그걸 가난한 자에게 주면 더 좋았을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부모에게 아끼는 사람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부모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에겐 은총입니다. 은총을 주시는데 전혀 반응이 없다면 그분도 더는 바보가 되려 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자비를 입으려면 먼저 자비로워야 합니다. 그 순서도 있습니다. 하느님, 부모, 형제, 이웃들입니다.
SBS TV 동물농장, 애니멀봐에서 같은 날 태어난 풍산개 남매가 서로 밥 먹을 때만 싸우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평소에는 매우 친하지만, 밥만 나오면 유독 오빠 개는 자기 먹을 것은 먹지도 않으면서 동생 개가 밥을 먹지 못하고 뭅니다. 전문가들은 이것이 서열 정리라고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인이라면 형제에게 자비롭지 못한 개에게 밥을 더 주겠습니까? 주인은 그 오빠 개를 묶어놓고 동생 개에게만 음식을 편히 먹을 수 있도록 줍니다. 그다음에 오빠 개도 주기는 합니다. 음식은 주는 일은 자비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자기가 음식을 주는 대상도 자비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대상에게 자기가 자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강탈당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어린이를 사랑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한 아동 문학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밤, 방정환 선생의 집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칼을 든 강도를 만난 선생은 차분히 말했습니다.
“돈이 필요하면 그냥 달라고 하면 되지, 무슨 칼까지 들이대고 그러시오. 돈이 필요하다면 내가 주겠소.”
너무도 부드럽고 친절한 방정환 선생의 말에 강도가 더 당황했습니다. 선생이 준 뭉칫돈을 주섬주섬 챙겨 나가려 하는 강도에게 방정환 선생이 다시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달라고 해서 줬으면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 하지 않소.”
“고... 고맙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경찰에게 강도가 붙잡힌 것입니다. 방정환 선생 집으로 들어온 경찰과 강도를 본 선생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허허. 또 오셨네! 방금 준 돈을 벌써 다 쓰셨단 말이오.”
그러자 경찰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자가 여기서 강도질을 했다고 자백했습니다.”
경찰의 말을 들은 방정환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사람은 강도가 아닙니다. 사정이 딱한 것 같아 내가 그에게 돈을 주었습니다. 내가 준 돈을 받고 고맙다고 인사까지 한 사람인데, 어떻게 저자가 강도입니까.”
방정환 선생의 말에 경찰은 의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강도를 풀어주었습니다. 경찰이 가고 나서 강도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나쁜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강도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받아내려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강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면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억지로라도 선악과, 혹은 십일조, 혹은 작은 감사의 기도라도 받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은총으로 악해지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운 사람만이 자비를 입습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어느 마을에 두 농부가 있었습니다. 둘 다 곡물의 씨앗을 뿌리려고 준비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씨앗을 뿌리려는데, 곡물 씨앗 안에 다른 씨앗이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가려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한 농부는 “나는 다른 씨앗이 섞여 있는 이 씨앗을 뿌리지 않겠다.”라며 씨 뿌리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반면 다른 농부는 그럼에도 씨앗을 밭에 정성껏 뿌렸습니다. 시간이 지나, 곡물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다른 씨앗이 섞여 있어도 씨앗을 뿌린 사람이 분명합니다.
밀과 가라지의 비유 말씀을 떠오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가라지는 독보리라고 불리는 잡초로, 밀의 뿌리와 뒤엉켜 자라기 때문에 이 가라지를 뽑으면 밀까지 뽑히게 됩니다. 그래서 추수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점과 약점을 얼른 뽑아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합니다. 부정적인 모든 것을 없애 버리려는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가지려고 하지만, 이 부정적인 모습도 받아들이면서 밀과 같은 좋은 모습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는 부족함을 가지고 있다면서 대충 막살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느님께 되돌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겸손이 필요했습니다. 이런 겸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도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가라지를 억지로 뽑으려 하지 않습니다. 즉,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잡초의 힘을 빼앗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잡초를 솎아내고 그 힘을 빼앗습니다. 물론 전부 제거하거나 완전히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하느님께서 그 불순물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매달리며 사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유다는 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지요.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렇게 사리사욕이 가득 찬 계산속에서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기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 발에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 무엇입니까? 낭비일까요? 아닙니다. 사랑만이 보입니다. 이 사랑을 예수님께서는 받아주십니다. 주님 앞에서는 완벽주의자가 굳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로지 사랑의 삶만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명언
사람들은 행복을 찾아 헤매고, 행복은 누구의 손에든지 잡힐 만한 곳에 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만족을 얻지 못하면 행복을 얻을 수 없다.
- 호라티우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이 향유처럼 우리에게 쏟아져내립니다. 향유는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들의 이름처럼 더욱 향기롭습니다. 향기가 지나가듯 예수님께서도 수난의 이 여정을 떠나시려 하십니다.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의 여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향기는 마음의 향기입니다.
사람만이 간직해야할 마음의 향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우리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 가는 세상을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가는 세상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더 무겁고 더 무서운 것은 우리들의 무관심입니다. 생명의 문이 환하게 활짝 열리는 길을 알려주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뜨겁게 깨닫습니다.
사랑이 사라지면 향기도 사라집니다. 삶이 그냥 삶이 아니듯 사랑이 그냥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아름답고 소중하고 향기로운 것은 간직해야 할 이유를 일깨워줍니다. 하느님의 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야 할 삶이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밀고 당기며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습니다.
이 성주간이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는 성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깊이 간직하신 사랑이 십자가의 수난과 십자가의 부활로 드러나는 은총의 향기입니다. 향기와 사랑으로 깊어지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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