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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말씀묵상

매일미사 2021년 6월 12일 (토) 성모성심기념일

by 평화다방 2021.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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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 성모 성심 기념일 -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2021년 6월 12일 (토) 온라인 미사와 강론입니다.

 

 

✠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Memorial of the Immaculate Heart of Mary)

 

성모 성심에 대한 신심은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 등으로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이 점점 보편화되었습니다. 19세기 전까지는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성모 성심 신심이 전례 안에 들어왔습니다.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1942년 비오 12세 교황이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성모 성심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도록 했습니다. 성모 성심 기념일은 8월 22일이었으나 1996년부터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로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라고 합니다.

 

 

✠ 오늘 복음

 

당신을 애타게 찾은 부모에게 예수님께서는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십니다.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6월 12일 (토)
매일미사와 오늘의 말씀 묵상 2021년 6월 12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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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Entracne)

 

입당송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매일미사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First Reading)

 

제1독서
이사 61장 9-11절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내 백성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매일미사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Responsorial Psalm)

 

화답송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매일미사 복음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 환호송 (Gospel Acclamation)

 

복음환호송

 

알렐루야.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당신은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셨나이다.

 

알렐루야.

 

 

매일미사 복음 (Gospel)
복음 (Gospel)

 

복음
루카 2장 41-51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매일미사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Communion Antiphon)

 

영성체송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네.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매일미사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신령성체 (영적영성체) 기도문 :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신령성체 (영적 영성체) 기도
An Act of Spiritual Communion

 

지극히 거룩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금 성체 안의
당신을 영할 수는 없사오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오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소서.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이제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소서.
아멘.

 

 

신령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영원한 구원의 성찬에 참여하고 비오니 성자의 어머니를 기리는 저희가 주님의 충만한 은총에 감사하며 끊임없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매일미사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온라인 미사 (Daily Catholic Holy Mass Online)

 

팔로티회 매일미사

 

 

2021년 6월 12일 (토) 15시

 

 

평화방송 매일미사

 

 

2021년 6월 12일 (토)

 

 

매일미사 오늘의 말씀 묵상
오늘의 말씀 묵상 (Daily Homilies & Reflections)

 

매일미사
박형순 바오로 신부

 

'곰곰이 생각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마음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위해서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을 잉태하실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에 기꺼이 따르십니다. 어머니의 모범적 모습은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그 길에 소리 없이 협력하심으로 드러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서 차지하는 어머니의 큰 역할에 비하여, 복음서에 어머니의 말씀은 거의 전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어머니께서는 ‘곰곰이 생각하시고’(루카 1,29 참조),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곰곰이 되새기셨다’(루카 2,19; 2,51 참조)고 하십니다. 

이렇듯 성모님께서는 좋은 일이든, 섭섭한 일이든, 일희일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시고 곰곰이 되새기신 성모님을 통해서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품어 내신 성모님의 마음을 우리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이라 부르고 기억합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신앙의 모범으로 바라보며, ‘천주의 성모님’, ‘하늘의 여왕’,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 등 영광스러운 호칭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 영광스러움을 가능하게 하셨던 성모님의 밑바탕에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시고 마음속에 간직하시는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님의 마음’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의 육화는 이러한 성모님의 마음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을 우리 신앙의 모범으로 삼고 공경합니다. 입으로만 외치는 공경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도 어머니께서 지니셨던 ‘곰곰이 생각하고’,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마음을 닮고자 노력한다면, 티 없이 깨끗하신 어머니의 마음을 기념하는 좋은 길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성모 성심 축일 - 간직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오늘 우리가 지내는 성모 성심 축일을 저는 오늘 <간직 축일>이라고 이름 붙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오늘 복음 끝에 성전에서 있었던 일들과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말에서 비롯된 거지요. 

그렇습니다. 어제 예수님 마음에 이어 오늘 성모님 마음을 기리는 우리가 주님 마음에서는 무엇을 본받고 성모님 마음에서는 무엇을 본받아야 할지 우리는 성찰해야 하는데 간직하는 마음을 우리도 본받으면 좋을 것입니다. 

'간직하다'는 말은 '품다'거나 '지니다'는 말과 비슷한 면도 있지만 다른 뜻이 있는데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고, 가지거나 품거나 지니는 것은 욕심으로 그럴 수 있는 데 비해 간직하는 것은 욕심이 배제된 사랑으로 간직하는 거 같습니다. 

실로 소중히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간직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간직한다는 말에는 보통 '소중히'라는 말이 앞에 붙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무엇을 간직한다면 그것이 그에게 소중하기에 간직하는 것인데 그러나 무엇을 소중히 간직하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수집한 수석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여행지의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며,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선물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존경하는 분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간직한다는 것은 소중히 간직할 뿐 아니라 고이 간직합니다. 무엇이 소중하다면 그것을 당연히 고이 간직하려고 할 터인데 고이 간직한다는 것은 손상되지 않게 잘 간직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소중하다면 오래 간직할 것입니다. 사실 무엇이 소중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오래 간직할 것이고, 영원히 간직한다면 영원히 간직할 만큼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이겠지요? 

이렇듯이 간직하는 것에는 무엇을 소중히, 사랑으로, 고이, 오래 간직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인데 간직함의 모범인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말씀과 주님 말씀을 태중에 그리고 마음속에 간직하신 분이시고 그래서 성모 영보 축일과 함께 오늘 성모 성심 축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마리아처럼 성심을 지닐 수 있습니다. 성모 성심뿐 아니라 안나 성심이니 레오나르도 성심도 있다는 말입니다. 단 마음속에 다른 것을 지니지 않고 주님 말씀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도 성모님 마음처럼 성심이 되고 욕심으로 이것저것 소유하지 않고 사랑으로 주님 말씀만 간직해야 성모님 마음처럼 티 없이 깨끗한 성심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전삼용 요셉 신부

 

 

성모 성심 : 다 봉헌하고도 죄송한 마음

 

어제는 사제 성화의 날이기도 하면서 예수 성심 대축일이었습니다. 사제는 아버지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다 내어주시고도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그러면 성모님의 마음은 어떠실까요? ‘다 봉헌하고도 죄송한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예수님께서 성전에 계시며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하신 말씀을 듣습니다. 성모님은 예수님을 분명 봉헌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이제 아버지의 소유임을 잠깐은 망각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십자가 밑에서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시며 아버지의 뜻에 봉헌하십니다. 그러나 완전히 봉헌하지 못하고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라고 하시며 어머니로서의 아주 미소한 집착을 내비치셨습니다. 

부모를 잃은 자녀를 고아라 하고, 남편을 잃은 여인을 과부라 하며, 아내를 잃은 남자를 홀아비라 하는데, 자녀를 잃은 부모는 너무 슬퍼서 부르는 이름조차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잃어본 사람만 알 것입니다. 그러나 맡기셨던 것을 다시 찾아가시는 것에 불과한 일이 그런 고통을 가지는 것조차 죄스러운 마음이 성모 마리아의 마음이 아니셨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더 못 줘서 미안하고 어머니는 남편에게 더 못 돌려드려서 죄송한 마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수녀님께서 감사하게도 당신이 수녀가 되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허락은 받았지만, 누구신지 짐작이 갈 것 같은 내용은 조금 수정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 봉헌하면서도 죄송하고, 그래서 행복한 성모님의 마음과 닮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심하게 자아와 인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를 철학과로 들어갔는데 3학년 때 또다시 제 영혼이 ‘삶이란 무엇인가?’의 딜레마에 빠져 방황하였어요. 

그러던 중 형이상학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철학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고 저의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셨어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급성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교수님은 어떤 신부님과 친구셔서 신부님께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대세를 받고 선종하셨어요. 그때 성당에서 하는 미사라는 것에 처음 참석했죠'.

교수님께서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전 제게 하신 말씀은 “내가 사제가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였습니다. 그러시며 저에게 『천국의 열쇠』를 읽어 보라고 하셨죠(‘천국의 열쇠’는 헌신적으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종교의 굴레보다는 사랑의 실천을 목적으로 살았던 치셤 신부와 고위 성직자가 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안셀름 주교의 두 삶이 대비되면 하늘 나라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내용입니다). 

교수님의 죽음으로 저는 또 길을 잃고 죽음에 대한 사유로 가득했습니다.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휩싸여 캠퍼스를 돌며 도서관에서 수많은 철학자가 제시하는 해답을 읽으면서 방황했어요. 

『천국의 열쇠』 책을 사러 가톨릭 서점을 다니면서 신학과 신앙 책을 읽게 되었고 제 영혼을 가장 강력하게 붙잡아주는 말씀이 저를 교회로 이끌었어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교리 반을 다니면서도 자살 충동이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이 심했지 않았을까?’, 아니면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원했던 대학원 진학도 할 수 없었어요. 다만 성모님 기적 메달, 묵주, 성수 등에 매달리며 예비자 때도 매일 성당에 갔어요. 성체만 영하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빨리 세례받기만을 기다렸죠. 

그리고 길이 없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길이다. 진리를 찾는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다. 죽음으로 가득한 저에게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제 영혼을 구원해 주셨어요. 세례받고 제가 엄청나게 밝아 졌어요. 자연스럽게 신앙 서적과 성경을 읽으면서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수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수님을 만나니 나에게서 철학은 끝났다고 정리했어요.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을지 저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 위해서 수녀원 입회 전에 가톨릭 장애인 시설에서 숙식하면서 일했는데 매일 매우 피곤했음에도 그때 성당에 가서 밤에 2시간 정도 성체조배를 했어요. 그때 예수님 환시 체험을 했어요. 십자가에 계시는 예수님이 살아서 몸을 비틀거리면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셨어요. 이런 환시는 수많은 날 오랫동안 계속되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혼자서 2시간 “예수님 사랑해요.”라고 기도하면서 그 고통스러운 예수님 바라보다가 성당에서 졸기도, 잠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예수님께 “예수님 죄송해요. 저 너무 피곤해서 갈게요.” 그러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살아 움직이며 몸을 비틀면서 못 박힌 손과 발, 계속 힘들어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를 들으며 나와야 했어요. 고통스러워하시는 예수님을 홀로 남겨두고 성당에서 나오는 마음이 너무나도 무거웠어요. 이 환시 체험은 계속되다가 종신서원 후에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때 그 시설에 신학생 2명이 파견받아 봉사하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저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농담이든 진담이든 저는 밤마다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었기에 수녀원 갈 것이고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말했어요. 저를 사랑하기에 받으시는 예수님의 고통에 저 자신을 바치는 것도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에 당연히 그 멋진 신학생들에게는 마음이 갈 수 없었어요. 지금도 저는 너무 행복하고 예수님 성체를 매일 모시면 너무 흡족하고 바랄 것이 없는데 성당에서 조배하고 예수님과 함께하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만족스러운데 천국에 가면 얼마나 행복할까요...아멘."

저는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제가 버리고 온 것에 비해 주님께서 저에게 왜 더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을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의 한 마디로 오히려 죄송스러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모님의 마음은 이렇듯 주님께 당신 자신을 다 봉헌하여 구원자의 어머니가 되셨음에도 주님의 은혜에 다 보답할 수 없는 마음에 미안하셨을 것입니다. 수녀님이 삶의 길과 참 진리와 생명을 찾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주신 것에 비해 당신은 그분의 곁을 떠나있는 것에 너무나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졌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내가 가진 것, 나의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을 주님께 바친다고 주님께서 주신 것보다 더 바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내가 바친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십일조가 아니라 당신의 온 존재와 당신의 아드님을 바치시고도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미안함과 인간의 이 미안한 마음이 합쳐질 때 둘은 하나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 묵상
조명연 마태오 신부

 

성모님께 높은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 자기를 사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많은 전문가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말로만 사랑한다고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 자신을 토닥이면서 “괜찮아. 잘 될 거야. 힘내!”라면 될까요? 사랑하는데 필요한 구체적 재료들을 제공하지 않으면 가냘픈 정신 승리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무언가가 되어야 나를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작더라도 노력해서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노력의 기억이 모이고 모여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되고, 이것이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입니다. 
 
작은 성취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실제로 이 작은 성취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기상벨에 맞춰서 벌떡 일어나기, 계획대로 하루 살기, 운동하기, 나의 발전을 위한 공부하기,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기도와 묵상에 집중하기…. 이렇게 따지고 보면 삶 자체가 자기 성취의 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나를 사랑할 이유가 자기 주변에 너무 많다는 증거입니다. 
 
자기 사랑은 분명히 가능합니다. 나의 자존감은 누구보다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성모님에 관련된 기념일이 참 많지요. 또 5월 성모의 달, 10월 로사리오 성월. 이렇게 1년 중에 두 달이나 성모님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성모님께 높은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예수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 하나만의 이유를 꼽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 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모님의 삶은 인간적으로는 행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고, 예수님을 낳자마자 산후조리도 하지 못하고 이집트로 피신을 하러 가야 했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와같이 고생해서 겨우 아들을 찾았지만, 아들로부터 ‘왜 자기를 찾느냐’는 무정한 말도 듣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자, 미쳤다는 소식도 듣게 되고요.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아들의 모습을 보셔야만 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만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일상 안에서 작은 성취를 이뤄나가야 하겠습니다. 성모님처럼 희망을 간직하면서 지금의 상황을 기쁨으로 바꿔야 합니다.

 

 

빠다킹 신부가 전하는 오늘의 명언

 

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William Shakespeare)

 

 

감사하는 마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글입니다.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세요. 
 
-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모든 삶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지기 마련이다. 
 
- 내가 얼굴이 못생겼다고 속상해하지만, 누군가는 몸이 아파서 병실에 누워있다. 
 
- 내가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기회조차 없이 고통을 받기도 한다. 
 
- 내가 돈이 없다고 한탄하지만, 누군가는 하루살이처럼 힘들게 살아간다. 
 
- 내가 부모가 밉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부모조차 모르며 외롭게 살아간다. 
 
- 내가 불면증에 시달리지만, 누군가는 몸이 아파서 한시도 자지 못하고 살아간다. 
 
- 내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속상해하지만, 누군가의 아이는 교통사고나 자살로 영영 이별을 하기도 한다. 
 
- 나에게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는 것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는 것과, 먹을 수 있는 입이 있다는 것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가 있다는 것과, 움직일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 늘 감사하는 마음의 힘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가도록 도와준다.

 

 

 

오늘의 말씀 묵상
한상우 바오로 신부

 

마음은 말씀을 실천할 때 거룩한 마음이 된다.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 48)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머니의 마음이다. 우리가 있기까지 어머니의 마음이 계셨다. 우리가 기쁘면 어머니께서도 기쁘시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은총의 시간이다. 마음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삶이란 끊임없는 사랑의 연속이다. 절절한 어머니의 삶이며 마음이시다. 진실로 중요한 것은 마음을 지켜내는 일이다. 마음이 마음을 보살피고 마음이 마음을 씻어준다. 마음은 실천을 먹으며 살아간다. 

티 없이 깨끗하신 기도의 삶이 있다. 어머니의 마음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는다. 깨끗하신 마음은 깨끗한 실천을 낳으신다. 마음은 말씀을 실천할 때 거룩한 마음이 된다. 말씀으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티 없이 깨끗한 어머니의 아침이다. 너와 나의 관계안에 애타게 찾는 마음이 있었다. 마음자리는 말씀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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